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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http://www.ddanzi.com/ddanziNews/2501502
< 딴지일보 독투불패 / 벨테브레>
(비록 선거 전 기사지만 정말 쉰 떡밥은 아님. 고승덕과 관련된 정치내막과 근 15년간 정계흐름 파악에 꽤 도움되는 기사라 퍼옴)
고승덕발 나비효과
독투불패 / 벨테브레
어제 오늘 인터넷이 서울시 교육감 고승덕 후보와 그의 딸에 대한 이야기로 난리가 났다.
개인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판단 유보. 다만 공직 그것도 서울시 교육의 총책임자에 도전한 사람으로서 본인의 자녀교육을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 여부는 사람에 따라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아쉽게도 나는 고 후보 딸의 페이스북을 보기 전에 사전투표를 했으니 그것도 패스.
고승덕. 고시 3관왕이라는 화려한 스펙과 TV 출연으로 쌓은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국회의원 한 번을 역임한 것 외에 특별한 존재감이 없었던 것 같다. 현재로서는 서울시 교육감을 통해 재기를 꿈꾸는 것으로 보이는데, 결과는 차차 예상해 보기로 하고 우선은 고승덕도 언급했던 옛날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전직 초선의원에 당적도 없는 교육감 후보일 뿐인 고승덕이 선거철마다 보여주는 미친 존재감(그것도 불출마 또는 사퇴했을 때)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라고 하기엔 너무 가깝고 현재라 하기엔 조금은 먼, 15년 전 이맘때 일이다. 1999년 당시 정국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 국무총리의 자유민주연합이 DJP연합으로 공동정권을 운영 중이었고, 야당은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 체제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전 해 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초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그 존재감에 힘입어 한나라당 부총재로 활약 중이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사직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그리고 BBK를...) 그 자리에 대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것이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노무현 부총재였다. 요즘 핫한 김기춘 씨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고, 김한길 대표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하고 있었던 때. 다 알고 있겠지만 안철수 대표는 벤처기업가였고 문재인 의원은 변호사였던 시절이었다.
임기만료 1년을 앞둔 15대 국회의 마지막 재·보궐선거는 6월 3일 서울 송파갑과 인천 계양-강화갑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이기문 의원의 당선무효로 치러지는 인천 재선거에선 그 뒤로 지겹도록 만나게 되는 한나라당 안상수 vs 국민회의 송영길이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서울 송파갑은? 그곳은 요즘 경남지사를 하고 있는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지역구였는데, 무려 선거비용 과다지출로 당선무효가 되면서 재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여권에서는 오세훈 변호사(!) 등 여러 사람이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조순 서울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을 했던 김희완 씨가 출마하기로 했는데, 원래 김희완 씨는 국민회의 소속이었음에도 해당 지역구가 자민련 몫으로 결정되며 과감히 이적을 단행하였다.(그리고 이 사건은 이듬해 국민회의의 후신인 새천년민주당이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자민련에 의원 3명을 꿔주며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한나라당에서는 고승덕 변호사를 공천했는데 여기엔 스토리가 있었다. 고승덕은 당초 국민회의 공천을 노리며 그해 초부터 국민회의 정균환 사무총장 등과 접촉했으나, 해당 지역구가 자민련 몫으로 결정되면서 사실상 물을 먹자 전격적으로 한나라당 행을 선언한 것.(이때 고 변호사의 영입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이회창 총재의 측근이었던 황우여 의원이었다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쿨한 성격인 나는 장인과 사위가 다른 당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적 정서 그것도 20세기의 감성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집권여당에서는 노발대발했고 특히 박태준 총재는 엄청나게 격분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여야 관계는 정권교체가 되고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어수선한 시기인데다, 여소야대의 불안정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원들을 대거 영입하며 여야의 감정이 몹시 좋지 않았기 때문. 더구나 보수성향의 공동여당인 자민련, 거기서도 고용사장에 해당되었던 박태준의 위상은 상당히 애매한 것이었는데 어렵사리 얻어낸 서울 지역구마저 한나라당으로 간 사위한테 빼앗긴다면 그야말로 스타일을 구기는 셈이 아니었을까.
