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이 예언에 대한 말씀의 경고(이기쁨)
[계22:10-12]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22:18-19]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아멘~
오늘은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 것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에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는 말씀이다. 이 예언의 말씀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일에 대한 놀라운 예언이다.
첫 번째는 인봉하지 말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이루어지려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 말씀의 현상이 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봉하라고 하신다. 이 인봉이라는 말을 잘 구별해야 한다. 칼빈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성경에 대한 주석에 신약 성경 다 끝내고 맨 마지막 책 요한 계시록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읽어봐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고. 또 조금 알 수 있지만 확신을 가지고 설명할 수가 없는 말씀들이기 때문에 주석에도 한 발 물러나기도 했다.
그래서 종교 개력의 3대 원칙 첫째는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 둘째는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셋째는 만인 사제직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다.
둘 번째는 이 예언의 말씀에 누구든지 다른 말씀을 더하면 하나님이 이 계시록에 말씀한 여러 가지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고. 누구든지 이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서 제해버리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선포하는 것에 늘 힘써야한다.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날마다 말씀에 왜? 힘써야 하는지를 다시금 느낀다. 날마다 말씀 앞에 서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겠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말씀을 읽고, 묵상할지라도 삶으로 향하지 않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꽹과리가 되는 것이다.
먼저는 나의 안에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지?를 묵상하면서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나의 욕심, 계획이 아닌 이 마지막 때에 얼마 만큼 하나님과 함께하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잘 분별하고 살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조금 조금씩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 나의 손을 잡으시는 그 분의 손을 잡고 끝까지 가길 소망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16~21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오늘 제목이 바로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다. 우리는 세가지를 생각해보면 첫 번째는 육신적인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영의 곤고함을 깨닫는 사람이다. 셋째로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내가 사는 내 나라와 내 민족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그들의 구원을 간구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몸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육체적인 고난이 오는 것은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베드로가 고기잡이 이적을 통해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소이다.”나는 당신과 감히 같이 있을 수도 없는 악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존재이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이 영적인 권고함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주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아 알게 되고 나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내 영혼의 곤고함을 깨달아서 주님 앞에 나와서 영혼의 구원 문제를 가지고 드리어 간구한다.
또한 내 마음에 찾아오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정을 찾아가실 때 꼭 찾아가실 가정에만 찾아가셨다. 하지만 우리 집에 찾아오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찾아오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세상의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진실하게 하고, 우리 삶 속에서 나 자신을 돌이켜야 한다. 우리의 육체의 몸은 세상에서 살고 있고 또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죄악의 길에 많이 끌린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선물로주셔서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 가길 원하고, 진리의 길로 가야 한다.
오늘 누구나 교회 안에 있으면 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한다. 하지만 구원은 다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그 뜻때로 우리의 삶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가지고 싶고, 즐거움을 찾는다. 언제나 말씀으로 나를 새롭게 날마다 다스려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은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어린 아이와 같은 될 때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시고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신다. 더욱 주님 앞으로 나아갈 길 원한다.
미국 독립의 의의
시편 33: 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11절 12절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아멘!
이스라엘 나라는 성경 위에 세워졌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지 못했고 오히려 참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메시아가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한 그런 나라였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지는 나라는 아니었다. 성경은 예수님을 잘 섬기고 생명의 길, 그리고 사망의 길 저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사 시대에 사사들을 세우시고 이 사사들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이다. 그리고 한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사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제도가 바른 제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기독교 국가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제도를 성립할 수가 없다. 정말 하나님이 세우셔서 한 나라를 다스리신다면 청지기와 같은 의식을 가지고 나라를 책임지고 다스려야 한다.
또한 모든 생사를 진행할 때 목사가 기도하긴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지 않고 이슬람교 들어와 있음으로 모든 종교의 권위를 인정해주고 거기에도 구원이 있다고 있어 미국은 급격하게 지금 타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은 먼저 잘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 수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 복을 전했고, 또한 수 많은 전쟁을 통해서 공산주의로부터 세상 나라들을 지키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도 복음 통일 그날을 향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줄 믿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써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충성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과는 다르다.
이미 나의 마음 가운데 와 있기 때문에 그 나라에 들어가 본 사람 만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한지를 말로 표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한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마태복음11:7절~ 11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레 요한보다 큰 이가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아멘
예수님이 광야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럼 우리는 지금 광야가 어디인가? 질문을 한다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또한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그리고 선지나냐? 예수님을 만나려고 광야에 몰려 나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말씀에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준비하여 지혜 있는 사람이 되라고 충성된 사람이 되라고 한다. 하나님을 알수 있게 하는 사람이 다름이 아니라 선지자들인데 하나님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까지 알려주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또 선지자들을 보내주신다.
이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셔서 영광 영으로 통할 수 있게 만드시고 또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내가 그분들을 돕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예수님을 섬길 때 형통하는 사람들이 된다.
이런 마음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부르는 자, 찾는 자들에게서 일어난다.
오늘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있다.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선교사님을 만나게 하셔서 하나님을 믿는다. 뒤를 돌아보면 나의 힘으로 능력으로, 지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이 자리까지 인도하심을 고백한다. 우리는 지금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세상에서 정말 좁은 길이다. 세상은 넓고 넓은지를 보인다. 그것은 여행, 먹을 것, 쇼핑들이 많아 가지고 싶고, 가보고 싶지만 모든 것을 다 이루어도 결국에 내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무하다.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주셔서 한 걸음 가고 있는데 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도 이 부족한 자를 선택하신 것 감사하고 또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또 그 말씀대로 살아가길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