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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평안을 주십니다(살후 3: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역사상, 지금까지 발견된 다이아몬드 가운데 두 번째로 가장 큰, 어른 주먹보다 더 큰, 무려 2,492 캐럿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에 있는 광산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중량, 색, 투명도, 컷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이번에 채굴한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4,000만 달러(약 535억원)가 넘을 수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으면, 폭염과 무더위가 싹 달아날까요? 지금껏 염려하고 걱정하고 살아왔는데, 그 모든 염려와 걱정이 한꺼번에 다 사라지고, 평안해질까요? 더 이상, 걱정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될까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날마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요롭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행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됨이 없이, 계속해서, 행복하기를 바라고 소망할 것입니다.
질병과 불행, 가난 속에 살기보다는 건강과 행복,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다툼과 분열의 삶을 살기보다는 일치와 화합, 화목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무질서와 혼란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통합과 통일의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미워하고 싸우기보다는 사랑하며 하나되기를 원합니다.
주먹만한 다이아몬드 하나를 얻게 되면, 저절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이 아니라, 평안 주기를 원하시고, 미래와 희망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고생하며, 근심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을 누리며, 희망 속에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1)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평안의 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는 없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평안”일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안을 갈망하고, 그것을 쫓아가지만, 아직도, 원하는 평안을 성취하지 못한 채, 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사고와 사건이 쉴새없이 일어납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안을 누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가졌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갑자기 그 가진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자기가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초조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땅속에 묻혀 있는 금덩어리를 발견했다면, 그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평안할까요? 아니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까요?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은 많이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언제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너무나 막막한 상황 때문에,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어쩌면, 염려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들의 손과 발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보다도 더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평안을 누리기보다는, 어째서, 근심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 보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어느 날인가, 생선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저 많은 생선들, 다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정말 다 팔릴까? 안 팔리면, 엄청난 손해를 볼텐데”라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택이 오송인지라, 오고가는 길에 “조치원 복숭아”를 길가에서 파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가득 쌓여있는 복숭아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다 사 갈까? 안 사 가면 어떻게 하나? 손해가 막심할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 아무 도움이 안되는 쓸데없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염려하고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의 평안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안을 깨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고 했습니다.(잠 28:1)
그렇기 때문에, 참된 평안을 누리려면, 죄를 제거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우리 힘으로 우리의 죄를 제거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일을 대신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롬 5:10)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온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고, 평안을 주었음으로, 더 이상,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참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평강의 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친히 “때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때마다”라는 말은, “계속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때마다 주신다”라고 하는 것은, 계속적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일시적으로,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으로 주어지는 것이요, 변치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일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일마다”라는 말은 “모든 면에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모든 면에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주십니다.
평강은 형편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예수님이 하루아침에 죽음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자신들도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이 없이,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주님은 우리들이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평안하기보다는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주변에서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답답하고 괴로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 마음에 평강이 없을까요? 왜 불안할까요? 왜 초조하고, 답답할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다가, 그것을 도로 빼앗아 가시는 걸까요? 평강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평강을 베풀어 주십니다. 잠깐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평강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평안하지 못할까요? 왜 불안해할까요? 왜 초조해할까요?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가까우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그 평강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늘 주님 품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손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어떠한 형편과 환경에서도, 항상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불안합니다.
주님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면, 평안합니다.
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멀어질까요? 가까이 있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 때문입니다. 탐욕과 헛된 야망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시 106:14)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크게 욕심을 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욕심 때문에, 교만 때문에, 원망과 불평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엡 4:22)고 말했습니다.
욕심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용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권력을 잡은 자와 잡지 못한 자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과 반목, 그리고, 욕심이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욕심을 버릴 때, 탐욕을 버릴 때,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없든지, 항상 평안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하든지, 아프든지, 언제든지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업에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계속적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욕심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평안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6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으로,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편지를 써서 보낼 때마다, 그 편지를 받아 읽어볼 성도들을 항상 축복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고, 성도들을 축복했습니다.
여러분! 항상 축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사촌이 땅을 살 수 있도록 축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축복하며 살 아갈 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 10:1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의 평안을 빌면, 그 평안이 그에게 임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하나님께서 “이같이 내 이름으로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날마다 자녀들을 축복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하며,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축복하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도 스스로 축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롬 15:33)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주께서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평강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때, 여러분의 삶 속에 평안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여러분! 평강의 주님 안에서, 날마다, 때마나, 일마다, 평안을 나누며, 평안을 끼치며, 평안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당하게 되더라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에게 평안을 내려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 안에 평안만이 가득하게 하여 주옵소서.
온 누리에, 평안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