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숲에 사라진 용의 마을... 진짜 용산을 거닐다
2016.11
서울사랑 매거진에서...
기획 · 서울 골목길①
이달부터는 서울 골목길 이곳저곳을 그림으로 담아보고자 한다.
소소해서 그냥 지나쳤던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서부터 놓쳐서는 안 될 서울의 시간을 담은 이야기까지 함께 아우를 생각이다. 많은 분이 좀 더 서울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용산(龍山). 단순하지만 강렬한 지명이다. 하지만 오늘날 서울 한가운데에 위치한 용산구에서 용을 떠올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명의 유래가 된 용 형상을 닮은 산세는 이미 개발로 사라진 지 오래다. 산은 깎이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제 용산은 상업이 발달한 신용산 부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따름이다.
오늘은 말 그대로 진짜 용산을 걸었다.
시작은 한강이다. 고급 빌라가 들어선 낮은 언덕이 용두봉이라 불리는 용 머리 부분이다. 조선 시대 안평대군이 지었다는 ‘담담정(淡淡亭)’이 있던 곳으로 후에 신숙주가 별장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광복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도 자리했으니 과연 명당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새창로8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바로 지명 속의 용을 타고 넘는 셈이다.
현재 북쪽의 마포구와 남쪽의용산구를 나누는 산의 능선은 그저 경계에 불과해 보이지만, 주위를 둘러싼 도원동(桃園洞)과 도화동(桃花洞)이라는 지명을 살펴보면 과거 이 근방 가득 펼쳐졌을 복숭아 숲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고스란히 아파트 대단지로 바뀐 지금 모습은 사실 산꼭대기 달동네를 재개발한 것으로, 서울 시내 많은 아파트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참으로 서글픈 동네 변화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터덜터덜 내리막길을 걷는다. 도시 녹화와 열린 마을을 추구하며 서울시에서 지원하고 아파트 주민이 동참해 담을허물고 녹지 공간을 조성한 길이다. 하지만 녹화한 숲길이라기보다 빽빽한 가로수로 다른 형태의 담을 만든 느낌이다. 답답한마음은 경의선 숲길공원에 이르러 잠깐 누그러진다. 용산에서 신의주로 가는 철길을 지하화하며 공원이 된 극적인 변화는 언젠가 용산에서 신의주로 떠나는 열차가 출발하는 날 완성되리라. 경의선 숲길공원을 지나 효창원까지 골목길을 걸어보려던 계획은 이내 아파트 공사에 또다시 가로막히고 만다. 최근 시작한 대규모 공사다. 게다가 이봉창 생가가 있던 자리를 깔끔하게 밀어 버렸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도착한 효창공원에서 이봉창 의사의 묘소와 영정을 찾아 가볍게 묵념을 하고 처마 그늘 아래에 섰다. 용산의 가을 하늘이 아름답기만 했다. 멀찍이 아파트 병풍 앞으로 효창운동장의 조명탑이 아스라이 풍경을 가르고 있었고, 돌아올 수 없는 용의 산세가 머릿속에 맴도는 것 같아 안타까운 탄식만 새어 나왔다.
글... 이장희
이장희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사연이 있는 나무 이야기> 저자. 다양한 매체에 글과 그림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