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탄이 되기 싫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과 사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선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악을 감추면서
간사하고 교활하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거룩하게 예배를 드릴 때에도
사탄과 함께 하면서
제가 기도하며 회개할 때
설교를 하는 시간에도
옆에서 지켜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이지요
즉, 안그런척 숨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눈은 속이겠지만
1.하나님
2.사탄
3.속마음
위 셋은 속지 못합니다
사탄은 제안하지요
사람들은 모르니까
믿는 척 해보는거야
다를 교회가 공격하니까
이유가 되므로
그래
모르게 뒤에서 꼬집어주자
누가 알겠는가
또 알더라도
그럴만도 하다고
같은 편이 되주며 위로합니다
그러나
시탄의 제안에 걸려든 것이지요
(이것은 죽기 2시간 전에 이지함)
주기도문 외우고
세례를 받고 회개도 하고
예배드리고 충성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면
집사로 임명되어
천국은 합격이다
그런데
천국심사에서
속아줄 사람들은 배제되고
하나님 사탄 그리고 본인이
자리합니다
그럼 누가 천국에 못가도록
고발할까요
사탄은 곁에 함께 살자고...
결국 사탄은
속마음의 녹화내용을
보여줄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을 속이면서
사탄과 합작하는 것이 드러나고
결국 하나님도 거짓을 선이라고
우기지를 못하십니다
세상에서 기독교가 교리와 숫자로
우기듯이 신들의 탁자에서도
마구잡이 재판이 되겠는지요...
※
바르고 강한 신앙을 추구하다가
사탄이라는 누명을 쓰더라도
빛이시며 공의로운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를 추구합니다
과거 박태선 장로 사건은
뭐냐구요
사탄도 능력은 하나님과
동등합니다
다만, 인간사랑이 빠진게 다르지요
사탄, 무시하지 마세요
이것은
사탄숭배가 아닌데
처음에는 거룩한척 하다가
슬~슬~ 변해가지요
초신자들에게 일일이 답하려니까
자세히는 못해드리는 점
이해를 바랍니다
사탄과 셋이 걷는 나의 인생
2026. 10. 7
모든게 드러나는 계절에
종교병원
ㅡㅡㅡㅡ 이하 ㅡㅡㅡㅡ
Gpt가 권하는 수정원고
사탄과 셋이 걷는 나의 인생
저는 사탄이 되기 싫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과
사탄을 향하는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선을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악을 감추고,
간사함과 교활함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내 안의 어둠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며 회개할 때에도,
설교를 듣는 시간에도,
봉사하고 헌금하는 순간에도,
내 안의 어둠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진실 아닐까요?
사람들에게는 숨길 수 있습니다.
안 그런 척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가지는 속일 수 없습니다.
1. 하나님
2. 사탄
3. 나의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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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조용히 제안합니다
“사람들은 모르잖아.”
“믿는 척해도 돼.”
“다른 교회가 공격하니까 이유가 있잖아.”
“그러니까 뒤에서 조금 꼬집어줘도 아무도 모를 거야.”
“알게 되더라도 그럴 만했다고 하면 돼.”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때부터 사탄의 제안에
조금씩 걸려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죽기 두 시간 전까지도
사람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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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천국의 심사는 무엇을 볼까요?
주기도문을 외웠습니까?
세례를 받았습니까?
회개했습니까?
예배를 드렸습니까?
충성했습니까?
헌금했습니까?
봉사했습니까?
그래서 집사가 되었습니까?
그것만으로 천국 합격을 결정한다면
너무 쉬운 심사가 아닐까요?
만약 천국의 심판 자리에서
사람의 속마음까지 드러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이 속아주었던 부분은
심사에서 제외됩니다.
그 자리에는
하나님,
사탄,
그리고 나 자신
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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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가 나를 고발할까요?
사탄일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오히려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은 나와 함께 살자.”
그렇다면 사탄은
내가 저질렀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람들 앞에서는 감추었던
속마음의 기록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 기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람을 속이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척했던 모습.
남을 비판하면서
내 안의 잘못은 감추었던 모습.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습.
그것이 모두 드러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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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거짓을 선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교리와 숫자로 우길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까 옳다고 할 수도 있고,
교단이 인정했으니까 옳다고 할 수도 있고,
목사가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옳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들의 탁자에서도
그렇게 마구잡이 재판이 이루어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라면
마지막에는 사람의 겉모습보다
그 사람의 마음과 선택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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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하는 사탄은
사탄을 숭배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사탄의 존재와 영향력을 무시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룩한 척합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변합니다.
작은 타협을 하고,
작은 거짓말을 하고,
작은 미움을 허용하고,
결국에는 그것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처음부터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거룩한 사람인 척하면서
조금씩 어둠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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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과 사랑은 다릅니다
제가 가정하는 어둠의 신에게도
능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의 신과 다른 점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같다고 해서
마음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 차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 박태선 장로 사건과 같은 종교적 사건도
“능력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인간을 어디로 이끌었는가
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능력이 사람을 살리는가,
아니면 사람을 지배하는가.
사람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이용하는가.
저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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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사탄이 되기 싫습니다
저는 바르고 강한 신앙을 추구하다가
혹시 사탄이라는 누명을 쓰더라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빛이시며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기회를 얻는 것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내 속마음까지 드러났을 때에도
부끄럽지 않은 신앙을 찾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보는 나도 아니고,
교회가 평가하는 나도 아니고,
직분이 말해주는 나도 아닌,
내 속마음까지 모두 드러난 나.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심판을 생각하며
사탄과 함께 걷는 제 인생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빛을 선택하려 합니다.
2026. 10. 7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계절에
종교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