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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懸崖想하야 生退屈心하며,
낭떠러지에 매달인 것 같은 생각을 지어서 退屈心을 내지 말며, ‘아이고 억만 불법이다. 그거 어떻게 그렇게 하겠노? 아이고 우리사 그거 못 하겠네’이런 생각이 懸堐想을 짓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저 낭떠러지에 매달 것 같은 생각이다! 이 말입니다.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生退屈心하며, ‘우리는 한 번에 치워버려야 되겠다. 안 되겠다’ 이런 퇴굴심을 낸다거나, 또 그 반대로
●或作慣聞想하야 生容易心하고,
慣聞想. 익혀들었다는 생각, ‘이 까짓것쯤이야 천하 쉽다’이 겁니다. 너무 많이 귀에 못이 배도록 들은 소리니까 ‘용이하다’ ‘천하 쉽다’이 겁니다. 그래서 容易心을 내지 말라. 용이하다. 쉽다는 생각도 내지 말라. 이랬거든. 이렇게 되면 이 두 가지가 다 실패의 원인입니다. 안 된다!이 말입니다.
수목나 존자라고 하는 스님이 부처님당시에 있었는데, 수목나 라고 하는 말은 聞億耳입니다. 아주 부자, 거부 장자 집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나자마자 그 아버지가 “이 놈한테는 돈을 억만금이다” 이랬거든요. 억만금 재산을 물려준다!이 겁니다. 억만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래서 문억이! 니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귀엽게 키웠는지 발바닥으로 땅을 안 밟고 별로 살았기 때문에, 발바닥에서 털이 났대. 참~ 나, 발바닥에 털 나는 사람이 있나? 어쨌든지 하도 귀엽게 커노니까 발바닥에 털이 났대. 아주 귀한 집자식이고 머리가 그렇게 좋아.
나중에 커서 인물도 좋고 머리도 좋고 하니까 이런 아이를 부처님만 한 번 친견하게 하면, 아주 큰 인물이 될런지 모르겠다고 부처님 계시는데 까지 운하를 팠대. 운하를 파가지고 배를 띄워서 부처님한테 가서 법문을 듣고 중이 되었어. 이 세상에서 최고 학문ㆍ최고의 인격을 완성 시키자면 스님이 돼야 되겠다. 스님이 돼야만 오직 공부만 할 수 있고. 스님이 돼야만 도를 통할 수가 있고. 세속에서 이것저것 끄달려가지고는 안 되니까..
거짓말로 했는지 참말로 했는지 몰라도, 조용필이가 결혼했다가 이혼하면서 신문기자가 물으니까 “예술과 결혼생활하고는 말하자면 사람 사랑 하고는 겸할 수가 없더라. 나는 예술만을 사랑해야지, 사람 사랑하면서 예술 하면서 이것 안 되겠더라”두 가지를 하려니 안 되겠더라! 이 겁니다. 사랑을 하려면 여자 뜻을 잘 맞춰줘야 되는데, 시간 없고 거기에 골몰하다 보니까 여기에 맞춰 줄 수가 없다 이 겁니다. “자꾸 쥐어 뜯어대고, 꼬집어대니까 기분이 확 풀리지 않으니 작품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 했다. 내가 타고 난 것을 포기 할 수는 없고, 새로 만들었던 것을 포기 한다” 신문에 그랬더군. 그것도 좋은 말입니다. 얘기는 좋은 말이지? 실지는 그랬든가 안 그랬든가 좋은 말. 그 뒤에 일본가서 다시 결혼해서 산다니까 그것도 거짓말인 셈이 되었지만 아무튼 말은 옳은 말이 된다고. 한 가지만 골몰해야지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다! 이 겁니다.
그래서 이 문억이비구도 세속을 버리고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됐다 이 겁니다. 공부를 얼마나 애를 써서 했는지 발바닥이 아파서 죽을 지경입니다. 발바닥에 털 난 놈이니까 발바닥이 얼마나 부드럽겠습니까? 길에 다니니까 갈 바닥은 험하고, 삐쭉삐쭉한 돌 그런 것을 밟으면, 저도 어릴 때 그렇게 발바닥이 얇아가지고 단거리를 반쯤 뛰면 발바닥이 아파서 떨어져. 제가 공부도 잘하고 100m는 1등 하는데 400m는 떨어지거든. 중간에 발바닥이 아파서 그냥 발바닥이 막 쓰리고 따가워 가지고 못 뛰고 그랬는데, 지금은 발바닥이 많이 굳어졌어. 옛날에는 길 가려면 발바닥이 아파서 살짝살짝 그랬다고.
그런데 문억이비구는 발바닥에 털 났으니 말 할 것도 없지. 발바닥이 전부 터져가지고 짐승 잡아끌고 다닌 것처럼 온 도량에 피가 흘렀다! 이랬어. 그래서 부처님이 그 사람한테는 가죽신을 신으라 그랬어요. 그래서 피혁곤도라는 것이 있어. 그 사람을 위해서 가죽신이라는 법이 있어.
그렇게 잠을 안자고 안 먹고 애를 써도 공부가 안 되니까, 해도해도 안 되니까 ‘아이고 나는 도하고는 인연이 없는가보다. 우리 집에 가면 돈이 억만금이 있는데 도하고는 인연이 없고, 나는 돈하고만 인연이 많은가 보다. 그만 할 수 없다. 도는 포기해 버리고 집에 가서 돈 가지고 이 어렵게 공부하는 스님들한테 복이나 지어야 되겠다. 이 스님들 전부 잘해드리고, 시중이나 해드리고, 길도 잘 만들어 드리고, 사는데도 편안하게 갈도록 해드리고, 내 재산 막 풀어서 스님들 잘 해드릴 수 있으니까 그래야 되겠다. 속환해가야 되겠다’이런 생각을 딱 먹고 가려고 준비하고 있으니까 부처님이 다 알았어.
부처님이 딱~ 아시고, 壯士屈伸微境間에, 장사가 팔 하나 착 폈다 오그리는 사이에 그 자리에 나타나나지고, “수문나야” “아이고, 부처님 어쩐 일이십니까?”
“네가 마을에서 무엇을 제일 즐겼던고?” “거문고 타기를 즐겼습니다”
“거문고 줄이 팽팽하면 어떻게 되느냐?” “거문고 줄이 팽팽하면 터집니다”
“거문고 줄이 느슨하면 어떻드냐?” “느슨하면 소리가 안 납니다”
“공부도 거문고 줄을 고르는 것과 같으니라. 너처럼 그렇게 억지로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그렇게 용쓴다고 공부가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발바닥 다 터지고 네 몸이 피로해서 못 하겠다는 생각 밖에 안 난다. 그렇다고 해서 슬금슬금 자가면서, 놀아가면서 하자고 하면 그것도 깨울깨울해서 게으름에 빠져서 안 되는 것이다. 如調絃而法하야, 거문고 줄을 고르는 것과 같아서 妙在手中이니, 묘한 것이 손가락 끝에 달려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 공부도 不可緊하고, 너무 긴하게도 하지 말고 不可緩이니, 너무 늘어지게도 하지 말고 妙在其中이니라. 묘한, 신묘한 법이 그 가운데 있느니라”
이것이 거문고 법문입니다.
그 법문을 듣고 수목나가 아주 크게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딱~ 하니 제 몸과 마음에 맞추어서 공부해가지고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退屈心도내지 말고, 慣聞想도내지 말고, 容易心도내지 말고, 떡~ 하니 妙在其中이라. 이 말입니다. 묘한 것이 그 가운데 있도록 중도를 취하라. 이런 말입니다.
●當須虛懷聞之하면,
▲當須할 적에는... 마땅히ㆍ모름지기ㆍ적당하게ㆍ반드시... 다 형용사입니다.
▲虛懷聞之하면 생각을 텅 비워버리고 들으면, 속효심도내지 말고ㆍ나태심도내지 말고 슬금슬금 가다보면 해 돋을 때 아니올까? 그랬잖아. 속효심도내지 말고 나태심도내지 말고 슬금슬금 가다보면 해 돋을 때 아니올까? 해 빨리 뜨라고 부지런히 간다고 해가 빨리 뜨나요? 또 깨울깨울 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요. 虛懷聞之라. 생각을 텅 비우라 이 말입니다. 구정물이 꽉 찼는데 다른 물 부어봐야 그것이 들어가나? 넘어버리지. 속을 텅 비우라 이 겁니다. 비워야만 거기에 담을 것이 있잖아. 비울 생각도 아니 하고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폭 엎어놓으면, 아무 것도 안 담기는 것이고. 구정물 독이라고 엎어놓으면 뭐가 담기나? 햇빛도 아니 들어가고.
