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일정은 알마티에서 이식쿨호수로 가서 암각화도 보면서 이틀 휴식 후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로 가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행 항공편을 이용할 예정이었으나, 기분이 잡쳐,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건너뛰고 바로 타슈켄트로 가기로 작정해 페널티를 물고 급하게 알마티에서 타슈켄트 행 비행기를 예약. 맥주 마신 덕에 숙면에 들었다.
이렇게 기분대로 일정을 변경해, 결국은 하루씩의 일정이면 족했을 우즈베키스탄의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에서 하릴없이 이틀씩을 보내는 우를 범하게 되었고,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후에 방문해야할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급한 성미가 문제야, 문제!
공항 밖으로는 나가보지 않았지만, 신축한 우루무치공항건물은 크다. 2개 동으로 연결돼 보이는 공항의 환승개찰구까지 30분 이상을 걸어갔다. 세월의 요구에 맞추어 공항사용인구가 늘면 큰 건물도 필요하겠으나, 우루무치 신 공항청사는 이용객들에 비해 규모는 어마어마한 반면, 국제공항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면세점이나 레스토랑 등의 점포는 미비해, 3류 공항과 다를 바가 없어, 외화내빈(外華內貧)이란 단어가 딱 맞아, 중국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정확히 20년 전 홀로 신강의 우르무치를 지나 마지막 서역 끝자락인 양관에 닿았을 때.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언덕에 왕유의 시비가 서있었다. 번역하면..
새벽비가 위성의 먼지를 훝어내리고.
객잔에는 버들이 봄비를 맞고있네,
벗이여 어서 이 잔을 드시요.
지금 양관을 떠나가면 언제 또 그대를 만나리.
당시 둔황의 막고굴 방문 시, 통상 7개 정도의 굴만 보여주는 상례를 깨고, 옛 것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특별히 14개의 굴을 보여주며 설명해준 한국어를 조금 하는 젊었던 처자도 이제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되었겠지?
히 바
우르겐치 국제공항에서 히바로 가면서 우즈백인들의 착한 심성을 보았다. 2차선 도로에서 앞차가 느리게 운전을 하자 택시기사가 크렉션을 울리니 앞차가 2차선으로 차를 빼면서 운전자는 손을 흔들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정상 속도로 달리는 운전자가 과속을 하겠다며 크렉션을 빵빵 울리는 택시기사에게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다니? 또 90km속도로 달리던 기사가 여성이 길을 건너려하자, 차를 멈추고서 2차선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차를 조심하라는 싸인을 보낸다. 마음 쓰는 것이 고마워 내릴 때 팁을 챙겨주었다.
러시아의 남진과 우즈베키스탄의 3 칸국 지도
타슈켄트에서 우르겐치로 사는 비행기에서 보였던 메마르고 황량한 키질쿰 사막과 달리 우르겐치에서 히바로 가는 길가에는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녹색의 초원과 밭이 펼쳐있으며 밭 사이로 중간 중간에 시멘트로 만든 수로가 물을 공급하고 있다. 암 다리야 강 하류에 위치한 오아시스도시 히바는 6세기경 도시가 처음 형성되었으며 712년 아랍에 정복당해 이슬람화 되어 7-13세기에는 호라즘왕국의 수도였으며, 14세기 사마르칸트에서 발흥한 티무르제국에 편입되었다가 16세기부터 세를 되찾은 히바 칸국의 수도로 실크로드 시절 번창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부하라 칸국과 코칸드 칸국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3대 칸국의 하나로 융성했던 이 도시의 주산물은 면화, 벽돌, 융단이며 도자기업도 성하다. 건조한 기후에 연평균기온이 13.4°C, 연평균 강수량은 103mm로 호라즘오아시스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카라쿰사막이 있다. 히바라는 이름은 옛 페르시아 상인들이 꿈속에서 불꽃이 떨어지는 장소에서 우물을 발견하자, 신성한 물(헤이 박)이라 말에서 유래되었다.
1873년에는 러시아보호국이 되어, 호라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건국된 1920년부터 수도역할을 했지만 1924년 우즈베키스탄에 구획되어 호라즘주로 편입되었고, 1991년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히바는 내성과 외성의 이중성벽으로, 16-17세기에 건축된 내성안쪽의 이찬 칼라는 남북으로 650m, 동서로 400m에 달하며, 20개 모스크와 250개의 고택을 현존하고 약8m높이의 성에는 사방으로 네 개의 문이 있으며, 택시는 경비초소가 비어있는 남문을 통해 성내로 진입하니, 성내의 주택 사이사이에는 숙박시설과 기념품 판매점이 문을 열고 있다. 신시가지와 경계가 되는 이찬 칼라 서문으로 입장권을 사러간다.
