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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9:31
공주야!
죽음이 가깝다. 누구에게나. 그러나 그래서만은 아니다. 본디 장례란 산 자들의 몫이 아니던가. 어떻게 살까의 물음이고, 어떻게 살다 갈까의 대답 같은 것, 누군가의 죽음 가까이에서 그걸 묻고, 찾고, 얻으며 예를 갖춘다. 여기 예수의 장례가 있다. 무얼 묻고, 무얼 찾을까. 무죄한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섰으면서 큰 안식일에 십자가에 두어 부정해지는 것은 면하려는 유대인들의 이중성을 보라. 예수님 좌우편의 죄수들은 다리를 꺾어 남은 목숨을 속히 끊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어 꺾을 필요가 없었다.
Princess!
Death is near. To everyone. But not just that. Funerals aren't for the living. It's a question of how to live, and it's like an answer to how to live, to ask, find, get, and have examples of how to live near someone's death. Here's Jesus' funeral. What to ask and what to find. See the duplicity of Jews who took the lead in killing innocent Jesus and tried to avoid being denied by placing him on the cross on the big Sabbath. Prisoners on the left and right sides of Jesus broke their legs and quickly killed his remaining life, but Jesus was already dead and did not have to break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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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일이다. 병사들이 예수의 죽음을 확실히 하려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자 물과 피가 쏟아졌다. 그 배에서 생수(성령)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한 말씀대로, 성전에서 물이 흘러 죽은 강을 살리고 생물들이 살아나게 하리라던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죽음으로 거듭난 생명들이 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다. 그 둘은 유대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며, 이는 유대교 성전 체제가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님에 의해 극복될 것임을 보여준다.
This also accomplished the Bible's prophecy. Water and blood poured out as the soldiers stabbed him in the side with spears to ensure his death. The river of bottled water (holy spirit) will flow out of the ship, indicating that the prophecy of Prophet Ezekel, who said, "The water will save the dead river from the temple and bring the creatures to life," will be fulfilled. Jesus has passed away, but there are lives that were reborn through his death. It is Joseph and Nigodemo at Arima University. Both are representatives of Judaism, and they show that the Jewish temple system will be overcome by the new temple,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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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유대인이 두려워 드러내놓고 예수님의 제자임을 밝히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죽고 난 후 빌라도에게 시신을 수습하겠다는 담대한 요구를 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에 있다는 말을 들었던 니고데모가 이제 예수님의 장례식에 참여한다.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시신의 부패를 지연해줄 몰 약과 침향 섞은 것 백 리트라를 가지고 온다.
Joseph was afraid of the Jews and could not reveal himself as Jesus' disciple, but after Jesus' death, he indirectly reveals himself by making a bold demand to Vilado to recover the body. Nigodemo, who visited Jesus at night and was told that the way into God's kingdom was in water and the Holy Spirit, now participates in Jesus' funeral. He brings a back litra of mixed with myrrh and acupuncture that will delay the decomposition of the body until the Sabbath i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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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한 사람도 장사 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에 장사된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왕의 죽음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유대교의 가장 대표적인 지도자들에 의해 다윗 왕처럼 ‘동산’에 있는 새 무덤에 묻힘으로써 그가 실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실 분임을 보여준 것이다. 안식일의 큰 날이란 무슨 뜻인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수치스러운 것이고, 무엇이 명예로운 것인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을 어떻게 읽는가?
Jesus is buried in a new tomb, where no one has ever been buried. It describes the death of Jesus as the death of a king. By being buried in a new tomb in the 'Garden' like King David by the most representative leaders of Judaism, he showed that he is indeed the one to come as the king of the kingdom of God. What is the big day of the Sabbath? What is it to try to obey the Bible, which said that the bones will not be bent at all? What is shameful, and what is honorable? How do you read the saying, "If you are going to follow me, carry your cross and follow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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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신(31-37)
a.군병들이 예수님의 다리는 꺾지 않았다:31-35
b.죽은 이후에도 성경을 성취하시다:36-37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예수님 장사(38-40)
a.아리마대 요셉의 믿음:38
b.니고데모의 믿음:38
예수님의 믿음(41-42)
a.동산에 묻히심:41
b.유대인의 준비 일에 묻히심: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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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31a)
예비일이라(31b)
유대인들은(31c)
그 안식일이(31d)
큰 날이므로(31e)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31f)
십자가에 두지(31g)
아니하려 하여(31h)
빌라도에게(31i)
그들의 다리를 꺾어(31j)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3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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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병들이 가서(32a)
예수와 함께 못 박힌(32b)
첫째 사람과(32c)
또 그 다른 사람의(32d)
다리를 꺾고(3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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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 이르러는(33a)
이미 죽은 것을 보고(33b)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3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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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한 군병이(34a)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34b)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3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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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본 자가(35a)
증거 하였으니(35b)
그 증거가 참이라(35c)
저가 자기의(35d)
말하는 것이(35e)
참인 줄 알고(35f)
너희로(35g)
믿게 하려함이니라(3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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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이룬 것은(36a)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36b)
아니하리라 한(36c)
성경을 응하게(36d)
하려함이라(3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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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성경에(37a)
저희가(37b)
그 찌른 자를 보리라(37c)
하였느니라(3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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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대 사람 요셉이(38a)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38b)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38c)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38d)
예수의 시체를(38e)
가져가기를 구하매(38f)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38g)
이에 가서(28h)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3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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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예수께(39a)
밤에 나아왔던(39b)
니고데모도(39c)
몰 약과 침향 섞은 것을(39d)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3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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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수의(40a)
시체를 가져다가(40b)
유대인의 장례법대로(40c)
그 향 품과 함께(40d)
세마포로 쌌더라(4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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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십자가에(41a)
못 박히신 곳에(41b)
동산이 있고(41c)
동산 안에 아직(41d)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41e)
새 무덤이 있는지라(4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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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42a)
유대인의 예비일이요(42b)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42c)
예수를 거기 두니라(4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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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치우라_Get rid of the dead._
죽음을 보라_Look at the death._
죽음을 살라_Let me di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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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완전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 흠 없는 제물이 되어주신 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죽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부활에 무지하기 때문인 것을 고백합니다. 미지의 그 공허가 무섭지만 버려야만 체험할 수 있는 새 창조의 비밀을 위해 마음속 가득 찬 은도 버리고 금도 버리겠습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을 즐거워하는 인생이 되겠습니다. 거룩하고 흠 없는 백성이 되기 위해.
