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닌 것처럼, 태연하게 >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인간이었다. 괴물이 아니었다.
십자군전쟁에 어린애까지 내보낸 것은 그들의 부모였다. 타인의 부모가 아니었다.
마녀사냥으로 선량한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은 교회 사람들이었다. 이방 종교인이 아니었다.
제네바에서 자신과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카스텔리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은 종교개혁가 장 깔뱅이었다. 중세의 타락한 사제가 아니었다.
해방 이후에 빨갱이 척결한다며 민간인에게 테러를 가하고 학살한 서북청년단은 교회 청년들이었다. 탈레반이 아니었다.
서북청년단을 조직한 사람은 한경직 목사였다. 그는 악마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갖 저질스러운 말을 배설하는 전광훈 목사에게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교인들이다. 그들은 타종교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공범들이다. 하지만 우린 모두 예수의 죽음에 애통하며 괴로워한다.
아닌 것처럼, 태연하게 울면서 못질을 한다.
위선은 몸집이 커질수록 더 아름답게 보이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의 울음소리가 더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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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절망이다
바람을 등지고 선 것은
사람뿐이다, 지금이라도
바람이 오는 곳으로
얼굴을 들면
나도 꽃처럼 빛날 수 있을까?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김선주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중 ‘바람이 오는 곳으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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