서문 앞에는 수학과 천문학 등으로 이름을 떨친 알 호라즈미 동상이 객을 맞이한다. 왼손에 종이를 움켜쥐고 바닥의 책을 내려다보는 그는 바로 ‘알고리즘의 창시자’로 알려진 히바의 학자다. 이틀 간 이찬 칼라의 모든 박물관입장이 가능한 티켓을 사서 계단을 올라가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칼타 미노르 미나레트다. 히바의 상징으로 에메랄드 빛 푸른색 계통의 서로 다른 문양의 타일이 10줄로 올라갔으며, 1852년에 착공했 으나 3년 뒤에 미완성 된 상 태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전설은, 지배자인 무함마드 아민 칸이 당대최고기술자를 동원해, 높이 108m의 미나레트를 지어 약 400km 떨어진 부하라를 감시하려 했으나(그런데 108m의 높이에서 400km 멀리가 보이나?), 이 정보를 입수한 부하라의 칸이 오히려 ‘아민 칸의 기술자를 매수하여 공사를 중단시키고, 부하라에 보다 더 높은 미나레트를 지으려 한다.’는 정보를 역으로 전해들은 아민 칸은 부하라로 도망가는 기술자를 사막에서 죽여,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전설이고 사실은 아민 칸이 1855년에 이란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공사가 중단된 것이라 한다. 이 탑 기단부의 직경은 14.2m이며 28m 높이에서 중단된 채 있다. 그래서 ‘짧다’는 의미의 칼타가 접두어로 붙었다.
마호메트가 최초로 해방시킨 노예가 미나레트 첨탑에서 목청껏 아잔을 외치며 예배시간을 알리는 무에진 역할을 처음 시작했다는데, 고 알려진 아잔(직역하면 '알라는 더 크다'가 되며 일반적으로 '알라는 가장 위대하다'로 해석된다)은 이슬람의 기도용어다. 만약 칼타 미나레트가 예정대로 108m높이로 올라갔다면 이 탑에 매번 올라가야하는 무에진의 허벅지는 씨름선수만 해졌겠다.
칼타 미나레트 호자 미나레트 주마 모스크 미나레트
주마 모스크는 10세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여러 번의 재건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세기 말경이라 한다. 이찬칼라의 중심에 있으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 중의 하나인 주마 모스크 는 10세기에 완공되었지만, 여러 번의 복원공사를 거쳐 지금 모습을 갖춘 것은 18세기말경이라 한다.
이찬칼라의 중심에 있으며 18세기 말에 폐허가 된 이전 건축부지 위에 건축되어, 아름다운 나무기둥으로 유명세를 타지만, 회랑도 없는 사각형 바닥에 8각형으로 조성된 천정에 설치된 2개의 큰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로 내부는 어둡지는 않고, 지붕을 지주하고 있는 212개의 나무기둥은 모양이 다 다른 꽃 조각이 새겨있어 고풍스럽고도 단아해 감탄이 모자란다.
18세기 말에 폐허가 된 이전 건축부지 위에 건축되어, 아름다운 나무기둥으로 유명세를 타지만, 회랑이나 정원도 없이 바닥은 사각형이다. 8각형으로 조성된 천정의 2개의 큰 창으로 햇살이 스며들어 내부를 밝히며 지붕을 밭치고 있는 212개의 나무 기둥은 꽃과 식물이 새겨진 조각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 사원의 가치를 높인다.
주마 모스크 내부 모양이 다 다른 기둥
벽돌로 만든 외관의 다소 초라해 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신세계를 보듯 놀란다. 석고로 내부를 마감한 주마 모스크는 여느 모스크와는 달리 단층에 특별한 장식이 없는 단청에 목재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만드는 세로의 향연! 사로세로가 55m, 46m라는 모스크 내부는 천정의 작은 차으로 스며드는 햇살로 어둡지도 밝지도 않으나 신비감이 감돈다. 3m간격의 무늬가 다 다른 조각으로 치장한 212개의 기둥은 호라즘과 아랍사원 등에서 옮겨왔다 한다는데 연조가 천년이 넘는 것도 있다한다. 모스크 앞에 있는 미나레트는 높이32.5m로 81개 계단으로 오를 수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규모로 가장 크다는 무하마드 아미 칸 마드라사는 그가 재위에 오른 지 3년 후에 착공하여 3년 후인 1859년에 완공한 것으로, 200여명 학생이 125개의 방에 기거하며 이슬람을 공부했다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마드라사가 그리하듯 내부일부를 숙소와 레스토랑으로 개조돼 있다.
‘히바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파클라반 마흐무드는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 히바로 이주해와 아동시절부터 배운 레슬링에서 무패를 자랑하다 78세에 사망했다는데 ‘집에 묻히기’를 원한 그의 유언대로 지금의 화려하기 짝이 없는 타일 영묘에서 영면하고 있다. 운동으로 일가를 이룬 그는 시인이자 철학자로 성자로 간주되어 추앙하는 자들도 그의 영묘 밖에 묻혀있으며 그의 영묘는 예배의 장소가 되었다.
