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류서예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류 서예가는 동진 시대의 위삭(衛鑠)이다.
위삭(衛鑠, 272-349)의 자는 무의(茂漪)이고, 세상에서 위부인(衛夫人)이라 부른다.
그녀는 위항(衛恒)의 조카로 여음(汝陰)태수인 이구(李矩)의 아내이고,
하동안읍(河東安邑, 지금의 山西省 夏縣의 북쪽)사람이다. 위삭의 서예는 종요(鍾繇)를 계승하였다.
종요에게 절을 하여 스승으로 삼자 종요는 일찍이 그녀에서 해서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위삭은 열심히 공부하여 씌어진 글씨가 규범적이고 단정함에 이르러 그 법을 묘하게 전했다.
당시 위삭의 명성은 대단하여 왕희지도 어린 시절에 위삭에게 절을 하여 스승으로 삼아 서예를 배웠다.
위삭은 실기에 치중한 것 이외에 비교적 심오한 이론의 기초가 있었다.
그녀가 서예를 논술한 저작인 『필진도(筆陣圖)』에서 제일 먼저 ‘다력풍근(多力豊筋)’의 이론을
제시한 것은 틀림없이 창조적 견해의 정신이 있다. 위삭의 글씨는 단지 『순화각법첩(淳化刻法帖)』에
실린 행해서 8행의 96자가 전해지나 그 진위는 구별할 수 없다. 종요는 위삭의 서예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잔 것은 옥항아리의 얼음과 같고, 찬란한 것은 요대의 달과 같으며, 예쁘기는 꽃다운 나무와 같고,
그윽하기는 맑은 바람과 같다.
碎玉壼之冰, 爛瑤臺之月, 婉然芳樹, 穆若淸風.
『당인서평(唐人書評)』에서도 위삭에 글씨에 대하여 말한 기록이 있다.
위부인의 글씨는 마치 머리에 꽃을 꽂고 춤추는 여자가 아름다운 얼굴을 숙이고 올리는 것 같다.
또한 아름다운 여자가 돈대에 올라 선녀와 함께 그림자가 되기도 하고, 붉은 연꽃이 물에 비치며,
푸른 늪에 뜬 노을 같기도 하다.
衛夫人書如瑤花舞女, 低昂美容. 又如美女登臺, 仙娥弄影, 紅蓮映水, 碧沼浮霞.
이것을 보면 역대로 그녀에 대해 비교적 높은 평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