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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여행기
우리 낙원회 회원 5명(승보,호산,청범,그리고 우리 부부)은 8월 18일 몽골여행을 떠났다. 그런
데 나는 몽골에 대한 상식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도 몽골하면,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오는 '몽골반
점'으로 친숙해 지지않았나 싶다. 또한 한국인을 포함한 몽골족 계통을 영어로 몽골로이드(Mongoli
d)라고 하듯, 지금은 믿지도 사용하지도 않지만 우리와 몽골인은 같은 우랄알타이어 계통의 언어
를 쓰는 민족이라면서 친밀감도 있었지 않았나 싶다. 요즘 몽골에 여행오는 여행객 중에는 한국인
이 1위라고 한다.
지금은 많은 몽골인들이 유학, 취업, 무역 등의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한국인들도 사업상 목적이거나 대자연의 모습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몽골을 찾고 있다고
한다. 몽골인들이 한국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중국의 역사 외곡으로 인해 우리와 같은 입장에 놓
여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몽골의 역사를 살펴보면.........
몽골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80만년 전으로 기록하고 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거쳐 BC3세기무렵 흉노(匈奴)가 최초로 국가를 세웠다. 이것이 흉노국이다. 그후 AD6~9세기에 돌
궐, 위구르 같은 나라가 세워졌으며 흉노제국과 돌궐제국은 중국의 진(秦)이나 한(漢) 나라와 맞설만
큼 강력한 국력을 가진 나라였다. 돌궐은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하나로 통합한
거대한 유목제국으로 성장하였다. 그후 12세기(1,162년)에 테무진이 탄생하여 1,189년에 아버지를
이어 몽골국의 칸(왕)이 되엇으며 1,206년에 대몽골제국을 설립하였으니 그가 바로 칭기스 칸(CHI
NGGIS KHAN)이다.
대몽골제국 설립을 위해 노력하던 12세기 말, 13세기 초에 중국은 남쪽에는 宋이 있고, 북쪽엔
金이 연경(지금의 베이징)을 중심으로 몽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유롭에서는 로마제국이 붕괴
되어 이탈리아가 독립하고, 독일은 분열되면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프랑스와 영
국의 왕들은 점차 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강력해졌을 뿐 아니라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전쟁도 불사하
였다. 바꿔 말하면 당시 세계는 전쟁과 혼란이 계속되는 불안한 시기였다. 바로 그때 몽골도 강력한
국가를 세우기 위해, 그리고 보다 먼저 세우기위한 경쟁이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한 경쟁의 결
과는 몽골인들이 통합된 강력한 정권을 수립할 수 잇엇다.
이 시기에 역사서에 나오는 테무진(징기스칸)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그는 태어날 때 오른손에 양의 복사뼈 만한 핏덩어리를 쥐고 태어났다고 한다. 선대 왕이였던
아버지 예수게이 바이타르가 갑자기 사망하자 그의 통치하에 있던 부족들이 흩어져 도망가고, 사회
도 혼란해 졌으며 가족들도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격었지만 지혜로운 그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귀족
의 법도에 따라 키웠다. 어머니는 고생을 하며 자식들을 키우는 한편, 조상의 교훈과 격언을 끊임없
이 상기시키면서 은인과 적을 구분할 줄 아는 사려깊은 사람으로 교육시켰다. 그래서 테무진은 전
몽골의 칸위(왕위)를 차지하는 투쟁에서 승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테무진은 천성적으로 지혜가 뛰
어났을 뿐 아니라 물러서지 않는 굳건한 용기와 통치규범, 평화, 정직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대칸이
자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그래서 테무진은 칸이 되어 많은 정직한 동지들의 도움으로 분열된 나라를 다시 통합할 수 있었
다. 그래서 대몽골제국을 건립하고 칭기스칸(Chinggis Khan)란 칭호도 받았다.
그는 1,185년에서 1,206년 사이에 32차례의 전쟁과 전투를 치러 모두 여든한개의 크고작은 부
족을 통합하여 전체 몽골국을 통일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 최대 최강의 대몽골제국을 설립하고
천년의 역사 위인이 되었다.
