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8.11일 박주현 객원 논설위원이 올린 상식을 깨는 재미있는 , 그러나 날카로운 評論입니다. 읽다가 무릎을 탁 칠 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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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실언을 단순한 혀의 꼬임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혹독하게 억압된 진실이 의식의 검열을 뚫고 비집고 나오는 무의식의 처절한 자백이다.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 단상에서 벌어진 풍경은 일시적인 피로가 빚어낸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는다. 연임을 노리고 출마한 정청래가 지지자들 앞에서 "이재명"을 부르짖으려다 여러 차례 "이명박"을 외친 이 기괴한 촌극은, 1인 독재의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자의 인지부조화가 빚어낸 한 편의 잔혹동화이자 심리적 붕괴의 현장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듯 하다.
그의 출마 앞에는 애초부터 이재명의 의중이라는 거대한 단두대가 놓여 있었다. 이재명의 픽인 김민석을 밀어 올리기 위해, 당은 정청래에게 철저히 불리한 선호투표제라는 기형적 룰을 들이밀었다. 송영길이라는 보조출연자를 만들어 사실상 2:1의 형국을 만들어 놓았고, 심지어 전당대회장에서조차 정청래의 사진만 유독 기호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내걸리는 수모가 연출되었다.
자신의 정치 생명을 서서히 짓밟고 숨통을 조이는 배후가 누구인지 그는 뼛속 깊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재명'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그는 단상에 올라 자신을 난도질하는 바로 그 포식자의 이름을 목놓아 찬양하며 맹목적인 충성심을 증명해야만 했다.
이 극단적인 공포와 위선 속에서 대뇌 전두엽이 과부하를 일으키자, 그의 입술은 '이명박'이라는 엉뚱한 오발탄을 뱉어냈다.
보수우파의 시각에서는 그저 실소할 일이지만, 좌파의 생태계에서 '이명박'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갖는 의미를 복기해보면 사안의 본질은 무섭도록 서늘해진다. 좌파들에게 이명박은 모욕적일 만큼 혐오스러운 절대악이자 척결해야 할 탐욕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왜 정청래의 뇌는 자신을 위협하는 현재의 권력자를 부르는 순간, 하필이면 좌파 세계관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이름인 이명박을 소환했을까. 그것은 정청래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찍어 누르는 이재명의 이미지가 이미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과거의 괴물 형상과 완벽하게 겹쳐버렸다는 뜻 아닐까?. 두려움과 증오가 교차하는 무의식이 충성쑈의 껍데기를 찢고 진실을 폭로해버린 것.
이 참혹한 심리적 파탄은 1930년대 모스크바에서 벌어졌던 스탈린의 대숙청 재판을 정확히 빼닮았다. 당시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노비예프, 부하린 같은 늙은 볼셰비키 동지들을 고문실로 끌고 갔다. 인간의 존엄이 철저히 짓밟힌 그들은 조작된 죄목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루비앙카 형무소 지하실에서 총살을 당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은 입을 모아 "스탈린 동지 만세"를 외쳤다.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도살자를 향해 맹목적 찬양을 바침으로써 얄팍한 생존이나마 구걸하려 했던 그 끔찍한 자아 분열의 풍경. 21세기 대한민국 여의도에서 정청래가 보여준 무대 위 퍼포먼스와 스탈린의 지하실에서 울려 퍼진 만세 소리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지는 게 당연하게 세팅된 전당대회에서조차 권력의 칼날이 목에 들어온 순간에도 이재명을 연호해야만 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정당이 아니라 거대한 수용소일 뿐이다.
자신을 찌르는 권력자 앞에서 굴종의 춤을 추다 무의식이 붕괴해버린 저 슬픈 촌극을 그저 팝콘을 씹으며 비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어가 현실의 통제력을 잃고, 사유가 거세된 앵무새들만이 스탈린 만세를 외치는 권력 기계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할 때, 그 나라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출처 : 최보식의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