I praise my Lord, who has been a flawless sacrifice to give me complete rest. I confess that the reason why it is difficult for me to die is because I am ignorant of the resurrection. I'm scared of the unknown void, but I'll throw away my heart full of silver and gold for the secret of the new creation that I can experience only when I throw it away. It will be a life that enjoys losing money because of you. To be a holy and flawless people.
2026.4.4.sat.Clay
신학 비평//
꺾이지 않은 뼈, 흘러나온 생명 — 죽음을 넘어 완성되는 안식
왜 예수의 죽음은 ‘치워야 할 시체’가 아니라 ‘보아야 할 계시’이며, 우리가 살아내야 할 길이 되는가?
1) “죽음을 치우라” — 종교의 위선과 인간의 본능
본문에서 유대인들은 “큰 안식일”을 이유로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거룩의 형식**이지, **진리의 실체**가 아니었습니다. 무죄한 이를 죽이는 일에는 가담하면서 시체가 남아 ‘부정’해지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이 장면은 인간 종교의 본질을 폭로합니다. 죄는 용인하면서, 불편함은 제거하려는 태도, 이것이 바로 “죽음을 치우라”는 신앙입니다. 죽음의 의미를 직면하지 않고, 불쾌함만 제거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완성하는 계시적 사건입니다.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 유월절 어린양 (출12장) “그 찌른 자를 보리라” → 회개의 시선 (슥12:10) 즉, 예수의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완성, 계획된 구원입니다.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것은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신학적 상징입니다. 피 → 속죄 (희생, 십자가) 물 → 생명 (성령, 새 창조) 죽음 속에서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끝에서 시작이 터져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끝내는 사건이 아니라, 죽음을 열어 생명을 흘려보내는 사건이다.
2) “죽음을 살라” — 제자의 실존적 응답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이전까지는 숨은 제자였습니다. 요셉 → 두려움 속에 감춘 믿음 니고데모 → 밤에 찾아왔던 탐색자 그러나 예수의 죽음 이후 그들은 변합니다. 숨었던 자들이 드러납니다 밤에 오던 자가 낮의 증인이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된 믿음은 예수의 ‘죽음’을 통과할 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를 따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죽은 예수를 붙드는 것은 결단입니다. 시체를 요구한다 → 권력에 맞서는 행위 장례를 치른다 →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는 행위 그들은 이제 “죽음을 사는 자”가 됩니다.
3) “새 무덤과 동산” — 새 창조의 신학
예수는 동산에 있는 새 무덤에 묻히십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장례가 아닙니다. 동산 → 에덴의 회복 새 무덤 → 아직 사용되지 않은 시작 안식일 → 창조의 완성, 이것은 새 창조의 서막입니다. 첫 창조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되었다면 새 창조는 무덤의 동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안식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닙니다. 십자가 이후의 안식 = 구원이 완성된 상태입니다. 무엇이 수치이고, 무엇이 영광인가? 세상은 말합니다. 십자가 = 실패 죽음 = 수치 그러나 복음은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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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 왕의 즉위식 죽음 = 영광의 문, 수치는 숨기는 것이고 영광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이제 수치를 드러냄으로써 영광에 참여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고통을 참고 견디라는 도덕적 명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깊은 의미입니다. 자기 생명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나오게 하라는 초대입니다. 나의 안전을 버리고-나의 명예를 내려놓고-나의 계산을 포기할 때 그 자리에서 “피와 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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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부활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정확합니다. 우리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부활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말합니다. a. 뼈는 꺾이지 않는다 → 하나님은 지키신다 b. 피와 물이 흐른다 → 생명은 반드시 나온다 c. 무덤은 비어질 것이다 → 끝은 없다 "죽음을 치우는 신앙은 종교이고 죽음을 바라보는 신앙은 신학이며 죽음을 살아내는 신앙은 복음이다" 십자가는 죽음을 제거하는 사건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을 흘려보내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