그러니까 아무리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파도 슬금슬금 기도를 빠지지 말고 해야 돼. 다 낫고 나서 하려면, 해제하고 나서도 나을랑가? 말랑가? 내년에나 나을까 말까 언제? 젠장 맞으리. 이거하고 저거하고, 저거하고 다 하고나서 하려고 하면 되나?
옛날에 장조류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스님의 친구입니다. “야 이 사람아 장조류, 자네도 염불 좀 하게. 참선 좀 하게” 이렇게 하면 만날 한다는 소리가 “우리 막내 장가보내놓고” 막내 장가보내놓고 나면 어쩔건가? “손자 낳고 부자 되는 것 봐야 될 것 아닌가?” 세 가지거든. 막내 장가보내고ㆍ손자 낳고ㆍ부자 되고... 그것 언제 부자 될 겁니까?
●吾友名爲張曹流하니, 내 친구가 장조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勸伊念佛說三頭라. 그 사람에게 염불하라고 권하니까 만날 三頭를 얘기하더라 이 말입니다. 세 가지 다 하고 나서 한다 하더라! 이 말입니다.
●可怪閻公無分曉하야, 가히 괴상스러운 일이로다. 염라대왕 그 사람이 분수가 없어가지고
●三頭未了에 便來鉤라. 三頭를 마치지도 않은 사람을 와서 갈고리로 콱 끌고 가버렸다! 이 겁니다. 다 마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속히 될 마음도ㆍ느즈러질 마음도ㆍ무엇이 잘 된다는 생각ㆍ못 된다는 생각ㆍ일체번뇌 망상 다 비워 버리고, 虛懷. 생각을 텅~~ 비워 버리면 거기에 감로수가 담길 수가 있는 것이거든.
●當須虛懷聞之하면 必有機發之時하리니,
반드시 機緣을 발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랬거든. ▲機자를 보통 기틀을 발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러는데, “기틀”이라고 하면 잘 못 알아듣잖아요. 기틀 이라고 할 것 같으면 기계를 “틀” 이라고 그러잖아. 옛날에 비행기를 “날틀” 이라고 그랬어요. 織造機를 “짤틀”이라고 그러고요. 틀은 기계라는 소리지요. 기틀이라고 하면 말이 좀 덜 된 것이지. 機緣이라고 그러는 것이 좋아요. 챤스라는 말이지.
그러니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달아나기 쉽고 ▲기연은 탁 마주칠 때가 있다. 그 기연이 마주칠 때가 있다는 소리는 무슨 소리냐 하면, 見性할 날이 있을 것이다. 이런 말인데.
이 見性하는 기회가 보통 꾸준히 애쓰다가 볼 것 같으면 네 가지의 인연으로, 네 가지 기연으로 말미암아서 見性成佛하고, 感應을 받고 기도를 성취하는 기회가 나타난다 이 말입니다.
첫째는 ▲一機法門이 있어요.
그 다음에는 ▲一境. 한 경계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一言. 한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一句. 한 마디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 글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一機一境上 一言一句下에 크게 琢磨를 하게 된다. 탁 마주치는 때가 있다 그랬거든.
▲一機法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일기법문이냐 하면,
하루는 부처님이 떡 법상에 앉아 계시는데 외도가 찾아와서 부처님에게 떡~~ 절을 하고 하는 말이 “敢問世尊하노니, 감히 세존에게 묻습니다. 有言不問하고 無言不問입니다. 有言으로서도, 있는 말로도 묻지 않고, 無言으로도 묻지 않습니다. 일러주십시오” 그랬거든. 그러니까 부처님이 앉아 계시다가, 據座라. 의지할 據(거)자, 자라 座자. 자리에 기대 앉으셨어. 볼 적에는 말씀은 아니했으니까 有言으로 대답한 것은 아니고요. 無言으로 대답한 것 같지? 자리에 그냥 據座라. 자리에 기대앉으니까 그 외도가 턱~ 깨달아가지고 절을 하면서 “세존은 대자대비 하시사 開我迷雲하시나이다. 저의 미한 구름을 확 벗겨주셨습니다” 참 감사하다고 하면서 無數拜禮, 절을 하고 가거든요. 가니까 거 참 이상스럽다! 이 말입니다.
아란존자가 그 때 부처님 시봉을 20년 한 때입니다. 아란존자가 곁에 있다가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거든. 그 외도가 가고 난 뒤에, 부처님한테 절을 하고 묻기를“부처님이 자리에 기대앉은 것뿐인데, 그 외도가 깨달아 간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알아봤기에 그렇게 세존 대자대비라고 하고서 절을 하고 갑니까?” 이러니까,
●良馬는 見鞭影而走天理어늘, 良馬는, 적토마 같은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삭 보면 벌써 천리를 달아난다! 이 겁니다.
●阿難依存世尊前이구나. 아난은 20년을 세존 앞에서 그냥 지척거리고 나만 의지하고 있느냐?
네 똥은 네가 싸야지, 날더러 네 똥 싸달라는 소리냐? 그 말씀입니다. 阿難依存世尊前이구나. 말하자면 그 외도는 一機法門에 깨달은 겁니다. 一機法門. 한 기연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목주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은 방안에 앉아가지고서는 사람을 안 만나. 사람을 안 만나니까 운문스님이 법문을 듣고 싶어가지고, 법을 알고 싶어가지고 그 스님한테 갔는데, 목주스님은 기운이 천하장사입니다. 문을 철문을 해다 달았어. 철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 보통 사람은 그 철문을 열지도 못해. 목주스님은 자기 어머니를 항상 모시고 다녔대.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면서 寺衆밥을 먹이면 안 된다고 그래가지고, 저녁마다 자기가 짚신을 삼아. 짚신을 삼아가지고 짚신을 저 남대문 앞에다 걸어놔. 걸어놓고 있으면 신 떨어진 사람들이, 짚신을 가져가면서 거기다 돈을 몇 푼 자루에다 넣어놓고 가거든...
그 돈으로 쌀을 한 되 사오면... 자기 어머니의 쌀값은 그렇게 냈대. 그런데 어떤 나라에서 목주스님이 있는 나라를 치러 왔거든. 趙 나란가 그래. 조 나라를 치러 들어왔는데 그 나라 장군이 남대문 앞에 걸려 있는 짚신을 보고, “아, 有道自在로다” 도인이 이 안에 있다고, 우리 여기 들어갔다가는 큰일 난다고, 도인이 계신 곳은 쳐들어가면 안 된다고 물러갔답니다. 그 군인들을 다 끌고 물러갔답니다. 그 만큼 말하자면 위신력이 있는 스님입니다.
운문스님이 들어가면 그냥 멱살을 잡고 저 마당 한 가운데로 휙~ 던져버려. 기운이 천하장사니까. 목주스님 방에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어. 그래가지고서는 ‘에이 떠그랄 것 내일은 멱살을 잡고 집어 던지기 전에, 발부터 먼저 들여놔야 되겠다. 발부터 먼저 들여놓고 봐야 되겠다’싶어가지고서는 문 반쯤 열었는데, 멱살을 잡으려고 하자 확 발부터 확 들여놨거든. 들여놨더니 철 대문을 쾅 닫으니까 다리가 뚝 부러져버렸어. 다리가 뚝 부러지는 찰라에 그냥 확철대오를 했거든. 깨달았어. 그것도 일기법문입니다. 다리는 부러졌지만 도를 깨쳤으니까 그까짓 것, 구루마가 바퀴하나 탈 난 것 상관있나? 그런 것이 다 일기법문...
임제 할. 덕산 방. 임제스님은 사람이 부르기만 하면 무조건하고 소리를 왝 하고 소리를 질러버려. 소리 지르는 소리에 그냥 깨치는 사람이 많아. 그것이 임제스님 할. 덕산 방, 덕산스님은 누가 부르기만 하면 방망이로 한 대 때려 올리거든. 한 대만 맞으면 그냥 깨달아. 그것이 덕산 방입니다. 그것이 다 일기법문입니다. 그러니까 죽비를 친다든가ㆍ불자를 든다든가ㆍ할을 한다든가ㆍ방을 한다든가ㆍ이것이 다 일기법문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법문을 입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딴 소리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송을 읊는 것도 없고, 오직 그저 한 방에 그냥 탁 탁 깨치는 것이 일기법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一境法門이라는 것이 있어. 한 가지 경계라는 말.
부처님께서 최초에 6년 고행을 하시다가 턱~ 납월 팔일에 見明星悟道... 동쪽에서 돋아오는 별빛을 보고, 확철대오하셨잖아. 그렇지? 그것이 일경법문입니다. 경계를 봤다! 이 말입니다. 샛별 돋아오는 경계를 보고 깨달은 것이 일경법문입니다.
