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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랄까... 표현력의 한계를 느끼는거야 하루이틀일이 아니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는 충격과 공포라는 말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네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은... 영화에 대해 한 껏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스포가 될 부분이 너무 많다, 라는 점 때문이랄까요... 영화를 같이 보고 나서 이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상황일거 같지만... 지금 같이 본 동생넘은 재밌게 봤다면서도 별로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거 같지가 않아서리...--
스포를 최대한 피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최대한 한다라는 것은 영화에 대해 어지간히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써 본,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쉽게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저는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영화를 너무 인상깊게 본지라, 할 수 있는 한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이 감흥을 나누지 않고서는 이 밤이, 아니 그 안개가 걷힐거 같지가 않아서... 작품의 배경은 미국북동부의 메인주, 캐나다와 접경하며, 미국의 꼬리? 마냥 맨 끝으로 삐쳐나온 가장 구석진 곳, 변경마을입니다. 영화의 분위기가 분위기여서인지, 일부러 한적한 변경을 택한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곳의 호숫가 마을 롱레이크에, 밤새 거친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폭풍우로, 마을에 그렇게까지 큰 피해가 오진 않았지만, 건물들과 시설 여럿이 부서졌고, 특히
"전력과 통신"
이 두절됩니다. 잘 짜여진 추리나 스릴러에서 기본은 "고립된 상황" 을 유도하는 것인 경우가 많고, 이 전력과 통신의 두절을 통해 마을은 완전한 고립에 빠질 조건을 충분히 갖추게 되는거죠. 사실, 전력과 통신 + 이번 녹조사태로 드러난 수도의 공급이란 부분은 현대사회가 어떠한 시스템하에 돌아간다는 것이라고 할 때, 그 시스템의 "뼈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핵심중의 핵심이죠. 살이 다 떨어져나가도 뼈만 있으면 서 있을수 있듯이... 물론 살이 없이 뼈만 있어봐야 의미도 없긴 하지만...-- 다만, 이 작품은 상당한 통찰을 담고 있긴 합니다만, 그러한 현대사회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주 인 것은 아니랄 수 있기에, 이 부분은 저 개인의 흥미포인트 정도? 로서 스쳐지나가면 될테지만...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영화의 제목(mist)인 안개가 들이닥칩니다. 물론, 안개만 들이치면, 에이 뭐야~ 하고 전조등 키고 조심조심 가면 그만이죠. 그러나, 그 안개속에서 무언가가 사람들을 공격해요. 폭풍우로 전기도 통신도 끊긴 상황에서, 혹시나 몰라 먹을 것을 구하러, 혹은 폭풍우로 파손된 집이나 시설을 수리할 자재를 사러 대형마트에 왔던 사람들은 안개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갇힙니다. 물론 전기도 끊기고 통신도 끊긴상황에서.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습격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하나하나 죽어나가고... 그리고, 이 영화가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그 와중에서의 사람들의 - 알 수 없는 위협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들이 펼쳐지죠.
창작물에 있어, 아니 꼭 창작물이 아니라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발생한 문제에 대해 해결을 해 나가는 것이되... 발생한 문제라는 상황을, 그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이 대응하면서 해결을 시도하는 것, 그 과정이 이야기라는 것의 전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문제와 그에 직면한 사람 - 주체(사람이 아닌것도 있겠죠... 인어공주라던가... 슈렉이라던가... 라이온킹이라던가...)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문제와 주체간의 관계가 어떻게 주어지느냐(혹은 해석되느냐)가 이야기를 즐기는 포인트가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주 간단한 4분법으로 주체도 강하고 문제도 강하다면, 그것은 대개 역사적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대통령선거라던가? 반대로 주체도 약하고 문제도 약하다면 그것은 일상적 사건일 경우가 많겠죠. 이를테면 제 컴퓨터가 고장나서, 인터넷좀 할라고 동생집에 피난온 지금 저의 상황...(위로좀... 잉잉~~) 그리고, 대개의 극적인 이야기들은 주체와 문제간의 불균형이 전제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주체가 강하고 문제가 약한 상황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입하여 지켜보는 주체가 사람(에 준하는 것)인 상황에서 극적인 측면이 없기 때문에 창작물에서 그런 구도가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주체가 초인적 능력을 가지면, 상황이 뭔가 복잡해 그 능력을 마음껏 쓸 수 없거나, 상황도 골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겠
죠. 글구보니 상황은 시시한데 주체만 엄청난 능력을 가진 경우를 찾아볼 수 있을런지... 굳이 들자면 헐리우드 액션영화?)
