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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산유국 나이지리아 |
삽화: 이기원
(지난호에 이어 계속~)
LA 국제공항에 내린 그는 잠시 고민했다.
대체 어디로 간다?
한국도 안 되고, 유럽도 안 된다면, 아프리카? 남미도 미국 영향권에 있으니, FBI가 정보원을 총동원하면 금방 찾아 낼 것이고...
모 주방은 하는 수 없이 복권 찍 듯, 나이지리아 직행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
모리타니에서 외인부대원 생활을 2년 가까이 한 경험자라, 일반인들을 두렵게 만드는 아프리카의 선입견과는 다르다. 그런대로 견딜 수 있는 불모의 땅이다.
국제선청사 출국장에 앉아 있는데, 낯선 백인이 다가와 곁에 앉는다.
“옐로우 보이?”
“...”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젊은 백인은 신문을 건넸다.
“나는 국제공항에 파견근무 중인 CIA 정보국요원이야. 당신이 정말 나가는지, 확인하라는 상부 지시가 있어, 확인하는 것뿐이니까, 걱정 마.”
“알아.”
모 주방은 젊은 백인에게 나이지리아 행 국제선 티켓을 짐짓 보여줬다. 그리곤 농담처럼 말했다.
“45구경 권총 하나 얻을 수 없어?”
“총기를 휴대하고 비행기 탈 수 있는 사람도 있나? 또 줘도 비행기 보안요원이 압수 할 텐데, 뭐 하러 번거롭게 만들어.”
“하이재킹 하려고.”
모 주방의 한 마디에 젊은 백은 크게 웃었다. 비행기에 오를 때가지 곁에 붙어 있을 것이다.
젠장!
그 몇 푼 벌자고 한 게, 이런 모사를 당하게 만드는 구나 싶어, 좀 언짢아졌다.
국제선 청사 안내 방송은 이집트 행 여행객들은 지금 탑승하라고 말했다. 덧붙여 안내하기를 나이지리아 행은 카이로에서 바꿔 타라는 것이다. 따라서 환승객도 지금 탑승해 달라는 설명이다.
북아프리카 이집트로 관광 가는 미국인들도 상당수라 보잉 747 전 좌석이 다 찼다. 젊은 백인은 기내까지 들어와 보안요원에게 무엇인가 귀엣말을 건네고 나갔다.
에이! 빌어먹을 놈들!
그는 욕지기가 저절로 나왔지만, 입 밖으로는 내놓지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모 주방은 가장 싼 좌석인 비행기 꼬리 부분에 앉아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한복판 창가에 앉았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스튜어디스 권유에 모두들 부산을 떨었고, 얼마 후, 육중한 비행기가 천천히 구른다 싶더니, 곧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프리카 노선은 LA에서도 태평양을 건너는 게 아니라, 뉴욕을 거쳐, 대서양을 날아 카이로에 기착한 뒤, 이집트항공의 연계노선으로 나이지리아에 들어간다.
시간상으로는 이집트까지 16시간이 걸린다. 거기서 나이지리아로 날아가는데, 또 4시간이 소요된다. 비행기 안에서 두 끼 먹고, 시차 상 하루 밤을 묵어가며, 다음 경유지에서 임시 체류했다, 갈아타고 다시 나는 셈이다. 서방항공사들은 아프리카 전역이 위험해 취항을 보이코트 했기 때문이다.
삽화: 이기원
젊은 백인 정보국 요원이 건넨 신문은 LA타임즈였는데, 온통 공산권 붕괴를 기사로 메우고 있었다.
소련연방이 해체돼 국가연합 형태로 사실상 독립을 선언했고, 체코와 유고도 2차 대전 후 클레물린 궁이 강제 통합했던 민족들이 전부 흩어졌다는 내용이다.
곁에 앉은 중년 백인남자가 신문을 건네다 보며 말을 걸었다.
“차이니즈요? 저팬이즈요?"
“코리언.”
모 주방이 간단하게 대꾸 하자, 중년 백인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양도 붕괴됐으면 좋겠어요. 동독처럼 말이요.”
“...”
모 주방은 뒷머리만 긁적였는데,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어서 그랬다. 그리곤 묻지도 않았는데, 중년 백인남자가 자기를 소개했다.
“나는 석유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 소유 나이지리아 유전을 둘러보기 위해 가는 거예요.”
“아, 그러세요.”
