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제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
(시편131,1).
시인은 자신의 야망을 통제하면서 내적 평화와 고요함을 표현하고 있다.그가 자신을 위해 위대한 일을 찾지 않는 것(예레45,5참조)은 바리사이들과 대조적이다.“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라는 표현은 겸손한 마음을 말한다.곧 우쭐대는 마음이 없이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인간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히에로니무스는,어떤 사람의 겸손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교만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고 말했다.
“눈”은 성경에서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높은 눈”(이사10,12참조)은 거만함의 표시이고,‘낮은 눈’(욥22,29:“기가 껶인 이들”)은 겸손한 사람의 특징이다.“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라는 말은‘거만하지 않다’라는 뜻이다(시편18,28;101,5잠언6,17;30,13참조).거만한 눈은 잠언에서 주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일곱 가지 가운데 하나다(잠언6,16-17).지혜문학의 현인은“거만한 눈과 오만한 마음 그리고 악인들의 개간지는 죄악일 뿐이다”(21,4)라고 한다.벤 시라는 “제 생명의 하느님이신 아버지 주님 저에게 오만한 눈길을 허락하지 마시고 제게서 욕망을 멀리하여 주소서”(집회23,4-5)라고 겸손함을 청하는 기도를 한다.
시편 131편의 전체적 의미:131편은 평온하고 신뢰에 찬 분위기로,겸손에서 나오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이 시편의 아름다움은‘성숙한 신앙의 분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Weiser).명예와 부와 권력을 뒤로하고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무는 시인의 모습은 관상의 경지를 말해준다.이런 영적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완고한 자아와 피나는 싸움을 해야 한다.그는자기 뜻을 굽히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여 이제는 완전히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다.시인은 자신의 편안한 영적 상태를 어머니와 그녀의 품에 안긴 젖 뗀 아기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만을 의지하도록 교훈을 준다.이 시편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이와 같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시킨다(마태18,1-4).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11,28-29)라며 참된 안식을 얻기 위해 배우라고 하신다.안식을 얻는 것은 자녀가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과 같다.이것은 하느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아기가 아무것도 숨김없이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듯이 약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느님 품에 있는 것이다.그러면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이다(이사66,13참조).무엇보다도 이 시편은 우리가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 관상하도록 이끌어 준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3 시편90-150편/전봉순 著/바오로딸)
(홍제천 04/24)
2.보조성의 원리
사람은 사회 안에서 자기를 발전시키고 완성하며,사회도 공동체로서 발전하고 완성하도록 여러 조직을 만든다.작게는 가정,크게는 국가,더 나아가 인류 공동체인 국제 조직을 만든다.보조성의 원리는 사회의 여러 조직을 질서있고 조화롭게 조정하는 원리로서 사회 교리가 오래 전부터 제시하는 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보조성의 원리는 개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이 하고 그 일을 사회가 대신 맡아서는 안 된다는 원리이며 하위 조직체가 할 일 상위 조직체가 대신 하여서는 안되며 하위 조직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이다.이와 같은 질서 속에서 사회는 개인이 더욱 잘 하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상위 조직체는 하위 조직체가 더 잘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제대로 실현할 때 사회 조작은 질서있고 조화로우며 인간다운 공동체로 바뀌고 공동선이 증대됨으로써 인간의 존엄이 신장될 수 있다.이러한 사회에서는 창의력,자발,자율과 책임 의식이 증진되어 인간 한 사람 한 사람과 사회구성원 전체가 발전한다.
보조성의 원리가 제대로 적용되면 상위 조직체의 권력남용이 방지되고 개인과 중간 단체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보조하게 된다.그러나 보조성의 원리를 부인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제한하면 모든 조직의 자치와 자주와 창의력이 제약을 받고 훼손된다.정치 조직과 구조에서 권력의 집중화,비대한 관료화,중앙정부의 부당하고도 과도한 직접개입,경제 조직이나 구조에서의 민간 주도 인식 결여,그와는 반대로 경제 조직과 구조의 공익 기능 부인과 이윤의 독점 등은 보조성의 원리가 훼손되었을 때 일어난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연합 단체나 중간 조직인 민간 단체들의 선택을 존중하고,모든 사회 조직이 저마다 자기의 고유한 특성으로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민간 주도를 장려하고 소수의 권리를 수호해야 한다.또한 관료와 행정이 한곳으로 모이는 것을 피하고 개인 영역의 사회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특별히 국가는 모든 국민이 정치 사회 현실에 적극 참여하도록 한다.
국가는 최고위 조직으로서 다양한 하위 조직이 창의력을 발휘하여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리고 처리하며 책임지도록 보조하여야 하지만 공동선을 위하여 하위 조직이 할 일을 대신 할 수 있다.예컨대 개발도상국에서 국가경제부흥과 같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기능까지의 담당할 수 있다.또한 사회의 심각한 불균형과 불의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공동선이 훼손된다고 판단할 때 더 큰 정의와 평등과 평화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일정 기간 개입할 수 있다.
참여
보조성의 원리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참여는 반드시 필요하다.참여는 공동선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 활동의 일환으로 개인과 단체와 집단을 통하여,또는 대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참여할 의무가 있다.참여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더 나아가서 인류 전체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성장 발전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이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국가 사회의 일원인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여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일은 권리이며 의무이다.진정한 민주 정부는 국민의 참정권과 의무를 보장하고 보호한다.
국민은 정치 참여 뿐 아니라 국가 사회의 경제와 사회와 문화의 조직과 제도에도 참여하여야 한다.이를 위하여 교육과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또한 사회 구조의 기능이 공동선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식별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차단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그러므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국민이 정보의 소통을 담당하는 대중 매체와 언론과 이익 단체를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주의나 독재주의 체제는 국민의 참여를 아예 봉쇄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국가로 알려진 일부 국가에서도 관료주의 때문에 국민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가톨릭 사회 교리 주제편31-34쪽 발췌)/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며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가질 수는 있지만 조선을 무조건적으로 비하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이다.국뽕에 대한 반감으로 역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자세는 좋지만 매국뽕은 미래의 매국노가 될 수 있음을 자인하는 것밖에 안된다.
찬란한 조선 전기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던 조선 후기 모두 엄연한 우리의 역사이자 그시대를 살아간 조선인들 역시 우리의 핏줄이다.나라를 세우고 역사를 지켰던 조상을 비하하고 그들의 노력을 깎아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옆집 아저씨가 아무리 잘났어도 내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존중하듯 이 다소 아쉬운 역사라 할지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본문299-300쪽 발췌)
꽃이 피면 어떻게 하나요
또다시 세상에 꽃 잔치가 벌어지면
나는 눈물이 나서 어찌하나요
(서러운 봄날/나태주)
어찌하나,
기어코 봄날은 간다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