소동파가 길을 가다가 보니까 닭이 울거든요. 닭이 꼬꼬댁 꼭꼬~~~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그냥 홀연히 깨달았거든. 깨달아가지고는 턱~ 하니,
●溪聲이 便是廣長舌인데, 溪聲. 골짜기 시냇물 소리가 이대로 廣長舌상이라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廣長舌상인데,
●淸山이 豈非淸淨身가? 청산이 어찌 청정법신이 아닌가? 푸른 산이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 흐르는 시냇물이 그대로 부처님의 법문일진대, 저 푸른 산 그대로가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겠느냐? 이 말입니다.
●夜來八萬四千偈를, 밤중에 길을 가다가 홀연히 들이닥친 나의 八萬四千 그 게송을
●如何他日擧似人가? 어찌 다른 날에 누구한테 이것을 들어바쳐서 보일 것인가? 이것이 소동파의 오도송입니다. 그것이 일경법문입니다.
한 가지가 몰라서 애를 쓰고, 애를 쓰고 화두 한 생각만 일념삼매에 들어서 챙기던 사람이,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고, 또 앉아서 떡~~ 한 생각 공부하고 있는데, 옆에 자던 친구가 어떻게 잘못 해가지고, 세워놨던 목침이 탁 떨어졌거든요. 목침이 달그닥 떨어지는 소리에 그냥 확철대오를 했어. 그것도 일경법문입니다.
또 어떤 스님은 본래면목 공부를 했거든...
如何是本來面目인고?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 나의 참 본래면목이 어떤 것인가~~~?
이 몸뚱이야 겉껍데기 자동차인데, 이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본래면목... 본래 참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 생각을 삼매에 들어서 그냥, 가나오나 그 생각 하나 뿐인데, 아따 어디 가다가 장 앞을 지나가다가, 술 먹은 두 사람이 싸움을 해서 눈 탱이가 밤 탱이가 되고, 이맹이가 도맹이가 되고, 어쨌든지 간에 싸움을 해서 난리가 나고 코피가 터지더니, 나중에는 화해를 해가지고 둘이 한 잔 먹으면서 악수를 하면서 “이 사람아, 자네하고 나하고 그런 사이가 아닌데 내가 참 면목 없네” “이 사람아, 내가 면목 없네” 둘이 서로 면목 없다고 그러거든. “면목 없네” 소리에 그냥 확철대오를 했어. “면목 없네” 하는 소리에 확철대오를... 그것도 일경법문...
이런 것이 부지기수지. 일경법문에 깨달은 스님들이 제일 많아. 이것은 어떤 스승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삼매 속에 들어가서 홀연히 그냥 어떤 기현상에 깨달은 겁니다. 그것이 機發하는 겁니다. 그것이 必有機發之時입니다. 機發之時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틀을, 기연을 발한다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一言
一言法門. 一言之下에 頓忘生死라고 그러지? 一言之下에 頓忘生死... 한 마디 말씀 아래에 몰록 생사를 벗어난다. 옛날 큰스님들은 10년 동안을 스님 시봉을 해도 법문 한 마디 안 일러 주거든.
“스님, 저 가렵니다”“어디 가려고? 왜 가려고?”
“스님시봉 10년 동안에 법문 한 마디 아니 일러 주니, 가야지 여기 있으면 뭐 합니까?”
“법문이 뭔데?” 법문이 뭐냐고 물으니 참 기가 막히지.
“불법 말입니다. 불법”“아 불법? 불법이라면 나한테도 조금 있지. 여기 있다”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자, 이것이 불법이다!” 이러거든. 빈주먹입니다. 거기서 깨쳤어.
一言之下에 頓忘生死. 한 마디 말씀 아래에 깨치는 겁니다. 이런 법문들 많지...
또 한 사람은 ‘에~이, 이 스님 밑에 있어봐야 소용없다. 도망 갈란다’하고 막 도망갑니다. 조실스님이 도망간다는 소리를 듣고, “시봉하고 여기 오래 살았는데, 10여 년 동안이나 살았는데 차비나 좀 줘야 될 것 아닌가? 아나 이것 갖다 줘라”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주는데, 돈이 한 푼 들었는지 어쨌는지 주니까 받긴 받았는데, 부아가 나서 펴볼 생각도 없이 그냥 한 10리쯤 가다가 노장이 돈을 얼마나 줬는가 싶어서 펴고 보니까, 돈은 안 들었고 글이 떡~ 적혀 있는데 뭐라고 적혀 있느냐 하면,
▲一句
●可笑尋牛者여, 가히 우습다. 소를 찾는 자여,
●騎牛更覓牛아? 소를 타고 소를 찾느냐?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느냐?
●識得無影樹하야사, 그림자 없는 나무를 알아 배워서
●銷盡海中漚(소)하리라. 바다 가운데 거품을 다 태워야 하리라.
이 게송입니다. 이 글귀 한 마디에 그냥 확철대오 했거든요. 그것이 一句下에 깨친 겁니다.
一言之河는 말씀 한 마디 밑에 깨치는 것이고,
一句下에 깨치는 것은 게송 한 마디 밑에 깨치는 것이고, 이것이 다 機發하는 겁니다.
機發. 機緣을 발 한다 이 겁니다. 기틀을 발 한다 해도 되고. 어쨌든...
必有機發之時하리니, 반드시 그 기연을 발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하는 소리가 바로 그 겁니다.
●不得隨學語者하야 但取口辦이어다
말 배우는 자를 따라서 다만 입으로 판단하는 것을 취하지 말지어다. 입으로 판단을 해서, 판단한다는 소리는 어쨌든 간에 입으로 처리한다는 소리지. 입으로 그냥 이렇다 저렇다 입으로 그냥 처리해서 치워 버린다 이 말입니다. 실지는 아니고. 실지는 가짜이고, 어쨌든지 간에 입으로 한 몫 하는 사람 숱하잖아.
국회의원 저 사람들, 다 입으로 한 몫 하는 사람들이지 뭡니까? 아무것도 아니지요. 입으로 한 몫 하는 사람들. 그래서 옛날에 어떤 사람이 지옥 구경을 갔더랍니다. 한 곳에 가니까 ▲주둥이만 수북하더랍니다. “웬 주둥이가 이렇게 많으냐?” 하니까 입으로만 까발리던 사람들은 주둥이만 갖다 놨다 하더래. 한 방에 가니까 ▲귀만 수북하더랍니다. 듣기만 하고 실천 아니한 사람들은 귀만 톡 톡 떼어가지고 수북이 갖다놨더랍니다.
●所謂蛇飮水하면 成毒하고 牛飮水하면 成乳인달하야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고 ,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 이 말입니다.
●智學은 成菩提하고 愚學은 成生死라. 是也니라.
지혜롭게 배우는 사람은 보리도를 이루고, 깨달음의 길을 이루고, 보리라고 하는 것은 지혜 智자의 뜻도 있고ㆍ깨달을 覺자의 뜻도 있고ㆍ길 道자의 뜻도 있고, 길 道자가 옛날에는 도이고, 요새 표현으로는 진리이고 그렇습니다. 요새는 진리라고 표현을 하고, 옛날에는 도라고 표현을 하고 그랬어. 보리라고 하는 뜻이 그런 뜻입니다. 智ㆍ覺ㆍ道.
愚學은 成生死라. 愚學은, 어리석게 배울 것 같으면 생사를 이룬다. 생사라고 하는 것은, 정신 못 차리는 것이 생사입니다. 愚癡. 우치한 것이 생사입니다. 바로 그 말이 그 말이다 이 말입니다. 成生死하는 것이 是也니라. 바로 이것이니라. 完
제 21 강
宗師가 설법을 할 때에 법문 듣는 자세를 얘기한 것입니다.
懸堐想을 지어서 退屈心을 내지도 말고, 慣聞想을 지어서 容易心도 내지 말고,
생각을 텅~ 비우고 들으면 그 機緣을 발할 때가 있을 것이다. 말 배우는 자를 따라서 입으로 판단함만 취하지 말라. 판단한다는 것은 처리한다 이 말이지. 입으로 처리하는 것만 취하지 말라. 그러면 주둥이만 끊어서 모아놓은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입으로만 나불거리고 실천은 없었기 때문에...
귀로 듣기만 하고 실천을 아니한 사람은 귀만 떼어놓은 지옥을 간대. 아무튼 간에 알 知자, 안다 하는 것은 화살 矢자에다 입 口자 했잖아요. 안다고 하는 것은 入耳出口之學이라. 귀로 쏙 들어가고 입으로 쑥 나온다는 말입니다. 口耳之間은 三寸이라. 귀와 입 사이는 세 치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그 만큼 짧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短販漢이라. 짧은 장사꾼이다. 자기 아는 것 한 번 지껄이고 나면 더 지껄일 말이 없어.
