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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자녀들은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삼상1:1-8)
2022, 10/2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1:1-8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벌써 9월을 마감하고 10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을에 오곡백화가 풍성한 결실을 맺듯이 우리의 신앙도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영적인 일에 더욱 더 힘을 내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사무엘상하는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영적, 도덕적 타락이 극심했음에도 하나님은 병들고 타락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무엘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깨우는 과정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무엘의 출생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연약해도 하나님이 함께하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1절)
둘째로, 성도는 하나님 가문에 편입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1절)
셋째로, 그러므로 패역한 시대일수록 참 신앙을 가져야합니다.(3절)
사랑하는 여러분!!!
재벌가의 2세 3세들은 그들이 능력이 있든 없든, 단지 아버지, 할아버지가 재벌이라는 것 때문에 일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쉽고, 빠르게 경쟁의 선두를 달립니다. 이럴 걸 보면 부모가 부자가 아닌 자녀들은 시작부터 불공정한 운동장에서 세상을 시작하니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면 재벌 부럽지 않는 대단한 사람들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우리는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저들과 비교자체가 안 될 정도로 위대한 존재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하나님자녀로서 하나님의 패밀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아무리 패역한 시대여도 중심을 잡고 참된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이런 확신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왜 하나님의 가족인지, 하나님 패밀리에게 어떤 은혜가 있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연약해도 하나님이 함께하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1절)
본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아멘.
이스라엘민족이 시내광야에서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이래로 사무엘시대까지 하나님은 사사들과 레위지파들을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직접 통치했습니다. 이런 신정체제에서 이제 왕을 세워 왕정시대로 나아가는데, 이 과도기를 이끌었던 사무엘의 가문을 5대까지 언급함으로 그가 하나님나라에서, 또 이스라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사무엘이 출신가문이나 거주지가 아주 훌륭한 가문이거나 유명한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땅 "에브라임산지 라마다임소빔"의 한미한 가문의 레위인 엘가나의 자녀로 내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레위인은 무슨 일을 할까요? 그들은 성소에서 제사장을 도와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백성들을 교육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성막이 있는 실로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에브라임 땅 작은 성읍 라마다임소빔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민수기35장 말씀처럼 레위인들을 이스라엘전역으로 흩어서 백성들의 예배를 도우며, 교육하고 치리하도록 한 하나님명령에 따라 라마다임소빔에 배정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엘가나가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였던 실로에 있지 않고 이름 없는 라마다임소빔에 거주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의 가문이 별 볼 일 없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레위인들 중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인처럼 지내는 한미한 가문이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하나님은 한미한 가문의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사사로 세우시고, 왕정시대를 열어가는 역사적인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사실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는 기준은 인간적인 조건이나 스펙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쓸 때 그 사람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고, 얼마나 스펙이 좋고, 직무에 적합한지를 보고 뽑아서 사용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는 다르게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인지를 보고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적인 부분만 갖춰지면 나머지 인간적인 조건이나 스펙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며, 천한사람, 멸시받는 사람, 가진 것 없는 사람을 택하여 이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을 얼마든지 부끄럽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고전1:27-28)
일찍이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는 조롱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인류의 메시야와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할 때 그 사람의 외적인 조건이 1순위가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를 때는 80세 노인이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애굽에서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고, 40년을 양치기로 보낸 보잘 것 없는 목동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여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해낸 참으로 인류역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 다윗은 어떻습니까? 어릴 때부터 양 치던 목동에 불과했던 그를 들어 이스라엘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만드셨고, 또 갈릴리에서 고기잡이나 하던 어부들을 제자로 불러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이 땅에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단 한 번의 설교로 삼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능력의 종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비고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4:17절에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때로는 보잘것없고, 유치하게 보이며, 사람들이 무시하고 조롱도 하지만, 그러나 여러분,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돈 없고 능력도 안 된다고 실망하고 맥 빠지지는 않으셨는지요? 친구들을 다 잘되고 잘 나가는데 왜 나만 고달프고 힘드냐고 한탄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다른 사람보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재주도 없고, 스펙도 없고, 인물도 못나서 당당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뒤로 물러서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하나님은 이미 이 같은 우리를 너무 잘 알면서도 우리의 불러 구원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사용하셔서 큰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엘가나가 자신의 비천한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리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은 그의 아들 사무엘을 사용하셨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재주나 능력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화려한 스펙이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고 주의사명 감당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어서 하나님은 낮고 천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기를 더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람의 조건이나 외양만을 보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또한 약하고 부족하다고 위축되고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약한 우리를 사용하여 천하를 뒤집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걸 생각하면서 언제 어디서든지 당당하고 떳떳한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성도는 하나님 가문에 편입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1절)
본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아멘.