오늘, 스타일 구겨지네
그로부터 3일 동안 고승덕에게는 아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다. 박태준 총재는 북아현동 자택으로 고승덕 일가를 불러들여 설득했다고 하고, 그 과정에서 고승덕의 어머니가 실신했다는 기사까지 나왔을 정도니 말 다 한 것.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한 고승덕은 자민련 당사에서 한나라당 후보 사퇴를 선언하는데, 이때 박태준의 말이 걸작이다. “정치를 하려면 나랑 해야지” 그러나 공천 및 출마포기 과정에서 찌질하고 실없는 사람이 된 것은 물론 말로만 사위지 사실상 별거 상태로 부부 관계가 원만치 않다는 가족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고승덕은 큰 상처를 입고 말았고 이후로도 장인이랑 같이 정치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스토리. 그 뒤, 눈 뜨고 후보를 빼앗긴 한나라당에서 공작정치를 비난하며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외쳤던 건 예상했던 수순. 그런데 어찌되었건 선거가 다가오는 이상 후보를 구해야 할 것 아닌가. 다시 한 번 여러 후보가 거론되었지만, 위기에 처한 이회창 총재의 선택은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이었다.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중앙선대위의장을 맡으며 비례대표 1번으로 등원했던 그는, 이듬해 대선 과정에서 의원직을 사퇴하며 당시에는 원외인사였던 상황. 그동안 서울 종로 등 다수의 재보선에 나서라는 유무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원외를 전전했던 그는, 고승덕 후보 사퇴로 인해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게 되자 직접 출마를 통한 정면 돌파를 선택했던 것.
결국 송파갑 재보선은 1년짜리 국회의원을 뽑는 땜빵 선거에서 제1야당 총재가 직접 나선 핫한 선거로 급부상했고, 당력을 모두 기울인 이 선거는 예상대로 이회창 총재의 압승. 덤으로 인천 선거마저 안상수 후보가 승리하며 재보선은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후보를 빌려오고 사위를 주저앉혀가며 서울에 교두보를 마련하려던 박태준 총재의 자민련은 큰 타격을 입었고 자민련의 당론이자 DJP 연대의 약속이었던 내각제 개헌 또한 동력을 잃었다. 애초부터 내각제 따위에는 관심이 없던 국민회의는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전국정당을 만들겠다며 자민련과 합당을 추진했는데, 김용환, 강창희(이 두 사람은 결국 자민련을 떠나 한나라당으로 옮겨가게 되고 나중에 친박 핵심 '7인회'의 멤버가 된다.)를 비롯한 자민련 강경파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되었고 끝내 독자 신당을 창당하게 되었으니 이름하여 새천년민주당. 결국 고승덕에서 시작한 나비효과가 새천년민주당 창당까지 이어졌다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수준의 논리적 비약으로 고승덕 잔혹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끝난 줄 알았지? 어쨌든 시간은 지났고, 고승덕은 정치를 하려면 이혼을 하라던 전처의 말대로 이혼을 한 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으며 오매불망 소원하던 금배지를 달 수 있었다. 그러나 초선의원으로 이렇다 할 당직도 맡지 못한 그가 정치적으로 주목받을 일은 거의 없었다. 결국 그는 언론매체를 통해 여론의 관심을 제고함으로써 공천과 재선을 노렸던 것 같다. 2011년 12월 14일 서울경제신문에 '전당대회 유감'이라는 칼럼을 기고했고 2012년 1월 3일 종편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했던 것.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던 나비효과로 돈 봉투 이야기가 불거지며 한나라당은 초상집이 되었다. 사건의 요지는 2008년 7월 대표 선출 전당대회를 앞두고 후보로 출마한 박희태 국회의장이 비서를 시켜 3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배달해 왔다는 것. 자신은 이를 즉시 반환했는데, 이로 인해 대표가 된 박 의장의 미움을 사서 한동안 푸대접을 받았다는 취지의 푸념이었다. 의도된 폭로라고 보기에는 조금 엉성했고 본인도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예상을 못했던 듯하다. 그러나 엄청난 떡밥을 문 종편과 그 모기업인 조중동의 펌프질 속에서 사건은 커져만 갔고 결국 국회의장 박희태는 불명예스럽게 정계를 떠난 것은 물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하에 쇄신을 꾀하다가 큰 타격을 입은 한나라당은 아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꾸기로 결정한다. 15년을 지켜온 '한나라당'이라는 간판마저 내리고 생소한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을 쓰는가 하면, 상징 색마저 붉은 색으로 바꾸는 깜짝 변신을 단행했다. 공천에 있어서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전권을 가지고 공천권을 행사한 결과, 계파간 갈등으로 말이 많았던 민주통합당에 비해 큰 잡음 없이 물갈이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 결과 총선은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스토리는 다들 아는 바와 같다. 이번에도 고승덕에서 시작해서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까지... 해냈다, 고승덕이 또 해낸 것이다!!
