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 속에 더디게 온 가을이었다. 구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가을다운 높고 파란 하늘을 보았다. 셋째 토요일 오전근무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점심식후 남산교회를 지나 사림동으로 갔다. 사격장에선 클레이사격 동호인들이 쏘아대는 총성이 들려왔다. 사격장을 우회하는 등산로로 올랐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이었다만 아스팔트나 콘크리트가 아닌 흙바닥을 걸음에 행복하여라.
소목고개 아래 약수터에서 샘물을 한 모금 마셨다. 고개 마루 의자에 앉아 숨을 좀 골랐다. 맞은편에 내보다 나이가 더 덜어 보이는 사내가 쉬었다. 나는 정병산 정상이나 봉림사지 방향을 택하지 않았다. 소목고개를 넘어 덕산마을로 내려섰다. 인적 드문 호젓한 오솔길이었다. 길바닥에는 질경이가 촘촘하게 자랐다. 길섶에는 산딸기나무가 무성했다. 묵정밭은 억새이삭이 패고 있었다.
나는 지난여름 소목고개서 오디를 딴 적 있다. 그 오디로 과일주를 담가놓았다. 소목고개는 예전에 뽕나무밭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밤나무도 간간이 보였다. 햇밤송이가 떨어져 누군가 알밤을 주워간 흔적이 있었다. 오솔길을 걸으면서 귀가 즐거웠다. 매미소리 철이 지나니 짝을 찾는 풀벌레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다. 여치인지 베짱이인지 풀잎에 몸을 숨겨 녀석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귀가 즐거운 데 이어 눈까지 즐거웠다. 어지러이 엉킨 칡넝쿨에는 보라색 꽃망울이 달렸다. 길가에는 자잘한 며느리밑씻개 꽃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검붉은 개여뀌 꽃도 좁쌀같이 달렸다. 철늦게 피어난 파란 달개비 꽃도 섞여 있었다. 연보라 쑥부쟁이도 피어났다. 이렇게 이룬 꽃 덤불에서 가장 많은 꽃송이는 물봉선이었다. 물봉선 꽃은 가을 문턱에서 선홍색으로 정념을 토해냈다.
건너편 산언저리 단감나무 과수원은 25호국도 터널이 빠져나온 공사현장이었다. 길가 꽃무더기에 홀려 오솔길을 걸어 내렸다. 덕산마을 모퉁이 삼백 년 넘은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었다. 마을 앞들에 물을 대는 저수지에 가시연이 자랐다. 수면에다 잎을 펼친 가시연은 고대병사 방패 같았다. 여름날 피어났던 가시연꽃은 지고 흔적이 없었다. 그곳서 해마다 가시연을 보았으면 싶다.
나는 덕산마을을 돌아 큰길가로 나갔다.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본포 가는 녹색버스를 타고 가다 다호리 지나 삼거리에 내렸다. 가월윗담 맞은편부터 널따란 연잎으로 무성했다. 저수지 수면은 온통 수생식물로 덮였다. 군데군데 백로가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덩치 큰 왜가리도 간간이 보였다. 주남저수지 들머리는 가월 연락수문이다. 주남저수지와 가월저수지는 수문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집에서부터 걸어 소목고개를 넘어 동읍까지 갔다. 비록 중간에 잠시 버스를 타긴 해도 주남저수지까지 걸어가다시피 했다. 나는 주남저수지를 찾아간 목적이 있었다. 지난여름 장마철 비가 그친 틈에 주남저수지를 찾았더랬다. 그때 둑길 가장자리는 시청 환경녹지 부서에서 심어놓은 목화가 자랐다. 둑 아래는 줄지어 해바라기를 심어 놓았다. 그 목화와 해바라기가 궁금했다.
주말을 맞아 산책객이 더러 보였다. 사진동호인들은 큼직한 카메라를 메고 나타났다. 넓디넓은 저수지수면은 온통 수생식물로 뒤덮였다. 가월에서 탐조대를 지나 제3배수장까지 이르는 길은 오 리 남짓 되었다. 한쪽은 물억새 이삭이 패어 은물결로 일렁였다. 한쪽은 목화송이가 오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였다. 목화그루 밑동은 솜을 달았고 가운데는 다래였고 꼭대기는 꽃이었다.
오가는 사람의 손을 타 수난을 겪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목화이랑이지 싶다. 둑 아래도 역시 길고긴 해바라기이랑이었다.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이 자란 해바라기였다. 거름을 많이 주어 웃자란 해바라기는 무거운 꽃을 달아 고개를 푹 숙여 있었다. 나는 줄지어 선 억새와 목화의 열병을 받았다. 둑 아래 해바라기까지 겹으로 도열했다. 낙조대에 이르니 햇살이 비스듬해졌다. 10.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