그렇기에 거의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다루는 갈등은 주체는 약하지만 문제는 강한경우일 것입니다. 대개의 창작물이 초반부를 인물성격 묘사에 할애하고 그게 끝나면 상황의 엄혹함을 드러내는데 할애하는 것은 그래서일테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가 그 이야기가 잘 된 이야기가 될지 망한 이야기가 될지를 드러내는 부분일테지만...
미스트는 좀 다릅니다. 이 정도면 스포는 아니리라 생각하는데... 상황은 불가항력입니다. 해결불가능, 적어도 극의 등장인물들로는 해결불가능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해결불가능에 이르러서... 주체는 해체됩니다. 즉, 해결불가능한 상황앞에 주체가 부재해진다는 것이죠. 물론 주인공 - 토머스 제인이 열연한 데이빗 드레이턴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데이빗또한 상황에 농락당하다가... 또다시 표현이 옹색해지는데, '아무것도 아닌채'로 결말을 맞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철학적이긴 하지만 철학하자고 만든 예술영화가 아니기에, 그는 분명히 주동인물로서의 면모를 여러번 보이지만, 광신자 카모디 부인이든, 현명한 조력자이자 명사수 올리 이든 누구의 시선을 따라가더라도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것만은 아닙니다.
해결불가능한 - 주어진 상황앞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공통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필사적으로들 해 나갈 뿐이에요. 그러나 그들이 최선이라고 믿고 하는 행동은, 아니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는 행동들은 결코 주체적 결단이 되지 못합니다. 상황에 떠밀려,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발버둥 도주에 지나지 않게 되죠. 분명 극중에서 가장 용기있고, 가장 적극적인 데이빗은 여러 도전들을 해결하지만... 이 영화를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말 그대로 엄청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충격을 거의 확실히 받게 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의 그의 결단 때문(아, 이 이야기가 왠지 눈치 빠른 분들에게는 스포가 될 거 같은 느낌...)에 결국 이미 말씀드린대로 아무것도 아닌채로, 아니 아 그 뭐냐... 진짜 표현력 후달리는데 하여튼 그런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 영화가 충분히 스릴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오락영화가 될 수 있는것은 그 과정에서
"희망을 줬다, 뺐었다" 하는게 너무 절묘하기 때문이에요. 영화를 보고 감동에 젖어서 영화평들을 몇개 찾아봤는데, 이야기의 구조를
위기 - 안정 - 위기
의 반복과 연속으로 설명하신 분이 있더군요. 말 그대롭니다. 장면하나 설명하는 정도는 스포가 아니니 간단히만 말하자면
희망과 절망, 안정과 위기, 결단과 망설임이 엇갈리는 장면으로 주인공과 그 일행이 자동차를 타고 마트를 떠나가는 장면을 꼽고 싶습니다. 지금 돌아보건대 제게는 그 장면이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영화를 보던 그 당시에도 그렇고, 보고 난 지금도 그래요. 그러나, 그 의미는 영화를 볼 때와 보고 나서가 완연히 달라집니다. 이건 보시면 아실 듯...--
오락영화가 될 수 있다고는 했지만, 오락영화로서 결코 끝날 수 없는 미스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네이버부터 각종 블로그까지 나름대로 뒤져봤는데... 상당히 많은 평자가
"뭐 이런 개같은 결말이 다 있냐"
라며 불쾌해했습니다. 물론 저같이 극찬의 칭송을 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까 놓고 말해 호불호가 갈린다고나 할까요? 그렇기에 저의 추천으로 보고 나서 돌던지신다면 기꺼이 감수해야겠습니다만서두...--
그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것은 계속 이야기해 오고 있는 연장선상에서,
'나란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 - 절대적으로 나의 뜻이 아닌 흐름에 언제고 휩싸일 수 있다는 것, 최선을 다했는데 그것이 최악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을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겠죠.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남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바로 당신 - 일 수 있는"
모습이야말로 불편한 진실 그 자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은 옳고 그름에 대하여 항상 -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의식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끝에 그는
"결정"
을 내리고 살아가며, 그 결정들의 연속으로 "구성" 된 자신에 대한 "믿음" 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실 나의 믿음이라는 것, 믿음이 있기까지의 결정이라는 것,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판단이라는 것, 그 판단이 시발로서의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할 수 있고, 얼마나 허약할 수 있는가 를 보여줌으로서,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의
"자기에 대한 믿음을 흔들리게"