모 주방은 건성 대꾸했다.
모리타니에서 외인부대원으로 생활할 때 언 듯 들은 기억이 있다.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나이지리아 유전을 개발해, 폭리를 취한다는 것 말이다. 중년 백인남자는 꽤 심심한 모양이었다.
“이집트에서 내립니까?”
“아니요. 나이지리아까지 갑니다.”
“말동무 생겨 다행이군요. 헌데, 무슨 일로 나이지리아를 가는 거요.”
“그저 관광이나 할 셈입니다.”
“글쎄요. 볼게 그다지 많지 않은데, 동물들도 나이지리아 영내에는 별로 많지 않아요.” “...”
모 주방은 여전히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공산권 붕괴 분석과 향후를 다룬 기획기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럼에도 중년 백인남자는 말을 계속 걸었다.
“무슨 직업에 종사하십니까?”
“직업군인이었는데, 얼마 전 예편했어요.”
잠시, 망설이던 모 주방은 선뜻 떠오르는 게 없어서 내놓은 거다. 얼굴은 신문 사이에 박은 채 말이다. 중년 백인남자는 무척 반겼다.
“그거 잘됐네요.”
“뭐가요?”
모 주방은 별일이다 싶어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중년 백인남자는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궁금해 했다.
“나이지리아에 얼마나 있을 예정입니까?”
“기한 없이 가는 거라, 모르겠네요.”
“그럼, 사이드 잡 한번 해보지 않겠습니까?”
“무슨 일인지 알고, 싶지 않은데요.”
“잘 생각해보세요.”
“...”
그는 원유채굴을 말하는 줄 알고 즉답을 회피한 것이다. 유정천공은 전문 기술자 아니면 굴러먹기 힘든 직종인 걸, 잘 알고 있어서다. 더욱이 대양 한 가운데라면 말이다. 그런데 중년 백인남자는 다른 소리를 했다.
“보디가드 좀 해주시죠?”
“누구를요?”
“저요.”
“네?”
모 주방은 뜬금없이 무슨 수행원이냐고 되물었지만, 중년 백인남자는 아주 간절하게 부탁했다.
“나이지리아 현지인들이 상당히 거칠어, 낮이나 밤이나 신변 위협을 받거든요.”
“음...”
그는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리카 전역은 아직도 정정이 불안하고, 내전 치루는 나라가 많은데, 나이지리아도 그 범주에서 벗어 날 수 없었던 것이다.
중년 백인남자는 끈질긴 성격이었다.
“주급 1백 달러를 줄 테니, 도와주십시오.”
“글 세요.”
“나이지리아 군인출신을 고용했는데, 이 녀석이 오히려, 내 일 거수, 일 투족을 무장 단체에 흘리고, 돈을 챙기지 뭡니까. 언젠가는 한 번 납치될 번하다, 겨우 모면했어요.”
“저런...”
“회교 무장 단체뿐만 아니고, 일반 갱들도 외국인을 납치해, 몸값을 원한답니다.”
“힘드시겠네요.”
모 주방은 신문을 접고, 흡연구역으로 넘어갔다. 중년 백인남자가 귀찮아서다. 비행기는 아직도 미국 영공을 벗어나지 못했고, 차츰 지루해졌다. 꼴 초인 그가 담배를 피우러 오갈 때마다 실례 좀 하자는 것도 미안해, 니코틴이 태부족일 경우에만 자리를 떴다.
중년 백인남자는 다시 말을 건네 왔다.
“나이지리아 가면, 호텔에 묵을 겁니까?”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라고스는 위험해 안 되고, 아부자의 백인거주 지역에서 민박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부자에 대통령부가 있어, 그런대로 치안은 유지 되지만, 밤에는 그것도 무용지물 이기는 하죠. 무장단체 MEND가 언제, 어느 때든 습격을 하거든요. 아부자 백인거주 지역엔 다른 석유회사 여러 간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모두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요.”
“왜요?”
모 주방이 반문하자 중년 백인남자는 머뭇대더니 솔직하게 운을 뗐다.
“석유회사들이 좀 안 좋은 일을 해서죠.”
“...”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이지리아 현지에 들어가 보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싶어 잠을 청했다.
