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한씨 충성공 한명회 묘소
우리 한국 사람으로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충성공 한명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 분의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한명회의 묘소는 우리가 잘 볼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걸 잘 알지 못했을 뿐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을 향해 달리다 반대편 로선 왼쪽에 있는 천안휴게소 앞을 통과하기 직전에 오른 쪽으로 건너다 보면 위 사진과 같은 사당이 눈에 들어 온다. 이것이 바로 청주한씨 충성공 한명회선생을 모신 사당이며 그 뒤쪽에 묘소가 있다.
소재지: 충남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청주한씨 충성공 묘역
나는 천안에 살면서도 한명회의 묘가 천안에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지난번 "허브파라다이스"에 갔다가 권혁만 사장으로부터 이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명회선생의 묘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달려 갔다. 묘역 입구에 도착해 보니 "청주한씨 충성공 묘역"이라고 음각해 놓은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도 눈에 띨 수 있도록하기 위해 커다랗게 세워놓은 것이겠지만 이름이 없어서 일반인은 보고도 누구인지 잘 모를듯 싶었다.
충성공 한명회 사당 전경
상당문(上堂門)
한명회는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켰으며, 사육신의 주살(誅殺)에 적극 협조했다. 이어 좌승지· 도승지를 거쳐 1457년 이조판서·병조판서가 되었고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다. 상당문(上堂 門)은 여기에서 유래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명회 선생 사당
이 묘역을 관리하는 사람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 않고, 문을 잠가 놓은 상태여서 사당 내부는 들어 갈 수 없었으므로 부득이 밖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새로 세워 놓은 신도비
사당 밖의 마당 오른쪽에는 아래 사진의 비각안에 있는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신도비(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神道碑)를 쉽게 읽어 볼 수 있도록 번역한 역문을 새겨 설치해 놓았다.
사당 앞쪽에서 올라가며 바라본 비각
묘수(墓수)에는 신도비를 비롯하여 문·무관석 장명등 석물을 갖추었다. 비석 받침은 160×114㎝로 측면에는 모두 10개의 안상을 새겼고 윗면에는 12개의 연화문을 복연(覆蓮)으로 조식했다.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구름속에서 여의주를 조롱하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비분은 약 1천여자의 해서로 한명회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이 비는 조선 성종 19년(1488)에 세운 것으로, 선생이 서거한 그 이듬해의 일이다. 신도비 비각
신도비는 묘의 방향과 같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 몸은 이무기가 새겨진 덮 개 돌은 대리석인데 비하여 비의 받침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비문은 서거정 (徐居正)이 지었다.
한명회선생 묘소 전경/ 묘소 앞에는 문·무관석 장명등 석물을 갖추고 있다.
한명회선생 묘소 근경/묘비의 갓 모양이 특이한 것을 볼 수 있다.
돌로 둘러 쌓아 놓은 묘소
한명회선생 묘의 뒤에 있는 묘
한명회선생 묘의 뒤에는 또 하나의 묘가 있는데 이는 한명회선생의 부인의 묘이다. 부인의 묘를 옆에 나란히 쓰지 않고 뒤에 위치하도록 한 것이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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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반석 같은 친구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