히바에서는 유일한 푸른 돔 성자의 관
히바에서는 유일한 푸른 돔의 이 영묘주인의 현명함에 대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인도를 물리친 후, 인도통치자가 원하는 화평의 조건 을 묻자, 그는 포로가 잡힌 동포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몇 명을 풀 어야 할지를 묻자, 그는 ‘소가죽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사람이라 답 하고서, 가죽을 얇은 띠 모양으로 잘라 큰 벨트를 만들어 수감자들을 감아주어 많은 사람을 포로에서 구출했다. 전설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지만, 전혀 허구인 경우는 별로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가 지 덕체(智德體)를 모두 갖춘 현자임에는 틀림이 없는 곳 같다. 그의 죽음 이후, 파클라반은 무슬림 성직자들에 의해 시성되었다.
히바의 유명한 3 미나레트와 마드라사와 아르크를 본 뒤, 골목구경에 나서니, 이찬칼라 내의 모든 모스크와 골목 곳곳을 차지한 장사꾼들이 전통의류와 기념품 등을 팔고 있다. 중국제 범람은 이곳도 마찬가지인데도 스카프나 옷가지들은 팔리나보다. 성 내부의 골목을 구석구석 살피다가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을 찾았으나, 실내는 만원이라 야외에서라도 한 그릇 맛보려 했으나 빈자리가 없다. 적잖은 레스토랑들이 시즌에 몰리는 관광객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주머니가 비슷한 맛을 낸다며 배달을 시켜주었으나 불은 만두 같은 전통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다.
골목에 늘린
가게 예쁘다니까 모델이 되어준 부인
쿠나 아르크
성의 북서쪽에 자리한 쿠냐 아르크는 17세기 중반에 아랑 칸이 건설한 고대 요새로, 이란이 파괴하여 19세기에 증, 개축되었다. 왕의 집무실과 무기고와 감옥 등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화려한 장식의 벽체와 큰 연회장 외에 왕이 비밀통로를 통해 갈 수 있는 왕비의 방은 외부에서 끌어온 시냇물이 흐른다는데 공개하지 않는다. 성자의 영묘와 함께 이 아르크로 입장하려면 별도요금을 지불해야한다.
쿠나 아르크는 ‘오래된 궁전’이란 말이며, 이찬칼라 내에 새로운 궁전이 생긴 뒤 구별을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높고 두꺼운 성벽이 요새를 둘러싸고 있고, 성 안에는 칸의 집무실, 휴게실, 모스크 등이 있고 병기군, 화약공장, 조폐소도 있었다. 궁전의 전망대에 올라가니. 이찬칼라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쿠나 아르크
히바 전경을 보려고 성에 들어가자, 바로 쿠나 아르크 전망대로 간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해야 하나, 무게가 합해 300kg이 됨직한 서양인노부부도 내가 손을 잡아주겠다는 것을 마다하고 허덕거리며 올라온다. 10평으로 뵈는 성 꼭대기에는 사람들이 황혼이 오기를 대기하고 있다. 히바의 전경이 보이고 도시 외곽을 둘러싼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 너머로 펼쳐진 지평선이, 그 안쪽의 성곽 밖에는 초원도 펼쳐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여 올라올 때의 답답했던 가슴이 확 트인다. 시간 반 기다리니 해는 지고 어둠이 내리나 예상했던 석양은 아름답지가 않아 실망.
신혼부부들이 미리 추억을 남기느라 2 쌍이 전망대에서 촬영 중이다.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라는 촬영기사는 마치 전망대를 전세 낸 것처럼 무례하다만, 제한된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이해는 된다. 신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컷을 렌즈에 담았다. 해는 넘어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히바의 전경도 담고, 내일 아침에 뜨는 부하라 행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니 걸음이 빨라진다.
코나 아르크의 신부
노을의 히바
히바의 호텔에 가니 예약이 되어있지 않다며 소개한 숙소는 이웃의 민숙이다. 어린이가 셋이라는데 한명만 보여 초콜릿을 주니 고맙단다, 조금 있다가 막내로 뵈는 녀석이 시큰둥한 표정인 것이 ‘아마 형에게서 내가 준 과자를 얻어먹지 못한 것’ 같아, 한주먹 초콜릿을 주니 바로 웃는다. 저녁때 주인마누라가 인사를 하며 한류가수와 탈렌트 이름을 늘어놓는다. 아침 비행기시간에 맞추려고 6시30분에 아침을 준비해주라 했더니 시어머니가 새벽부터 분주히 한 상을 차려내는데 며느리는 숙비를 지불할 때까지 늦잠을 자다가 눈을 부비며 돈만 챙긴다. 어느 나라나 자식은 결혼하면 며느리 차지가 되고 시어머니는 가정부 대우를 받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