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밑 서랍두개를 과일 채소로 가득채워 놓아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나는 과일벌레요 채소도둑이기 때문이다 그중 으뜸은 사과인데 사과값이 치솟은 작년에도 고기는 못먹어도 과일서랍이 비어 있던때가 없었고 내 20대 시절에는 사과 과수원하는 남자에게 시집갈 궁리도해 보았었다
출퇴근길 과일을 펴 놓은 노점상이 있다 개성파가수 ***의 외모에 눈매가 이글거리는 난전의 형님은 아주머니들의 과일품평에 혼쭐은 내며 가소!! 그냥가소!! 하며 손사래를 친다 범상치않은 그의 기세가 무서워 늘 그냥 지나치다가 어떤연유로 냉장고밑 과일서랍이 비어서 난전을 힐끔거리다가 첫거래를 트게 되었다 담아놓은 사과를 가리키며 조용히 한 봉다리 달라고 했는데 그 형님은 선뜻 사과 한알을 더 넣어주는거다 그것도 씨알이 좋은 늠으로..
한때는 제법크게 나름대로 사업도 하였다는데 백발의 스포츠형 머리에 술로 세월을 달래는지 대화중 술냄새가 전해져오기도한다
겨울에도 벌겋게 언 투박한 손으로 단골손님들 과일 담아주기에 바쁘고 한여름 날씨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지만 가끔 한번씩 난전이 휑할때는 그 형님이 술병이 났을때일 것이다 투박하지만 눈속임 없는 난전 그형님과 매주말마다 4년을 봐 왔는데 어느날 닮긴 하였지만 다른얼굴의 남자가 과일 난전을 지키고있었다 그는 그 형님의 동생이라고 했으며 형님보다 친절하고 깔끔한 외모이다
늘 하던대로 주말이면 난전이 펼쳐졌고 나는 어둑한 퇴근길에 과일을 구매하게 되었다 만원이라고 삐뚤삐뚤 적힌 사과한봉지를 가리키며 달라고 했더니 자잘한 사과가 든 큰 봉다리 하나를 더내밀며 3천원만 더 주고 두 봉다리를 가져가라고 한다 거절을 못하고 받아왔는데 집에와서 보니 사과맛도 무맛도 아닌 상품가치가없는 이름만 사과가 한가득이다
그다음 주말엔 체리와 키위를 구매하게 되었는데 나는 많은양보다 맛으로 구매하겠다고 일럿건만 집에와서 펼쳐보니 추위에 얼었던지 두개 빼고는 모두 물컹거려 못먹을 맛이었다
남편에게 그 난전 형님의 아우에게 과일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화를 달랬다
영하7도의 바람부는 어느날 과일난전 앞을 지나가는데 형님과 아우가 함께 앉아있다 아우의 눈속임 장삿속에 단골손님이 끊어져 지원나온듯 보였다
추운날 난전을 지키던 형님이 생각나서.. 아우에게 몇번을 실망하고도 여러번 더 구매해 오다가 발길을 끊었는데 이제다시 외면하던 마음 거두고 그들형제들에게 다가가야할까.. 마음은 이미 한보따리 과일을 주문하고 있다
형님의 과일을 사 먹을때는 얼어서 매가리? 없는 과일이 없었지요 언 과일이 아깝지만 자존심을 지키며 비록 난전이지만 단골고객 관리를 하였다는 추측이 갑니다 아내와 아기를업은 며느리도 가끔 보였는데 가장으로의 책임감도 강해 보여 많은걸 느끼게 해주는 분이었답니다 요요님 댓글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어린 시절에 사과킬러인 딸을 늘 과수원총각한테
시집보내시겠다던 엄마가 문득 그리워지네요.
그리움님의 따뜻한 마음이 과일향보다 더 진하게 전해져오는군요.
앞으론 더 좋은 품질의 과일을 안겨주시리라 믿고 기대할게요.
베리꽃님
여전히 사과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귀농하면 수확해보려고
사과나무 몇그루 심어놓고 벼르고 있습니다
거름과 정성에 혹여 과실이 열리게되면
베리꽃님께 보고하겠습니다
늘 그리운 어머니와의 추억
오래 간직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투박하고 거칠어도 형님의 셈법이
훨 낳네요
그리움님의 따스한 맘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자주 뵙길 바래움 해 봅니다^^~
형님의 과일을 사 먹을때는
얼어서 매가리? 없는 과일이 없었지요
언 과일이 아깝지만
자존심을 지키며 비록 난전이지만 단골고객 관리를 하였다는 추측이 갑니다
아내와 아기를업은 며느리도 가끔 보였는데
가장으로의 책임감도 강해 보여
많은걸 느끼게 해주는 분이었답니다
요요님
댓글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오호
옛말에 弟不如兄 ( 제불여형 ) ㅡ 형만한 아우없다 고
투박한 형 , 깔끔한 아우의 여러형태의 묘사가 진짜 재밌습니다 ㅎ
과일난전이 다시 활기를 되찾으려면
아우님에게 빠른 깨우침이 와야할텐데 안타까움 가득입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형만한 아우없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저도 생각 했습니다
봉 봉님
빛나는 하루 맞이하세요
16살적에 대구 경산 과수원집에서 일 년 허드렛일 하며
지낸 적이 있었지요 저를 데리고 갈 때는 공부를 시켜 준다 해 놓고는
통신 강의록 몇 권 사다 주고는 일 년동안 무임금으로 부려 먹더군요
그 행실머리만 빼면 그 곳에서 참 잘지냈지요
엄청 큰 넓이의 과수원은 감수성 발달한 소녀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서
밤새 연필로 글을 쓰게 했지요
70년대 마을문고가 시골 곳곳에 퍼져 있어
밤마다 소설 7권 8권을 읽어 제꼈지요 ㅎㅎ
초여름부터 아오리 사과 가을쯤 국광 골덴 등
뙤약볕에 검게 익어 가는 거봉 포도 붉은 감의 가을
과수원 밑 군데 군데 심은 상추와 고추 워낙 큰 과수원이라
한 쪽엔 물 저장해 놓는 호수도 있었고
호수 근처엔 원두막도 폼나게 지었던 그곳
그 전까진 과일은 부자들이나 먹는 줄 알았던 제가
그 집에서 먹었던 여러 과일들 질리지도 않던 그 시절 과일의 당도
잊지 못할 제 생애의 일년이지요
그리움님의 글 너무 잘읽었습니다
저는 과일을 마트에서 사 먹고 시장에서는 잘 안사게 되더군요
모쪼록 그 형제분 장사가 잘 되었으면 합니다
경산 과수원집이
운선님 글정서의 양분이 되어준 곳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국광사과는 그당시 많이 생산되는 품종으로
빨갛고 맨질맨질하여 윤이나고 짜릿한 신맛이 온몸을 휘감았던 기억이있습니다
나무괘짝 가득담긴 국광과 홍옥사과를 들여놓으면 세상 부러울게 없었지요
예전 운선님 글에서 고향이 청송이라 셨는데
제 부모님도 청송 오지마을이 고향이랍니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제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까지 설명절이 되면
노귀재 산길을 넘어 큰집에 다녀오고는 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