어떤 사람이 석굴암에 대해서 원고를 한 100장쯤 쓰고 나니까 다기 더 쓸 말이 없더라... 일본에 사이또 라는 박사는 기왓장 한 조각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3년을 설명을 해도 끝이 없더라! 그 말입니다. 학문의 깊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거든. 그러니까 알 知자. 입으로 나불나불 지껄이는 것ㆍ귀로 들은 것. 이것이 말과 소리가 그것이 같이 만날 발랑 발랑 발랑 싸우는 것. 그러니까 싸울 과자ㆍ창 과자ㆍ그것이 識입니다. 識 말씀 言변에 소리 音하고 창 戈, 창으로 찌른다는 말입니다. 창으로 찌르고 방패로 막고 그럴 것 아닙니까? 창으로 찌르면 으레 방패로 막지.
그것이 그러니까 識으로 분별하는 것은 知에 불과하기 때문에, 知라고 하는 것은 但取口辦이라. 입으로 판단하고, 입으로 처리해버리고, 입으로 일 다 해치워 버렸다는 말입니다. 일을 입으로 해서 다 치워 버리는 사람, 무엇인가? 그 말이지...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못 된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리도를 성취하고, 알 知자 밑에다가 날 日자를 한, 일월광명과 같이 밝고ㆍ빛나고,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말이거든. 그것이 智慧입니다. 간택 할 수 있는 힘ㆍ결정 할 수 있는 힘. 이것이 智ㆍ慧입니다.
●智라는 것은 간택한다는 뜻이요, ●慧라는 것은 결정한다는 뜻이거든요.
智是簡擇이요, 慧是決定이라. 智라는 것은 간택 할 수 있는 힘이요, 慧라고 하는 것은 결정 하는 힘이더라. 보리라는 것은 智ㆍ覺ㆍ道.입니다. 지혜와 진리. 道는 진리입니다. 옛날말로는 도고, 요새 말로는 진리이고 그래요. 왜 그랬잖아. 나는 빛이요ㆍ나는 진리요하는 그런 말 있지요? 智ㆍ覺ㆍ道라는 뜻입니다. 보리도 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중노릇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 알거든. 예수가 10여 년 동안을 중노릇을 했기 때문에 다 하는 소리입니다.
●又不得於主法人에 生輕薄想하라
主法人에게, 주법을 거꾸로 해서 법주라고 해도 괜찮아. 불광에서는 법주스님이라고 그러지요. 법을 주관하는 스님이다 이 것이지. 법주스님이라고 하나, 주법스님이라고 하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주스님에 대해서, 설법하는 법사스님에 대해서, 그런 말입니다. 生輕薄想하라. 경박한 생각을 내지 말라. 가벼이 여기는 생각ㆍ업신여기는 생각ㆍ시원치 않다ㆍ못 났다는 생각ㆍ에이고 저거 뭐 별 수 있겠나? 선생님이 저래 쪼매가지고 뭐 얼마나 많이 들었겠나? 배울 것이 있겠나?
옛날 보조스님이 금나라 순제의 아들 진각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금나라 천자의 등창병을 고쳐줌으로써 금나라 천자가 스님에게 “뭘 선문 하리까? 뭘 드리리까?”하니 “중이 뭐 필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돈이 필요합니까? 금이 필요합니까?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천자가 아들이 셋 있는데, 막내가 참 잘 났거든요. 잘 난 아들이 도인감입니다. 왕자의 기상과 고승의 기상은 같은 겁니다. 옛날 큰도인 하고, 왕하고 곡두하고 지혜도 어슷비슷 해. 그래서 ●왕자는 나라를 다스리느라고 번뇌 망상을 많이 끓이기 때문에 하위에 속하고, ●스님은 오직 보리도를 위해서 구도를 했기 때문에, 도를 깨달았기 때문에 빛이 나고 힘이 훨씬 더 세니까 왕 상으로 살지요. 스승 노릇을 하지요. 모든 것을 스님한테 자문 해가지고...
어쨌든 간에 금나라 천자 병을 고쳐줬으니까 등창병을 고쳐준 과거 인과 얘기가 있어. 그 얘기는 그만 두고... 기니까. 셋째 아들을 데려다 중 만들었으면 좋겠거든. 그래서 “내가 늙어가니까 상좌가 하나 필요한데, 큰아들은 태자니까 놔둬야 되고, 둘째아들은 후보로 놔둬야 되고, 막내아들은 뭐 합니까? 막내아들이나 주면 가져 갈 겁니다” 왕도 셋째 아들이 제일 잘 났거든...
태종이 양녕대군ㆍ효령대군ㆍ세종이 막내잖아. 세종이 제일 잘 났으니까 ‘세종에게 나중에 왕위를 줘야 되겠다’이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을 양녕대군이 알고 ●양녕이 일부러 미친 체 했잖아. 아주 놈팽이 노릇을 했잖아요. 담장도 넘어가지고 술도 먹고 대문도 발로 차고, 완전히 부랑배 행동을 했거든요. 그래서 태자에서 떨어졌거든... ●효령대군이 형님이 저 모양이니까 ‘혹시 나한테 넘어올런가?’ 싶어가지고 아주 얌전하게 행동을 하고 글을 부지런히 읽고 있으니까 양녕대군이 ‘야 이 눈치도 코치도 없는 놈아, 네한테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셋째한테 생각이 있는 그것을 몰라?’그렇게 말은 안하고, 그런 뜻으로 글 읽는 책상을 발로 걷어 차버렸거든. “야 이 눈치도 코치도 없는 놈아, 글만 읽으면 제일이냐?”이런 식으로...
그 소리에 알아듣고 중이 됐거든. 도봉산 망월사에 가서 떡~ 하니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양녕이 사냥을 하러 와가지고 토끼인지 노루인지 잡으러 쫓아서, 자기 동생이 있는 절로 후닥닥 거리고 들어오니까 “아이고 형님, 이런 살생하면 못 씁니다” 그러니까 껄껄껄 웃으며 “나는 살아서는 왕의 형이요, 죽어서는 부처의 형이라. 참 내가 복도 많은 사람!!!” 이라고 그랬다고 그러지요. 효령대군이 거기서 기도하다가 화신사리가 나타나가지고, 그 사리를 모신 곳이 사리가 파고다 공원에 모신 사리가 거기 사리라고 하잖아.
그와 같이 금나라 순제도 셋째 아들이 제일 잘 났기 때문에, 셋째 아들을 왕을 삼으려고 하는데, 스님이 셋째 아들을 달라고 하니 곤란하거든. “아이고 셋째 그거 철이 하나도 없는 것, 어떻게 그걸 데리고 가시겠습니까? 스님 속 썩입니다. 큰놈 데리고 가시지요”
“에이, 큰놈은 다 키워 놓은 걸 제가 어떻게 데려가겠습니까? 조그만 놈 데리고 가서 키우지” 할 수 있나요? 줬어요. 나이 한 여 남은 살 먹었어도 이놈이 왕자의 상으로 잘 났거든. 인물이 훨씬 잘 났거든. 송광사 국사전에 가운데가 보조스님이고, 바로 옆에 진각국사잖아. 보조스님보다 진각국사가 인물이 잘났잖아. 影만 봐도 그렇잖아.
10살짜리라도 키도 훨씬 크고 인물이 훤해. 스님 보니까 쪼매하니 쪼다같이 못났거든. 진각국사가 따라 나오다가 ‘아이구 제기랄, 저렇게 키도 쪼매한 스님한테 배울 것이 뭐 있겠나?’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스님이 알았어. “키 큰 사람 앞에 가라” 그러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그 다음부터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당체 스님 의심할 재주가 없지. 떡~ 송광사에 내려 와가지고, “3일 동안만 정신을 집중해서 흐트러지지 아니하면 견성성불을 할 수가 있다” 그 말을 꼭 믿고 그냥 3일동안을 앉아서 탁~ 정진해서 3일 만에 확철대오 해가지고 견성도인이 됐단 말입니다. 그래 지금 송광사에 삼일암이 있어요. 진각국사가 3일 만에 견성했다고 해서 삼일암.
輕薄想을 내지 말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말씀이, 4의법이란 것이 있어. 네 가지 의지 하는 것.
▲依法不依人하라. 법을 의지하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법을 볼 것이지 사람 모양을 봐서 좋으니 궂으니 판단 짓지 말라.
