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일을 보리라 (2017.1.1 / 성탄 후 제1주일, 신년주일)

[송길똥]

더 큰 일을 보리라

요한복음 1:43-51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에 첫 주일을 맞았다. 성경이 주시는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축복한다.

“여호와는(주님은)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주님은)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주님은)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누구나 그 복을 누리며 산다. 여러분 모두 새해에 받을 복을 꼼꼼하게 챙기길 바란다. 또 두루두루 나누길 바란다.

새해를 맞아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꿈꾼다. 영어에서 행복(Happiness)은 ‘우연’(hap)에서 나왔다. 한자어로 행복(幸福)도 ‘복이 와서 다행’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우연성에 기대서 산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다르다. 행복은 ‘복이 깃든 상태를 누리는 만족과 감사’이다. 이런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손쉽게 행복감에 취하려고 한다. 현실을 도피하고, 약물이나 술에 의존한다. 만사를 잊거나 무심한 채 지낸다고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다. 만족도, 기쁨도, 감사도 모두 노력해야 한다.

UN 행복보고서의 국민행복지수 1위는 덴마크이다. 이 나라에서는 웰빙이란 단어를 ‘휘게’(hygge)라고 부른다. 안락하고 여유 있는 느낌, 편안함과 아늑함이 바로 ‘휘게’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행복한 삶, ‘휘게 라이프’를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나와 남을 연결하는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 일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만든 ‘휘게 십계명’은 ‘나 혼자 말고 여럿이 함께 하자’, ‘가정은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다’, ‘스마트 폰을 끄고 앞사람을 보자’, ‘세상에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등이 있다. <휘게 라이프>를 지은 마이크 비킹은 “부가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이 행복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목표를 갖고 일상에 만족하라”고 권한다.

새해에 공감능력을 키워 보려고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다시 손 글씨로 엽서를 보내는 일이다. 또 그런 엽서를 받고 싶다. 공감을 나누는 일을 통해 축복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것이다. 남을 기억하는 일, 복을 나누는 일을 통해 주님을 더 배우고 싶다. 함께 하는 사람들 속에서 ‘더 큰 일’을 도모하고 싶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복 주시고, 은혜 베푸신다. 민수기의 축복문은 ‘.. 원하며, .. 원하며, .. 원하신다’라고 세 번 반복해 말씀하신다. 그런 복을 받고, 감사드리는 여러분의 2017년이 되길 바란다.

1)

어제 용인 양지로 추도식에 다녀왔다. 독일 복흠교회 이해룡 집사님이 돌아가신지 1주년인데, 형제자매가 있는 한국에서 1주기 추도식을 드린 것이다. 목사의 입장에서 추도식 설교준비가 불편하다.

고인을 모를 경우가 많고, 또 알아도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한다. 고인 앞에선 다 덮어주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주 좋은 자리였다. 뭐든지 이야기해도 고인에게 흠이나 무례가 되지 않을 만큼 고인이 진실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거나, 유학했던 수십 년 지기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진심으로 슬퍼했고, 또 고마워했다. 그런 친구들의 존재는 얼마나 행복한가? 내 인생과 나란히 걸어가며 동행하는 친구, 나를 붙들어 주고 적절히 안내해 주는 친구, 그런 벗을 만나는 일은 행복하다.

대개 평생 사람은 두세 명 정도 되는 친구와 친밀한 우정을 유지하며 산다고 한다.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서로를 알아주기 때문이다. 속에 있는 말도 할 수 있고, 약점도 이해해 준다. 나를 알아주는 친구는 평생 재산이다. 그래서 건강하고, 행복하다.

성경에도 그런 친구의 의리를 본다. 예수님이 처음 제자와 만날 때에 먼저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은 안드레였다. 그는 가장 좋은 스승을 만난 기쁨에 형 베드로를 인도했고, 또 고향 친구 빌립도 불러냈다. 그리고 빌립은 적극적으로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데려왔다.

요한복음은 연달아 일어난 ‘만남’과 ‘공감’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그 부르심과 응답의 과정이 친밀한 우애와 우정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이어진다. 그 관계의 고리가 아름답다.

아마 그런 따듯한 공감과 신의가 평생 예수님을 따르는 한 길을 걷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더 긴밀히 연결되고,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우애와 우정, 곧 ‘우리’란 울타리를 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세상’을 향해 나아갔을 것이다. 일상의 작은 일을 넘어 “더 큰 일”(50)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공감은 한 지역 출신이고, 같은 직업을 가졌고, 또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안드레, 베드로, 빌립 모두 가난한 어촌 벳새다 사람들이다. 고향사람끼리 서로 밀어 주고, 끌어 주고 하는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익을 도모하는 일에 함께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함께 하였다. 그들은 행복한 친구들이었다.

2)

본문에서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자기의 특별한 경험을 말하면서 권한다. 그는 나사렛 출신 요셉의 아들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45)다는 것이다.

