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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지원사 권리를 찾아서(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연재> 15.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
코난 추천 0 조회 104 14.11.07 16:2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이천시청

 

2004년 4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햇살을 비추는 봄이 왔다.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은 실적에 따라서 월급을 받다보니 매달 30일인 마감 날이 다가오면 실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종종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그래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겨울 내내 이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백 장의 명함을 돌렸다.

 

한 번은 명함을 돌리려고 이천시청에 갔는데 시청건물이 옛날에 지은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계단 밑에서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는 공무원 분들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를 보더니 “올라가실 겁니까?”라고 물어서 “네 3층에 볼일이 있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지나가는 다른 공무원까지 불러 4명이서 나를 휠체어 채로 들어 3층까지 올려주었다.

 

옛 이천시청, 계단만 있는 3층 건물 

 

나는 심호흡을 한 번하고 3층에 있는 사무실을 차례차례 돌아다니며 홍보를 했다. “안녕하세요. 삼성화재 김영주라고 합니다. 장기보험이나 자동차보험이 필요하시거나 견적이 궁금하신 분은 언제든지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명함을 돌리고 나왔다. 그렇게 홍보를 하다가 복도에서 우연히 시장님을 만났다. 그래서 시장님께 “바쁘시지 않으시다면 잠깐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시장님은 흔쾌히 응해주셨다. 시장실에서 시장님과 30분 정도 면담을 하며 “선진국에서는 저와 같은 중증의 장애인들도 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중증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전혀 없다보니 대부분 시설이나 집에서 누워 살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시대인 만큼 저와 같은 중증의 장애인도 사회에 나와서 활동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장님은 “어떤 방법으로 도와 줄 수 있는지 사회복지과와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고 시청에서 연락이 와 다시 시장님을 만났는데 “당장에 어떤 정책을 만들어서 지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셨다. 그 대신 마침 필요한 보험이 있다고 장기보험도 들어주시고, 시청에서 관리하는 차량이 있는데 신규로 차를 구입하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나도 한 정책이 논의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시장님을 만나 얘기 했다고 쉽게 될 거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시장님이 실적에 대한 목마름을 아셨는지 시청에서 운영하는 신규 자동차보험을 연결해 주어서 총 7대의 자동차보험 실적을 올릴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시청에 있는 공무원들에게 100장이 넘는 명함을 돌렸지만 단 한건의 보험도 계약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다.

 

인터뷰...

 

보험설계사를 시작하고 4개월 정도 영업을 해보니 조금은 감이 왔다. 이천이라는 곳이 작은 중소도시에 지역사회다 보니 영업도 인맥에 많은 영향이 있었다. 시청, 관공서, 교회, 각종 단체나 모임에 가서 홍보하고 상담을 하다보면 주로 아는 지인에게 보험을 들고 있는 사람이 많아 100명쯤 만나 명함을 주면 간신히 한 건 정도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매달 마감을 하려면 최소한 10건 이상의 보험을 계약해야 하는데 영업활동에 제약이 많아 이렇게 영업을 하다가는 오래 못 버티고 그만 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일을 시작하고, 전신마비장애인 보험설계사라는 이유로 지역에 있는 잡지와 장애인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에 인터뷰를 한 기사가 나갔는데 그 이후에도 종종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고 몇 번 방송에 나갔는데 영업을 하러 돌아다니면 방송에서 봤다며 먼저 명함을 달라는 분들도 있어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04년4월20일 YTN뉴스, 의지 앞에 장애는 없다!

 

그런데 활동보조를 도와주었던 형이 5월 초에 이천을 떠나 대학원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미리 알려줬으면 여유가 좀 있었을 텐데 이사하기 며칠 전에 알려줘서 급하게 다른 활동보조인을 구해야 했다. 그때는 활동보조인이라는 제도가 없어서 나 혼자 어떻게 해서든 구해야 했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을 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활동보조가 어떤 일인지 자세히 설명을 하고, 다음 카페 지역모임 게시판에도 올리고, 시청 홈페이지에 있는 구인란에도 올렸다.

 