▲依智不依識하라. 智를 의지할 것이지, 지혜를 의지할 것이지 분별 식경. 아까 얘기한 識과 智. 식은 중생계요, 지라는 것은 진리의 세계요, 도의 세계입니다. 지혜를 성취하면 바로 보리이고, 식을 가지고 따지면 그것은 어리석은 중생세계입니다. 그러니까 범부와 성인의 차이가 智와 識. 그것 차이. 중생세계는 식의 놀음이고, 말하자면 성인의 세계는 지혜의 놀음이고. 지혜냐? 분별식이냐? 이것 차이. 그러니까 依智不依識하라. 지혜를 의지하지, 식을 의지하지 말라. 그 다음에
▲依意不依語하라. 뜻을 의지할 것이지, 말을 의지하지 말라. 말은 삐딱하게 할 수도 있거든. 말은 삐딱하게 해도 그것이 옳은 말일 수가 있다 말입니다. 예뻐서 삐딱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미워가지고 삐딱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잖아. “처먹고 뒈지라” 어디 처먹고 죽으라는 소리입니까? 그것이 예뻐서 많이 먹으라 소리잖아. 좀 과하게 하는 소리겠지만. 그러니까 말을 의지해가지고 죽으라고 했다고 이렇게 고집세우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것은 예뻐서 하는 소리지요. 그러니까 뜻을 의지할 것이지, 말을 의지하지 말라. 依意不依語하라. 그리고
▲依了義不依不了義하라. 了義가 있고, 不了義가 있거든. 그러니까 초등학교 국사책하고,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국사하고 대학에서 강의 듣는 국사하고, 국사는 같은 국사인데, 초등학교 국사는 了義국사는 아닙니다. 요의 학문은 아닙니다. 대학학문이 了義학문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같은 말이라도 끝까지 다 한 것... 완전 요달한, 그 뜻을 요달한, 진리의 세계를 완벽하게 말씀한 것을 ●요의라고 그러고, 불완전. 완벽하게 설해지지 않은 것을 ●不了義라 그러거든요. 뜻을 다 마치지 않은 것이다 이 말입니다. 과정 상태까지만 얘기한 것이지, 완전 끝까지 다 말씀한 것을 요의라고 하고요. 依了義언정 不依不了義하라.
대승법은 요의법문이고, 소승법은 불요의법문입니다. 그러니까 “살생하지 말라” 살생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소승의 교에서는 살생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살생만 아니해.
고기먹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했기 때문에
고기는 먹는다 이 겁니다. 이런 제기...
그것은 불요의법입니다.
대승법에서는 살생하지 말라 했으니까 고기도 먹지 말라. 살생하지 말라 했으니까 남의 속도 썩이지 말라. 남의 마음을 찌르지도 말라. 마음을 상하게 하지도 말라. 몸뚱이도 상해하지 말라. 원래는 殺生이 아니라 傷害거든. 정신적인 것을 상해하지 말고 육체적인 것도 상해하지 말라. 남의 마음을 상해하면 자기 마음도 상할 날이 올 것이고, 남의 몸을 때리면 자기도 두두려 맞을 일이 반드시 있게 된다! 이 겁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요의법문이고, 요의법문에 살생계고, 살생하지 말라는 소리는 고기는 먹어도 좋다. 남의 속 썩여도 좋다. 두두려 패는 정도는 좋다. 죽이지만 않으면 괜찮다. 죽지 않을 만치만 패라. 이거는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은 ●불요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依了義하고, 不依不了義하라. 요의 법에 의지하고 불요의법에 의지하지 말라. 이 4의법을 의지하라 그랬거든. 제일 첫째가 依法不依人이라. 법을 의지하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사람을 輕薄. 더군다나 主法人에 대해서 輕薄想을 내지 말라. 이 말입니다. 말솜씨가 좀 서툴다고 해서 ‘에이고 말도 더럽게도 할 줄 모르네. 젠장 맞으리 그런 말쯤은 나도 할 수 있겠네’한다던가. 그거 다 안 되는 소리다 이 겁니다.
어떤 사람이 친한 친구 잔칫집에 가는데, 친한 친구집이니까 바쁘고 해서 옷도 제대로 못 입고 그냥 보통 옷 입고 갔어. 갔더니만, 문지기가 못 들어가게 하거든. 당신 같은 사람 오는데 아니라고, 대감들만 오는데라고, 가라고, 가라고 안 가면 혼난다고... “이 집 주인하고 내가 절친한 친구”라고, “어허, 어디 거짓말 하느냐?”고 그런 사람이 이렇게 하고 올 턱이 있냐고 가라고 쫓겨났어. 쫓겨났지만, 문지기는 몰라서 그런 것이고 친구를 봐서, 관복을 떡~ 차려입고 비켯거라 섯거라 하고 들어가니까 “아이쿠 대감님 어서 오십시오” 하고 윗자리로 모십니다. 주안상을 받아놓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나”라는 사람은 여기 올 자격이 없는데, 들어오게 된 것은 다만 이 옷 덕택이다 이 겁니다. 옷 덕택으로 들어왔으니 먹는 것은 내가 먹을 것이 아니라 옷을 먹여야 될 것 아니냐? 술을 부어가지고서는 “옷 너나 먹어라” 옷에 부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겉모양만 보고 처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겉모양을 본다 하더라도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한 것이거든...
이 태조와 무학대사의 얘기가 있지? 둘이 친 하잖아. 오늘은 농담 좀 하자고 “아이고 대왕 무슨 농담을 하겠느냐?”고, “아이 탁 터놓고 농담 좀 합시다. 내가 먼저 할까요?”“하시오”
“스님 대가리가 꼭 소 붕알 같소”“아이고 대왕님 머리는 꼭 부처님 머리 같습니다”
그렇게 안 하기로 했지 않느냐? 고, 그래도 그런 걸 어떻게 하느냐? 고,
“스님 말하는 주둥이가 꼭 돼지주둥이 같소”“아이고 대왕님 입은 꼭 부처님 입 같습니다”에이 또 그런다고...
그래 무학스님이 한다는 소리가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것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것이라고 그랬다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이 태조가 한 방망이 단단히 맞은 셈이지.
그러니까 主法人에 輕薄想을 내지 말라. 이런 애기는 수도 없이 많지.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파계하고 난 뒤에 뒤웅박을 차고 거지대장 처럼 해가지고 털럭거리며 광명진언만 부르고, 모래 한 주먹 가지고 가는데, 경주 조금위에 영일에 가다 보니까, 놈팽이들이 고기를 많이 잡아가지고 냄비에다가 삶으면서 “야 이 파계승아, 파계했으니까 이거나 좀 처먹고 가라”고 이러거든. “그러지 뭐, 좀 먹자”하고 솥에다가 삶아놓은 고기를 다 먹어 버렸어. “먹으라니까 진짜 다 먹어 버렸네” “그렇게 아까우면 도로 내 놓지”도랑에 가자지고 궁둥이를 들고 똥을 화닥닥 싸니까 다 생고기가 나왔다고 그러지. “汝屎吾魚라. 그대들이 먹으면 똥이 되지만, 내가 먹으면 고기가 된다. 생고기가 된다” 그래 영일에 吾魚寺라는 절이 있어. 겉에 거지 옷을 입고 뒤웅박차고 거지형상을 했다고 해가지고, 법이 있는 것을 모르고 놀리다가 고기만 한 냄비 방생당했지. 이런 애기는 무수하게 있으니까... 主法人에 대해서 輕薄想한 생각을 내지 말라.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기는 그런 생각을 내지 말라.
● 因之於道에 有障하야
不能進修하리니 切須愼之어다.
, 그로 말미암아가지고 도에 장애가 있을 것 같으면 不能進修하리니, 닦을 수가 없을 것이니
切須愼之어다. 모름지기 삼가할 것이니라. 역시 똑 같은 소리입니다.
●論에 云 如人이 夜行에 罪人이 執炬當路어든
論에, 논에 이르기를 云, 如人이 夜行에,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는데 罪人이 執炬當路어든, 죄진 사람이, 허물 있는 사람이 횃불을 들고 길에 떡 나왔거든... 죄인이라고 할 때는, 죄인은 몇 가지가 있을 수 있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 중생은 기독교에서 보면 죄인 아닌 사람이 없잖아. 기독교에서 볼 적에는 다 죄인이지. 원죄라 하든가 뭐라 하든가 다 죄인이지. 아담과 이브의 후예들이니까 다 죄인이잖아. 그런데 죄인이 죄를 지어서 죄인도 있고, 죄를 안 지어서도, 자기가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더라도, 자기 부모가 돌아가시면 “아~ 저는 죄인이올시다” 본래 그러는 겁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喪을 만난 사람은 죄인이라고 해가지고, 지팡이 짚고 큰 삿갓 쓰고 자기가 죄인이니까 부끄러워서 하늘을 볼 수 없다! 이 겁니다. 그래서 죄인이라고 하는 수 도 있고, 죄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어. 죄를 지어서 죄인일 수도 있고 그런데, 그 죄인이 어쨌든 간에 안 좋은 그런 사람이, 執炬當路어든, 횃불을 들고 떡~ 길에 나왔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밉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밉다고 해가지고
●若以人惡故로 했는데, 人惡악故로 하지 않고, 내가 어릴 때 우리 스님한테 배울 적에는 人惡오故로 라고 배웠어. 그러니까 惡이라고 하지 않고, 惡(오)라고 배웠어. 그 사람이 밉다 이 말입니다. 사람이 왜 밉나요?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소리가 있잖아.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거든. 사람을 미워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김으로써 결국은 자기한테로 돌아온다 이것이거든. 그래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이것이 중요한 애기들입니다. 사람을 미워한 연고로, 사람이 미운 연고로, 그 사람이 밉기 때문에, 꼬라지도 보기 싫기 때문에
●不受光明 그 사람이 들고 있는 횃불도 보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 사람 횃불 불빛도 안 보려고 눈 딱 감고 들어간다 이 말입니다. 不受光明, 그 광명을 받지 않는다면
●墮坑落塹去矣라.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개천에 빠질 수밖에 더 있느냐? 구렁창에 뚝 떨어질 수도 있고, 눈 감고 가다가 개천에 푹 빠질 수도 있고. 塹壕. 군대에서 참호 판다고 그러잖아. 일부러 구덩이 파놓은 것을 참호라고 그래. 개천이라는 뜻이지. 墮坑落塹去矣니라.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개천에 빠질 것이다. 그런 말씀이 논어에 있다! 이 말입니다.
