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자 | 2017-10-02 06: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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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강 이석영선생님이 저술하신 사주첩경(四柱捷徑) 4권의 상관격(傷官格)에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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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 己 丁 戊
午 卯 巳 申
34 24 14 4
辛 庚 己 戊
酉 申 未 午
이 사주는 기일(己日)생이 사월(巳月)에 출생하여 본래는 인수(印綬)로써 신강(身强)이나 경금(庚金)이 투출하고 사신(巳申)이 상관국(傷官局)이 된다.
살펴볼 때에 사(巳)중의 정무경(丁戊庚)이 투출하여 화토금(火土金)으로써 그 정(精)이 경금(庚金)으로 집결되고 또 다시 지지에 사신(巳申)으로 금국(金局)을 이루어 상관용인격(傷官用印格)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이 격은 정화(丁火)가 용신이 되는 바 다행히 사오화(巳午火)가 합(合)이 되어 아름답다.
일찍이 무오(戊午) 기미(己未)마을에는 부가(富家)에 출생하여 호강으로 자라났고 매우 총명하여 유망한 청년으로 거향(居鄕)에서 칭송이 자자하더니,
신운(申運)마을로 행하여 오화용신(午火用神)이 신금(申金)에 병궁(病宮)인 관계로 병(病)이 중하여 경진년(庚辰年) 무인월(戊寅月) 경진일(庚辰日)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기묘년 12월 30일이나 경진년의 입춘후인 까닭에 경진년 무인월임)
왠~ 고집인지..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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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한담(爐邊閑談)...... 화로 옆에 둘러 앉아 한가로이 나누는 이야기
이 사주에 얽힌 옛 말을 한마디 하여 명리학 연구에 열(熱)과 의욕(意慾)을 북돋아 주며 더욱 실감이 나게 하기 위하여 그 당시 사용했던 평안도 사투리를 그대로 적기로 한다.
이 사주 주인공이 정묘년(丁卯年,1926년)에 우리 집과의 혼담이 있을 때의 일이다.
나의 조부님께서 우리 누님과의 이 사주 주인공의 궁합(宮合)을 보시고 나의 아버님께 하신 말씀이
"얘, 그 청년이 지금은 돈도 있고 명망도 있고 학교도 중학(5년제, 지금의 중고등학교)까지 나왔으니 나무랄 데가 하나도 없으나 단명(短命)한 것이 흠이야.
거기에 혼사(婚事)하지 마라.
만약 하면 길레(길녀-누님의 애명)가 30을 못 넘기어 과부가 된다. 그러니까 안하는 것이 좋을거야."라고 하셨다.
그러나 현실에 좋은 사윗감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부친님과 어머니의 심정이었고 또 누님도 매우 그곳에 출가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결정짓기로 하여 마지막으로 조부님의 승낙을 청하였을 때의 일이다.
조부님께서는 "허, 명(命)은 할 수가 없구나. 너희들이 평소에 내 말을 잘 듣더니 왜 이번에는 그렇게도 안 듣느냐.
저 애가 팔자에 30전에 과부(寡婦)가 될 팔자, 그 청년은 서른셋을 못 넘기는 팔자고 보니 기어코 팔자를 못 이겨 그러는 구나. 이것이 곧 하늘이 정한 배필인가 보다.
이다음 네가(누님을 가리킴) 일을 당하고 나서 나의 사당(祠堂)앞에서 울부짖으면서 통곡할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가엾구나.
안하고 하는 것은 너희들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씀하셔서 혼인은 성립된 것이다.
그 후 재산과 부부간의 정(情)에는 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자손에 대해서는 애가 나면 죽고 나면 죽어 6남매(4남2녀)를 낳아서 모조리 실패를 하다가 기묘년(己卯年,1939년) 9월 14일에 생남(生男)하고(키웠다) 동년 12월 30일에 별세하고 말았다.
조부님은 이미 2년 전인 정축년(丁丑年,1937년)에 작고하셨고 누님은기묘년(己卯年,1939년)에 상부(喪夫)하여,
과연 조부님의 사당 앞에 가서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누님의 모습이 지금도 나의 눈에 훤하고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놀랐던 것은 김선영(金善瀯)선생이 이 사주를 감정한데 대해서이다.
기묘년(己卯年) 음력 7월 어느 날 일이었다.
나는 나의 친구 주씨(朱氏)와 함께 그 당시 사주에 명인(名人)이라고 소문이 굉장히 높이 난 김선생님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가서 보니 안맹(眼盲,장님)한 분이기에 깔보고 내심으로는 '눈먼 사람이 보면 얼마나 잘 보겠느냐' 싶었다.
첫 대뜸 친구가 "나 사주한장 보아주우."하고 말을 건넸다.
김선생님- "사주를 부르시오"
친구- "병진(丙辰) 신축(辛丑)에 임신(壬申) 임인(壬寅)이외다"
김선생님- "자세히 들으시오"라고 하더니,
"부친은 건각(蹇脚)이요 그 처는 안맹(眼盲)이라. 하이일가(何以一家)에 불구(不具)가 수다(數多)냐"라고 문장으로 부른 바람에 감탄했다.
사실 친구의 부친이 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처는 안맹(眼盲)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친구는 말하기를,
친구- "부친은 사실 건각(蹇脚)이요 허나 처는 그렇지 않수다"
김선생님- "신사년(辛巳年,1941년) 가보시오"
그 후 과연 신사년(辛巳年)에 안맹이 되고 말았다.
그 친구가 보고 난 다음에 나의 매형 사주를 불러 주었더니(매형께서는 사주보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기 때문에) 대뜸 하는 말이,
김선생님- "이것 뭐 죽은 사주를 다보려고 하우"
나- "죽기는 왜 죽어요. 살아 있는 분인데요"
김선생님-"허 참 딱하시군.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허나 이제 몇 날 안 가서 죽는데 금년(己卯)을 못 넘길거니,
하다못해 섣달 그믐날 죽어도 죽을 것이니, 12월 그믐날 못 넘겨 사는 걸 가지고 사주는 무슨 사주를 본단 말이요."하고 보아주지를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사주를 불러 주었더니,
김선생님- "이 다음 남방(南方)에 가서 사주(四柱)보아 먹을 사주요. 사주보면 이름 높이 날거요"라고 말하여 주었다.
그 후 조부님 말씀과 김선생님 예언이 모두 정확하게 맞았는데,
그 진리는 알 수가 없어서 매우 고심하다가 내가 사주공부를 하면서부터 약 10년이 지난 날에서야 겨우 그 오묘한 이치를 알게 되어 이에 그 사주를 이곳에 쓰게 된 것이다.
나는 10년이 걸려 겨우 스스로 터득하여 알게 되었으나 내가 이 진리를 내 딴에는 소상하게 쓰느라고 머리를 써서 격국용신법(格局用神法)을 해설하여 놓았으니,
명리학도 여러분들은 2, 3년만 잘 공부하면 종횡(縱)으로 횡(橫)으로 환하게 오묘한 진리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언(確言)하여 마지않는 것이다.
그래도 이것을 과연 우연(偶然)이라고만 하겠는가?
우연(偶然)은 필연(必然)의 범위 안에 있고 필연은 또 우연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니 즉 우연인가 하면 필연이요, 필연인가 하면 또 우연이요, 이것이 모두 성층권(成層圈)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분명한가 보다.
(나의 조부님은 직업적인 역학자(易學者)가 아니요. 한학자(漢學者)로서 역학(易學)에 통효(通曉)하셨던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