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앞은 인산인해였다. 사람들은 모두들 비싸게 주고 산
입장권을 손에 꼭 쥐고 문 안으로 꾸역꾸역 밀고 들어갔다.
한참 밀고 당기고 치고 받고 난장판이 벌어 진 뒤에야 극장 밖은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제 자리를 찾아 앉아서 무대 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무대 위로 조명이 동그랗게 솟아 올랐다.
빛 속에서 한 예쁘장하게 차려입은 꼬마 소녀가 등장했다.
소녀는 주인공인 밀렌 역을 맏고 있었다.
한 좌석에 앉아 있던 애쉬도 소녀를 바라보았다.
애쉬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가면극이라고 했는데 소녀는 맨 얼굴이었다.
애쉬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지만 그들은 아무 이상 없다는 표정이었다.
밀렌: 모두들 귀족들은, 잘 먹고 잘 사는 줄 안 다지.
그래, 맞아. 나도 항상 잘 먹고 잘 살아.
아프면 주치의가 달려오니 아플 걱정도 없고.
배고프면 주방장이 음식 보따리를 들고오지,
그뿐이야?
옷을 원해? 하루에 수십 벌이라도 살 수 있어.
밀렌이 다음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하녀가 비를 들고 들어온다.
하녀: 그래요. 아가씨는 축복받으셨죠.
저같은 하녀로 태어나지 않으셨죠.
얼마나 좋나요? 원하는 대로 다 하는 걸.
밀렌:(화를 내며)난 싫어.
귀족들의 딱딱한 규칙을 봐. 외우다간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고.
여자들은 언제나 기품있게 굴으라고? 흥, 저들이나 하라고 해.
매일같이 놀고 먹고, 질린다니까!
이 성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녀:(달래는 어조로) 아가씨. 그런 말 마세요. 우리 공작가의 대를
이으실 아가씨가 그러시면 안 되죠.
아가씨, 심심하시죠? 제가 오늘 새 인형을 준비했어요.
하녀는 선물 상자 하나를 내 보인다. 밀렌은 상자를 힐끔 보더니 탁 내려친다.
밀렌: 싫다니까. 난 애가 아니란 말이야!
이제 11살이면 다 컸다고!
인형이나 안고 토닥일 나이가 아니란 말야!
밀렌은 말을 멈추고 노래한다.
밀렌: 사람들은 모두 악마야.
날 항상 꽁꽁 가둬 놓으려고들 하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얌전해지면.
당신들은 미소를 짓죠.
내가 풀 숲을 맨발로 거닐면
당신들은 날 잡아끌죠.
뒤꿈치 아픈 하이 힐을 억지로 신겨요.
내가 미소짓는 모습.
없애버리고 싶나요?
하녀:(노래한다) 아가씨는 알아야 해요.
그 누구보다 푹신한 침대에서,
걱정없이 주무실 수 있답니다.
어서 누우세요.
자장가를 불러 드릴 테니.
하녀가 조심스럽게 나가자. 밀렌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턱을 괴고, 작게 노래한다.
밀렌: 저 푸른 벌판을 거닐어 보았으면.
친구들과 함께, 거추장 스러운 옷들은 없애고, 무명 옷 한벌 입고.
이슬 어린 풀밭을 뛰놀아 보았으면.
이 성을, 보이지도 않는 곳으로, 머나먼 곳으로,
떠나버렸으면.
머나먼 저 곳으로, 떠나 버렸으면.
밀렌:(쓸쓸하게 중얼거린다) 행복하겠지?
풀밭에서 노는 아이들을 부러움과 원망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밀렌은,
창을 탁 닫고 가버린다.
다시 무대가 깜깜해 지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애쉬도 얼떨결에 박수를 쳤다. 1막의 끝인지도 모르고 푹 빠져 있던 거였다.
어릴 적에 소망을 그대로 담은 듯 싶었다. 그때는... 나도 11살이었던가.
어느 새 다시 무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이제는 밀렌이 18살 정도로 변해 있었다.
가느다란 은발과 푸른 눈이 정말 맑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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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말 오랜만에 쓰는군요~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카페 게시글
아린이야기 팰디
연 재
[흰 가면 위 붉은 핏방울] [7화]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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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0
05.01.31 15:4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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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어요^-^ 속박이라...그럼 건필하세요!
와 시나리오인가봐요? 건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