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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9:17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첫 영화 제목은 '호로록 봄'이고 첫 대사는 "그때는 몰랐다"입니다. 섣달 그뭄처럼 저물기만 할 것 같은 십자가 언덕, 호로록,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제비를 뽑고 죄 패를 매달았습니다. 이루어질 것은 이루어지고 새로워질 것은 새로워지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공주야! 로마 시대에 십자가는 입에 올리기도 역겨운 것이어서 로마인들은 십자가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했다(신21:22-23).
The title of the first movie in the drama "The Crash of the Moon" is "Slurk Spring" and the first line is "I Didn't Know Then." Like the New Year's Eve, he drew lots and hung a card without knowing that spring was coming. What was to be accomplished and what was to be renewed is to be achieved, but I didn't know then. Princess! In Roman times, the cross was disgusting to put on the mouth, so the Romans didn't even like saying the word "cross." Jews thought that every man on the tree was cursed with (God 2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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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해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는가? 예수는 홀로 십자가를 지고 성문 밖으로 나가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아무 도움도 받지 않은 채 홀로 가신 것처럼 묘사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가 세 나라 언어로 기록되었다. 좌우에 있는 죄수들에게는 행악 자나 강도라는 호칭도 붙지 않는다. 그들은 왕이신 예수님의 수행원들인 듯 묘사된다.
But what message did the cross send to us today because of Jesus? Jesus carried the cross alone and went out of the gate to be crucified at Golgotha. It is depicted as if he went alone without any help. On Jesus' cross, the sin plaque of 'King of Jesus Jews, Nazareth' was recorded in the three languages. Prisoners on the left and right are not even given the title of evil doer or robber. They are depicted as if they were the attendants of Jesus, the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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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올려지심으로 예수는 유대인들만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으로 등극 하고 영광을 받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의 겉옷은 찢어 나눠 갖고 속옷은 제비 뽑아 한 사람이 가져간다. 예수님의 옷을 겉옷과 속옷으로 나누어 언급한 것은 요한복음이 유일하며,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이 속옷은 제사장의 옷을 연상시킨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사장의 죽음이며, 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죽음이다.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온 어머니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로소개하고, 그 제자에게는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한다.
By putting him on the cross, Jesus began to be crowned king of the whole world and be honored, not just the king of the Jews. Rip and share Jesus' outerwear, and one person draws lots of underwear and takes it. John is the only one who mentioned Jesus' clothes by dividing them into outerwear and underwear, and this underwear, woven from the top without Hodge, is reminiscent of the priest's clothing. Jesus' death is the death of the priest, and is the death that achieved the prophecy of the Bible. Introduce a beloved pupil to Mary, the mother who followed him under the cross, as a son, and ask her to take care of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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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고 있다. 십자가는 아버지 하나님을 머리로 한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탄생을 가져온다. 오직 십자가의 사랑만이 주님 기뻐하시는 새 언약의 가족 공동체를 탄생 시킨다. 영생을 가진 자들의 공동체가 나온다. 예수님은 목마르다고 하시고 우슬초에 적신 신포도주를 마신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이 목마르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목마름만이 아니라 이 백성을 구원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의지를 표현한다.
A new family in the kingdom of God is being formed through the cross. The cross brings about the birth of a new family community with the head of the father, God. Only the love of the cross gives birth to a new family community of covenant that the Lord rejoices. There comes a community of those who have eternal life. Jesus says he is thirsty and drinks a new wine soaked in Ursulcho. The river of bottled water flows out of the ship, and the thirst of Jesus, who gives him bottled water that is not thirsty forever, expresses not only physical thirst, but also the will to save this people and achieve his father's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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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슬초는 예수님의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 되게 한다.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떠나심으로써 그의 죽음이 자발적인
죽음임을 강조한다. 영혼이 떠나 죽으셨지만, 동시에 이 죽음은 약속대로 “성령을 넘겨주신”사건임을 보여준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어떤 명패를 써서 달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십자가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지금은 알고 있는가?
