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뒤의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적은 앞으로 진격하지 못한다.
아군의 포병에 의해 적의 공격이 무산된다. 우리는 숨어서 기다리기로 한다.
아군의 포탄은 100m 전방으로 날아가고 우리는 다시 진격을 시작한다.
옆에서 가던 어떤 상병은 목이 달아났는데도 몇 발짝 더 달린다. 그의 목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솟구친다......
하이에 베스트후스가 등이 찢어진 채로 질질 끌려온다. 숨을 쉴 때마다 상처를 통해 폐가 뛰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저 그의 손을 잡아줄 뿐이다. ‘이젠 글렀어 파울!’그는 신음하며 고통에 못 이겨 팔을 물어뜯는다.
우리는 두개골이 없어도 살아있는 사람을 본다. 우리는 두 다리가 다 날아간 병사가 달리는 것을 본다.
두 다리가 절단되었는데도 비트적거리며 인근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자도 있고
두 무릎이 박살 난 어떤 상병은 2km나 되는 거리를 두 손으로 기어서 몸을 끌고 온 경우도 있다.
어떤 다른 병사는 흘러내리는 창자를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 응급 치료소까지 온 경우도 있다.
우리는 입과 아래턱, 얼굴이 없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또한 우리는 과다 출혈로 죽지 않으려고 이빨로 팔의 정맥을 두 시간 동안이나 꽉 물고 있던 병사를 발견한다.
어김없이 해는 떠오르고, 밤은 찾아오며, 유탄은 쉭쉭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레마르크-
전쟁문학의 압권이라는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잘못되어진 세상과 잘못되어진 인간.
전쟁이란 무엇인가? 나는 전쟁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군 생활 33개월을 통해 전쟁의 개념과 인간의 죄성을 배웠다.
그리고 이런 전쟁 문학이나 논픽션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할 뿐이다.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 것일까?
남의 땅이나 자원을 빼앗기 위해, 국내의 위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이해 충돌 때문에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야고보서4장 1절에서 그 근본 원인을 말해준다. '싸우는 정욕'
인간과 전쟁, 가장 어울려서는 안 될 개념이지만 역사상 인간 세계에 가장 빈번했던 사건이었다.
엄마 품의 아기는 무지개를 꿈꾼다. 동심의 세계엔 히틀러도 스탈린도 없다.
하지만 아이는 큰다. 크는 동안 아이는 변한다.
주관도 신념도 의지도 관념도 목표도 욕망도 모두 달라진다.
그리고 죄성의 지배를 받아 주관도 신념도 의지도 관념도 목표도 욕망도 모두 죄에 오염된다.
그 중의 일단의 무리가 악의 욕망을 합리화시키며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구둣발로 넘는다.
금지된 장난이다.
이때 어릴 때 동경하던 푸른 하늘엔 무지개가 아니라 포탄이 난무하고,
엄마와 뛰어놀던 언덕은 포탄 파편으로 갈가리 찢기고,
술래잡기 소꿉장난 하던 친구들의 몸에 대검을 집어넣는다.
나아가 인간은 이보다 수백만 배나 더 무서운 파괴력으로 인간을 제거할 궁리를 한다.
약간의 안목만 있어도 정의 사회 구현, 평등사회, 지상낙원 건설 등의 이념이 그냥 언어유희라는 것을 알 것이다.
가인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리하여 가인은 금지된 선을 넘어 동생의 생명을 해한다.
인류 최초의 출생자는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최초의 동생은 최초의 피살자가 된다.
가인족의 아벨족 박해, 이것이 인류의 역사였다. 에덴의 동쪽은 쫓겨난 가인의 영역이 되었다.
이 영역에 정치를 심고, 이 영역에 경제를 심고, 이 영역에 문화를 심고, 이 영역에 과학을 심어도
에덴의 동쪽이 에덴의 서쪽으로 바뀌지 않는다.
인간은 바뀌지 않고 인간의 세상도 바뀌지 않으며 인간은 끝없이 금지된 장난을 할 뿐이다.
다만 여기에는 복음이 필요할 뿐이다. 여기엔 샬롬 왕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할 뿐이다.
그분에 의해서 결국 이 세상 어둠의 왕국을 폐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까지
전쟁의 정욕 이상의 신앙과 자세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2022. 12. 18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 파울도 죽음을 피할수 없었다는 사실이...결국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금지된 장난이 아닌 진지한 사명이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