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1.3.21.) 말씀/ 누가 6:44-45
인간의 선한 본성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오늘은 인간에 대해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또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믿어야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주님의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인간은 본래 선한지 악하지 끊임없이 논쟁 해왔습니다. 지난 주 ‘휴먼카인드’라는 책을 접하여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저술한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다가 그동안 수많은 철학자들, 학자들이 인간에 대해서 부정적인 잘못된 생각을 갖고 왔다는 것을 지적하고, 반박하며 새로운 이론의 희망 메지를 전하는 책을 썼습니다. 인간 본성의 논쟁에 대해 현대 사회는 사실상 ‘성악설’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활동뿐 아니라 정치, 사회 분야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작동하고 혐오와 불신이 모든 비극의 뿌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사람들은 실제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아동학대, 묻지마 살인사건 등, 거짓 비방 잔인성들을 목격하며 우리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에 대해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동양에서는 순자가 이 편 이었고, 서양에서는 홉스가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순자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누구나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며, 좋은 목소리와 예쁜 용모를 탐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만일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본성에 따르고 그의 욕구에 따라간다면, 반드시 다툼이 일어나고 사회 질서가 어지러워져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홉스는 인간은 본성이 사악함으로 극한 상황에 이르면 이기적인 괴물로 변하고, 시민사회만이 본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자신에 대해서 알기를 원한다면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알아보라 하였습니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절, 법률, 판사, 벚원, 교도소나 경찰이 없던 시절 우리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자신의 마음을 읽어보라. 자신의 두려움과 감정을 분석해보면 모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은 두려움에 의해서 움직인다.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소는 우리 모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선함이 자리잡고 있다. 문명이 우리를 구원하기는커녕 망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립 이론이 오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휴먼 카인드라는 책에서 저자는 ‘인간은 악마다’라는 대세 이론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지극히 이타적이고 폭력을 가장 혐오하는 존재라고 저자는 주장 했습니다. 그러면서 몇가지 실례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어린 시절 읽은 소설 『파리대왕』이란 책입니다. 이 책은 영국의 작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의 대표작. 데뷔작으로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이 소설은 핵전쟁을 피해 비행기로 후송되던 한 무리의 소년들이 태평양의 어느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시작됩니다. 고립무원의 장소에 갇힌 5세에서 12세 사이의 소년들은 나름대로 생존의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러나 서로 부딪치는 이해와 욕망 때문에 패가 나뉘고 위기가 고조됩니다.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고 나름의 규칙을 정해 질서를 유지하고자 애쓰지만 결국 두 패로 나뉘어지고 갈등이 시작됩니다. 한 편은 갱단을 만들고 서로 대치합니다. 섬은 곧 지옥의 장소가 됩니다. 갈수록 광폭해지는 가운데 두 소년이 희생을 당합니다.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사악함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만약 당신을 포함한 일군의 사람들이 무인도에 고립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소설은 이러한 의문에 기반해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오랫동안 교과서적으로 사용된 고전적인 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는 소설의 이론을 뒤집었습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 합니다. 그 예가 바로 1966년 무인도 ‘아타섬’에서 구조된 6명의 소년의 예 였습니다. 그들은 파리대왕처럼 똑같이 무인도에 살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난투극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체력 단련 장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지어 나무 조각으로 기타를 만들어 사기를 북돋우기까지 했고,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서 선한 본성이 서로 협력하며 위기를 극복하여 생존하였습니다. 그가 볼 때 파리대왕의 이야기 설정은 잘못된 것 이었습니다. 홉스의 이론도 틀렸습니다. 인간은 본성이 그렇게 악하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령이자 역사학자인 새뮤얼 마셜은 미군과 유럽 전선의 군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집단 인터뷰에서 전체 병사의 15~20%만이 실제 무기를 사용한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태평양 중서부 매킨섬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는데 300명이 넘는 부대에서 실제로 방아쇠를 당긴 병사는 고작 36명뿐 이었다고 합니다. 전장에선 싸우는게 당연하게 보이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병사들 대부분이 총을 쏘는 것을 회피했다는 것입니다. 싸우고 죽이는 것이 결코 인간의 '본능'이 아님을 보여준 두 번째 사례였습니다.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전기충격 실험’과 같은 연구역시 사악한 인간의 모습을 증명한 대표적인 연구 사례로 꼽힙니다. 이 실험은 사회적 환경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인간 행동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실험으로 순식간에 사회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연구가 됐습니다. 필립 짐바르도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언론매체가 앞다투어 연구를 소개하며 우리 모두 상황과 환경 탓에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최근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조작됐다는 충격적인 의혹이 나왔습니다. 실제 상황에 이르자 참가자들은 그런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반발을 했으며 갈등이 심화되고 악화되어 결국 학생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연구 책임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2주간 진행할 예정인 실험을 6일 만에 종료했습니다. 참가자들의 이상행동은 모두 연기였거나 요구에 따른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 38명의 ‘방관자 효과’의 근거로 쓰인 캐서린 제노비스의 살인 사건도 있습니다. 다시 조명하여 조사한 결과 38명의 방관자는 사실상 없었다고 근거를 제시 했습니다. 이 살인사건은 새벽 3시 15분에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 일어났습니다. 집에 불을 켜고 제노비스가 살해당하는 장면 을 목격한 사람은 총 38명이었고, 그러나 한 사람도 내려가 돕는 사람이 없고 불을 끄고 방관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알아본 결과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었고, 돌봐주었고,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난리를 떨었는가? 언론이 그렇게 특종을 만들어갔다는 것 입니다. 