아마,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정을 착취하는 게 아닐까 싶다. 현지 고위 공무원들과 결탁해서 말이다. 다국적 정유회사와 나이지리아 정부가 잉여이익을 나눠 착복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공식일 것이다. 생산단가를 줄이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한 채, 채굴할 것이고. 일반국민은 원유생산으로 말미암은 수익을 제대로 분배 받지 못하는 입장은 중동도 마찬가지다.
스튜어디스가 기내식을 들라고 깨워 눈을 떴는데, 시간을 물으니, 대서양시로 정오란다. 미 서부와 동부의 시차가 3시간이고, LA를 오전 8시에 이륙했는데, 낯 12시라면 모두 7시간을 날은 셈이 된다.
비행기 내에 대형TV가 있어 식사를 해가며, BBC 뉴스를 보았는데, 역시 공산권 붕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맨 끄트머리에 잠깐 미 상원에서 벌어지는 청문회를 언급하고는 CIA 남미 정책이 최악의 선택은 면했다는 리포트다. 하지만, 상원의원들은 CIA의 불법까지 묵인 할 수는 없다고 일침 했다.
비행기는 어느 새 카이로에 접근했고, 이내 착륙했다. 그러고 보니, 이집트는 참 자주 들러 간다.
카이로를 출발한 비행기가 아프리카 대륙을 서쪽으로 가로질러 나이지리아 라고스 국제공항에 내리자, 그리 낯설지 않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링 브리지조차 없이 활주로에 그냥 내려 허름한 청사를 빠져 나왔는데, 다 쓰러져가는 거리가 손님을 맞이했다.
삽화: 이기원
아니, 거리라고 할 수 없는 판자촌이 양쪽으로 죽 늘어 서 있고, 몇 안 되는 낡은 자동차들이 좁은 도로에 엄청 많은 사람들과 뒤엉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머리 위에 큼직한 짐을 이고 있었다. 물건을 팔러 가는 건지, 물건을 사 갖고 가는 건지, 분간이 안됐다. 그리곤 사바나기후 특징인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한 공기가 곧, 아프리카인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중년 백인남자는 바짝 긴장한 채, 엉거주춤 모 주방의 뒤를 따르며 투덜댔다.
“아부자 소재 법인에서 보내 준다는 던 헬기가 아직 안 왔는데, 어떻게 하죠?”
“그걸 저한테 물으면 어떻게 합니까?”
“보디가드 역 활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주급을 2백 달러로 해드릴게요.”
“아니요. 됐습니다.”
모 주방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신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봤고, 그리 나쁜 사이드 잡도 아니지만, 너희들 같은 착취자들에게 빌어먹을 짓은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중년 백인남자를 떼어버리고, 뚜벅뚜벅 흑인들이 가득한 거리에 뒤섞였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6위 산유국이다.
헌데, 산유국다운 혜택을 국민들은 받지 못하고 있다. 1956년 원유를 발견하고부터 지금까지 세계 유수의 메이저 석유회사와 다국적 정유회사들이 장악해, 잉여이익을 몽땅 빨아간 것이다.
‘로열 더 치넬’ ‘토탈’ ‘아지프’ ‘엑슨 모빌’ ‘셰브런’ 등 20여개에 달하는 다국적 정유회사들이 나이지리아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 군부, 담당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원유를 국제가격의 80%만 지급하고 빼간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권부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안 받는다는 조건으로 석유회사로부터 지급되는 로열티를 전부 착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검은 저주라는 말도 나왔다. 원유채굴권을 넘겨주고, 받는 세금을 가로챈 고위층들은 영국과 미국, 유럽에 자식들을 유학시키고, 수영장 달린 대저택, 그리고 개인용 헬기까지 구입해 현지에서 산다는 거다.
그들의 비리를 알아낸 후임자도 그들이 물러난 요직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돈을 빼돌린다는 것이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이슬람단체 율법지배 시도로 내전에 휩싸여있었지만, 지금은 나이저 델타해방운동원들의 무장단체가 활동하고 있어, 정정이 불안한 것이다. 그들은 주로 석유회사 임직원들을 납치하거나, 석유회사 소재 국민들도 잡아다, 당사국과 석유회사로부터 몸값을 받아내는 것이다.
치안이 불안한 것은 어쩌면 나이지리아 정부나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자초한 셈이다.
모 주방은 행인에게 병원이 어디냐고 묻자, 흑인청년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홍열병 접종을 받기 위해서다.
병원이라고 해봐야, 흙 벽돌에 양철지붕을 얻은 일반가옥이다. 그나마 주위에서는 가장 깨끗하고, 번듯한 집이다.