그러나 고승덕 본인은 끝내 공천탈락과 불출마 크리를 타게 되었는데, 사실 돈 봉투 폭로가 공천탈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선수들 사이에서 공공연했을 업계의 관행을 대책 없이 오픈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전국 250개 당협위원장에게 300만 원씩을 돌린다면 7억 5천만 원이니 적은 돈은 아니겠으나, 상당수가 전 현직 국회의원이거나 재력가인 당협위원장들이 단돈 300만 원에 매수되었다고 보는 건 좀 무리가 있을 터. 결국 이 돈은 각 당원협의회에서 전당대회장까지 올라온 대의원들의 거마비(차비, 식대, 경우에 따라선 숙박비 포함)로 일종의 실비정산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데(잘했다는 건 아니고, 다만 전당대회 공영제가 실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지.), 이러한 사정은 쏙 빠지고 돈 봉투 전당대회만 남았으니 졸지에 공범이 된(돈 봉투를 받고 입을 씻었을) 다른 당협위원장들 입장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전당대회 끝난 지 3년 반이나 지난 시점의 폭로였으니, 혼자만 살겠다고 아군 진영에 수류탄을 던진 고문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그 당에서 공천을 받는다는 것은 고시 3관왕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의 지역구는 서울 서초을. 막대기를 꽂아놔도 당선이 된다는 새누리당의 텃밭에 굳이 고승덕을 꽂아줄 이유가 없었을 테니, 친박도 아니고, 든든한 지역기반도 없고, 동료 정치인들로부터 인심을 얻지도 못한 채 용도 폐기된 고승덕의 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고승덕의 승부수는 교육감이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비)웃었지만 생각할수록 절묘한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물론 고승덕의 입장에서) 교육=입시=취직이나 신분상승의 통로로 이해되는 대한민국에서 공부 제일 잘한 고승덕은 최고의 교육전문가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 어차피 공천을 받기 힘든 처지에서 정당 공천이 배제되는 교육감은 특별한 핸디캡이 없다는 점, 심지어 이번만큼은 교육경력도 필요 없다는 점, 당선되어 4년 동안 무난하게 교육정책을 수행하면 행정경험을 득템하는 것은 물론 하기에 따라서는 서울시장 못지않은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등 당선가능성과 향후의 정치적 입지라는 측면에서 괜찮은 선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1년 전에 이미 당적을 정리한 점에서 봤을 때 이미 공천탈락 내지 국회의원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부터 기획되어온 치밀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덕분이었을까. 최근까지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고승덕은 다른 후보들을 앞서는 1위로 발표되었다. 정당도 없고 뚜렷한 이슈도 없는 교육감 선거의 특성상 남은 며칠을 버티면 교육감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는데 미국발 따님의 습격사건이 일어났다.
북경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에선 태풍이 된다고 했던가. 지금 우리는 뉴욕 여대생의 페이스북 포스팅이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태풍의 눈이 되는 진정한 나비효과를 현실로 체험하게 되었다. 다만 어떤 영향이 미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인데...
하필이면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 게다가 11% 정도의 유권자는 이미 사전투표까지 마친 상황이다. 하여 이 사건으로 인해 누가 교육감이 될지는 더욱 오리무중이라고나 할까.
조심스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내 자식을 고승덕처럼 만들고자 고승덕을 지지했던 40-50대 엄마들 상당수가 이탈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 그리고 선거 막판이 될수록 보수와 진보 양대 축으로 표 결집 현상이 일어날 거라는 점이다. 진보의 대표성을 조희연 후보가 독점한 상황에서, 문용린과 고승덕 중 누가 보수의 대표성을 갖느냐를 두고 남은 3일간 피튀기는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직이 없는 고승덕이 제3후보(1992년의 정주영, 1997년의 이인제, 2002년의 정몽준이 차지했던 바로 그) 포지션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경우 1992년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 썼던 희대의 명칼럼 '대통령 선거 감상법'의 내용이 유효할지도 모르겠다.
“고승덕 후보가 아주 많은 표를 득표하면 그는 교육감이 될 것이다. 고승덕 후보가 적당히 많은 표를 득표하면 조희연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고승덕 후보가 적은 표를 얻게 되면 문용린 후보가 당선될 수 있을 것이다.”
독투불패 벨테브레
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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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서 아비가 sorry 질렀다!!!!!!!!!!!!!!
미치겠ㄷㅋㅋㅋㅋㅋㅋㅋ
이야......오래전부터 정치욕심 엄청 많던 사람이었네....
박쥐고네
ㅋㅋㅋㅋㅋㅋ진짜내용꿀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