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시 주제 :
초등학교 2학년 담임입니다. 학생들의 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칭찬스티커 제도를 운영해 왔습니다. 선행을 했거나 권장도서를 읽거나 숙제를 잘했거나 청소를 했을 때 칭찬스티커를 주면 아이들은 좋아하며 더욱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칭찬스티커가 지금은 골칫덩이로 전락했습니다. 칭찬스티커를 주지 않으면 도무지 움직이려 들지 않는 겁니다. 청소를 했는데 왜 칭찬스티커를 주지 않느냐, 친구를 도와줬는데 왜 칭찬스티커를 주지 않느냐며 행위 자체보다 스티커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1년 가까이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걸까요? 스티커를 요구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대답:
선생님, 칭찬 스티커는 탈도 많고 덕도 많은 방법입니다. 조련사가 원숭이 앞에서 춤을 추면 우연히 따라하는 경우가 생기지요? 그때 원숭이에게 건포도를 주면 ‘아하, 춤을 추면 건포도를 먹을 수 있구나’하고 계속 따라하다가 공연을 할 수준의 재주를 익히게 됩니다. 이 방식을 1960년대 쯤 행동수정 학자들이 '토큰경제(token economy)'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도 사용했는데, 선생님의 칭찬스티커나 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그린마일리지 상벌점 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명한 학자들이 많은 연구 끝에 만든 제도인데, 선생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왜 현장에서 ‘골칫덩어리 제도’로 전락했을까요? 제가 아래 글에서 몇 가지 원인과 그에 따르는 대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통제할 목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소란할 때 ‘떠들면 칭찬스티커를 주지 않겠다.’고 하거나 학습준비를 하지 않은 학생에게 ‘그렇게 하다가 언제 칭찬스티커를 받겠니?’하면 통제를 우선시하신 게 됩니다. ‘선생님을 도와서 책상정리를 하면 칭찬스티커를 한 장씩 주겠다.’하면 보상을 우선시 하신 게 됩니다. 아뿔싸! 아이들은 선행보다 스티커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이것을 예방하려면, 건포도를 꺼내서 원숭이의 눈앞에 미끼처럼 흔들듯, 스티커를 꺼내서 아이들 눈앞에 흔들지 말고 스티커의 목적을 앞세우고 스ㅋ티커를 한 발자국 뒤로(one step behind)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작은 선행을 한 아이가 있으면 그것이 왜 선행인지 설명해주고 칭찬스티커는 개인적으로 줍니다. 기특한 선행을 한 아이는 의자에서 일으켜 세우고 그 선행이 얼마나 좋은 행동인지 설명하고 칭찬스티커는 나중에 줍니다. 커다란 선행을 한 아이는 교단 위에 세우고 그 선행이 훌륭한 인물이 되는데 얼마나 중요한 습관인지 설명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드리고 스티커는 그 후에 줍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선행이 칭찬스티커로 바뀌는 교환의 법칙에 주목하기보다, 올바른 습관을 통해 훌륭한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안내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칭찬스티커를 근본취지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둘째, 경제라는 면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이 토큰경제라 할 때 토큰(token)에 경제(conomy)라는 단어를 추가한 이유는 칭찬스티커가 돈같이 사용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칭찬스티커는 모을 수 있고, 줄 수 있고, 물건과 교환할 수 있고, 부모님에게 칭찬을 듣는 재료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득템(얻을 得자에 item의 템자를 조합한 용어)의 대상 정도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정신적 세계가 아직 열리지 않아서 그러니 아이들 탓을 할 것은 없고 어른들이 잘 교육해야 할 문제입니다. 일부 성인들이 돈을 움켜쥐는 데만 몰두하듯, 아이들 특히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이 칭찬스티커를 획득하는 데만 열을 올리기 쉽습니다. 이런 부작용을 예방하시려면 칭찬스티커를 줄 때 학생들의 이름을 직접 유성사인펜으로 써서 주시면 교환, 증여, 위조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상업용 스티커를 나누어 주고 알아서 개인용 포도송이의 빈 포도알 칸에 붙이라고 하면 그 사이에 위에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셋째, 연령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토큰경제는 만 4세 미만의 아동, 혹은 군인이나 환자처럼 폐쇄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효과적이지만, 많은 변수가 상호작용하는 지능집단에서는 효과가 감소한다고 합니다. 칭찬스티커를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하면서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단점을 예방하려면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받아야 할 아이가 억울하게 못 받았거나 받지 말아야 할 아이가 운 좋게 받은 적이 있는지?’ ‘스티커를 시상할 때 어떤 물건으로 하는 게 좋은 지?’ 파악하여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셔야 합니다.
넷째, 칭찬에도 부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과거 2-30년 동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교육철학으로 아이들에게 되도록 칭찬을 많이 하고 비판을 줄이는 교육을 했습니다. 최근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칭찬 교육의 부작용을 발견하기 시작했는데, 칭찬만 들은 아이들이 올바른 비판을 노여워하고 거부하고, 실수를 숨기고 변명을 끈질기게 하며, 실패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난관이 예상되면 칭찬이 부수하지 않을까봐 포기하고, 외적 칭찬이 없이 자발적 동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칭찬스티커도 이런 부작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문제점을 예방하려면, 칭찬스티커를 줄 때 부족한 점도 슬며시 말해주고, 못 받은 아이들의 잘한 점도 칭찬해서 칭찬스티커에만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칭찬을 받았지만 더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비판을 받았지만 잘하는 점도 많다는 것을 알면 각자 자존심을 보존할수 있을 뿐아니라 서로 업신여기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학급전체가 개별경쟁 체제로 내몰리다가 분열되고 시샘하지 않고, 서로 단합하고 아끼다가 마침내 학급 전체가 고소해지는 풍토까지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첫댓글 오랜만에 선생님 글을 읽으니 가뭄끝에 단비를 맞은듯 시원합니다.
저도 스티커제도, 상벌제도를 다양하게 활용해 보았는데 효과도 있었지만 적잖이 실패하고 속상했습니다.
저의 그러한 경험들이 선생님께서 차근차근 짚어주신 점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 사람의 열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다시금 생각하는 기분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 정말 생각해야 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