흑인 간호사에게 예방 접종을 부탁하자, 대꾸 없이 그저 주사기를 찌른다.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턱짓을 한다. 돈 내고, 가라는 뜻이다.
다시 거리로 나서 호텔을 찾으려, 사방을 돌아보아도 높은 건물이 전무하다. 고작 해 봐야 엉성하기 짝이 없는 3층 상가이고, 대부분은 판자촌 아니, 그보다도 못한 얼기설기 엮은 창고 같았다.
케투 시장은 사람이 붐비기는 하는데, 거래가 거의 없다.
원유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자급자족이 가능해 물물교환이 활발했으나, 그 유정이 난 개발 되면서 어족은 물론, 다른 식량도 오염돼 먹 거리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무지와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경비절감을 이유로 주변 환경에 대한 대책도 없이 유정을 마구 뚫은 것이 원인이었다. 최근엔 무장단체가 송유관을 파괴하고, 원유 생산지를 공격하는 바람에 자연훼손이 더 심각하다는 거다.
그는 시장 통에서 노인 장사치를 붙들고, 물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는 영어가 공용어다.
“라고스에는 호텔이 없어요?”
“그렇소.”
“그럼, 어디로 가야 하죠?”
“아부자로 가요. 대신 어디를 가든 몸조심하라고. 동양인은 전부 저팬이즈로 오인하니까. 납치당하면 회사나,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하거든.”
“거 참, 꽤 흉흉하군요.”
“이 동네를 오가려면 총이 필요할 거야. 500달러를 주면 당장 가져다 줄 게.”
“물건을 먼저 본 후에 돈을 건넬 테니, 서둘러요.”
모 주방이 채근했다. 현지 경찰 눈에 띄기만 해도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삽화: 이기원
얼마 후, 나타난 노인 장사치는 신문지에 싼 45구경 권총 한 자루와 탄창 두 개를 내보였고, 그는 지갑에서 1백 달러 지폐 다섯 장을 남들 모르게, 장사치 호주머니에 얼른 넣어주었다. 장사치가 더 긴장해 사위를 두리번댔고, 덧붙여 환전도 해가라 졸랐지만, 거절했다.
시장 통을 빠져 나온 모 주방은 아무래도 아부자로 가는 게 났지 싶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언제까지 머물지 모르겠지만, 수도에 있다는 호텔로 가면, 그럭저럭 시간 떼 울 소 일거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택시를 잡아탔는데, 가관이다. 마크는 분명 벤즈 인데, 다 썩어 차제바닥에 구멍이 나 있었다. 또 달리면 달리 수록 이상한 굉음을 냈다. 기어가 제대로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너무 더워 에어컨 좀 틀라니까, 고장 났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창문을 열었는데,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메케한 냄새가 났다. 니제르 강가 어디에선가 불이 난 것 같아 운전기사에게 물었더니, 쓰레기 매립지 빈민촌은 거의 매일 불이 난다고 했다.
서울 상암동 쓰레기매립장이 떠올랐다. 그곳도 툭하면, 불이 난 걸 기억한다.
왼쪽 니제르강과 오른쪽 오군강과 만나는 델타지역은 유정이 많다. 아부자는 그 사이 내륙 한 복판에 있었다. 운전기사가 호텔 앞에 택시를 세우자 5달러를 지불하고 내렸다.
아부자는 항구 도시이기도 한 라고스 보다 깨끗한 느낌을 주었으며, 신식건물도 제법 눈에 띠었다.
일종에 신도시인 셈이었고, 대통령부와 각 정부기관이 들어와 있어, 그런대로 치안이 잡혀있는 모습이기는 했다. 다만, 밤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호텔도 새로 지은 것 같은데, 좀 조잡했고, 협소했다. 6층이 전부인 S호텔은 투숙객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모 주방은 체크인을 하고 맨 꼭대기 객실로 올라갔다.
온통 하얀색에 모기장으로 도배를 한 느낌이다. 주의사항은 밤이나, 낯이나 창문을 열 때 모기장 훼손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적혀 있다. 모기에 물리면 말라리아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경고였다.
짐이라곤 속옷 몇 벌이 고작이어서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창가에 서서 담배부터 피워 물었다.