●聞法之次에 如履薄氷하야
聞法之次에, 법문을 들을 때에는 如履薄氷하야,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라.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라! 소리는 詩經. 속가에서도 있는 말. 어쨌든 조심조심하라는 말이지. 얇은 얼음을 쾅쾅 밟으면 깨질 것 아닙니까? 깨져서 빠질 테니까 살금살금, 살금살금 아주 조심조심하라
●必須側耳目 而 聽玄音하며, 반드시, 모름지기 必須. 必ㆍ須라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須자도 반드시 必자와 같은 겁니다. 모름지기라는 말도 반드시라는 말입니다. 필수라는 것은 숙어입니다. 側耳目. 耳目이라는 것이 숙어이고. 側은 기울인다는 뜻이니까 耳目을 기울여서, 귀와 눈을 기울여서, 아주 정신, 정신 차려서 聽玄音이라. 玄音 = 깊은 말씀. 검은 소리라는 말인데 검은 것은 깊다는 뜻입니다. 玄玄하다. 이치가 아주 깊다는 뜻입니다. 깊은 법문소리를 들을 것이며,그렇게 해서 법문 듣는 그 장소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숨소리 하나도 아주 조용해가지고 법문을 듣고 있었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일심으로 법문을 듣다가
●肅情塵而賞幽致라가, 肅情塵而. 肅이라는 것은 엄숙하다 이 말입니다. 그 장소가 아주 정숙해. 정진이라고 할 적에는 六情과 六塵을 말합니다. 여섯 가지 情. 六情이라는 것은 六入이라고도 하는데, 眼耳鼻舌身意. 여섯가지 생각. 여섯가지 알음알이, 情이라는 말이지요. 이것을 六根이라고도 하고, 六入이라고도 합니다. 六根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뿌리가 되어가지고, 귀에 소리가 들어가고ㆍ눈에 색깔이 들어가고ㆍ코에 냄새가 들어가고ㆍ입으로 맛보게 되고ㆍ몸뚱이로 감촉을 하게 되고ㆍ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이 말이지.
‘아~’는 눈 眼자를 표시하는 겁니다. 사람이 섰는데 눈으로 척 본다! 이 말입니다. ‘어~’ 는 사람이 섰는데 소리가 탁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鼻는 ‘오’거든요. 舌은, ‘우’입니다. 목구멍에서 혓바닥이 나오는 겁니다.
제 22 강
身하면 ‘으’거든요. 사람 몸은 게을러서 자빠져있기를 좋아해. 드러눕기를 좋아해. 意하면 ‘이’거든‘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인데, 생각하는 것이 오똑하게 거 있어야 되는데, 생각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자꾸 변덕을 부린다는 뜻이지’
“ 아ㆍ어ㆍ오ㆍ우ㆍ으ㆍ이” 眼耳鼻舌身意. 그래 六入이라고 그랬어. 여섯 가지가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六入이 六塵을 상대 하거든. 色聲香味觸法 육진을 상대해서 나가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건데, 塵을 境이라고도 합니다. 여섯 가지 경계라 이 말... 붉은빛ㆍ노란빛ㆍ예쁘고ㆍ밉고ㆍ이런 경계가 눈으로 보인다! 이 말입니다. 眼根이 육경을 상대한다 이 말입니다. 境을 상대한다. 그러니까 귀도 좋은 소리ㆍ나쁜 소리 듣잖아. 聲塵을 육진이라고도 하고 육경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塵이라고 했지요. 六根을 精이라고 하듯이...
眼耳鼻舌身意가 色聲香味觸法을 상대할 때에, 상대하면 그것을 12處라고 그래. 합치면 12처잖아. 열 두 곳이라 이 말입니다. 그 때에 거기에서 뭐가 생긴다 이 말입니다. 眼根이 色塵을 상대할 때에 = 色境을 상대할 때에 ●眼識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좋다ㆍ궂다ㆍ가져야되겠다ㆍ버려야되겠다 하는 이런 분별식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 귀로 들어서도 그렇고, 안이비설신의, 역시 ●6식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內六根ㆍ外六塵ㆍ中六識. 그럽니다. ●內六根 = 안으로 여섯 가지 뿌리. ●外六塵 = 밖으로 여섯 가지 티끌, 먼지. ●中六識 = 그 가운데에서 여섯 가지 분별식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18계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6입ㆍ12처ㆍ18계. 그래서 乃至無意識界 그러잖아요. 乃至無意識界는 18계를 말합니다. 제일 처음에 무안이비설신의는 ●6입을 말하는 것이고, 무색성향미촉법은 ●6진을 말하는 것이고, 합치면 12처지요? 내지무의식계. 그럴 것 같으면 ●18계를 말하는 겁니다. 반야심경에 그렇게 얘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精과 塵. 그것뿐이 아니라, 내지 말하자면 18계까지가 다 조용히, 어쨌든지 지금 법문 듣는 찰라니까 딴 생각이 없다 이 말입니다. 딴 생각 했으면 무슨 소리 했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을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딴 생각이 없이 오직법문만 골똘하게 들었기 때문에 肅情塵이 되는 것이거든. 법문 들으면서 생각이 남대문 시장으로 그냥 동대문 시장으로 어디로 돌아다녀 보세요.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듣기는 들었어도 안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여기서는 골똘하게 耳目을 기울여서 그 법문을 들었기 때문에 정숙한 속에서 6정 6근이, 정숙한 그 가운데서 깊은 이치만을 맡았다는 겁니다.
致라는 것은 이치라는 치자입니다. 理자가 빠졌지만 賞幽理致. 賞幽玄理致 이렇게 해야 제대로 뜻이 됩니다. 幽자는 유현하다. 아주 깊고 깊다는 뜻이고, 심오하다는 뜻입니다. 致는 이치라는 뜻입니다. 유현한 이치ㆍ깊은 진리. 이치라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것이니까. 그런 것을 다 감화되고 있었다가, 법회가 다 끝나고 난 뒤에, 법문이 끝나고 난 뒤에
●下堂後에 黙坐觀之호대
下堂後에, 설법당을 내려왔다! 이 겁니다. 자기 방으로, 대중처소로, 어쨌든 평상거처로 내려온 후에, 堂은 설법 당 이거든. 법당에서 내려온 뒤에, 堂 할 적에도 설법당이 있고, 불당이 있고, 이것이 다 각각 달라. 이것을 우리나라는 그냥 부처님 모신데는 다 법당이라고 그러는데, 사실은 잘못 된 겁니다. ●부처님 모신데는 원래가 佛堂입니다. 부처님 모신데는 불당이라고도 하고, 佛殿이고, 大雄殿. 부처님 모신 궁전입니다. ●법당은 설법만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겸용해서 많이 쓰기 때문에... 겸용해서 많이 쓰기 때문에 그냥 법당ㆍ법당. 그러는데 그것을 원칙적으로는 분별할 줄 알아야지요.
그래서 송광사 같은데 가면 법당에 부처님 안 모셨습니다. 장경만 모셔놓고 부처님 없지. 본래는 장경도 없어. 장경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법상입니다. 큰스님 올라앉아 가지고... 보조스님 그 법상에 올라앉아 돌아가셨잖아. 법상에서 떡~ 설법 하고 나서 주장자 짚고 돌아가셨잖아. 그래 “나는 지금 열반하고자 하노라” 법상에 앉아 떡~ 주장자를 짚고,
“나는 지금 열반하고자 하노라.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한 중이 턱~ 나와서 절을 하고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의 열반 하시는 일과 금일 불일보조가 열반 하시는 일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이렇게 물었거든. “이 눔의 자식아, 너는 평생 같고 다른 것, 그것만 배웠느냐?” 그러니까 할 말이 없어서 돌아앉고 나니까 게송을 읊었거든...
