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처방전 약을 기다리는 동안 눈높이에 맞춰서 진열된 약 중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과 봄 사이를 오가며 조금은 지루하게 보냈다. 매화꽃이 피면서 시간을 앞질러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후다닥 피고 졌다. 세월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꽃이 왔다가 가는 만큼 그 빠르기로 가는 것 같다. 나의 시간의 속도는 몇 킬로로 가고 있을까?
약사 선생님께 구충제를 식구 수만큼 달라고 했다. 봄과 가을에 챙겨서 먹는 집안 행사다. 구충제를 해마다 챙겨서 주던 선배가 있었다. 봄과 가을에 잊지 않고 챙겨서 주었다. 이사를 하면서 내가 약을 사서 먹지만 따스한 그 마음은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친구 중에 친언니 집에서 잠시 학교에 다녔을 때 언니 식구 둘이 구충제를 먹으면서 자기만 주지 않아서 내심 서운했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었다. 그게 뭐라고 하면서 지금은 웃지만, 어린마음에 내심 섭섭했다는 친구의 동심도 구충제 추억에 함께 살고 있다.
그 후로 약을 사면서 선배가 그랬듯이 나도 주변의 사람에게 사주고 있다. 약이라서 함부로 사주기도 쉽지 않다. 점점 마음을 내는 일이 쉽지 않은 것도 나이 탓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일이 조금은 슬픈 것도 사실이다.
약사 선생님께 구충제에 관해서 물어보니 외식도 많아지고 하니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구충제도 함께 나눠서 먹을 수 있는 가족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 큰아들이 생각났다. 며칠 뒤에 온다고 하니 챙겨 놓았다가 줘야겠다.
구충제를 해미다 사주던 선배님이 저 만치서 파랗게 웃고 있었다. - 2023년4월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