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나타나는 아지랑이를 보면 어릴 적 환타지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 풀밭에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그때는 초등학생이어서 아지랑이가 무엇인지, 왜 생기는지 몰랐다. 저 앞에 보이는 공간이 흔들거리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져 함께 풀밭에 있던 동네 형에게 저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 형은 당시 중학생이었고, SF 소설을 보는 게 취미였다. 저게 뭐냐는 나의 물음에 그 형은 아지랑이라고 하며,
실은 그게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이라고 했다.
저 아지랑이 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니! 그래서 무섭기도 했지만 그 아지랑이를 향해 뛰어가
보았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가보면 아지랑이는 사라지고 문도 없었다.
내가 문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형은 그 문은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가려면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오랜 동안 선하게 사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했다. 그때 나는 아지랑이 속
문을 통해 신기한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고 그래서 잠시나마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훗날 이 형이 나를 놀리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봄철 아지랑이를
보면 그 얘기가 생각나 진짜 차원 이동문이거나 스타게이트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아지랑이는 내가 어릴 적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생활하는 데 일조했고 환타지에 대한 환상을 갖게했다. 그
형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상상력의 세계에 입문했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미를 알게 됐다.
나에게 아지랑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어린 시절의 판타지에 대한 동경을 상징할 뿐 아니라, 상상력과
꿈을 키워주는 존재 였다.
70을 넘긴 지금도 아지랑이를 보면 그때의 설렘과 순수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첫댓글 Histoire d'O / Danielle Licari
Histoire d'O(O의 역사)는 동명의 영화 주제가다.우리나라에서는 '르네의 사생활'이란 이름으로 개봉됐다. 엠마뉴엘로 유명
한 프랑스의 가수 겸 작곡가인 삐에르 바슐레(Pierre Bachelet; 1944-2005)가 만들었다.
다니엘 리까리(Danielle Licari)가 이 곡을 불렀다.다니엘 리까리는 가사 없이 오로지 아름다운 목소리로만 부르는 스캣송
(Scatsong)의 대표주자다.1970년에 발표돼 우리가 잘 아는 'Concerto Pour Une Voix (목소리를위한 협주곡)'과 '쉘부르의
우산'도 불렀다. https://youtu.be/HuY825gav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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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지랑이에 대한 약간의 향수는 있으나 환타지 까진 아니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땅에 스민 습기가 따뜻한 봄날 햇볕으로 인해 스증기가 되어 피어오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골 봄녘 들판에선 쉽게 아지랑이를 접했으나 도시에서 살게된 뒤 수십년 동안 구경을 못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봄철 일교차가 클때 공기의 밀도차이로 빛이 굴절돼
아지랑이가 생긴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곡선배님.
예전엔 뒷산에 올라 참꽃을 흝어 먹다 보면 아련한 현기증 속에 피어 오르던 아지랭이 어지럼증과 비슷한 아른거림 이젠 봄철 산에 못가니 접하지 못하네요
지금은 봐도 얫날 어릴때 처럼 감흥이
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운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