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사진
항간에서는 '저승꽃'이라고도 하고, 병원에서는 '지루각화증'이라고도 하는 검버섯, 흔히 나이가 드신 노인들의 얼굴에 많이 피는 것이 검버섯이다. 그런데 그 검버섯이라는 녀석이 나에겐 20대 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내 얼굴이야 직접 보지 못하니 별 관심 없이 지나 갈 수 있지만, 지인들로부터는 "젊은 나이에 벌써 그런 것이 생기냐?" 는 인사를 흔치 않게 받았다. 그러지 않아도 애늙은이 같다고 옆에서 농담을 하는데다 검버섯까지 있었으니 학창시절엔 ‘노신사’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다. 생각해 보면 검버섯은 아버님도, 할아버지도 그랬으니 아마도 집안 내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병원에서 검버섯 흔적을 지워볼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아픔이 얼마일까?, 또 비용은 얼마나 많이 들까?'라는 걱정에 은근히 겁에 질려 그대로 지내왔다.
언젠가 한번은 피부과 병원에 진료를 받을 일이 있어서 의사에게 얼마나 나오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은 별로 시술할 의향도 없이 괜히 물어보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는지 "한 개 3 천원씩만 해도 견적이 만만치 않겠네요" 라면서 시큰둥하게 받아 넘겼다. 나 역시 예상은 했지만 언 듯 계산해도 감당해 낼 수 있는 금액을 훌쩍 뛰어 넘어 결국 시술할 생각을 포기하고 지내왔다.
그런데 이태전인가? 처형이 다니는 단골 병원이 있는데, '2십 만원이면 모두 뺄 수 있으며, 거기다가 평생 A/S하는 데가 있다.'며 반강제로 손을 잡아끌었다. 수술등 아래 누워 얼굴을 맡겼다. 레이저의 가느다란 불빛이 얼굴을 이 잡듯이 두루두루 섭렵하며 인육을 태우는 야릇한 냄새를 맡으면서 두어 시간 동안 모두 없앴다. 막상 시술을 받고 보니 생각보다 싸게 했고 평생 A/S라고 했으니 '왜 진작 이 병원을 몰랐을까?'라는 아쉬움과 다행함이 교차했다. 아내도 한 마디, "진작에나 시켜줄 걸, 여태 늙은이 데리고 살았잖아" 라면서 웃겼다. 그 후 검버섯을 없애는 것만으로 아마 몇 년 정도는 더 젊은 모습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며 생각해 왔다.
얼마 전 妻家 쪽에서 형제들끼리 장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가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빠듯한 일정에 쉽게 시간 내기는 어렵겠지만, 혼자만 빠질 수가 없는 노릇이라 함께 가겠노라며 약속했다. 그래서 미리 여권사진부터 찍어두자며 아내와 함께 사진관을 찾았다. "고개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고, 턱을 좀 내리세요,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오랜만에 교복입고 앨범사진 찍던 것처럼 증명사진이라는 것을 찍었다.
그리고 몇 일후에 찾아 온 8장의 사진을 받아 보고 잠시 놀랐다. 사진속의 나는 그동안 거울로만 보아오던 얼굴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버린 모습으로 변했다. 그동안 검버섯을 지운 후 내심 훨씬 젊게 보일 것이라던 생각은 순전히 착각이었고, 사진속의 내 모습 속에는 몇 해 사이로 흘러간 세월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 초등학교 청소년 시절, 40대 아저씨들을 보면서 '내가 저런 모습이 되기까지는 언제일지 모르는 까마득한 훗날'이라고 생각한 시절. 그 때 본 그 모습의 40대 그대로 지금 아이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겠지? 이태 전 없앤 그 검버섯은 나의 본틀은 바꾸기엔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그저 살갗을 태우고 지나간 화상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오늘 아침 문득 어릴 때는 없던 점이 커가면서 하나 둘 생겨나는 아이를 보면서 '대를 이어서 닮을게 없어서 이런 것도 닮나?'라는 속상함과, 살 속을 속속히도 파고 든 세월의 흔적을 보면서 그간 잃은 내 모습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흘러간 세월만큼 내 마음의 양식은 얼마나 더 윤택해 졌는지도 되돌아본다. 앞으로 더 형편없는 얼굴로 다가올 미래는 얼굴 그대로의 모습보다, 얼굴로 묻어날 인덕을 더 생각하며 살아야 겠다. 그것이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나의 작은 일이라고 증명사진 속의 내가 일러주는 듯 하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무척 잘 쓰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는 글을 읽으니 기분도 좋아집니다.감사^^*
감상 잘했습니다.
맞습니다 ㅎ .. 재밌게 읽었습니다 ~
검버섯을 지니면 수명 장수한다는 말을 윗 어른들한테 들은 기역이 납니다.사모님과 재미있게 사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검버섯을 몇차례 지워도 나이 들었다고 표시하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