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성경이야기 14>
엠마오의 그리스도
주간 첫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Emmaus)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엠마오는 ‘따뜻한 샘’ 이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곳이다. 그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해방이 좌절되었다며 슬퍼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가 다가와 그들과 함께 걸었지만 제자들은 눈이 가리어 동행한 나그네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삼 일 전에 일어난 사건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청하였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와 예수의 죽음에 대해 설명했고, 빈 무덤이 발견된 것에 대한 의심과 놀라움을 표했다. 예수는 그들에게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했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인지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엠마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제자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루카 24,29)하며 그를 붙들었다. 예수는 그들의 초대에 응하고 함께 식탁에 앉았다. 예수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러자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바로 그때 예수는 그들에게서 사라졌다. 루카 복음서 24장 13절-35절이 전하는 이 이야기는 문학적으로도 매우 세련된 구성을 보여준다. 이 시적인 일화는 중세에 널리 퍼졌으며, 6세기경 최초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최초의 이미지 : 엠마오로 향하는 세 명의 순례자
500-20년 경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Sant'Apollinare Nuovo)의 내벽을 장식한 26점의 모자이크 중 한 장면인 [엠마오의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라벤나는 아리우스주의자였던 고트의 테오도릭(Theodoric the Goth)이 통치를 하고 있어 이 작품은 드물게 남아있는 아리우스주의 예술의 예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했던 그들은 대상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헬레니스틱-로만 양식 (Hellenistic-Roman style)을 따른다. 화면 왼편, 언덕 위에는 엠마오 마을이 있으며, 그리스도는 두 나그네 사이에 있다. 두 나그네 사이의 그리스도는 그들에 비해 조금 더 큰 체구이며, 머리 뒤에 십자가가 있는 후광이 있는데 이는 후에 로마 가톨릭에서 덧붙인 것이다.
[엠마오의 그리스도] 500~520년 경 모자이크,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라벤나
[엠마오의 저녁식사] 6세기 초, 밀라노 대성당 보물실, 밀라노
또 현재 밀라노 대성당의 보물실에 있는 복음서 표지(book cover)를 장식하는 10개의 장면 중 하나가 [엠마오의 저녁식사]인데, 이 작품도 6세기 라벤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비잔틴 황제의 선물로 추정된다. 이렇듯 [엠마오의 그리스도]는 두 제자와 함께 엠마오로 향하는 여정과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라는 두 에피소드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9세기의 상아 패널에는 시간과 공간이 다른 두 사건이 한 장면에 나타난다.
[엠마오의 그리스도] 860~880년경 상아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화면을 좌우로 나누면, 왼편은 그리스도와 두 제자가 길 위에서 대화하는 장면이다. 더 정확히 등장인물들의 제스쳐를 보면, 그리스도는 엠마오 가까이에 이르러 더 멀리 가려는 듯하고, 클레오파스라고 전해지는 오른편 제자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제 화면 오른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배경으로 마을이 등장하고 세 나그네는 식탁에 둘러앉았고, 그리스도는 빵을 나누어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후광으로 주인공인 그리스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중세에 널리 퍼졌던 이 일화는 17세기에 화가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는데, 그 까닭은 풍속화를 그리는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마치 풍속화처럼 :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식사]
1601년경 카라바조는 [엠마오의 저녁식사]에서 두 제자가 자신들과 함께 동석한 낯선 인물이 부활한 예수임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여 그리고 있다. 그들의 놀라움이 잘 표현된 것은 화면 왼쪽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하는 제자의 모습이다. 예수는 음식에 축복하고 감사기도를 하는 모습이고, 화면 오른편 제자는 두 팔을 크게 벌려 놀라움을 표현한다. 특히 그의 가슴에 달린 조개껍질은 순례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으로의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이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엠마오의 두 제자는 순례자로 묘사되기에 이러한 조개껍질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른쪽, 홀로 서 있는 인물은 성서에는 언급되지 앉았지만 여인숙 주인으로 화가들이 그린 [엠마오 식사]에 종종 나타난다. 그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있다. 식탁 위로 시선을 옮기면 다른 음식과 함께 하얀 테이블보 위에 놓인 빵과 포도주가 두드러져 보이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암시한다. 즉 엠마오 식탁은 성찬식이 거행되는 제대가 되는 것이다.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식사] 1601년 캔버스에 유채,
195cmx139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식사] 1606년 캔버스에 유채,
141cmx175cm, 브레라 미술관, 밀라노
1606년 경, 카라바조는 또 다른 [엠마오의 저녁식사]를 제작한다. 그는 이전 작품의 구성을 다시 취했지만 인물을 더욱 어두운 분위기 속에 집어넣었다. 특히 화면 왼쪽 제자는 등을 돌리고 소심하게 벌린 팔 만으로 그의 놀라움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제자는 놀라움에 식탁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듯하다. 놀라는 제자들과 달리 식탁 뒤에 서 있는 여인숙 주인 부부는 무심한 표정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1601년 작품과 달리 수염이 나 있고 도상적 전통을 충실히 따랐다. 식탁 위, 앞선 작품에서 치밀하게 묘사했던 과일 바구니나 다른 음식들은 사라지고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어두움 사이로 빛은 빵과 포도주를 비춘다. 이 작품에서는 앞 선 작품에 나타난 세부적인 묘사는 사라지고 극적인 파토스가 화면을 지배한다.
