<本文>
" ①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②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1:1-2)
<序言>
11장은 '두 증인'으로 묘사된 교회의 사명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성전 척량(1-2절)과 두 증인의 사명(3-6절)과 두 증인의 피살(7-10절)과 두 증인의 부활(11-13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9장에서 이어지는 일곱번째 나팔 재앙이 나왔습니다 (14-19절). 11장은 알포드(Alford)가 "이 장은 수수께끼 같으며 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것 중의 하나"라고 표현했듯이 문자적 해석과 상징의 해석 간에 충돌이 심한 난해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本論>
1. 하나님의 성전을 척량하라고 했습니다.
10장에서 한 힘센 천사가 작은 책을 손에 들고 등장했었습니다. 요한이 하늘에서 그 책을 가지라는 음성을 듣고 그 힘센 천사에게 작은 책을 달라고 하니 그가 그 책을 먹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백성에게 예언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11장에서는 그 천사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고 했습니다 (1절).
지팡이 같은 '갈대'(헬.καλαμοs)는 건물이나 물건을 재는 도구로서 길고 곧은 장대 혹 은 잼대를 말합니다. 요한이 지팡이 같은 갈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척량하게 된 것은 구약 에스겔의 성전 척량의 전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도 척량하는 '장대'로 척량을 했습니다 (겔40:3). 그 '장대'는 히브리어로 '카네' (기본형은 '카나') 인데 헬라어로 말하면 '카나' '카네스' '카나이' 등(기본형은 '카논') 입니다. '카논'(κανων)은 기준, 표준, 규칙, 규범, 정경(正經)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것으로 척량을 하게 했던 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겔42:20). 그런 관념으로 본다면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척량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표준에 의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표준 안에 들어온 거룩한 것은 보호하고 하나님의 표준 밖에 있는 것은 유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는 척량한다고 했습니다. '성전'은 뜰과 방과 곳간 등을 모두 포함한 성전(ιερον)의 의미가 아니라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ναοs)를 말합니다. 곧 성전(聖殿) 안에 있는 성소(聖所)와 지성소(至聖所)를 말한 것입니다. '제단'은 성소와 연결하여 말한 것을 보면 뜰에 있는 번제단을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을 가리킬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성소 안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는 가장 기본 적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말합니다.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들어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요2:19-21, 고전3:16, 6:19, 고후6:16, 엡2:21, 계7:15, 8:3, 1;6, 5:10). 그들은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나 교회와 성도를 척량하십니다.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표준에 들어오는지 달아보십니다 (단5:25-28). 그리고 그 표준에 들어 온 자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감동시키시고 권고하시고 은혜 아래 두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표준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소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향단의 사역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어떤 장소에서 살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겔11:16, 렘29:12-13, 창5:21-24, 요4:24). 그럴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소 생활을 하되 그 표준이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말씀 중심이어야 하고 성도도 말씀 중심이어야 합니다. 죤 칼빈은 교회의 참된 표지를 말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이 말씀의 바른 선포였습니다. 교회가 말씀 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말씀이 표준이 되지 않는 교회는 곧 인본주의 교회가 되고 맙니다. 혹은 신비주의나 자유주의처럼 좌우로 치우치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성도의 개인 생활에서도 언제나 말씀 중심이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은 마치 짚이나 풀이나 나무로 지은 집 같아서 불로 심판할 때에 그 공력이 모두 불타 버리고 맙니다 (고전3:12-15).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한에게 하나님의 성전은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자들은 이방인에게 붙여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힌다고 했습니다 (2절).
당시 헤롯 성전의 마당(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사장의 뜰, 남자의 뜰, 여자의 뜰들로 구성된 성전 안에 있는 뜰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뜰인 성전 밖에 있는 뜰이 있습니다. 이 두 뜰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 있는 자가 성전 안 뜰로 들어가면 죽임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을 말합니다.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가 아닌 자들을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남은 자)이 아닌 자들입니다. 외부적으로 유대인이거나 교회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자들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교회 공동체의 많은 부분이 속화되고 속화된 교회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에게 내어 준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성이 마흔 두 달 동안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되는 때에 내어 준다고 했습니다 (2절). '마흔 두 달' (42개월)은 7년 대환난 (84개월) 중 전반기 환난을 말합니다. 곧 신약시대에서부터 적그리스도의 최후 활동이 있기 직전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단9:24-27). 그 기간 동안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자들은 이방 세력에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이 이방 세력에 짓밟힐 것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리스도를 못박은 죄로 AD70년에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 제국에 의해 함락되어 전 세계로 쫒겨 났습니다. AD688년에는 성전 터에 사라센 제국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이슬람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중동 전에서 네 차례나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슬람 성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전이 이방인에게 짓밟힌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는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와 성도가 적그리스도 세력에게 짓밟히는 때를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계21:2,10) 누가복음 21:24의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는 예언도 같은 맥락에서 한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에 속화된 교회와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에게 활동을 허락한 기간 동안 사단과 이방과 불신 세력에 붙인 바 되어 모욕을 당할 것입니다. 사실 그 기간은 교회가 연단을 받는 기간입니다. 참된 교회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 보호는 환난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 준다는 의미도 있고 환난을 당하되 그 환난에 넘어지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에 속한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이방인에 속한 삶을 살면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단과 사단에게 이용된 이방인들에게 붙들리고 맙니다.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는 저주를 받고 맛 잃은 소금은 밖에 버리워 짓밟히게 한다고 했습니다 (마21:18-19, 5:13). 요한계시록3:16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했습니다.
<結言>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 안에 들어 있는 언약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씌임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속화된 자들처럼 살지 말고 현재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가까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간섭과 권고와 보호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