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들어가 3년 내내 퉁명스럽고 쑥떡같은 머스매 뒷통수만 쳐다 보다가 다 보내고,
4학년 초에야 맘잡고(?) 그 머스매의 환상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당장에 남자친구가 생긴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 소개팅 해 주겠다는 것도 새삼 귀찮아서 '뭐 나중에...' 그랬었는데,
우연히 그 해 여름에 아주 점잖은 아저씨를 하나 만나게 되었다...
친구 데이트에 부록으로 딸려 나갔다가,
역시 저쪽 부록으로 따라 나온 사람과 어색하게 짝을 맞추게 되었던 것...
내가 여엉 맘에 안 들었던지, 그 남자가 주저주저 하는 말이,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다, 데이트만 좀 했으면 좋겠다...'
'결혼' 이라는 걸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얼씨구나 좋다, 이게 웬 떡이냐...고개를 끄덕끄덕,
<데이트만> 을 시작했었다...
잘 생겼지, 그 때 벌써 직장인이었으니 돈 잘 쓰지, 택시에 호텔 스카이 라운지에,
따뜻하고, 잘 챙겨주고, 내 말에는 무조건 웃어 주고...
그 <데이트만> 이란 건 그런 대로 할 만 했다...
아저씨...라고 부른 것은 나이도 뭐 네 살이나 많은 데다가,
그 느릿느릿한 태도나, 복덕방 할아버지같이 나지막한 목소리나,
농담도 진담처럼 알아 듣는 엇박자여서 자연스레 그리 된 것인데,
그 호칭이 너무 어울렸었고, 본인도 딱히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럭저럭 그 <데이트만> 이란 걸 철썩같이 믿고 만나러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느적느적한 말투로,
둘이 등장하는 미래를 쑥스러운 듯 얘기하고, 혼자 뭔가를 준비하는 듯 보이곤 해서,
슬슬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참이었다...
재미있는 <데이트만>을 하고 들어온 어느날 밤,
집 안에서 까불며 뛰어 다니다가 알미늄 섀시 문지방에 왼쪽 엄지 발가락을 된통 찧었고,
바로 피가 철철 나며 걸어가는 대로 피칠을 한 내 발자국이 마루에 척척 찍혔다...
욱씬거리는 발가락을 칭칭 동여매고 발을 높이 올리고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새고는 아침에 바로 병원으로 달렸다...
'발톱 빼야겠는데요?'
'윽...다시 날까요?'
'글쎄요...모르죠...안 날 수도 있어요...'
그 한마디에 나는 '잠정적 불구자' 가 되었다...
발톱을 빼는 아픔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발톱 하나 없는 여자' 로 평생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르는 내 신세가 두려워서,
우울증에 빠졌다...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아저씨의 전화에 발톱이 빠졌다는 쇼킹(!)한 소식부터 전하곤,
아프다는 어리광도 실컷 부리고, 위로의 말도 잔뜩 들은 후에,
'이제 그만 만나지요...'
'뭐 그런 소리가 있어?...'
'그냥 안 만나고 싶어요...'
'.......내가 다시 전화하지...'
잠시 후 바로 집 앞에 와서 기다린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슬리퍼를 꿴 발을 절뚝거리며 나갔다...
'왜 그렇게 속을 썩히나? 쓸데 없는 소리나 하고...'
'흑...'
갑자기 설움이 몰려와서 눈물 콧물을 훌쩍이며 목놓아 울어대기 시작했다...
'왜 그래? 어, 왜 그래? 아퍼? 많이 아픈가?'
'어어엉...난 이제 발톱도 하나 없고...흑흑...시집도 못 갈 거고...엉엉...절름발이 되면...흑흑...'
어쩔 줄을 모르던 그 양반은 가만히 피식 웃으며 말했다...들릴락 말락하게...
'난 발톱 하나 없는 여자도 괜찮은데...'
그 순간,
'맞어...결정했어...이 아저씨한테 시집가면 되지...'
언제 울었냐는 듯이 냅킨으로 눈물 쌱 닦고, 밥 잘 얻어 먹고, 헤헤거리며 들어왔다...
발톱을 뺀 발가락은 살이 굳고 나니 아프지도 않고, 절름거릴 필요도 없었지만,
영영 발톱이 없을 지도 모르는 그 발가락은 볼 때마다 흉물스러워서,
'발톱 하나 없는 여자도 괜찮다...' 는 말은 생각할 수록 감동스러웠다...
<데이트만>도 다시 열심히 했고,
아저씨는 '발톱 하나 없는 여자' 가 뭐 그리 신통한지,
더 자상하게 챙겨 주고 더 많이 웃었다...
그런데...
그런데...?
한 달 쯤 후...아니 이게 웬 일?
발톱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예전 발톱보다 더 이쁘고도 수줍게 깨끗한 발톱이 자라고 있었다...
더 이상 '발톱없는 여자' 가 아닌 담에야,
시집이란 걸 꼭 가야 할 필요도 없고, 떠밀릴 이유도 없었으니...
슬그머니...그 혼자한 '결심' 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 아저씨 쪽에서야 내 처음 결심도 모를 거고, 사라지고만 사연도 알 리 없겠지만,
결국, 나는 그렇게 발톱 때문에 변심을 했었다...
ps :
처음에나 발톱 가지고 그렇게 심각하지,
그 후 무려 세 번이나 더 발톱이 빠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병원에 가서 너덜거리는 발톱을 빼는 광경도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지켜보면서,
'아후...근데요...이번엔 마취가 좀 덜 됐는데요? 꽤 아프네...' 간섭도 하고,
내 남편은 위로랍시고,
'아직 개비안한 발톱이 여섯 개나 남았잖아?' 한다...ㅎㅎㅎ
(평소에 무지하게 덜렁댐...죄다 어디로 냅다 뛰다가 그랬슴...
언제부터인가, 나이탓인가, 더 이상 빠진 적 없슴...ㅎㅎㅎ)
eastern...(^_^)
첫댓글 우하하하~~~ 웃으워 죽겠슈 미안혀라 발톱하나 빠진걸 갖고 엄살을..."발톱 대 선배님" 앞에서 그래도 조심 조심하세요 ~~냅다 뛴 사람 다 모여봐유 ^**.....
푸하하하..발톱 하나 없는 여자라..시집도 못갈것 같다고 사기를..그 아저씨 넘 불쌍하다..새발톱 땜에 실연당한 아저씨..
??? 묘하다...운명이란 뭘까...갸우뚱...그러나 빠진 발톱보다 안빠진 발톱을 생각하는 아저씨 아닌 남편과는 천생연분이라고 할까??? 암튼 아저씨가 불쌍한 건지 다행인건지...머리가 복잡해 질려고 함
ㅎㅎㅎ..고넘의 발톱 땜시 운명이...그 무슨 장난이란 말이냐..발톱만 아니었어도 지금쯤은 이땅에서 살았을낀데..그라야 금치라두 줄낀데..안되았쓰..어찌든간에 행복 하시쥬??..ㅋㅎㅋ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