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정부가 우리나라 국민에 대해 한시적으로 10월까지 1년간 여행비자를 면제 해준다.
2016년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 연합이 정권을 잡은 후, 문호를 개방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비자면제 프로그렘을 실시하고 있다.
미얀마는 인구 5천5백만, 국민의 90%가 불교도인 남한 면적의 6배나 되는 큰 나라이다.
오랜 독재로 인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어,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숨겨진 것이 더 많은 나라이다.
미얀마는 수만개의 불탑이 남아 있고 , 남자는 누구나 수도승 생활을 명예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남방불교을 대표하는 나라이다.
5월은 우기 중이고, 낮 기온이 34도를 웃도는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이 우리에게 적기라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다.
양곤, 바고 , 짜익티오, 네피도, 인레호수, 만달레이, 바간 등 불교와 전통문화를 경험 할 수 있는 지역을 둘러볼 생각이다.
미얀마 여행은 종교 자체에대한 관심보다는 단일 종교를 갖고있는 국가에 서민 생활 속에 배어있는 종교의 영향를 느껴보고 체험하는 것이 이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이다.
기독교 국가인 스페인 포루투칼 과태말라, 이슬람 국가인 터키 알바니아 , 동방정교회 국가인 조지아 러시아 발칸의 국가들 그리고 힌두교국가 인도까지 몇 달씩 여행했지만 정작 불교 국가는 중국 태국 외에 별로 불교를 의식하지 못했다.
미얀마가 초기불교를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국가라 생각되어 종교에 관심을 갖고 여행 할 생각이다.
입국 시 출국하는 비행기 표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6월 11일 태국 방콕으로 나오는 표를 미리 예매했다.
무비자 입국은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라 여행 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이다.
미얀마 여행을 마치고, 방콕에서 태국남부, 말레이시아, 싱가폴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육로로 이동할 계획이다.
이 번 여행 역시 기내에 가지고 들어 갈 수 있는 크기의 배낭으로 꾸렸다.
보조가방 과 32L, 42L 주배낭이 전부이다. 무게는 4키로 와 9키로이다.
기내에 가지고 들어 갈 수 있는 짐의 크기와 무게가 제한 되어 있다. 무게는 7키로까지이다. 그러므로 탑승시에는 무게를 배분해서 탑승한다.
13일 저녁 8시 집에서 출발하여 9시 45분 인천공항에 도착.
10시30분 체크인 후, 122번 게이트 앞에서 14일 01시5분 방콕발 에어아시아를 기다렸다.
4시 45분 방콕 도착. 7시 20분 양곤행 에어아시아 탑승. 8시 양곤도착.
비행시간은 방콕까지 5시간, 방콕에서 양곤까지 1시간30분이지만 전혀 잠을 잘 수 없는 일정이였다.
양곤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 경제의 중심이고 2005년 네피도로 행정 수도를 이전하기 전 까지 미얀마의 수도였다. 고대부터 미얀마로 외국문화가 들어오던 길목인 뱅갈만의 해안도시이다.
미안마에 대한 첫 인상은 놀라움과 실망이 교차했다.
공항에서부터 접한 미얀마의 얼굴은, 공항인포메이션 아가씨의 친절한 태도나 버스 운전수 아저씨의 편안함, 빵집 청년의 미소 그리고 숙소 직원의 태도는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긴장을 완전히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한 나라의 경제의 중심이라는 도시가 거의 방치된 체로 남아 있는 19세기 식민지 시대 모습이다. 인도보다 더 먹거리를 걱정해야 할 것같다.
거리에는 온통 거리음식과 좌판에서 물건이나 과일을 파는 사람들이다.
하수도 처리가 않되어 거리 전체에 약간의 부패한 냄세가 베어 있다.
만들어 파는 음식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들에게는 위생에 대한 개념이 없는 듯하다.
알고 있다면 절대로 이렇게 음식을 관리하거나 판매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박테리어나 세균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서는 튀긴 음식이나 삶은 음식을 먹으면 문제가 없을 것같았지만 여기 양곤은 그런 생각마져 들지 않았다.
반면 그들의 미소는 우리를 더없이 편하게 해 주었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전에 미소를 짓는다.
미리 알아 본 바로는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교통편이 택시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공항 인포 아가씨의 친절한 설명으로 쉽게 버스를 이용해 양곤의 중심인 술레파고다 로터에 하차 할 수 이었다. 도시를 구경할 겸 약 2키로 거리를 걸어서 숙소를 찾아갔다.