이러한 대제국도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분열과 혼란의 시기에 접어든다. 북몽골, 남몽골,
서몽골로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내부상황이 혼란해 지고 점차 약화되어 갔다. 드디어 17세기 초 그
동안 몽골의 통치하에 있던 여진계통의 만주족이 독립국을 세웠다. 이것이 청나라다. 그때부터 20세
기 초까지 청의 지배를 받았다. 20세기 초에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때는 세계 열강국들이 식민지배와 식민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할 때다. 그래서 중회인민공화
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힘들엇다. 1921년 몽골-소비에트 상호우호관계 수립에 관한 협정에 서명
하고 소련과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때 일본의 침략도 있었으나 소련의 도움으로 일본군을 물
리칠 수 있었다.
그후 2차세계대전에서 소련(연합군)이 승리하자 소련의 도움으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195
9년 몽골인민공화국을 설립,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90년 전후로 사회주의 체제는 위기
에 봉착 단기간에 붕괴하였다. 이때 몽골에서도 민주화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어 1990년 몽골인
민공화국 헌법을 개정하고 1992년 개정헌법이 승인되면서 몽골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탄생 오늘
에 이르고 있다.
우리와의 외교관계
북한과는 1948년 사회주의 국가로서 수교해 오고 있다. 대한민국과는 1990년 노태우 정권 때
수교를 하고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이명박, 박근
혜 대통령도 몽골을 방문햇고, 몽골에서도 4명의 대통령이 방문했으며 금년에는 총리가 방한했다.
몽골의 국기
수도 : 울란바토르
면적: 1,564,116 제곱키로메터(한반도의 약 8배)
인구: 3,122,000명(2018년 추계)
수도 울란바토르의 인구가 반이 넘는 1,600,000명
GDP : US$1,2511,000,000 (국민소득 약 $4,000)
국화: 연꽃
종교: 라마교(50%)불교, 그리스도교,,샤머니즘
여행일정(사진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이승 승전탑. 울란바토르 시내를 한눈으로 볼 수 잇는 곳으로 러시아가 2차세계대전 승리를 기
념코자 기증한 탑
승전탑을 지키는 독수리와 함께
수도 울란바토르를 배경으로
반대로 초원을 배경으로
이태준 기념관
복트칸 궁전
몽골 불교왕국의 마지막 궁전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복트칸 겨울궁전은 20년간 몽골왕족의 마지막 황제 '복트칸'이 살았던 궁전.개선문, 절과 2층 목조건물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세계의 왕으로부터 받은 선물, 복트칸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박제동물과 그가 남긴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실제로 왕과 왕비가 생활했던 식당과 침실 등 당시의 궁전모습을 볼 수 있다.(내부 사진촬영 금지)
궁전 관광을 마치고 태를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버스안에서 내다본 유목민들의 초원이 한없이 넓
어만 보인다.
한국음식점에서 점식식사 맛있게 하고
오워 : 몽골 샤머니즘의 상징물↓
독수리 뒤로 보이는 돌무지는 우리의 성황당과 같은 의미의 돌무지로 세바퀴를 돌면서 소원과 여행
의 안영을 비는 풍습이 있어 우리도 했지요.
그 앞은 역시 넓은 초원
태를지 국립공원
몽골여행의 필수코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70km정도 떨어져 있는 국립공원으로 몽골의 자연모습
과 경관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인기 관광지로 넓은 초원의 풍경과 바위와 숲으로 어우러진 초원
으로 유목민족의 가축과 전통 게르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여행지. 여기가 우리가 묵었던 게
르
거북바위
공원 초원에서 다도체험 및 시음. 의상체험및 촬영. 마두금 연주 공연도 즐겼다.
의상체험
마두금 연주
마두금 연주에 따른 공연
승마체험도 했는데 사진을 못찍었네, 위험하다고 못찍게 해서.....
우리가 숙박한 게르.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인들의 주거형태로 이동하기 편한 천막식 주거형태다. 우
리가 숙박한 그날도 새벽에는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으므로 난로를 피워줬다. 따뜻하게
잘 잤다.
캠프내 별 감상
세계3대 별 관측지 몽골 초원 캠프 내에서 별 감상
그러나 이날은 저녁에 구름이 끼어 별 감상을 못했다. 아쉬웠다.
그리고 이날 석식은 몽골의 전통요리 허르헉으로 먹었다. 허르헉은 몽골 유목민들이 귀한 손님이 왔
을 때, 경사, 생일, 명절 때 먹는 음식으로 현대에 와서는 몽골 여행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먹는 음식이 되었다. 양이나 염소를 잡아 지방을 빼고 큼큼직하게 설어서 뼈와 함께 들고 뜯어먹는
것이 멋스럽기도 했다.