아프리카에서 입에 맞는 음식이 있을까, 걱정됐다. 그다지 과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미식가에 속하는 혀끝이 늘 문제다. 카지노에서 마일리지로 먹는 최고급 요리들이 입맛을 버려놓은 거다.
거리는 질서정연하게 계획한 모습이다. 도시곳곳에서 개발이 한창이라 좀 시끄럽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하에 작은 카지노가 있다는 점이다. 룸 서비스로 영국요리를 시켜 먹은 뒤, 승강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카지노 홀은 슬롯머신 몇 대와 다른 게임 몇 테이블이 있을 뿐이다. 손님 역시 눈 씻고 봐도 없었다. 관광객이 있을 리 만무 하잖은가?
짐작 하건데, 나이지리아 유정을 소유한 외국 계 회사 직원들을 위한 것 같았다.
바카라 룸은 텅 비었고, 세븐카드 테이블에만 몇 명이 있었는데, 흑인 3명과 백인 2명이 서로 안면이 있는지, 떠들어가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카지노에 그들이 전부였다.
그 틈에 끼어 앉자, 낯선 동양인이 웬 일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알고 보니, 백인 2명은 석유회사 간부이고, 흑인 3명은 나이지리아 정부 고위공무원들이었다.
하기는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지인들이 출입할 리도 없는 곳이라, 짐작 못한 바는 아니었다.
딜러는 그래도 백인인데, 찬찬히 살펴보니 아랍계였다.
S호텔이 개인소유가 아니라 정부소유고, 전시적인 효과로 지은 것이었다.
카지노 종업원들은 몇 안 되는데, 경호원 숫자가 두 배에 달했다. 무장단체의 침입을 막는 게, 주 임무인 듯했다.
대통령부와 각 정부부처가 인근이라, 경찰병력도 상당수가 집중돼 있었다. 군인 또한 AK소총을 둘러매고, 거리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무장단체 출몰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판돈은 칩이 아니고, 달러를 그냥 사용했다.
칩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기보다는 돈을 환전해 줄 만큼, 규모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자본금을 금고에 넣어 둘 수 없는 듯했다. S호텔 운영주체가 거액을 맡을 능력도 안 되지만, 그 돈 냄새를 맡으면 갱들이나, 무장단체의 습격을 받을 것 같아, 사리는 모양이었다.
들은 이야기로는 경비가 삼엄한 은행조차 털리기 십상인데, 이까짓 호텔 카지노쯤 침입하는 건,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그들끼리 노는데, 불쑥 들이대니 좀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딜러한테 기본이 얼마고, 베팅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처음에 1달러를 깔고, 4구부터 풀 베팅이며, 되 받아 치기는 7구에만 두 번 가능하다는 것이다. 속으로 장난 아닌데 싶었지만, 심심풀이로 그냥 시간이나 죽이기로 했다.
백인 2명은 각각 다른 나라 출신이었다. 하나는 영국, 또 다른 하나는 프랑스였다.
세븐카드 룰은 그나마 외지랑 똑같아 석장 받고, 딜러가 넉 장을 오픈하는 방법이었다. 말이 카지노지 한국의 하우스 방보다도 못한 시설이었다.
담배와 커피는 그래도 여종업원이 심부름을 해주었다.
여섯 명이 다 베팅하면 4구는 2백 달러고, 5구는 1천3백 달러, 6구는 7천8백 달러, 히든은 4만7천 달러고, 되 받아 칠 경우 2십8만 달러, 한 번 더 엎으면 1백3십만 달러가 된다. 히든까지 5만7천 달러가 필요한데, 7구 이후 두 번 더 치받을 때, 3십6만 달러를 밀어 넣어야 한다. 막판은 판돈이 무려 2백만 달러까지 튄다.
그래서인지 백인 두 명이나, 흑인 세 명 다 1백 달러 지폐를 묶음으로 쌓아놓고 있었다. 1달러와 10달러 지폐는 칩 대용이었다. 모 주방은 현금 15만 달러를 꺼내고, 수표 책도 준비해 뒀다. 물론, 6명이 끝까지 붙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한 판 크게 붙으면, 그의 밑천 50만 달러는 게 눈 감추듯 날아갈 것이다.
