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기독교 복음의 가장 중요한 두 기둥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부활한다는 것을 몸소 증거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로마서 10:9~10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되고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2:15을 보면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의 문제, 다시 말해서 죽음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6:39,40,44을 보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다시 살리리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은 우리도 부활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고린도교회에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부활의 확실성에 대해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15:3~4에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 섰던 사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인해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능력의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모두 다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달려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뜬 소문으로 알고 꾸며낸 이야기로만 믿었던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변했습니다. 생각이 달라졌고 삶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졌으며, 우주관이 달라졌습니다. 그후 그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일생을 바치고 순교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은 뼈와 살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시간도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영원한 미래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알고 계시며, 우리의 소원이 무엇인지, 우리의 고민이 무엇인지, 우리의 아픔과 계획을 다 알고 계십니다. 시편 139:1~4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도 하십니다. 모세는 80세까지 의미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40세 때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양을 치며 4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만일 그가 호렙산 기슭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느 사람과 다름없이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80세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모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만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28:11~15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떠난 후의 상황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밤새 지켰던 군병들이 지난 밤에 겪은 놀라운 사건을 함구했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제사장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도적질해 갔다고 말하라고 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감추어질 수 있습니까? 군병들도 자신의 가족들에게만은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부활하셨어. 이 눈으로 똑똑이 봤지. 그런데 절대로 이런 사실을 남들에게 이야기해서는 안돼. 알았지. 돈 받은 것도 비밀이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요? 결단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 때 무신론자였던 영국의 리틀 스톤과 길버트 웨스트는 무신론을 주장하기 위해 과거에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임을 밝히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성경과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후에 다시 만나 서로 같은 고백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더 이상 불신자로 머물러 있을 수 없네. 이 연구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과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네.” 성경과 예수님에 대하여 연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에 관한 기사가 모두 사실이고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안 후에도 끝까지 불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단코 멸망의 길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리고 태양이 없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도저히 부활하신 주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주님을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그때 천국으로 저를 불러가 달라고 금식기도 하던 중, 사흘 째?되던 날 주님께서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살아 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이렇게 세 번이나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 놀랬습니다. 성경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일이 실제로 제게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주님께서 말씀으로 음성으로 응답해주셨고?책망도 하셨습니다. 늘 주님의 책망은 축복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후 한참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할 때 저는 제가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아주 잘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단호히 “네가 해? 내가 하지”, “네가 해? 내가 하지”, “네가 해? 내가 하지”하시며 수영로교회를 주님이 세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제 속을 썩이는 집사로 인해 특별히 기도할 때에도 제가 문제라고 하시며 “나는 너를 붙잡고 일하지 그 집사를 붙잡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 집사는 제게?맡긴 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후 저는 절대로 교인들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언제나 문제는 제 자신에게 있음을 알았기에 제가 늘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주님이 다해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아무리 의심할래도 의심할 수 없는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부활합니다. 요한복음 11:25~26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부활의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도의 선다싱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한 교수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가족 뿐만 아니라 민족이 오랫동안 믿어 온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 신자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선다싱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만이 죽었다가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마이어 목사는 죽기 며칠 전에 친구 핀드린 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내 생명이 며칠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지금 들었네. 이 편지가 자네에게 이르기 전에 나는 천국에 가 있을지도 모르네. 그러니 회답을 써보내지 말게나. 우리 부활의 새 아침에 천국에서 만나세.” 성도 간에는 영원한 이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천국에서 기쁨으로 영원한 만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을 당당하게 증거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