언론 뉴스를 너무 보지 말라는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뉴스는 언제나 잔인하고 기이하고, 부정적인 것을 언제나 머릿기사로 내보냅니다. 특종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요즘도 뉴스 보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러면 성경적으로 볼 때 인간의 본성은 어떤 것인가요? 인간은 선한가요? 아니면 악한가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선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 very good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DNA로 가진 인간은 당연히 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을 지나서 4장을 가보면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로 유인하여 살인을 하는 잔인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가인의 후에 라멕은 창상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다고 자랑 합니다(창 4:23). 6장에 가면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하다고 선언 하십니다(5).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이런 인간 존재를 하나님은 노아 홍수로 쓸어버릴 계획을 하십니다. 그리고 노아 한 사람과 그 가족들을 구원하여 세상에 인종을 퍼트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 좋고 의로웠던 노아의 자신들 중에 또 불신자들 악인이 등장 합니다. 절망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 존재에 대해서 로마서는 어떻게 말 합니까? 로마서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다시 정리해서 종합아여 성경적으로 보면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선한 존재이지만 유혹을 받아 죄의 본성이 들어와 자리 잡은 후에는 죄성을 지닌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존재의 하드우어는 하나님의 선한 성품이지만, 죄가 바이러스처럼 들어와 부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희망’과 ‘절망’ 두 가지가 다 공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한 늙은 할아버지가 자기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큰 싸움’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왕년에. 내가. 젊을 때 서울. 명동에. 깡패들을 호령 했단다. 그러나 지금의 싸움은 그때와 다르다. 이 싸움은 또한 나이 어린 손자의 마음속에도 일어나고 있다” 궁금해 하는 손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간의 싸움이란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는 간단하게 답하였습니다. “음”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다! 정답입니다. 히틀러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 600만을 죽인 악의 화신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자행될 수 있었을까?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지주의 사생아였습니다. 어린 시절. 히틀러의 이웃에 유대 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술주정꾼 이었으면 부인을 때리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고, 히틀러는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자랐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이 강하게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학대 받으며 분노가 억압된 채 성장한 것입니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주 요인인 공격적 행동은 어린 시절의 폭력과 학대와 해결되지 않는 슬픔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그런 것을 먹고 자란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학대당하며 성장하여 커서는 가해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과 섬김을 받으며 자랐다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 마태복음에 세리 레위가 나옵니다. 그는 당신 유대인들에게는 공인된 죄인이었습니다. 세리는 동족의 피를 빨아 착복하는 악날한 죄인이었습니다. 같은 유대인들이라도 상종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를 믿어주고 제자의 한 사람으로 부르시고 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며 사랑으로 키우셨습니다. 그는 마침내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제자요 성자가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예수님이 이런 인간의 선악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누가 6:44-45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예수님은 인간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선하고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악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에 선을 쌓은 사람은 선한 열매를 맺고, 마음에 악을 쌓는 사람은 악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평상시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상시 사랑하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글을 읽고 좋게 생각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의 말을 하고 믿어주고 그렇게 계속 쌓으면 어느 순간인가 좋은 열매를 맺게 되고, 어떤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지라도 쌓은 것의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입니다. 악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욕을 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대우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6:7-9에서 바울은 비슷한 이야기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는 심고 거두는 진리를 말 합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영생을 거둔다. 그리고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 합니다. 반드시 나중에 좋은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당장 열매가 없어도 믿고 계속 쌓고 심으라는 것입니다. 열매라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거짓이 없습니다. 경숙 자매님이 어떻게 변신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질문을 하고 자기를 사랑하면 어느 날 그렇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그랬지 않았습니까?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 부담스러운 하는 그 사람에게 따듯한 손을 얻어주게 되었고, 자신에게 인사를 하였다고요. 내 안에 선한 성품이 쌓아져서 선한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싸늘하고 처음부터 냉혹한 독재자는 없습니다. 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도소로 유명한 노르웨이 바스퇴위 교도소 톰 에버하르트0는 이렇게 말 합니다. “정말 매우 간단하다.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대하면 그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다. 인간처럼 대하면 그들은 인간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 감옥은 죄수들을 가두어 벌을 주서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받지 못한 인간 대우를 해줍니다. 결과 범되율이 뚝 떨어졌습니다. 미국의 교도소 수감자 60%가 2년 뒤 다시 교도소로 들어오는데 노르웨이는 16%입니다. 인간은 바탕이 선한데 악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쌓고 심고 어떻게 키우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과 소망을 갖고 끊임없이 사랑의 물을 주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믿은 대로 심은 대로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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