하루가 지나자 메일과 핸드폰으로 활동보조 일을 해보고 싶다고 몇 명이 연락이 왔다. 그런데 남자보다는 여자 분들이 많았다. 나와 같이 일을 하려면 자동차 운전도 해야 하고 차에서 휠체어로 태우고 내리려면 어느 정도 힘도 필요해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2~3일 정도 더 기다렸는데 한 통에 전화가 왔다.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은 형이었는데 활동보조를 자신이 잘할 수 있다며 한 번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집에서 만났는데 솔직히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형은 나를 만나자 마자 “아직 다른 사람을 구하지 않았으면 내가 잘할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내가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완강하게 부탁도 하고, 나도 하루가 급해서 “일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시 구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부터 와서 도와주세요.”라고 말해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며칠 동안 같이 일을 했는데 외모와는 다르게 성실히 잘 도와주었다. 그렇게 2주정도 일을 했을까? 앞으로 보험설계사를 계속 하려면 내 명의로 자동차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금 모아둔 돈으로 중고차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활동보조를 도와주는 형이 “마침 내 차도 너무 낡아서 중고차로 바꾸려 하는데 우선은 니가 돈을 빌려주면 내가 중고차를 사서 같이 다니다가 내가 그만두면 그때 구입하면 낮지 않겠냐! 그리고 빌린 돈은 매달 내 월급에서 절반씩 빼고 주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차가 없어서 형이 타고 다니는 차로 같이 다니면서 일을 했는데 확실히 오래된 차라서 타고 다니면 조금 위험하기는 했다. 그래서 5개월 동안 월급에서 나눠 받기로 하고 돈을 빌려 주었다.

 

며칠 후 형은 검은색 중고 그랜저를 타고 왔다. 형편도 안 좋으면서 굳이 기름도 많이 먹는 그랜저를 사서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본인이 타고 다닐 건데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5월 중순부터는 해야 할 일과 스케줄이 많았다. 보험영업을 하면서 틈틈이 장애인의 “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핑크펠리스를 제작하는데 고문으로 참여하게 되어 회의가 있을 때 마다 장애인의 성문화에 대한 조언도 해야 했고, KBS “세상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에서 촬영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4~5일 동안 촬영과 인터뷰도 해야 했다.  그리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하반기에 홍보할 장애인 고용 인식개선 캠페인 공익광고 촬영과 여성동아와의 인터뷰 등 6월 달까지 연속으로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다큐 핑크펠리스, 강관호 프로듀서, 서동일 감독, 뇌성마비장애인 최동수

 

2004년 6월 10일, KBS 세상속으로...

 

그렇게 정신없는 5월을 보내고, 2004년 6월 10일, 5월에 인터뷰했던 세상 속으로가 오후 7시 20분에 KBS 1TV로 방영되었다. 그런데 방송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으로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가 왔다. 전화를 해서 방송을 잘 봤다는 분도 계셨고, 힘내라고 응원하는 분도 계셨고,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는 분도 계셨고, 자동차보험이 만기가 되어 보험을 들고 싶다며 연락하신 분도 많았다. 그 전에 MBC 뉴스와 YTN 뉴스에 인터뷰를 하고 방송되었을 때는 한 통의 전화도 오지 안아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전화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아무튼 그 방송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응원도 해주시고 실적도 올릴 수 있어서 어렵게 일하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삼성화재 수원 사옥에서 이영재소장님과 촬영한 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공익광고

 

2004년 하반기에 홍보된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캠페인 공익광고

 

2004년 여성동아 7월호

 

호사다마 []  

 

그런데 우려했던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입출금 때문에 수시로 은행을 가는데 갈 때마다 휠체어를 타고 내리는 것이 번거롭다보니 활동보조인이 대신 입출금을 했다.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찾아서 지갑에 넣어 놓으면 대충 얼마를 쓰고 남았는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꾸 쓴거에 비해 몇 만원씩 부족 했다. 그래서 활동보조를 도와주는 형을 의심했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또 다시 문제가 생겼다. 고객하고 자동차보험을 계약했는데 고객이 은행 갈 시간이 없다며 현금 40만원을 주면서 대신 입금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입금하기 위해 내 지갑에 40만원을 넣어 두었는데 다음날 은행에 가서 입금하기 위해 지갑을 봤더니 40만원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에게 “형 혹시 지갑에 있던 40만원 못 봤어요?”라고 물었더니 활동보조인은 “참! 어제 지갑을 니 가방에 넣어놓는다는 걸 깜박하고 차 안에 두었는데 아침에 확인해 보니까 누가 차를 뒤져서 지갑에 있는 현금만 가져갔다. 그래서 아침에 가방에 지갑을 넣어놓고 너한테 말한다는 게 깜박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때 맞춰 차를 털렸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지갑에 각종 카드가 있었는데 지갑은 그대로 두고 현금만 빼 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으라고 말한 게 우스웠다. 그러더니 다시 “어쨌든 내 실수로 잃어버렸으니 월급타면 갚을게”라고 했다. 중고차 산다고 빌려가서 매달 갚을 돈과 합치면 이번 달에는 줄 월급도 없었다.

 

실수였다. 빨리 일을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던 사람을 고용한 것도 실수지만 그래도 처음에 잘 도와준다는 생각에 중고차를 산다고 덥석 돈을 빌려준 것도 실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싶어도 빌려준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갚을 때 까지만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7월 초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하려고 집에서 활동보조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전 9시까지 와야 하는데 12시가 되어도 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서울에 사는 친한 동생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어 며칠만 도와주고 다시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에게 “나도 일을 해야 해서 자리를 오래 비우면 힘듭니다. 오래 걸리면 차라리 다른 사람을 구할게요.”라고 말했더니 활동보조인은 “내가 계속 일할 테니 딱 일주일만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일주일만 있다가 꼭 내려갈게”라고 해서 조금 고민하다가 마지 못해 “알았다.”고 했다.