나다나엘의 뜨악한 반응을 들으면 편견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 사실 나사렛은 너무나 궁벽한 시골이고, 괜찮은 인물이 나기에는 하찮은 곳이라고 판단했다. 나사렛이란 지명은 구약 성경에도, 초기 유대교 문헌들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갔더니 선배들이 대개 첫 인사로 출신과 고향을 물었다.

“어디 사람이냐?”

“강원도 영월입니다”

“... 영월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나!”

돌아보면 촌놈이 대단한 출세를 한 셈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나다나엘의 반응을 보면 예수님도 그런 한심한 동네 출신이다. 그럴수록 빌립은 자신 있게 권한다.

“와서 보라”(46).

사실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평소 공감한 바가 적으면, 편견까지 내려놓을 신뢰가 없다면 빌립처럼 권하기도, 나다나엘처럼 행동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나다나엘은 친구를 쫒아 예수님을 찾아갔다. 그만큼 두 친구는 진리에 목말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따지고, 재는 것이 많은 세상이다. 남에게 진리를 권하고, 진리로 이끈다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럴 때 누군가 내 길눈이가 되어 주는 일은 얼마나 고마운가? 그래서 친구이다.

현대인은 공감을 나누는 일에 주저한다. 공감 없이, 이해관계로만 진실한 친구를 사귀기는 쉽지 않다. ‘휘게 라이프’에 따르면 친구 간에도 ‘괜한 정치이야기로 다투지 말라’고 한다. 나와 무관한 정치문제조차 남에게 무시당하거나, 손해 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 까닭에 우리 시대에 공감의 능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예수님이 인기가 있는 비결은 공감능력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나를 알아주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내 죄인의 모습까지도 받아 주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빌립이 데려온 나다나엘을 한 눈에 알아보신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과한 칭찬이다. 간사하지 않다는 것은 남을 속이지도, 이용하지도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의 몸 안에는 거짓의 뼈가 없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 간사한 사람’은 히브리인의 조상 야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 간사한 야곱이 새 사람이 된 후 ‘이스라엘’로 불렸다.

야곱은 얼마나 간사하고 교활한 인간인가? 배고픈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유인해 장자의 권리를 가로챘고, 아버지 이삭의 눈을 속여 형 대신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다. 그는 가족의 신의는커녕, 형제의 우애는커녕 제 복만 챙기려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나다나엘에게 ‘너는 간사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간사함이 없는 새로운 이스라엘’이라고 선언하신다. 나다나엘은 부끄러워서 물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48).

3)

주님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에 이미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셨다고 대답하셨다. 그 동네에 오신지 얼마 안 된 예수님도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셨다면, 아마 나다나엘은 습관적으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그곳을 찾았고, 아마 동네 사람들도 나다나엘을 찾으려면 언제든 무화과나무 아래로 가보라고 말했을 정도일 것이다.

도대체 무화과나무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언자 미가와 스가랴는 ‘그날’이 오면 무화과나무 아래로 회복된 백성이 모여들고, 거기서 평화롭게 살 것임을 예언하였다. 무화과나무를 찾은 나다나엘은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려고 찾으신 것이다.

나다나엘은 비로소 깨달았다. 나를 알아주는 분이 여기 계시는구나. 내 꿈, 내 기도, 내 갈망을 알아주시는 분, 이 분이야말로 내 영혼의 탄식을 알아주실 메시아이심에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약속하신다.

“이 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50).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보다 더 큰 일”의 내용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51)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삶이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비전은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 야곱이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든 채 본 꿈에서부터 출발한다. 당시 야곱은 부모와 형제로부터 도망쳤고, 피난지를 찾아 떠났다. 도망 길에 지친 그는 벧엘이란 곳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꿈을 꿨는데, 그 때 본 환상이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를 통해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7).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계속 야곱의 이야기와 연결하여 말씀하신다. 야곱이 본 것은 사다리 위로 오르내리는 천사이지만 너는 “더 큰 일”을 볼 것이다. 이제 구약의 사다리가 아니라, 바로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님이 바로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을 통해 하늘에 이르는 길,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말씀 하신다. 나는 너와 모든 사람을 위해 하늘나라로 인도할 사다리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구원의 계단이다.

새해 예수님의 마음과 공감으로 단단히 연결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은 주님을 통해 우리를 만나 주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로 이어진 길로 나갈 수 있다. 이런 주님의 제자가 되면 얼마나 신이 나고, 얼마나 든든할까?

여러분의 2017년이 잘 굴러 가기 바란다. 누구나 자전거처럼 두 바퀴 인생이다. 두 바퀴는 서로 연결되고, 공감하기에 가능하다. 처음에 자전거를 배울 때에 출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시작이 어렵지 출발만 하면 그냥 굴러간다. 다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전거가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 주시길 바란다.

올 한 해 여러분은 그 사랑의 공감대를 점점 확장시켜 나가라. 더 큰 일을 꿈꾸고, 목표에 신실하며, 진실하게 살라. 그런 믿음으로 희망을 나누는 존재가 되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여러분 위에 예수님의 공감하시는 사랑이 언제나 같이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