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冬 아침에...
겨울의 첫 절기인 입동 아침에 호정골에 올해 첫 얼음이 얼었다.
지난 10월 중순에는 자동차 창문이 언 적은 있지만 물이 얼기는 처음이라 겨울이 이제 시작이다.
시골의 겨울은 도시와 비해 더 춥고 길게 느끼지게 된다.
다시 맞을 봄까지 농촌은 휴면기와 다름없다.
텅빈 논과 밭은 인생의 노년기를 바라보는 듯 하다.
옥이야 금이야 키운 자식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홀로 또는 부부만이 가정을 지키고 있다.
이 기간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인도의 영성가는 인생의 네번째 단계로 아쉬라마는 예순 살부터 여든살 이후의 기간으로 분류한다.
이 기간에는 세속적인 활동과 연결을 모두 끊어버리고 성직자처럼 산야시스가 된다. 영적인 공부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성지순례를 떠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육체를 떠나 신에게 돌아갈 시기에 접어들어 성스러운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아쉬라마는 인생이 단계적으로 관심이 변하며 그중 노년의 삶이 가장 의미있는 기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이 때가 되면 거울 보며 만족스럽게 말한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제가 마침내 늙었군요. 저는 이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인 신에게로 돌아가는 여행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도인처럼 소자가 매일 신에게 가는 여행을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걷고 싶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신께서 부르실 때 천국 문에 가까이 이르기를 소망해 본다.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꼽씹어 보는 입동 아침이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아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는 것처럼 인생도 반드시 사계절을 맞게 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 말씀이 긴긴 겨울밤 내내 간직하고 싶은 말씀이다.
호정골에서
정종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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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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