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 힘이 참패했다. 총선 결과는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 더불어 민주연합이 175석을 석권했고 국민의 힘과 비례정당 국민의 미래가 108석을 차지했다. 더불어 민주당의석과 이번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 12석을 합치면 범야권의 의석은 190석에 육박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질책성 인사고과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윤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인사고과에 halo effect즉 피고과자의 한분야에 있어서 두드러진 결점이 다른 분야의 평점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반화 현상이 어느정도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좌파들의 선동 때문에 국민들의 인사고과가 낙제점 수준을 초래했다는 극도로 편협한 주장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면서 아는 사람이 상등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 다음이고, 곤경을 겪고 난 뒤 배워서 아는 사람이 또 그 다음이다. 곤경을 겪었는데도 배우려 들지 않는 사람이 백성 가운데 하등에 속한다.” 논어 계씨(季氏) 제 9장에서 인류의 스승이신 공자께서 일찍이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개선 의지에 따른 필부의 평가 기준이 이 정도인데 그 대상이 지도자의 경우 자기개선 의지에 대한 평가는 더 고차원적이고 엄격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문책성 평가를 받은 원인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용현(用賢)즉 내각에 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등용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의 최고 임무는 적임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들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윤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검찰공화국’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내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인재 풀이 매우 좁았습니다. 국민들로부터 감동을 살 파격적인 인사는 한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 인사만 되풀이했습니다. 친소관계나 진영논리를 떠나 오직 능력을 기준으로 참신한 인물을 발탁한 사례는 찾아볼 수 가 없었습니다.
둘째, 소통부재현상입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을 듣는 태도에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두번째는 듣는 체하는 경우입니다.
세번쩨는 선택적 청취입니다.
네번째는 집중적으로 경청입니다.
다섯번째는 공감적 경청입니다.
공감적 경청이란 다른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입각하여 세상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공감적 경청을 하는 사람은 그들의 패러다임과 감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공감적 경청은 귀로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눈과 가슴으로 듣는 경우로 말하는 사람의 의미, 행동까지 주시하면서 온 신경을 집중하여 경청하는 것을 말 합니다.
“통하는 말(Words that work)”의 저자 프랭크 룬츠는 “당신이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상대가 당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가 더 중요하다(It’s not what you way; it’s what people hear).”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총선을 열흘 앞두고 의정 대란에 대해서 4월1일에 행한 윤석열대통령의 특별담화는 시기적으로 윤대통령이 의사들에게 보내는 유화적인 제스처(gesture) 라야 적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정부의 방침은 고정불변이라고 해석하여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총선 직후 의사들은 “여당의 총선 참패는 사실상 국민이 의대 증원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내린 심판이며, 국민의 분노표현”이라며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까지 국민과의 소통을 주된 이유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공감적 소통은 고사하고 보통의 국가 지도자가 실천하는 통상적인 수준의 의례적인 소통이라도 차질없이 실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무튼 국민들이 내린 총선 심판은 윤석열 정부의 소통부재와 민심소재에 대한 무관심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태도 문제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리더이지 결코 국민이 받들어야 할 보스가 아닙니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리더는 사람을 이끌고 간다. 보스는 사람을 몰고 간다.
리더는 “우리” 라고 말한다. 보스는 “나” 라고 말한다.
리더는 희망을 준다. 보스는 겁을 준다.
리더는 존경을 모은다. 보스는 복종을 요구한다.
리더는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보스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본다.
리더는 권위를 쌓는다. 보스는 권력을 쌓는 다.
리더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려 준다. 보스는 누가 잘못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리더는 지지자를 만든다. 보스는 부하만을 만든다.
리더는 앞에서 이끈다. 보스는 뒤에서 호령한다.
그간의 행태로 보아 윤석열 대통령은 리더 입니까? 보스 입니까?
검찰총장 출신의 이미지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리더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더라도 보스형 지도자라고 오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이미지를 불식시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국민들의 경고성 인사고과에도 불구하고 윤대통령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랜 검찰공직자 생활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배철현 박사가 쓴 “위대한 리더”란 책 309쪽에 리더를 자임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소양과 자세 내지 태도가 자세하게 기술 되여 있습니다. 때때로 리더를 가려서 뽑고, 뽑힌 리더를 각종 선거를 통하여 주기적으로 인사고과를 매기는 국민들도 당연히 이상적인 리더가 갖추어야 할 소양과 자격 기준을 숙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인용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리더는 자신의 ‘심오한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복종하는 자다. 그(녀)가 리더인 이유는 남을 정죄하거나 정화하기 전에, 자신을 정죄하고 정화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양심(良心)의 소리를 경청한다. 그는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쥔자들의 말보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승복한다. 양심의 소리를 듣기 위한 원칙이 있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축적한 이기심이라는 오래된 자아을 유기해야 한다. 사람들은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어느정도 양심을 저버리고 타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양신의) 타협에는 배신, 속임수, 핑계 그리고 비겁이 숨어 있다. (양심을 저버리는) 타협은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만물을 움직이는 원칙인 ‘인과법칙’에 대한 정면부정이자, 도전이다. 내가 정원에 철죽씨를 심으면, 씨가 발아하고 가지와 잎을 낸 후, 마지막에 철쭉꽃을 피운 뒤, 다시 씨로 돌아간다. 철쭉씨에서 장미 꽃이 만개 할리가 없다.”
정치인 이낙연의 몰락, 이준석의 부활, 그리고 조국의 돌풍이 이번선거에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더불어 민주당의 약진은 윤석열 대통령의 심판에 따른 어부지리(漁父之利)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일 것 같습니다. 국민이 야당과 여당을 동시에 심판할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책임의 무게가 더 큰 윤석열 대통령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입니다.
작은 경칩이 큰 문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들은 지난 2년간 “용현”,”소통” 그리고 ”태도”의 세가지 경첩들이 고장이 난 상태로 방치 되여 왔다는 사실을 지난 총선을 통하여 윤석열 대통령에게 경고삼아 알려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이들 경첩들을 수리하지 않는다면 닫힌 문을 결코 저절로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원인행위가 있어야 결과를 기대 할 수 있습니다.
명마는 회초리의 그림자만 보아도 달린다고 합니다. 명마 다음으로 훌륭한 말은 한번 회초리의 따끔한 맛을 보면 더 이상 그 고통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평범한 말은 매번 맞아야 달리고, 최악의 말은 아무리 맞아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직도 일부 편견에 사로 잡힌 사람들은 의회 권력을 범 야권에 넘긴 국민의 심판을 부당한 처사라고 불평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버스가 지나가고 손을 더는 격입니다. 이런 태도는 사후 약방문 격으로 정부여당의 비상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3년의 임기도 지난 2년과 마찬가지로 여소야대의 질곡속에서 산적한 국정 과제를 수행해야 만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반하는 양날의 칼입니다. 윤석열정부가 당면한 위기를 범야권과 협치를 통하여 잘 극복하면 언젠가는 도약을 위한 새로운 기회의 창이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