인포 아가씨, 관광지도에 이용할 버스와 찾아 가는 법, 내리는 정류장 그리고 예약한 숙소 위치까지 정확하게 그려주었다. 혹시 우리가 잘못 알 것같은지 지도의 빈 공간에 친절하게 영어로 버스의 특징을 적어 주기까지 하고, 버스비는 거리에 관계없이 1인 500짯, 약 400원이다.
운전수가 거스름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만원짜리 지폐를 1,000원짜리 화폐로 바꿔 주기까지 했다.
2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단 800원에 온 셈이다.
공항를 나오면 조용히 다가와 작은 소리로 택시라고 하는 운전수의 호객행위가 귀여워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한다.
도로변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에게 버스라고 하니 친절하게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스탠드를 가르켜 준다.
공항에서 50달라를 달라당 1508짯에 화전하고, 시내에 들어와 은행에서 500달라를 1527짯에 환전 후 돌아오는 길에 환전소에서 다시 300달라를 1731짯에 환전했다. 공항보다는 시내 은행이 환률이 조금 좋고, 은행보다는 환전소가 환률이 조금 높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큰 차이를 없다.
50달라와 100달라짜리 지폐의 환률에 차이가 있다.
구시가지 도로변 backpacker hostel에 짐을 풀었다. 도미토리 6달라, 프라잇 룸 17달라. 프라잇룸에 3일 50달라에 계산. 두사람 조식을 포함해서 하루 2만원인 셈이다.
인천공항에서 dana.
태국 돈무앙 공항 터미널 안에 전시된 전통 가옥.
거리음식이나 도로 모습을 차마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 착하고 친절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들의 살아가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담기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미얀마 도시의 모습.
너무 덥다.
습기를 가득 먹음은 더위는 참기 어려울 정도이다.
총 800달라를 환전했다. 미얀마 1달간 경비를 이 돈으로 충당할 계획을 정했다.
4시까지 숙소에서 쉬고 난 후, 페리 선착장이 있는 옛 거리로 나갔다.
대부분 영국 식민지 시대인 1900년도 초의 건축물들이다.
우체국. 지방법원. 항만청. 영국대사관. 호텔. 농업청 등이다 .
고거리와 도로를 사이에두고 페리 터미널이 있다. 터미널 매표소로 들어가는 길가 상점들은 거의 난민촌 같은 분위기에 거리 개 street dog들이 무리지어 다녀서 그냥 돌아 나왔다.
마치 인도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유적인 건축물은 대부분 관공서 들이다.
숙소에서 만난사람.
50대 한국 아저씨는 3년째 이 곳에서 살고 있다. 그냥 테니스 치면서 놀고 있는 한량이다. 오래전부터 사업관계로 알게 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이, 미얀마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라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고 한다.
dana cellphone 사진들..
태국 공항.
대로변의 음식점이나 매점.
숙소앞 거리.
보행인을 위한 식수통.
거리좌판에서 물건을 사는주민.
남자들이 입고 있는 치마는 그냥 직사각형의 천이다.
허리에 둘둘 말아 중간에 매듭을 만들어 입고 다닌다.
생각보다 시원하고 편리하다고 한다. 보통수준의 면으로 된 가격이 6천짯, 약 5천원 정도이다.
잎사귀에 양념한 물을 바른 다음 몇가지 향신료를 넣고 종이처럼 말아 작은 직사각형을 만들어 팔고 있다. 한번에 5~6 개씩 판다. 인도에서도 많이 보았던 관경이다. 양곤의 거리는 여러모로 인도와 많이 닮았다.
타나까 화장품.
뒤 돌판 위에 물을 약간의 붙고 바구니 위에 있는 나무의 측면을 갈아주면 흰색의 물감이 생긴다. 이 것이 마얀마인들의 천연 선탠 화장품 키나타 이다. 양볼이나 이마에 바르고 다닌다. 얼굴에 하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일부러 장난스럽게 분장한 모습이지만 의외로 많은 여자들이 바르고 다닌다.
3년전 태국 지앙라이에서 숙소에 일보는 여자 아이가 바르고 있었 물어보니 미얀마에서 왔다면서 자기네 화장품 이라고 소개했던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