까지 합니다. 물론 그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거기선 그러지 말아야지' ' 아이쿠 저 븅신 또 바보짓하네'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 그들이 - '이입의 대상으로서 자기의 대체가 된' 데이빗과 그들이 잘못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저 자신 예외는 아니었고... 그러나, 영화는 사람들의 그런 기대를 완벽히 저버림으로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성공하며, 그것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이 극으로 치닫는 - 지금 이 영화평또한 극으로 치닫고 있듯이 - 이유중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영화는 영홥니다. 안개는... 확실히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그 순간에는 끝납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은 사람들은 잠시 멍해있지만, 엔딩크레딧이 끝나기 전에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서지만, 마음속에 얹힌 먼지까지 털어버리는 데에는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아, 그 영화 강렬했지(강렬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일상을 살아갈 것이겠죠.
그가 자기의지가 아닌 상황에서, 단지 최악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을 칠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것은 데이빗처럼 불가항력의 상황에 놓여있지는 않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광신자 카모디 부인이 불편한 이유는 불편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이 어쩌면 단지 믿음위에 놓여있을 - 절대로 확실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를 믿음위에 서 있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데이빗이 영웅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함으로서 그 불편함이 극대화되는 이유는,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믿는 것의 결말이 처참할 수도 있음을 너무나도 개연성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일테죠.
이 영화는 분명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미가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의미라는 것이 어떠한 결론 혹은 대답이라고 할 때, 이 영화는 철저히 그런 것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의미없는 메시지만을 던진 것인가? 그렇진 않다고 봅니다. 질문은 분명히 있거든요. 그러나, 그 질문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 않은듯한 질문이기에...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음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단지 질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닐 뿐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안개속의 하나의 불빛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을 밝혀주는 전조등이 아닌, 무언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알려주는 경고등일 뿐입니다.
첫댓글 저는 중후반 까지의 전개는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결말이.. 보면서...욕나오는...
아 진짜 실 생활에서도 그런 뒤통수는 맞아본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전 결말도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지 않았을까요.
가족들이 괴생명체들을 총으로 쏴죽이면서 사투를 벌이며 결국은 생존한다면, 미스트 라는 영화 자체는 너무 멀리와버리는거고, 그렇다고 그냥 마트 안에서 모든 일이 해결되자니 너무 심심하고.
심심함과 통쾌함 사이의 중간점을 절묘하게 잡은 느낌이죠~
어쩌면 미국식 영웅주의에 뒷통수를 제대로 친 몇안되는 영화중에 하나일지도.
하하, 그렇네요~ 이 영화가 친 뒤통수가 몇개일지를 세보는 것도 재밌을지도~
삭제된 댓글 입니다.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이야기로 들었는데, 그렇게 끝났다면 좀 심심했을거 같아요. 저는 말초적 인간이라~
마지막 주인공 일행의 결단(?)이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그 직후 상황의 반전은 그것을 최악의 결과로 뒤바꿔줬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요즘 세상에서 나름 생각해볼 것이 많은 영화였네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데, 그 반전이 인물들의 결단을 통해 형성되고 의미가 부여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대단한 점이 있다고 봐요.
지금와서 마지막에 한줄을 추가한다면, 그 불빛은 그것을 향해 나가야 하는건지, 그것을 피해가야 하는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라는 정도랄까나... 판단은 자신이, 잘못된 결과도 자신이. 그러나 잘못된 결과의 책임을 직시할 사람은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