1606년 5월 카라바조는 정치적 분쟁에 휘말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로마에서 추방되었다. 추방령에 따르면 누구라도 그를 체포하면 법의 이름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 카라바조는 로마 외곽 콜론나 영지로 피신하여 팔리아노에 있던 파프리초 필리포 콜론나의 보호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며, 이 작품도 그의 주문으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어두운 화면과 극적인 파토스는 카라바조를 짓누른 엄중한 추방령과 도피의 괴로움으로 잔뜩 어두워진 그의 내면을 반영한다.
다양한 매체와 다양한 해석 : 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저녁식사]
렘브란트 [엠마오의 그리스도] 1655년 드로잉, 17cmx22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렘브란트 [엠마오의 저녁식사] 1648~1649년 펜과 브러쉬 드로잉,
20cmx18cm, 피츠윌리엄 박물관, 캠브리지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식사]가 당시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풍속화적인 면과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되었다면 렘브란트는 드로잉, 판화, 유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두 제자와 그리스도가 길에서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엠마오의 저녁식사에서 예수가 사라진 장면까지 다루고 있다. 1629년 23살의 렘브란트는 카라바조의 영향으로 극적인 명암 처리를 한 [엠마오의 저녁식사]를 제작한다. 어두운 배경 뒤편, 멀리 밝은 불빛 속에서는 식사준비를 하는 여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화면 왼쪽, 엎어진 의자와 무릎을 꿇은 제자의 모습과 이 그림 속에서 얼굴이 보이는 유일한 인물의 놀라운 표정에서 스승의 출현에 이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잘 알 수 있다. 빵을 쪼개는 그리스도는 너무 어두워 실루엣만 보인다. 마치 후광처럼 그를 감싸는 부드러운 빛이 그리스도가 빛의 근원임을 말해준다. 빛의 근원이 그 빛에 의해 보이지 않는 표현은 그리스도가 곧 사라질 것을 암시한다.
렘브란트 [엠마오의 저녁식사] 1629년 패널에 유채,
42.3cmx37.4cm, 자크마르 앙드레 박물관
렘브란트 [엠마오의 저녁식사] 1648년 패널에 유채,
68cmx65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1648년, 42살의 렘브란트가 그린 [엠마오의 저녁식사]에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는 명료함이 드러나는 따뜻한 빛으로, 놀라움은 평화로움으로 바뀌었다. 등장인물의 움직임은 단순하게 표현되었고, 식탁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삼각형 구도로 화면에는 침착함과 안정감이 지배한다. 식사 장면을 조금 멀리서 바라본 화가의 시선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는 청년기의 연극적인 기교보다 조용한 깨달음을 느낀 중년의 성숙함이 감지된다. 그의 깨달음은 세 아이와 아내의 죽음이라는 쓰라린 시간을 통해 얻게 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 예수의 얼굴을 그에게 초상화를 주문하기도 했던 젊은 유대인의 모습으로 그렸다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는데, 그는 일상에서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없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겸허한 모습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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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은진 / 문학박사 | 서양미술사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
첫댓글 낯선 인물이 부활한 예수님임을 깨닫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