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이야기
박말이(2008.5.10)
자 벌레 한 마리가 열심히 자를 재며 가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지 무엇하려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움직여야 살 수 있는 것이 자 벌레의 운명인것 같다
그렇게 꼬박 꼬박 재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가는
다른 벌레들에 비해 자 벌레의 발은 양쪽끝에 만 있었다
가운데가 비워있어 머리 쪽을 덩굴 줄기에 먼저 붙이고
끝에 발을 옮겨 놓는 것이 꼭 자를 재는 모습과 비슷했다
벌레를 징그럽게 여기는 나의 생각에
자벌레의 가는 모습 만큼 신기한 벌레는 없을 것 같아
나는 자벌레의 가는 모습을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이것이 언제적 이야긴가 하면
아주 어린시절 소를 먹이려 다닐 때 이야기다
장마가 오는 유월이 오면 소를 굶길 수가 없어
우비를 쓰고 소를 먹이려 나갔다
아무도 없는 들에서 소 풀뜯는 모습만 보다가
자 벌레의 움직이는 모습은 유심한 볼거리였다
어제 동산에 올라 한바퀴 돌고 집으로 왔는데
자벌레 새끼 한마리가 옷에 붙어 와 역시 재면서 가고 있었다
반세기가 흘러 만나도 그 모습이었다
벌레가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 었다
지나온 나의 삶이 자벌레 같은 삶은 아니였을까!
속으로 되뇌이며 창문을 열고 털어 보냈다
벌레로 버리는게 아니라 먼 옛 날 소 먹일 때 친구로 보내 주었다
그리고 서운했다
내가 아이가 아니라 할머니
아무리 발버둥쳐도 갈 수 밖에 없는 시간이 가까워 졌음을 감지 했다
자벌레를 보내는 손등에 주름살이 자벌레 처럼 구불 구불 했다
7월의 이야기
박말이 (2008,5,8,)
씨알 하나 떨어져 생긴 가지 모종 하나가 마당 구석에서 자랐다
7월이 오자 꽃이 피더니 고운 가지가 열렸다
첫째에서 네째까지 차례 로 곱게 곱게 자랐다
첫째는 제법자라 배꼽도 떨어지고 그의 중간 가지가 되어 갔다
압집에 예쁜 새댁이 배속에 아기가 발로 차면서 놀려 가잔다고 마실을 나왔다
"아이고 이 가지 너무 탑스럽다 먹고 싶어라"했다
담장안에서 할머니가 제일 큰 가지를 똑따서 새댁에게 건네면서
다섯째 가지를 모르고 다쳐버렸어 오그랑하게 자랐다
새댁은 가지를 맛있게 먹고 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갔다
며칠 후에 할머니는 나머지 가지를 다아 따 버렸다
오그랑 한 다섯째 가지는 앞 집 새댁 배처럼 자라고 있었다
가을이 와 으스스 바람이 불었다
다섯째 가지는 노오랗게 익어 갔다
찬바람이 일자 가지 나무 잎이 다 떨어 졌다
가지 나무가 다섯째 가지에게 말했다
"언니 가지들은 예뻐서 모두 탐내어 따가고 너만 이렇게 남았어 이젠 너도 늙었구나"
다섯째 가지가"염려 마세요 이 불룩한 배속에 씨앗이 열개는 들었을 거예요"
"내년 봄에 싻이 트면 예쁜가지가 많이 열릴 거예요"
가지 나무는 쓸쓸히 웃었지만 행복했다
8월의 이야기
박말이(2008.4.9.)
수많은 참외가 살아 갈 밭에 호박씨 하나가 떨어져 같이 꽃을 피었다.
주인은 근처에 자리가 비워 있어 호박 한덩이라도 얻을 요량으로 그냥 두었다
참외가 노오랗게 익어갈 무렵 파아란 애 호박이 열렸다
주인은 "애구 호박도 이젠 제 구실을 하는 구나"하며 기뻐했다.
참외들은 새파란 애호박을 놀려 댔다
"저건 또 뭐애 도대체 우리 꽈가 아니야" "호박이란다" "그려 징그럽다"
"저건 어떻게 사는데? 모르지 좀 오래 산데, 늙으면 노래지고 단맛이 난데"
"그런데 세게 못생겼다" "그래 원래 조상이 그렇단다" 여기저기서 숙덕 거렸다
노오랗게 잘 익은 참외는 상자에 담겨 팔려 가고 그 중에 남은 놈은 칼로 갂아 먹어 버렸다
그 시끄러운 놀림이 떠난 빈 밭에 호박은 홀로 자라고 있었다
주인은 무척이나 호박을 아꼈다
새 며느리가 아기를 낳으면 고아 먹이겠다고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호박은 정말로 행복했다
참외들이 아무리 예뻐도 호박처럼 약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을 때가 정말 서러웠다
이제 다아 배속으로 들어가 버렸을 참외들은 씨앗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호박은 많은 씨앗을 남기고도 새 며느리의 약이 될 것을 생각하니
좀 못난 것 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었다
9월의 이야기
박말이 (2008,5,9,)
욕지섬 농협안에 허름한 창고가 있었다
9월이 오자 고구마 상자들이 들어 왔다
밤이 되면 창고안의 고구마들은 제 잘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아이고 너는 오끼나상이라며? 일본 우쿠오카라는데서 왔다며?
글구 물렁해 가지고 못생긴 메주 보다 더 못생긴 것이 크면 뭘해 벌어지기는 왜그리 벌어졌노?"
오끼나 고구마가 화가 나서 "뭐라쿠노 겨울에 골망 골망하게 골려 두었다 삶아 먹어봐라 토종 꿀맛 아니겠나, 너는 순종이라고 까불지 마라! 전에 진짜 조선 고구마 있었는데 그 조선 고구마는 처녀 얼굴 보다 더 부더럽고 복사꽃 보다 더 붉은니라.
순종이라고 니가 들어 온 후에 종자도 없이 사라졌지" 순종은 할말이 있었다
당연하지 나는 좀 검붉어도 속은 밤을 뺨칠 정도로 맛있거든 뭘 알고나 말해"
그 중에 조선 고구마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모르다는 조상도 있었다
욕지 고구마가 으뜸이라는 소문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몸값이 작난이 아니었다
한 때는 섬 사람들의 주식이 었든 고구마가 천득꾸러기로 밀려났다가 그 진가가 알려지면서 서로 구해 먹고 싶어 하나
너무 비싸서 객지에서 사려온 사람들이 열상자 사려 왔다 세 상자 밖에 못 사 갔다 한다
그렇게 몸값을 올리며 떠들던 잘난 욕지 고구마 들은 허름한 창고 안에서 겨울을 맞아 얼어 죽었다
얼어서 썩어버린 고구마들은 오키나 고구마나 순종 고구마나 조선 고구마나 똑 같았다고 한다
첫댓글 예전에 써 두었든 글인데 읽어 주셨어 고맙습니다
여름과 가을 이야기네요.ㅎ
저도 지금 고구마를 찌고 있습니다.
연휴 마무리 잘 하시고 더 나은 일상 열어가소서~!^^*~
감사합니다~~청송선생님^^
좋은 날 되십시요~~^^
@박말이 고맙습니다.^^*~
저도 저번 욕지여행 때 욕지 명물 고구만 6박스 사 와서 이웃과 나누어 맛있게 잘 먹었답니다
그려셨어요? 너울 선생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날 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가을 분위기를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고맙고 감사합니다~~행전 선생님~~^^
좋은 일만 생기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