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정평동 현대타운. 얼마 전 대대적인 도색 작업을 마쳐 얼핏 새로 지어진 아파트처럼 보인다.
뭐니뭐니해도 이 아파트에서 자랑은 부녀회다. 이곳 부녀회는 오래된 역사 만큼이나 활동이 왕성했다. 이곳 부녀회는 아파트가 지어진 지 1년 뒤인 1997년 말에 결성되었지만 2000년 8월 유경숙(48`여) 현 부녀회장이 바통을 넘겨받으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회장 취임 이후 유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통장들을 부녀회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기존에는 각 통장들이 부녀회와 교류가 거의 없어 단합이 사실상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유 회장은 “각 통장들을 찾아가 부녀회를 제대로 해보자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부녀회는 좀 더 체계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가끔 열리던 바자회도 한 달에 두 차례씩 정기적인 형태로 확대했다. 예전에는 그저 계란만 파는 등 소규모로 바자회를 열어 기금이 좀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는 자체적으로 여는 바자회 외에 업체 5, 6곳을 불러 김, 미역 등 먹을거리나 생활 물품 등을 파는 상인 바자회를 병행해 열고 있다. 바자회는 여태껏 꾸준히 판매가 호조를 보일 만큼 주민들 반응도 괜찮다. 주민 이문영(44`여)씨는 “상당수 주민들이 바자회를 수요시장이라 부를 정도”라고 말했다.
불우이웃돕기도 부녀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다. 유 회장은 이곳 부녀회를 봉사단체로 생각할 만큼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부녀회 기금의 1/3을 인근 소년`소녀 가장이나 홀몸노인을 돕는 데 쓰고 있다.
빈 공간으로 방치되던 관리사무소 지하에 지난해 4월 체력단련실을 만든 것도 부녀회의 평판을 좋게 했다. 요가와 차밍 교실을 열고 있는 이곳은 강사가 모두 아파트 주민이라고 한다. 이틀에 한번, 밤`낮에 진행되는 교실은 회원이 꾸준히 60~70명에 이를 정도로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요가 강사를 맡고 있는 주민 송영광(48`여)씨는 “이웃 아파트 주민들도 곧잘 와서 배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곳 아파트 요가가 반응이 좋아 다른 아파트 부녀회에서 견학까지 오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으로 기금이 쌓이면서 부녀회는 요즘 아파트 정문 앞에 5m의 시계탑을 짓고 있다. 기존의 부녀회에서 추진하려다 기금이 모자라 취소되었던 사업이다. 유 회장은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시계탑은 우리 아파트 부녀회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108동 1002호에 사는 홍순이 할머니(사진)는 101세의 나이를 자랑한다. 하지만 장수에 뭐 특별한 비결은 없다. 단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한 감기약 제품을 틈만 나면 마신다는 것.
과연 비결일까 싶지만 홍 할머니는 “팔`다리가 쑤시고 머리가 어지럽다가다 이상하게 요것만 마시면 통증이 싹 가신다”라며 웃는다. 처음엔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다고 말리던 73세 큰 아들도 이젠 아예 상자 채 사오기도 한다.
홍 할머니의 36살 손자는 결혼을 해서 이미 증손녀까지 봤다. 올해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증손녀는 명절이나 제사 때 한번씩 찾아오면 조금은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할머니에다 증조 할머니까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대가족이 한번 모이면 30여명이 넘제. 거실에서 제사지낼 공간이 없을 만큼 바글바글하다니까.”
홍 할머니는 나이가 의심스러울 만큼 목소리가 크고 쟁쟁하다. 여태껏 잔병치레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는 못 속이는지라 귀가 좀 어둡다. 아들네가 뭔가 이야기하면 “몰라” “머라카노”라며 되물을 때가 많다. 할 수 없이 아들네가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이웃들은 홍씨 집안이 싸우는 걸로 착각할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홍 할머니 덕분에 큰 아들네는 항상 웃음 속에 산다고 한다.
2001년 10월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하자를 보수해 달라는 소송을 시공사를 상대로 냈다. 당시만 해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김인수(59)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일부에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면서 소송에 반대하기도 했다”라고 술회했다.
소송의 발단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파트가 지어진 지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아파트에 하나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 아파트 울타리가 없는데다 조경도 부실했다. 지하실에는 균열이 생겨 물이 샜다. 여러 문제들이 하나둘 발견되자 주민들은 2000년에 시공사에게 하자 보수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공사에선 플라스틱 울타리를 만드는 등 별 성의 없이 대응했고 보수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소위원회를 만드는 한편 하자진단 전문업체에 의뢰해 하자를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이윽고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2001년 10월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김 회장은 “당시엔 동 대표의 50%가 어렵다고 생각했다”라면서 “하지만 주민들의 권익을 위한 것이고 나름대로 자신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3년여 에 걸린 소송 결과 법원은 2005년 2월 마침내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공사로부터 받은 기금으로 얼마 전 아파트 전체 외벽을 새롭게 도색했고 CCTV도 대규모로 바꾸거나 증설했다. 김 회장은 “동 대표들이 3년여 동안 수도 없이 법원에 불려가는 등 심신이 무척 고생했다”라고 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공룡에 비유되는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이겼다는 뿌듯함이 더 없는 결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