●波亂에 月難現이요. 파도가 어지러우면 달이 나타나기가 어렵고,
●室深에 燈更光更이니라. 방이 깊으면 등불 빛은 더욱 밝으리라.
●權君하노니 整心器하야,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마음 그릇을 잘 정돈하여
●勿傾甘露漿이어다. 감로의 장물을, 甘露漿이라는 것은 불생불멸하는 그런 보약입니다. 감로의 장물, 감로수 한잔만 마시면 죽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아무루타 = 不死水 = 죽지 않는 물이 감로수입니다. 勿傾甘露漿이어다. 감로의 장물을 쏟아버리지 말라. 잘 보존해서 감로의 장물을 먹고 생사를 초탈해라!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열반이지. 생사를 초탈해하라는 말입니다.
그 법문 끝에 주장자를 탁~ 짚고
그냥 열반하셨어. 참 멋있지?
평생 중노릇을 하면 회향을 그렇게 해야 되는데...
제가 그것이 큰 걱정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좀 안 만나고... 내가 살려면 10년 밖에 안 남았는데, 10년 동안을 어쨌든지 간에 부지런히 정진해서 그것하고 비슷하게 하고 가야 될 텐데, 계속 이렇게 살면서 분별하고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말입니다.
●下堂後에 黙坐觀之호대
법당에서 내려와 가지고 黙坐觀之호대, 묵묵히 앉아서 관해보거든. 이 법문은 언어문자를 떠난 것이기 때문에, 언어문자라는 것은 매개체가 돼가지고, 언어문자가 매개가 되어서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만 되는 것이거든. 아까 얘기 했듯이 중생의 배움은, 범부 중생들의 배움은 귀로 들어가서 입으로 나오는 것... 성자들의 배움은 귀로 들어가서 입으로 나오지 않고,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간대. 마음속으로 들어 가가지고 자기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그것이 말하자면 수행의 資糧이... 양식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그것이 법문 듣는 진짜 자세지요.
黙坐觀之라. 묵묵히 앉아 관해보는 겁니다. 생각해본다 이 말입니다. 觀이라는 것은 이것은 見이 아니고, 觀이거든요. ●見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 투시. 보는 것이고 // ●이건 =look이고. 觀이라는 것은 관세음보살ㆍ관자재보살이라는 뜻입니다. 관자재보살은 觀이 自在해버렸다 이 말.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제 마음대로 된다 이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 마음 내 마음 대로 된다! 이 말입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돼버리면 걱정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것이 관지입니다.
이 黙坐觀之에는 원래 세 가지 내지 네 가지가 있는데, 제일 첫째는
●親近善友하고, 선지식을 친근해야만 법문을 들을 수 있으니까, 좋은 스님을, 선지식을 만나야 되고, 다음에는
●親聞正法하고, 부처님의 정법을 친히 들어야하고, 들었으면
●思惟其意하고, 그 뜻을 잘 생각하고, 사유해야 된다는 말이지요. 생각해봐야 觀之입니다. 그래서 옳다고 생각했으면 그대로 실행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如說修行이라. 그 말씀과 같이 수행을 해야 된다 이 겁니다. 聞ㆍ思ㆍ修. 듣고 생각하고 닦고, 이것을 ▲三慧라고 하고, 親近善友까지 하면 ▲四慧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黙坐觀之입니다. 묵묵히 앉아서 생각해본다. 이 말인데
이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운동이든지ㆍ기술이든지ㆍ학교가서 공부하는 것이든지ㆍ뭐든지 복습을 잘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배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잖아. 배워서 알기만 하고 복습을 하지 아니하면 90%가 없어져 버린대.
왜 없어지느냐? 이 기억이라는 것이, 자꾸 망각이라는 먼지와 눈이 쌓이거든. 망상 때문에. 망상이 눈이고, 먼지인 것. 땅 바닥에다 큰 大자를 써 놨다고 합시다. 눈이나 먼지가 와서 덮어버리면 금방 없어져 버리잖아. 덮였지만 그 밑에 글자가 있기는 있어. 눈이 오거나 말거나 또 쓰거든. 또 쓰고ㆍ또 쓰고ㆍ또 쓰고ㆍ또 쓰고ㆍ또 쓰고 한 100번만 써 놓으면, 눈이 제법 많이 와도 그 위에 큰大자가 나타나잖아. 완전히 내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내 것이 된 것이 안 것이지, 내 것이 되지 아니하면 안 것이 아닙니다.
안다는 것은 내 것이 된다는 뜻이거든요.
黙坐觀之라. 묵묵히 앉아서 생각해 관해본다는 것입니다.
●如有所疑어든 博問先覺하야
그래가지고 如有所疑어든, 그래도 의심되는 바가 있거든,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던가? 그거 잘 모르겠네. 이해가 잘 안 되네’ 의심되는 바가 있거든 博問先覺하야, 널리 선각들에게 물으라 이 말입니다. 그 법사스님한테 가서 물을 수 있으면 좋고, 그 스님한테 못 물을 형편이면, 우리 선배들한테, 나 보다 선배들한테 물으라! 이 말입니다. 묻는 것이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아닙니다. 不恥下問이라. 아랫사람들한테라도 물으라! 이 겁니다. 아랫사람한테 묻는 것이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언제든지 많이 물을 줄 아는 사람, 이것이 학문하는 사람 자세다! 이 말입니다.
學問이라고 그래서 문 門가 아니고, 물을 問자 잖아.
자꾸 물어봐야 되는 겁니다.
博問先覺하며, 널리 선각들에게 물을 것이며,
아는 사람들에게 물을 것이다.
●夕惕朝詢하야 不濫絲髮이어다.
저녁에 두려워하고 아침에 물어서 絲髮도 넘치지 말게, 실 터럭만치도 넘치지 말라. 저녁에 두려워하라. ‘아, 오늘도 하루해가 지나갔구나’ 이렇게 저녁때가 되거든 두려워하라는 말은, 옛날 사람 공부할 때, 하루해가 지나가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있나. 옛날 사람 공부할 때 하루해가 지나가면, 오늘 하루해도 지나가 버리고 내가 이룬 것은 없고, 내가 해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그야말로 흘러간 물은 다시 말하자면 떠먹을 수도 없고 諸行은 無常해서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 겁니다.
‘벌써 가버렸구나!’그리고 ‘내 공부는 진취가 없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하고, 옛날 스님들은 땅을 치고 울었대요. 그래서 저녁이면 항상 세상이 무상한 것을 두려워하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밤새 안녕하십니까?”있잖아요. 밤새 죽을런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저녁이면 항상 두려워하고, 아침에는 또 물으라! 이 말입니다. 또 묻고 공부하라! 이 말입니다. 공자님도 朝聞道면 夕死도 可而라.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어도 참 그야말로 가하다. 좋다. 도를 듣는다는 소리는 아침에 도를 깨친다!는 소리입니다. 공자님도 다 깨쳤어요. 안회도 다 깨치고. 공자님이 三月을 放味라 그랬거든요. 석 달 동안을 맛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 단 맛인지 쓴 맛인지 맛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고 그래. 그것이 無心三昧에 들어갔다는 소리입니다. 無心三昧에 한 번 들어가지 아니 하면 ▲도를 깨치지 못 하는 겁니다.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자가 한 번 되려면 삼매 속에 들어가 버려야 돼. 자기 연구 논문에 대해서, 자기 연구 과정에 대해서 완전히 삼매에 들어가 가지고, 변소에 앉아서 하룻밤을 새워버린다든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ㆍ세상 물정 모르고ㆍ거기에 한 번 푹 빠져봐야 된다고. 그런 삼매 속에 한 번 들어가야 돼.
석남사 월하스님이라는 이는 반석에다 글씨를 쓰는데 쓰다가 보니까 배가 고프더랍니다. 반석에다 글씨를 어떻게 쓰느냐하면, 옛날에는 숯을 물통에 찧어서 숯 물을 만들어요. 칡으로 찧어서 붓을 만들어서 숯 물에 푹 찍어서 옥류동 하얀 반석위에 쓰거든. 다 쓰고 나서 잘 됐나 못 됐나 감정해고서는 물로 싹 씻어버리면, 저쪽 마른데 가서 또 쓰고, 이쪽 마른데 와서 또 쓰고 글씨를 그렇게 쓰는 겁니다. 습작을 하는 겁니다. 익히는 겁니다. 쓰다가, 쓰다가 보니까...
