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기에 절대 넘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고는 이를 위해 온 힘을 기울입니다. 아이가 일어나 앞으로 한 발짝 가려고 할 때마다 부모는 바로 아이를 안아 올렸습니다. 혹시 넘어져서 다치거나 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는 걷는 법을 배울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겪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고, 아무렇게나 낙서하면서 글을 배우고,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식사 도구를 잘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패는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몸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실패를 두려워하며 실패를 통한 성장보다 제자리 지키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편하고 쉬운 것만을 추구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무조건 기쁨과 행복의 삶일까요? 주님께서는 무조건 좋은 것만을 주셨을까요? 우리를 위해 실패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왜 잊어버릴까요? 실패를 주셨다고 해서, 고통과 시련을 주셨다고 해서 주님을 떠나겠다고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으며 행복이 아닌 불행을 선택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어떤 실패에도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굳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행복과 네 가지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우선 가난한 사람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을 향해 “행복하여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솔직히 그리 행복해 보이질 않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 눈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향해서는 “불행하여라.”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향해 좋게 말하는 것을 듣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을 통해, 또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왜 우리의 시선과 다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행복 선언의 주인공들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불행 선언의 주인공들은 무엇이든 채워져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굳이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며, 그 반대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과 함께하는 삶입니까?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고통과 시련,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행복 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성공이란 세월이 흐를수록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나를 점점 더 좋아하는 것이다(짐 콜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