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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할수 있을까요?
고려는 궁예와 왕건이 신라땅에서 일어났고 영토적 연속성 면에서
고구려보다 신라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에 신라를 이어받았다고 보기에
충분히 근거가 있어보입니다.
그러나 궁예와 왕건은 신라가 아닌, 고구려의 후계를 자처합니다.
이 주장에는 근거가 충분할까요?
제생각은 이렇습니다.
궁예와 왕건이 일어난 패서지역자체가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이후 내지로서 인식한 평안도지역과
제3의 수도이자 배후지로 집중적으로 육성한 한성(현재의 황해도)지방입니다.
드넓은 만주가 아닌 수도권만 확보했다는 점이 영토적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계승성의 근거로서
부족해 보일수 있지만, 만주 지역은, 고구려가 정복한 이민족들의 복속과 이탈이 일정치 않았고,
국경지역으로 갈수록 군사활동이 빈번했기에 사람들은 되도록 내지에서 살고 싶어했습니다.(현재의 서울집중현상처럼 말이죠.)
또한 기후가 추워서 인구도 상대적으로 적었고 따뜻한 남쪽의 인구가 훨씬 많았죠.
그리고 패서 지역은 신라의 직접통치를 받은 기간또한 매우 짧습니다.
신라의 황해도지방 개척은 748년에야 시작되며 762년에 거의 마무리되며
826년에 평양지역을 확보하며 최종적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이전에는 옛 고구려계 토호들이 반독립적으로 존재했죠,
그러나 얼마 안있어 9세기말 각종 반란이 일어나며
891년즈음해서 양길,궁예,견훤이 독자적으로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한때부터는
지방통제가 불가능하고 각 지방이 반독립적인 세력이 되었으므로
신라의 황해도지방 직접통치는 길어야 140년, 짧게는 130년정도이고
평양지방은 100년도 채 안되는, 80년정도의 기간인거죠.
요약하면, 고구려후기 수도와 그 배후지로 내지로서 인식되었던
패서지방은 고구려 멸망이후로도 약 100년간 반독립적인 토호들이 존재했으며
신라의 직접통치는 130~140년 정도이며 궁예와 왕건이 신라땅에서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신라와 크게 접점이 없던 땅이고,
오히려 고구려의 옛 중심지에서 일어났으므로 고구려 계승을 주장할
명분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고구려계승을 주장하는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이듭니다.
https://cafe.naver.com/booheong/17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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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얼마전에 네이버 부흥이라는 카페에 올렸던글입니다.
고려가 고구려의 인구밀집지역인 중심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하고,
고구려멸망이후에도그 패서 지역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대로 쭉 살았다고 생각하여 글을작성했는데,
패서지역의 인적연속성에 의문을 제기하는분들도 있더군요.
저는 현대도 아닌, 전근대의 인구이동(강제적이었다할지라도)이
유목민족도 아닌 농경사회의 인구밀집지역의 인구구성을 크게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현 황해도,평안도지방의 당시 인구구성은 고구려멸망시와 고려건국시에 크게 달라졌을까요?
첫댓글 계승성은 꼭 같은 지리적 위치에서만 계승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리적 계승성보다 인종적, 정신적 계승성이 때로는 더 중요할 때도 있겠지요. 고려는 국호에서 보듯 고구려 계승의지를 가지고 출발한 나리입니다. 나중에 문화적으로, 또 지배층이 상당수가 신라계였으므로 신라적 요소를 더 많이 계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려가 고구려 를 계승하지 않은 나라는 아니지요. 황해도 평안도 지방은 고구려 멸망시에는 국가의 중심지였고,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멸망 후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 남쪽에서 올라간 사람이 섞여 고려 건국시에는 인적 구성이 달라집니다. 많이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계승성에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건국세력인 왕건을 위시한 패서호족은
고구려계아닌가요??? 신라계인가요?
패서호족이 궁예나 왕건을 지원한 명분은 고구려 계승성이지만, 이들이 혈통상으로 고구려계, 또는 신라계라고 명확히 나눌 수는 없다고 봅니다. 신라가 5백년 이후 영토가 엄청 커졌기 때문에, 이때 고구려 출신인데 신라로 넘어간 이들도 있으니까요. 고려 건국을 지원한 세력이 무엇을 계승하려고 했느냐가 중요합다고 봅니다.
그렇군요 좋은 정보, 답변 감사합니다~
고려라는 국호는 고구려 후기에 함축적으로 사용된 국호라 패서호족 출신인 왕건이 이를 채택하여 이성계에게 멸망당할때까지 변동성없이 사용한 것을 보면 왕건 집안의 고구려인의 정체성이 작용했다고 볼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패서호족들의 지원을 받아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나중에 마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어 패서 호족들의 반발을 사서 근본적인 몰락 원인을 초래하지만 그에 반해 왕건은 고려라는 국호를 자신의 사망때까지 바꾸지 않았고 그의 자손들인 고려 역대왕들도 바꾸지 않아 고려 멸망때까지 지속된 것을 보면 알수가 있지요
패서호족들중 대표적인 패서 호족이었던 평주의 박지윤 박수문 가문이 자신들의 칭호를 고구려 고유 관직명인 대모달로 호칭하여 사실만 보더라도 패서호족들은 고구려인의 정체성을 앉고 있었고 당시 후삼국 시대를 비롯한 고대 사회는 혈통 중심의 사회라 혈통을 중시할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패서호족의 대표가문 박지윤 평주 가문의 대모달 호칭도 이런 성격하에서 자연스럽게 나온것이지요 그리고 고려 의종대 편찬된 김관의 편년통록에서는 왕건의 모계 조상 호경이 고구려 지역인 백산 백두산에서 왔다고 기록하여 왕건 가문이 모계적으로 고구려 혈통과 관계 있다고 인정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