본문에 사무엘의 계보가 나오는데,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무엘의 족보를 시작으로 사무엘상을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사무엘이 장차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는데 있어서 신분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민3:1-4:39)
성경은 여러 곳에서 족보를 언급하고 있고, 지금도 유대사회는 이 족보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처럼 족보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정통성을 지키기 위함이고, 또 신분이 불확실한 자가 제사장이나 선지자, 또는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족보를 초입에 기록한 것도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밝히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무엘 가문은 비록 하나님의 일을 담당했던 레위지파이기는 하지만 별 볼일 없던 한적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가문의 족보를 굳이 5대까지 나열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족보로 연결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레위는 야곱의 셋째아들로 야곱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누가복음 3장에 이스라엘의 족보가 나오는데, 아브라함 위로 21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께로 연결됩니다. 이게 뭘 뜻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백성들의 시조가 바로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 또한 하나님의 양자로서 하나님의 족보에 속해있습니다.(갈3:29) 톰8: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딜 가도 절대 기죽지 말고, 문제가 생겨도 심호흡 한번하고 담대하게 대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세상족보는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자랑도, 힘도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족보가 내 삶의 유익을 주는 경우도 없고, 또한 세상 족보는 우리의 구원이나 하나님나라의 일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족보라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게 우리의 구원문제는 물론이고, 삶의 현장과 인생전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친히 기록하시는 하나님의 족보에 편입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형님으로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패밀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 대상이고, 축복의 대상입니다. 그러다보니 천사와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를 부러워하고, 또한 사단과 그 졸개들도 우리를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위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무엘이 가진 족보가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인정받게 해주었다면,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족보는 우리를 이 땅에서 존귀한 자로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복을 누리며, 장차 하늘영광까지도 보장해주는 티켓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가족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러므로 패역한 시대일수록 참된 신앙을 가져야합니다.(3절)
본문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아멘.
본문은 엘가나의 집과 엘리의 집, 두 집안의 신앙을 비교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말씀드린대로 엘가나의 집안은 미미한 집안이었지만 엘리의 집안은 제사장 집안으로 두 아들도 제사장직을 수행하는 명문 가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오늘 이 두 가문을 비교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할 때 세상적인 조건이 아니라 전적으로 당신을 향한 믿음과 신앙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에서는 어땠을까요? 엘가나는 매년 온 가족을 데리고 하나님성막이 있는 실로로 올라가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지만 엘리는 두 아들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면서 하나님께 저지르는 범죄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악이 얼마나 심했던지 성경은 이들을 불량자로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2:12)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지내러 가져온 제물 중 좋은 것을 빼앗고, 성전에서 일하던 여인과 동침까지 하는 등, 이들의 죄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다고 말씀할 정도에 이릅니다. 이런 자의 집안이 어떨 것 같고, 이런 자들이 종교지도자로 있던 이스라엘백성들의 신앙이 어떻겠습니까?
이 같은 일이 당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패역하고 하나님을 멸시했는지, 또한 백성들이 얼마나 변질되고 타락했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너무 타락하고 변질된 풍토 속에서도 엘가나는 하나님의 절기를 기억하고 예배하기 위해 성전을 찾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며 살아가는 참으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있는데,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은 절대 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우리가 신앙생활하기에 정말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풍요롭고 인본주의와 개인주의가 극심해지며, 하나님보다 이성과 과학을 더 신봉하는 세태에서 신앙은 점점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사태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듯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붙들고 오던 신앙의 끈을 코로나를 핑계로 놓아버린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의 핍박으로 쭉정이는 다 떨어져나가고 구원의 소망이 확실한 사람들만 교회에 남아 교회가 건강해지고, 신앙이 더 견고해져 복음이 빠르게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를 움직이며, 각 개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여 패역한 시대에서도 참된 신앙을 키워가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