그날은 참 신바람나게 잘 써 지거든요. 잘 써 지고 해서 잘 썼는데 쓰다보니 배가 고픈 생각이 슬~ 들어서 ‘이제 그만 쓸까? 그만 쓰고 가서 자야 되겠다’날이 새버렸어. 새벽 예불 시간이 지나가 버렸어. 천지가 캄캄한 그 오밤중에 어떻게 썼는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筆端生光이라. 붓 끝에서 광명이 나가지고 그렇게 쓴 겁니다. 그것이 삼매의 경지입니다.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있거든. 그러니까 이렇게 착실하게 해서 그런 고비를 넘어가야지 이렇게 노력은 안 하고, 슬금슬쩍, 그냥 얼렁뚱땅해가지고, 엉터리로 절대 생각하지 말라! 이 겁니다. 그래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용상지덕이라는 말이... 龍象榜이라고 하지? 望龍象德하라!는 발심에 있는데, 龍象이라는 말은, ▲▲▲龍은 물속에서도 살고ㆍ땅에서도 살고ㆍ허공에서도 산다고 그러거든. 용왕궁이 물속에 있지만, 땅에서도 걸어 다닐 수 있고 양서동물이잖아. 양서동물이 아니라 三棲動物이지. 허공에도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만큼 자유자재하다는 뜻이지. 육 해 공군을 다 겸했으니까. 물속에서도 살고ㆍ뭍에서도 살고ㆍ허공에서도 날아다니니까 자유자재잖아. 지금 아무리 좋은 병기라도 그런 것 없지? 물로 가고 육지로 가는 것은 있지. 지금 세 가지 다 하는 것은 없잖아. 용은 그렇게 세 가지를 다 한다는 거. 그래서 자유자재 할 뿐만이 아니라, 허공에서 구름을 일으켜서 조화를 부려서 여의주를 가지고 비를 뿌리거든. 대지의 애타는 모든 생물들을 흐뭇하게 윤택하게 물을 적셔준다! 이 말이야. 이것이 대선지식의 설법감화로 말미암아서 모든 중생의 마음 밭에다가, 心田에다가 감로의 아무루타 = 감로의 법비를 내려서, 法雨를 내려서 모든 중생의 심전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뜻. 선지식을 말하는 것이고,
▲▲▲象. 코끼리는 강을 건너갈 때, 얍삭하게 不濫絲髮입니다. 얍삭하게 휘딱 가지를 않아. 보통 여우ㆍ너구리ㆍ토끼등 이런 조그마한 짐승들은 강물에 허부적ㆍ허부적ㆍ허부적ㆍ허부적해가지고 개헤엄으로 건너가는데, 큰 강물에는 못 건너가. 가다가 중간에 가서 다 빠져 죽어버립니다. 조그마한 물이나 건너가지, 큰 강물은 건너가지 못하고 다 빠져 죽거든. 그런데 코끼리는 그렇게 들어가는 일이 없어. 등치가 커서도 그렇지만, 함부로 그렇게 들어갈 생각도 없고... 여우란 놈은 도망가면서 뒤를 열두 번도 더 쳐다본다거든. 흘끔흘끔 돌아다는데, 코끼리는 목이 없으니까 돌아다보지도 않아. 앞만 보고 그냥 꾸준히 갈 뿐입니다. 앞만 보고 갈 뿐. 뒤 돌아다보는 일도 없고, 옆 돌아다보는 일도 없고 가기만 가.
가는데 강이 닥치면 함부로 들어가지를 않아. 들어가지를 않고, 코로 쭉~ 재어보는 겁니다. 바닥에 안 닿으면 함부로 들어갈 생각을 않아. 상류를 향해서 자꾸 올라가. 올라가서 낮은데 가서 코를 또 대보고,‘건너가도 되겠는가?’ 작은 눈으로 딱~ 살펴보고서는 발 세개는 딱 버티고 한 발만 디뎌봅니다. 그 밑에 수렁인가 아닌가 하고. 수렁이면 빠지잖아. 단단히 딱딱하면 그때 발을 옮겨놓는 겁니다. 그렇게 상류를 찾아서 강을 건너간다는 겁니다. 코끼리가 강을 건너 가는 듯 實踐實探을 한다 이 겁니다. 실력으로, 실천수행으로 말미암아 가지고 實踐參悟라. 실다이 참구해서 실다이 깨닫는 것이지, 실다이 참구도 아니하고 얼렁뚱땅 다 아는 것 같이 그렇게 처리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코끼리는 아주 성실한 학자. 성실한 학인들이 착실하게 공부해가지고 그 공부의 깊이를 다져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龍은 선지식. ▲코끼리는 실다운 학인. 이것은 큰스님과 작은스님. 아주 실다운 스님들. 이런 것이 구도자의 자세를 龍象之德이라고 그래요. 용상의 덕이라. 이것이 ●不濫絲髮이라. 絲髮이라고 할 적에는 실이고 털인데, 실이나 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니까 絲髮이라는 것은 숙어입니다. 실과 털이라는 것은, 실터럭 만큼도 넘치지 말라는 이 말입니다. 그냥 딱 밀착시켜야지 공중에 띄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夕惕朝詢하야 不濫絲髮이어다.
●如是라야 乃可能生正信하야 以道爲懷者歟인저
如是라야, 이와 같이 해야사, 이렇게 해야만 乃可能生正信하야 以道爲懷者歟인저, 이에 가히 정신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이래야 참 올바른 신심이 생겨요.
다른 종교는 다 신앙이지만, 불교는 ▲신앙이 아니고 ▲신심이거든요. 불교는, ▲신앙은 入門이고, 불교의 문에 들어오기 위해서 신앙이고, 이를테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 약 먹이기 위해서 사탕 먹이는 겁니다. 그와 같이 기도라고 하는 것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소원성취가 돼야 불문에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그래서 불문에 들어오면 신앙에 있지 않고, ▲신심에 있다 이 말입니다. 부처에 의지하지 말고, 자기 부처를 // 중생을 위한다기 보다도 자성중생을ㆍ자성불도를ㆍ자성법문을, // 四弘誓願이 있잖아. 自道自修하여야 他度他受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 이것이 더 중요한 겁니다. 이것이 正信이거든요. 바른 신심입니다.
안 그러면, 약한 신심가지고 중생 제도한다고 해가지고, 중생 교화가 아니라 중생 동화되기가 쉬운 것이니까. 자칫 잘못하면 동화되기가 쉬우니까 먼저 正信부터 해야 된다 그랬거든.
이렇게 해서 되는 사람은 以道爲懷者歟인저, 도로써 懷抱가 돼버린다! 완전히 그냥 속 알맹이가, 도로써 속이 꽉 차는 사람이 돼 버린다! 이 겁니다. 껍데기만 도가 아니고 속 까지 그냥... 껍데기만 출가가 아니라 속 까지 출가가 돼버린다 이 말입니다. 心出家 身出家. 그러니까 心身이 俱出家지?
▲身出家心不出家. 몸은 출가했어도 마음이 출가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그 반대로
▲心出家身不出家도 있지요. 몸은 출가 못 했지만, 마음은 벌써 출가했다고. 그리고
▲心身이 俱出家. 몸과 마음이 함께 다 같이 출가한 사람도 있고.
▲心身俱不出家. 몸과 마음이 다 출가 못한 중생들도 있고요.
그러니까 출在俗家, 그것보다도 出煩惱家하야, 번뇌의 집을 나와서 出三界家라. 삼계의 화택을 벗어나야 眞出家라. 이것이 진짜 출가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以道爲懷者라. 도로써 회포를 하는 자. 懷抱. 懷抱라는 건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 완전히 가슴속에 품고 있고, 버릴 수도 없고 꿈에도 그냥...
以道로 爲懷者歟인댄, 도로써 회포 하는 자가 될 것 인댄, 세상 사람들은 도로써 회포 할 수가 없거든. 돈으로 회포하지 도로써 회포 할 수가 없거든. 돈 벌어야 살기 때문에 “이돈으로 위회자여인저” 돈으로써 회포하는 자가 될 것 인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겠나? “이돈으로 위회자여인저” 돈으로써 회포 하는 자니라. 어쨌든 간에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이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는 취해야 돼. 그런데 우리 출가한 사람, 머리 깎은 사람은 의당히 ▲도가 앞서가는, ▲돈은 뒤따라와. 돈이 많이 뒤따라오지는 않지만, 내 도 있는 것만큼 따라와.
어떤 스님이, 돈을 몇 백억가진 신도가 있는데, 수도원을 만들어서 다 해준다!고 해놓고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와서 궁시렁, 궁시렁해. 저의 도반 스님인데... “내 도하고, 그 사람 몇 백억 돈하고 어떤 것이 긴가 짧은가 비교를 해 보라. 내 도가 더 높으면 그 돈이 흡수 될 것이고, 내 도가 작고 그 사람 돈이 많으면---> 내 도가 그냥 거기에 흡수돼서 지배를 받을 테니까... 함부로 가까이 아니 하는 것이 더 좋지. 창피 당하지 말고 도를 더 키우는 것이 안 맞나?”이랬더니, 가만히 듣더니 “그 말도 일리가 있네” 以道로 爲懷者歟인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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