 

보험설계사는 실적에 따라서 월급을 받는데 처음 시작하는 1년은 매달 70만원 정도의 지원금이 월급에 포함되어 지급되었다. 그리고 매달 정해진 실적을 채워야 하는데 정해진 실적을 채우면 계속해서 조금씩 월급이 올라가는데 정해진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70만원의 지원금도 받지 못해 월급도 조금밖에 못 받는다. 나는 다행히도 매달 간신히 실적을 채워서 1월 달에 첫 월급으로 140만원을 받았는데 매달 조금씩 올라 6월 달에는 26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실적을 채우려면 하루도 아쉬웠는데 미리 말도 없이 일주일씩이나 자리를 비워 순간 짜증도 나고 답답하기도 했다.

 

어쨌든 일주일 후에 온다고 해서 방 안 침대에 누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출근하지 않아 다시 전화를 했더니 “미안한데 3일만 더 있다가 내려갈게”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주에 약속도 있고 빨리 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활동보조인은 “알았어! 그럼 니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더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당장에 다른 방법이 없어 시청 게시판에 다시 활동보조인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고, 밀려있던 보험설계는 친구에게 며칠만 도와달라고 부탁해 사무실로 가서 일을 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은행에 가서 통장 정리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활동보조인이 내 지갑에 있는 카드를 몰래 빼서 수시로 썼던 흔적이 있었다. 내 지갑에 있는 현금을 빼 쓴 것도 모자라 카드까지 몰래 빼서 쓴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바로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만류를 했다. 친구는 “니가 화나는 것은 이해하는데 만약에 경찰서에 신고를 하면 계속 경찰서도 왔다갔다 해야 하고, 신경도 많이 써야하는데 그럼 일도 못하고 더 힘들지 않겠냐, 차라리 빨리 활동보조인을 구해서 일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는데 친구의 조언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몇 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시작한 일인데 이 일로 인해서 일을 못해 하나도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보험설계를 할 수 있는 코드가 정지되어 보험설계사 일을 못할 수도 있었다. 친구의 차 안에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화를 삭히고 친구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빌려간 돈은 꼭 받아내야 했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에게 전화를 해 빌린 돈을 갚으라고 했더니 “지금 당장에는 돈이 없어 못 갚는다.”라고 말해서 나는 “그럼 내 돈으로 산 중고차를 돌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알았다. 차를 돌려줄 테니 그럼 그동안 일했던 월급을 달라, 안주면 나도 차를 못준다.”고 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나 몰래 빼 쓴 돈까지 치면 오히려 나한테 갚아야 하는데 월급을 안주면 차를 못준다고 되래 협박을 한 것이다. 정말 어이가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나는 “형이 내 지갑과 카드로 돈을 몰래 빼 쓴거 알고 있다. 차를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더니 “맘대로 해라 나는 잠적하면 된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형, 형은 내가 어렵게 일을 하고, 지금 형 때문에 일도 못해서 난처한 상황인데 미안하지도 않냐”고 했더니 “그건 니 사정이고...”라는 대답을 했다. 역시 양심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양아치였다. 그래서 그냥 “경찰에 신고하고 끝낼까?”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중고차를 다시 살만한 여유가 없어서 계속 전화해서 협박과 회유를 하다가 적당히(?) 돈을 주고 차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활동보조인을 급히 구해 다시 일을 시작 했는데 이 일로 인해 거의 3주 가까이 영업을 하지 못해 실적을 못 채워 월급도 몇 십만 원 밖에 못 받고 말았다.

 

몇 달이 지나 차를 고치려고 아는 선배가 일하는 카센터에 갔다. 차를 고치면서 선배에게 활동보조인을 잘 못 고용해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선배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선배는 “예전에 잘 알던 친군데 그놈 완전 양아치야! 일은 안하고 이 여자 저 여자 꼬셔서 등쳐먹고 사는데 너한테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지금은 서울에서 동거한다고 소문났던데...”라고 했다. 결국 서울에 올라간 것도 새로운 여자를 만나 등쳐먹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 한 명 잘못 구해서 금전적, 정신적으로 큰 손해를 봐야만 했다. 설마 전신마비장애를 가진 나까지 사기 치는 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했다. 그런데 “그건 니 사정이고”라는 말에 “사기 치려고 작정한 놈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이 일로 인해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것이 조금은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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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1.08 15:20

    첫댓글 정말 쓰레기중에 쓰레기네요 ㅡㅡ ;;

  • 15.11.23 00:31

    제가 속상해서 가슴이 다 벌렁벌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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