징기스칸 기마상
2010년에 완공된 기마상은 울란바토르에서 54km 떨어진 곳의 전진불독(Tsonjin Boldog) 초원지
역에 위치.지상으로 부터 50m 높이로 세워져 있으며 건물 높이는 10m, 동상 높이는 40m. 기마상
주변은 게르켐프 리조트, 스파, 호텔, 골프장 등이 들어설 계획이란다.
기마상의 기마 머리까지 에레베타로 올라가서 기마상의 징기스칸
징기스칸 부부상
징기스칸의 네 아들들
칸이 앉았던 자리
간단사(간등사원)
종교적 억압을 이겨낸 몽골의 유일한 사원.
몽골의 불교는 7세기경 티베트로부터 전파되었다.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위해 몽골의 군사적, 정치적 후원을 받을 목적으로 불교를 흥성시켜 몽골인과 연합하려는 생각이 몽골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쉽게 전파될 수 있었다. 그후 16세기경에 양국의 이익의 합치점를 찾았기 때문에 수백개의 불교사원이 생기고 남자의 30%가 수도승일 만큼 번성하였다. 그러나 1930연대에 들어오면서 공산사회주의 국가의 종교탄압 정책으로 사원의 체계가 무너지고 수많은 사원이 문을 닫게 되었다. 1990년까지 오직 '간단사원'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후 1992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재건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어 100개아상의 수도원이 다시 문을 열었으며 기독교, 이슬람교도 종교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몽골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종교는 수천년 동안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종교였던 샤머니즘(샤먼이란 사람의 사상과 논리)이었다. 이것이 불교와 융합된 것이 라마불교 또는 라마교라고 한다. 이 샤머니즘과 라마교의 신자수가 90%정도라고 한다
간단수도원은 몽고 라마교의 총 본산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27m 이르는 금불상이 우뚝 솟아 있
는데 이 불상은 무려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제작된 것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이다.
몽골역사박물관
몽골의 역사와 문화, 전통,생활 모습 등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곳
4만년 전 벽화,전통복장,유목민들의 독특한 생활 용품 등과 징기스칸에 관련된 자료도 많다.
(내부 사진 촬영 금지)
수흐바타르 광장
공산주의의 몰락을 가져 온 첫번째 민중집회가 열였던 곳, 수도 울란바타르의 중심부다.
중앙정부 청사↓
1921년 7월 '혁명영웅' 담디니 수크바토르가 중국으로부터 몽고의 독립을 선언했다.그는 몽골의
혁명영웅이고 국민영웅이다.
국민영웅의 기마상 앞에서↓
몽골 전통 공연
여기도 마두금은 빠지지 않는다.
전통공연에 이런 것도 있네요.
이번여행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징기스칸의 역사다. 어디를 가도 징기스칸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몽골국민의 영원한 영웅이고 천년역사의 위인이란 말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는 위대
한 정치가로서 "정치가 안정되면 국민이 편안하다."는 원칙을 준수하며 고아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
지 타인의 말을 들을줄 알았고, 학자들의 충고를 중시하고 쿠릴타이(국회비슷한 기구)에서 비준한
정첵과 법률등을 명확하게 실행했다고 한다. 또한 샤머니즘 불교,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
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했다고 한다. 이는 사회가 그만큼 생각의 자유가 존중되었다는 증거일 것이
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군사 지도자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 다음은 수도 울란바타르의 중심부 수흐바타르 광장 한 가운대 우뚝 솟아있는 기마상의 주인
공, 몽골의 국민영웅 담디니 수크바토르(Damdiny Sukhaatar)다. 그는 1921년 7월, 바로 이 수흐
바타르 광장에서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그는 몽골의 '국민영웅' '혁명영
웅'이 되었다. 몽골의 모든 지혜서에 그의 그림이 새겨져 있고 그의 동상앞에는 항상 경찰병력이 보초
를 서며 관리할 정도로 사랑받는 영웅이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에는 왜 이런 훌륭한 영웅적인 지도자가 없었을까? 세계10위권의 경제대
국이며 반도체, IT 등 세계 1등 상품을 160개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나란데, 몽골에서도 우리를 부
러워하고 있던데........ 그러나 영웅은 본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언잰가는 나타나겠지요.
이번여행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역사 공부도 많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주선해 주신 하나투어,
(주)메크로투어와 함께한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 8. 23.
承 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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