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차수판만 있었다면… 할 수 있는데도 안 한 대책 이뿐인가
조선일보
입력 2022.09.08 03:16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2/09/08/QUF5WXKN5ZGQXLMKYR5H3GE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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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6일 오후 소방당국이 경북 포항시 오천읍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수색 중 발견한 여성 생존자 1명을 추가로 구조해 나오고 있다. 2022.9.6/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던 주민 9명 중 7명이 숨지는 사고가 6일 발생했다. 이날 오전 지하 주차장 차량을 이동해달라는 관리사무실 안내 방송을 듣고 나갔다가 인근 하천에서 범람한 물이 주차장으로 밀려들면서 변을 당한 것이다. 2명은 구조됐지만, 어머니를 따라 나간 중학생 아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50대 아들 등이 숨졌다.
이 사고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침수에 대비하지 않은 탓도 크다. 이 아파트는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인근 하천이 범람하면 물이 도로보다 낮은 지대에 있는 아파트 단지 주차장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된 구조다. 하지만 주차장 입구엔 차수판은 물론 모래주머니도 없었다. 그러니 범람한 물은 지하 주차장으로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주차장 입구에 차수판만 있었어도 ‘1차 방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피 시간을 벌어줬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 경남 마산만 일대는 2003년 태풍 ‘매미’로 막대한 피해를 당한 후 2m 높이 철제 차수벽을 만든 덕분에 이번 태풍 때 침수 피해를 거의 당하지 않았다. 지난달 서울 강남 일대에 기록적 폭우가 내렸을 때에도 지하 주차장 입구에 차수문을 설치했던 한 빌딩은 별다른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현행 행정안전부 고시 기준에 따르면 ‘침수 피해가 우려된다고 인정하는’ 지역의 지하 공간에는 출입구에 차수판을 설치하게 돼 있지만 정작 필요한 지역에도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고 한다. 기준 자체가 모호한 데다, 주민들도 집값이 떨어질까 봐 침수 피해 우려 지역 지정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하 주차장, 지하 상가 등 지하 공간에는 차수판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도 하천변, 저지대 상습 침수 지역 지하 공간의 차수벽 설치를 우선하도록 하면 된다.
차수판만으로 피해를 막을 순 없다. 지하 공간으로 흘러드는 물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빗물 유입 방지 배수로’를 설치하도록 하고, 유입된 물을 빼내는 배수 펌프 용량도 높여야 한다. 현행 행안부 고시는 10년 내에 가장 많은 비가 왔을 때를 기준으로 지하 공간 배수 펌프 용량을 갖추도록 돼 있는데, 최근엔 100년 빈도의 폭우가 내리고 있다. 국민 생명과 안전이 달린 일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비해야 한다.
차수판은 돈이 많이 드는 장비가 아니다. 입구 바닥과 양옆에 홈을 파서 차수판을 끼우는 방식이면 1차 방어막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지하 공간 침수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거듭되는데도 아직도 차수판이 설치되지 않아 귀중한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차수판뿐인지 조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