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나는 상주에 도착한 직후부터, 아니 도착하기도 전부터 이번 출타의 목적이었던 '사람 찾기'의 어느 한 부분을 이미 수행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상당히 효과적으로(?).
그저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의 지혜를 빌린다는 게, 어떤 사회 구성원들의 네트워크에 직접 뛰어들어가 내 목적을 위한 행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뭔가 긍정적인 희망은 생긴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성과를 확신하거나 바랄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의 정보가 너무나 미약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이 상주에서 언제 떠났는지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제 그 노인과 연결됐던 일과는 별개로, 나름대로의 행동에 들어가야만 했다.
막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어서인지 약간 후텁지근했고 구름마저 많이 낀 썩 좋지만은 않은 가을날씨였다.
상주도 도심은 제법 복잡해서, 나는 어림잡고 있었던 지도상으로의 개천을 찾은 뒤 그 개천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상주는 '감의 고장'이라선지 곧바로 여기저기 적잖은 감나무들이 눈에 띄었고, 한 '방죽'인지 '호수'인지를 지나면서는 노란 가을 들판도 펼쳐지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누구지? 하면서 바쁘게 자전거를 멈춘 뒤 받아 보니,
서예가 노인아닌가.
"남궁 화백! 나요."
"아, 예... 선생님!"(그 분이 '서예가'셔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내가 여기 우리 모임에도 화백이 찾는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해놓았어요. 그러니... 좀 기다려 보면 또 무슨 얘기는 있을 거 같은데......"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근데, 너무 그렇게 애쓰시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선생님......" 했는데,
그 분은,
"지금 어디 쯤 가고 있어요?" 하시기에,
"여긴 '외남면'인데 '공성면' 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하자,
"여기 시골 사람들이 운전을 험하게 해. 그러니... 자전거를 조심스럽게 타고 다녀야 할 거요." 하고 염려까지 해 주시기에,
"예, 알았습니다. 최대한 조심히 다니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그토록 깐깐하던 노인이 어느새 이렇게 나를 염려까지 해 주시니...... 참, 인생은 희한하기 짝이 없구나. 하면서도,
'상주 사람'이 다 그런가? 그 '전 00' 하사(내 선임)도 그랬었는데...... 하는 생각에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내가 사람을 찾아나서긴 했지만,
지금이 어쩌면 '가을 들판'으로만 보면, 절정일 수 있었다.
들판마다 노란색이 꽉 차 너무나도 아름다웠는데, 다만 아쉬운 건 환하고 맑은 날씨가 아닌 잔뜩 구름에 덮인 날씨라 그 기분이 다소 저하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어딜 가더라도 감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모습 역시 그 가을 들판과는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 그 방향 시골마을들을 지나면서 나는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나는 길에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예, 무슨 일인데요?"
"저는 지금, 여기 상주가 고향인 어떤 사람을 찾고 다니는데요...... 혹시 '전 00'라는 사람을 아시는지요?"
그렇게 어찌 보면 '뜬 구름을 잡으려는 듯'한 내 행태가 현지 사람들에겐 낯설기도 우습기도 할 것이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이 호의를 가지고 대해주었다.
그런데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요즘은 시골도 수확철이라 그런지 마을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아, '마을 회관' '경로당' 같은 곳도 거의 다(모두) 문이 닫혀있는 모습이었고,(그 한 예. 아래)
그 와중에도 간간이 사람을 보면(대부분이 노인들이었지만),
그렇게 묻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현지 주민들은,
"우리 마을엔 전씨가 없는데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그렇게 애타게 찾아 댕기는교?" 하는 식으로들 (한 편으론 경계를 하면서 묻기도 했는데)물어오면,
"저는 '빚쟁이'라던지 하는... 나쁜 일로 이러는 건 아니구요......" 하고 그들을 안심시킨 뒤,
"예, 지금으로부터 한 40년 쯤 전에 제 군대시절의 상관이었는데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중간에 연락이 끊겨서,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이제는 이렇게라도 찾아볼까 하고 직접 자전거를 타고 다닌답니다." 하는 식으로 말을 하면,
"그런 사람 모르는데......" 하거나, "여기는 '전씨'가 없는데......" 하고 안타까워 하면서,
" '전국 노래 자랑' 같은 데에 가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하거나, "그 '테레비는 사랑을 싣고' 같은 데 알아보면 안 되오?" 하기도 하는 등,
나를 응원하는 식으로 바뀌곤 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걸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이 '전국 노래 자랑' 같은 데에 나갈 낯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그럴 능력도 없고),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프로그램엔 유명한 사람이거나 연예인 같은 사람들만 나가는데, 그런 쪽과도 너무 거리가 먼 나 같은 사람이 감히 그런 걸 염두에 둘 수조차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그 분들의 마음이야 고맙고 내가 이해 못할 건 아니었지만, 그저 웃어 넘길 수밖에 없는 나에겐 전혀 현실성 없는 얘기였다.
그래도 가을 들판은 좋았다.
간혹, 추수가 끝난 들판도 보이긴 했지만, 정말 황금들판의 시골길은 맘껏 돌아다니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잘은 몰라도, 아마 다음 주부터는 이런 모습이 아닐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혼자 보기 아깝네...... 하기도 하면서, 나는 그 들판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감나무가 많은 한 마을을 지나다 한 노인을 만났는데(아래 사진 속의),
"우리 마을엔 그런 사람이 안 사는데......" 하더니, "아, 저 아랫마을 너머 다른 마을에 '전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 살기는 하는데, 거기 가서 한 번 물어보믄 되지 않을까예?" 하기에,
"그래요? 그러면 당연히 찾아가 봐야지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서 자전거에 다시 오르는데,
"찾으면 참 좋을 낀데......" 하는 얼굴 표정이 아련하기에(어떻게든 나를 돕고 싶어하는 그 모습에),
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아, 이 나이에... 내가 왜 이러고 돌아다니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극성(?)을 부리지는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리 아직도 그런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러는지...... 스스로 처량해지는 감정도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또 '전씨 성을 가진 사람'을 찾아서(혹시 친척일지도 모르니까) 잔뜩 기대를 가지고 마을을 두세 군데 쫓아 다녔지만,
"그런 이름 들어본 적 없다." 거나, "우리 집안엔 그런 사람이 없다."는 얘기만을 듣고 말았다.
그럴 거야. 이게 뭐, 쉬운 일이겠어? 다만, 이렇게하도 해야 그나마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내가 이러고 돌아다녀 보는 거지...... 하면서(마음은 편했다.) 나는,
저물어 가는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상주시내로 자전거 방향을 돌렸다.
아무래도 찜질방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을 먹어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시장통을 찾아갔는데, 또 뭘 먹어야 하는 건지가 고민이었다.
현지 상인들에게 물어물어, 한 싸구려 분식집에서 '비빔밥'을 시켰다.
그런데 여주인의 인정과 손맛도 느껴져,
막걸리 한 잔이 하고 싶었는데, 병으로만 판다기에...
한 병을 시켜, 딱 한 잔만을 마신 뒤(찜질방까지 제법 멀어 음주운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찜질방을 찾아 들어갔는데,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나가고 있는지,
'야구'도 결승, '축구'도 결승인 밤이었다.(10월 7일)
피곤한 몸에 졸리긴 했지만, 나는 두 경기를 찜질방에서 다 보고(둘 다 금메달을 땄다.),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