Ursulcho makes Jesus' death the death of a Passover lamb. By bending his head down and leaving his soul, he emphasizes that his death is a voluntary death. The soul has left and died, but at the same time, this death shows that it was an incident "that handed over the Holy Spirit" as promised. What plaque did Pilate wear on the cross of Jesus? What message does the cross of Jesus deliver to us today? Do you know what happened on the cross and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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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못 박힘(17-22)
a.예수님과 다른 두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힘:17-18
b.십자의 위의 패에 대한 논쟁:19-22
예수님의 옷(23-24)
a.예수님의 옷을 취하는 군인들:23
b.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는 군인들:24
예수님의 가족(25-27)
a.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던 여인들:25
b.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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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17a)
예수를 맡으매(17b)
예수께서 자기의(17c)
십자가를 지시고(17d)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17e)
하는 곳에 나오시니(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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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거기서(18a)
예수를(18b)
십자가에 못 박을 쌔(18c)
다른 두 사람도(18d)
그와 함께(18e)
좌우편에 못 박으니(18f)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1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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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패를 써서(19a)
십자가 위에 붙이니(19b)
나사렛 예수(19c)
유대인의 왕이라(19d)
기록되었더라(1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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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20a)
성에서 가까운 고로(20b)
많은 유대인이(20c)
이 패를 읽는데(20d)
히브리와(20e)
로마와(20f)
헬라 말로(20g)
기록되었더라(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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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21a)
빌라도에게 이르되(21b)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21c)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21d)
쓰라 하니(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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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대답하되(22a)
나의 쓸 것을(22b)
썼다 하니라(2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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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병들이 예수를(23a)
십자가에 못 박고(2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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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옷을 취하여(23c)
네 깃에 나눠(23d)
각각 한 깃씩 얻고(23e)
속옷도 취하니(23f)
이 속옷은(23g)
호지 아니하고(23h)
위에서부터 통으로(23i)
짠 것이라(23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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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병들이 서로 말하되(24a)
이것을 찢지 말고(24b)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24c)
이는 성경에(24d)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24e)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24f)
한 것을(24g)
응하게 하려 함이라(2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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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25a)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25b)
그 모친과(25c)
이모와(25d)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25e)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2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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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26a)
그 모친과(26b)
사랑하시는 제자가(26c)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26d)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26e)
여자여 보소서(26f)
아들이나이다. 하시고(2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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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27a)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27b)
그 때부터 그 제자가(27c)
자기 집에 모시니라(2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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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린 유대인들의 왕 예수_Jesus the King of the Jews on the Cross
제비 뽑아 예수의 옷을 취한 군인들_soldiers who drew lots to take Jesus' clothes
십자가가 형성한 새로운 가족_A New Family Formed by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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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상징인 십자가를 축복의 상징으로 바꾸신 주님, 내 질고를 지시고 내게 영생을 주신 나의 주를 찬양합니다. 당신의 목마름이 주의 집을 위한 열심이었음을 아오니 이 값진 승리를 주님과 함께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벌거벗은 수치를 통하여 가죽 치마를 입혀주신 그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날마다 죄와 싸우며 살겠습니다.
Lord, who has turned the cross, the symbol of the curse, into a symbol of blessing Praise be to the LORD, who has rebuked me and given me eternal life. I know that your thirst was for the house of the LORD, so let him enjoy this valuable victory with you. I will fight against sin every day so that the love that you have put on the leather skirt through naked shame will not be in vain.
2026.4.2.thu.Clay
신학 비평//
이 글은 요한복음 19:17을 중심으로, 십자가를 단순한 고난의 사건이 아니라 미의 전복, 곧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사건”으로 읽어낸다. 특히 “그때는 몰랐다”라는 서두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언제나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고, 나중에야 드러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의 특징은 분명하다. 사건은 먼저 일어나고 의미는 나중에 드러난다. 제자들조차 십자가를 실패로 보았지만 부활 이후에야 이해했다. 이것은 단순한 인식 문제가 아니라, 계시는 ‘지속 속에서 열리는 진리’라는 점을 보여준다.(이 지점은 베르그손의 “지속”과도 깊이 맞닿는다)
1) 십자가의 전복—저주 → 왕좌
본문의 배경은 분명하다. 로마: 십자가 = 가장 치욕적인 형벌 유대: 나무에 달린 자 = 저주받은 자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 상징을 완전히 뒤집는다. 십자가 = 왕의 즉위식 특히 중요한 장면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세 가지 언어 (히브리, 라틴, 헬라)로 기록된 것이다. 이는 지역적 사건이 아니라, 보편적 왕권 선언이다.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이 표현은 단순한 위치 설명이 아니다. 좌우의 죄인들 사이-심판과 구원 사이-죽음과 생명 사이로 예수는 존재의 중심에 서신 분이다
2) 옷을 나누는 군인들—무지 속의 성취
군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단순히 옷을 나눌 뿐이다. 그러나 그 행위조차 예언을 성취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이다. 인간의 무지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룬다. “통으로 짠 속옷”은 대제사장의 옷**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단순한 처형이 아니라 제사적 죽음이다. 자신이 제물이고 동시에 제사장이란 뜻이다.
3) 새로운 가족—십자가의 공동체
십자가 아래에서 일어나는 가장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어머니 → 제자에게, 제자 → 어머니에게 새로운 관계가 형성 된다. 이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다 새 언약 공동체의 탄생이다 혈연이 아니라 십자가로 연결된 가족이다.
4) “목마르다”—구원의 의지
이 표현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닌 구원의 갈망이다. 백성을 향한 갈증/아버지 뜻을 이루려는 열망이다. 그리고 우슬초는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과 연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