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통합뉴스 특별기고
임명락 기자
2026년 10월 1일
보리밭의 슬픈 바람 앞에서 — DMZ 지뢰 사고와 한반도 평화의 성찰
지난 9월 28일, 독일 정부의 공식 초청으로 국외 출장길에 오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목적지 도착 직전 공항에서 DMZ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한 우리 군 당국의 발표를 접했다. 현지 시각 어젯밤 북측의 반응까지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서울과 연락을 주고받은 그는, 독일 통일 기념식과 아일랜드 고위 당국자 면담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북아일랜드 일부 일정만 소화한 채 귀국길에 올랐다. 9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며 남긴 그의 소회는 단순한 정치인의 성명이 아니었다. 부상당한 장병과 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면서도 “철저한 조사에 따른 진상 규명과 최종 조치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노력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대목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군 당국은 9월 21일 서부전선 DMZ 내 수색로 개척 과정에서 발생한 폭발의 원인이 북한군이 매설한 수지(플라스틱) 반보병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중간 발표했다. 사고 지점 인근에서 추가 지뢰가 발견되고, 부상자 장구류에서 TNT 성분과 갈색 이물질이 검출된 점, 아군 매설 기록이 없는 점 등이 그 근거다. 최종 조사 결과에 따라 상응 조치가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정 장관이 지적했듯, 소모적 정쟁으로 흐르지 말고 “왜 이러한 불행한 일이 반복되는지 깊이 성찰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책임 있는 정치라면 문제의 본질을 냉정히 직시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아일랜드의 교훈이 비추는 한반도의 거울
정 장관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북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담아낸 아일랜드의 식민지·분단·내전 비극은 우리의 운명과 닮아 있다. 1998년 성금요일협정(벨파스트 협정)은 수십 년간 만 번이 넘는 폭탄 테러와 3,500명 이상의 희생을 끝낸 정치적 기적이었다. 권력 분점과 연합 자치정부를 통해 “생각이 다르고 정체성이 달라도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데리와 벨파스트에 아직 남아 있는 분단의 벽은 평화 공존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보여주면서도, 한반도에 묵직한 성찰을 던진다.
정 장관은 궂은 날씨 속 데리 시립묘지에서 존 흄(John Hume) 사회민주노동당 당수의 묘소에 국화 한 다발을 바쳤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흄의 철학은 뼈아프다. “평화는 적과 만드는 것이다. 친구나 동료와 평화를 협상할 필요는 없다. 총을 든 극단주의 세력일지라도 그들이 총을 내려놓고 대화 무대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피 흘림을 멈추려면 적과 대화해야 한다.” 정치가 ‘깃발을 흔들며 싸우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며, 증오와 폭력을 상호 존중과 제도적 공존으로 바꾸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의 힘이다. 분단된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이것이다.
아일랜드의 보리밭에 불던 피어린 바람은 이제 평화의 바람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보리밭에는 여전히 슬픈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 예이츠가 노래했듯 평화는 물방울처럼 천천히 내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 물방울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본 대응 특별 전략 — 종교·국가·안보의 통합 대안
이번 사고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응징이나 감정적 대응이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종교적·국가적·안보적 차원을 아우르는 근본 대안이다.
첫째, 국민의 눈높이 — 투명성과 공감의 정치.
장병들의 희생이 정치 공세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국민은 더욱 분노하고 분열한다. 조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부상자 치료와 가족 지원을 최우선으로 하되, “평화 노력의 왜곡”을 경계해야 한다. 국민은 강경 일변도도, 나약함도 원하지 않는다. 냉정한 사실 확인과 동시에 “왜 반복되는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정 장관이 출장을 단축하고 귀국한 결정 자체가, 상황 관리의 책임감을 보여주는 메시지다.
둘째, 종교적 차원 — 용서와 화해의 영성, 그러나 정의에 기반한.
한반도의 분단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영적 상처다. 기독교의 화해,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仁)과 서(恕)는 모두 “적을 적으로만 보지 말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대안이 맹목적 관용으로 흐르면 안 된다. 존 흄이 보여준 것처럼, 대화는 총을 내려놓게 만드는 정치의 힘과 결합되어야 한다. 종교계가 앞장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인도적 지원, 공동 추모 행사 등을 제안하고, “피 흘림을 멈추는 대화”를 기도로, 행동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평화는 신앙의 실천이기도 하다.
셋째, 국가적·안보적 차원 — 억제와 대화의 병행, 제도적 공존의 설계.
안보 없이는 평화도 없다. 북한의 지뢰 매설이 확인될 경우, 정전협정 위반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국제사회 공조는 필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반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북아일랜드가 권력 분점과 자치 정부를 통해 공존을 제도화했듯, 한반도에서도 ‘사실상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단계적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CBM), DMZ의 실질적 비무장화 논의, 인도적 교류의 제도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로드맵이 그것이다.
동시에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억제력 강화와 동맹 공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억제력은 대화의 전제 조건이지, 대화의 대체재가 아니다.
결론 — 미래 세대를 구하는 정치의 임무
정동영 장관의 글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9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며 “꽃다운 청춘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고, DMZ를 넘어 대륙으로 당당하게 뻗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임을 다시금 다진 각오다.
아일랜드의 피어린 바람이 평화의 바람이 된 것처럼, 우리의 슬픈 바람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 길은 깃발을 흔들며 싸우는 쉬운 길이 아니라, 불안과 증오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인내와 용기의 길이다. 정치가의 임무는 ‘미래 세대를 구하는 것’이다.
전국통합뉴스는 이 성찰이 소모적 정쟁이 아닌, 국민이 공감하는 실질적 대안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철저한 조사, 단호한 대응, 그리고 근본적 평화의 모색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부상당한 장병과 그 가족,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청춘에게 바치는 진정한 위로일 것이다.
임명락 기자
전국통합뉴스 편집국
(본 원고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공유 글과 군 당국 발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