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녹슨 못의 진술
채종성
벽에서 빠져나온 녹슨 못 하나
바닥에 누워 있다
누웠다는 말은 맞지 않다
못은 여전히
집을 세운 자세를 기억하고 있다
한때 이 못은
벽과 벽을 이어 붙들고
겨울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몇 번이나 막아냈다
밤마다 나무는 팽창했고
못은 조금씩 몸을 비틀었다
비명은 없었다
대신 녹이 번졌다
망치가 떠난 뒤에도
못은 제 자리를 잊지 않는다
못이 빠진 자리에는
바람이 먼저 들어와
벽의 속살을 만진다
집은 곧바로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기울어야 할 방향을 배운다
말하지 않는 것들이
언제나 먼저 흔들린다
녹슨 못은
아직 아무것도 고발하지 않았다
다만
빠져나온 몸으로
집의 나이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시 심사평-김동수>
시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인식에도 단계가 있어 현상과 본질, 가시와 불가시를 넘나드는 직관과 통찰의 사유로 저마다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들은 상징이나 비유로 우리를 둘러 싼 세계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독자에게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일깨우곤 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이번에 응모한 1350편의 시 중에서 박미현, 이영란, 권구상, 채종성 네 분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박미현의 「종이」는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위서 ‘쓸모를 기다리는 ~ 백지처럼’ 생에 대한 치열한 삶의 자세가 밀도 있게 묘사되어 돋보였고, 이영란의 「가장家長」 은 일가를 꾸려가는 가장의 무게를 골목 전신주에 비유하여 오버랩 시켜가는 시적 기교가 인상적이었다.
권구상의 「꼬인 그림자」 또한 ‘주차장 바닥에 늘어진 ~ 전기차 충전 케이블에 ~빛이 닿으면 ~ 꼬였다 풀렸다 / 조용히 춤을 추는 도시의 리듬’이라는 결구가 매혹적이었다. 위 세 편 모두 안정된 구조와 작품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있었지만 시상을 또 다른 차원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종결되어 아쉬웠다.
이에 비해 채종성의 「녹슨 못의 진술」은 한 채의 집을 지키기 위해 벽과 나무와 못이 서로 협력하는 양자 역학적 초월 사유를 바탕으로 무심히 지나친 일상에서 형이상학적 아포리즘을 이끌어 내고 있어 즐거웠다. 결구에 ‘말하지 않는 것들이~ 먼저 흔들린다.’, ‘다만 빠져나온 몸으로/ 집의 나이를 증언할 뿐이다’와 같은 절제된 서정의 파동이 선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시 당선 소감-채종성>
가끔씩 글 공모전광고를 보거나, 겨울이 되어서 신춘문예응모기간이 오면 기대감에 도전 해왔었다. 그러나, 메모해 두었다가도 잊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제대로 완성하지 못해서 응모하지 못한 때도 많았다.
이번은 마지막 도전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당선 연락을 받게 되었다. 얼떨떨한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조금 안정이 되자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을 비롯한 전라매일 신문과 직원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인류의 오래된 노래 중의 하나인 시에는 사람을 일으켜 주는 그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시를 쓰고 읽으면서 늘 내가 먼저 용기를 얻고 내가 먼저 치유를 받는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를 지났지만 부족한 글 당선시켜 주신 것은 감사함과 겸손을 잃지 말고, 더욱더 열심히 쓰라는 뜻으로 이해를 했다.
상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출처] 2026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채종성의 <녹슨 못의 진술>|작성자 박남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