딜러가 그에게 카드 석장을 밀어줬는데, 조금 찝찝했다. 무늬와 숫자 모두 각 패였다. 잘해봐야, 원 페어 이상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짐작은 맞아 4구, 5구를 받았지만, 패가 다 달랐다. 1천3백 달러만 날린 셈이다. 흑인 한 명과 백인 두 명은 막판 베팅까지 갔는데, 프랑스인이 풀 하우스로 이겼다. 흑인이 플로시를 잡았고, 영국인도 같은 플로시였으나, 끗발이 높았다. 한판에 50만 달러가량을 딴 것이다.
다음 판은 그래도 패가 좋게 들어왔다.
무늬 두 장에 에이스 한 장이었다. 4구와 5구에 스페이드가 연속 떨어져야 플로시 희망이 있는 패 이긴 해도 말이다. 하지만, 4구에 클로바 에이스가 떨어졌고, 원 페어가 됐다. 5구에 차라리 에이스 한 장 더 깔리기를 바랐지만, 스페이드 킹이었다. 무늬 석장에 원 페어, 기대난망이다. 나머지 두 장이 스페이드이거나, 그 중 하나가 에이스라면 트리플이 되는데, 그래도 불안하다.
여섯 명이 하는 세븐카드는 족보가 잘 나온다.
6구 한 장 더 보기 위해 7천8백 달러를 던졌는데, 역시 낭패였다. 베팅만 하다가 밑천이 다 마를 것 같은 기분이다. 또 클로바가 오픈 된 것이다. 그는 미련 없이 카드를 접었다. 이번엔 흑인 세 명이 막판까지 갔다, 한 명은 접고 두 명이 두 번 더 치고 받았다. 하나는 플로시고, 다른 사람은 트리플 이었다. 판돈은 30만 달러를 넘은 것 같았다.
시간은 밤 10시를 넘겼는데, 모 주방은 한 판도 못 먹었다. 베팅만 해대고, 헛손질을 한 것이다.
삽화: 이기원
담배를 벌써 4갑째 비웠고, 커피도 20잔을 마셨는데, 끗발이 안 섰다. 한 판, 한 판 기대를 갖고 카드를 받지만, 허탕 치기 십상이었다.
딜러가 다시 카드를 밀어주었다. 석 장이 모두 에이스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모 주방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머지 넉 장이 다 말라도 최소한 트리플이고, 좀 더 바란다면 풀 하우스, 그보다 높게 기대하자면 포 카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4구에 또 에이스가 떨어진 것이다.
삽화: 이기원
표정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희색만면이었다. 이러면 안 된다 싶어, 얼른 포커페이스로 돌아갔다.
제발 꺽 지들 말고 7구까지 가자. 되 받아 치기 하면,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5구, 6구, 7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상대 패를 읽을 필요도 없다. 헌데, 애석하게도 흑인 두 명은 6구에서 접었고, 흑인 하나와 영국인이 7구에서 카드를 밀어 놨다. 다행이라면 프랑스인이 히든 에서 엎어 치기를 연속했다.
판돈은 30만 달러나 됐다. 딜러가 오픈 할 것을 권유하자, 프랑스인은 풀 하우스이었다.
그는 자기가 이긴 줄 알고 있었는데, 모 주방이 패를 보곤 금방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도 에이스 포 카드임을 확인한 뒤, 오히려 축하한다고 했다. 땡 값 5만 달러도 함께 밀어주었다. 다섯 명이 이미, 정한 룰이어서 아무 말 없이 내놓은 것이다. 한 번에 45만 달러를 긁은 것이다. 이제까지 푼돈을 디밀어가며, 밑천을 까먹었는데, 단 번에 복구한 거다.
그 다음부터는 모 주방의 페이스였다. 물론, 자잘한 판이었지만, 투 페어로, 트리플로, 플로시로, 대여섯 판을 쓸어 담았다.
처음에 너무 안 돼, 딜러가 손장난을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를테면, 흑인들에게 한 번씩, 영국인과 프랑스인에게 정해진 순서에 따라 패를 돌리는 것 말이다. 숙달된 딜러는 54장 카드를 거의 외우고, 카프 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유자재로 카드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정을 넘기자, 흑인들이나 백인들 모두 패가 마르기 시작했고, 그는 작은 거 밀어주고, 큰 판을 먹는 따위로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자 견디지 못한 흑인들이 먼저 그만 하자고, 백인들에게 귀 뜸 했다. 다섯 명은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하며, 갑자기 판을 접어버렸다.
모 주방에게 판돈이 너무 몰렸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딜러에게 1백 달러로 팁을 주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아쉽지만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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