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n Chan / Buena Vista Social Club
De Alto Cedro voy para Marcane
Luego a Cueto voy para Mayari. (3회)
El carino que te tengo
Yo no lo puedo negar
Se me sale la babita
Yo no lo puedo evitar.
Cuando Juanica y Chan Chan
En el mar cernian arena
Como sacudia en `jibe'
A Chan Chan le daba pena.
Limpia el camino de paja
Que yo me quiero sentar
En aquel tronco que veo
Y asi no puedo llegar.
De Alto Cedro voy para Marcane
Luego a Cueto voy para Mayari. (3회)
난 Alto Cedro에서 Marcane로 떠나지
다음은 Cueto에서 Mayari로 향하지.(3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나로선 거부할 수 없는것이 되었네.
내 입은 마를새 없고
나도 내 자신을 어쩔 수 없네.
Juanica와 Chan Chan이
바닷가에 앉아 모래체질을 할 때
그녀의 체질하는 모습에
Chan Chan은 상기되었네.
걸어갈 길의 밀짚을 치워주세요.
저기 보이는 나무 밑둥에
앉고 싶어요.
이런 상태로는 저기까지 갈 수가 없어요.
난 Alto Cedro에서 Marcane로 떠나지
다음은 Cueto에서 Mayari로 향하지.(3회)
음악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쿠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 우리에게는 시가와 럼주, 야구 그리고 체 게바라를 연상시키는 나라. 그러나 이들 말고도 쿠바가 자랑하는 또 다른 보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이다.
'환영받는 사교 클럽'이라는 뜻을 지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 음악계의 백전노장들로 구성된 '아프로-쿠반 재즈(Afro-Cuban Jazz)'그룹. 1997년에 낸 동명의 음반으로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6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으며 그래미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를 카리브해의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미국, 유럽에서 열렸던 이들의 콘서트는 연이은 매진을 기록했으며, 2000년 호주 올림픽 아트 페스티발의 개막무대를 장식했고, 지난 8월 일본 투어에서는 발매 30분만에 티켓이 동이 나 버렸다. 이름 뜻 그대로 어디에서나 환영받게 된 '부에나 비스타’는 이제 세계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쿠바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일찍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오는 유럽세력의 관문이 되었으며 백인, 혼혈, 흑인 등의 여러 인종이 조화롭게 융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이다. 쿠바의 문화는 스페인과 아프리카 그리고 원주민의 전통이 혼합된 형태인데, 그 바탕에는 수세기 동안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그들이 데리고 온 수많은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존재하고 있다. 백인들은 이들 흑인 노예들을 사탕수수와 담배 재배에 동원시킴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거두었다.
다양한 인종이 섞이면서 발생한 이질적인 여러 문화의 결합과 충돌은 새로운 삶의 양식과 오락거리의 등장을 낳았다. 그 중에서도 쿠바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결과물이 바로 '아프로-쿠반 뮤직 (Afro-Cuban Music)’이라고 일컬어지는 쿠바 특유의 음악이다. 콩가와 봉고, 클레이브와 같은 아프리카의 전통 타악기들과 플루트, 바이올린, 트럼펫, 기타 등과 같은 유럽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선율은 서로 어우러져 쿠바 음악에 독특한 요소를 가미해 주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손(son)'이라는 음악스타일이며 이것이 쿠바 음악의 뿌리를 이루게 되었다. 쿠바 음악은 제3세계 음악으로서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나 '룸바(rumba)', '볼레로(bolero)', '맘보(mambo)', '차차차(cha-cha-cha)', '살사(salsa)' 등과 같이 오늘날 팝계와 가요계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은 모두 쿠바의 거리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흔히 '쿠바인들의 피 속에는 음악이 흐른다'고 말하여지듯, 그들만의농도 짙은 색깔과 문화적인 다양성이 가장 아름답게반영된 쿠바의 음악은 쿠바가 가진 가장 풍부한 자산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1980년대 몇몇 실험적인 대중음악가들이 비영어권 국가의 민속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쿠바의 음악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성공으로 인해 변방의 음악에서 세계 중심의 음악이 되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탄생
원래 '부에나 비스타’클럽은 1930-4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쿠바의 수도 하바나 동부의 고급 사교장이었다. 이 시기,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의 자본이 고수익을 낳는 사탕수수 재배와 고급 시가 생산을 위해 몰려들면서 카바레, 클럽과 같은 사교장들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쿠바 최고의 뮤지션들이 이 곳에 모여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러나 쿠바 혁명이 일어나자 '부에나'를 비롯한 여러 클럽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백인 손님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연주를 하던 연주자들은 갈 곳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쿠바 음악의 황금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던 1996년, 기타리스트이자 월드뮤직의 대부로 불리우는 프로듀서 라이 쿠더(Ry Cooder)는 런던에 있는 음반사 '월드 서킷'의 사장 닉 골드(Nick Gold)와 함께 아프리카와 쿠바 기타리스트들의 합동연주를 기록하고자 1996년 쿠바로 향하였다. 그러나 함께 오기로 했던 아프리카 연주자들이 비자문제로 인해 파리에 주저앉게 되자, 이 두 사람은 연주자를 모두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한 명 한 명 연주자를 끌어 모으던 이들은 오디션을 하면서 평균연령 60세가 넘는 노인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신들린 노래와 연주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 지어진 하바나의 허름한 에그램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녹음은 편집 없이 라이브로 진행되었고 불과 6일만에 끝이 났다. 앨범은 영화스러웠던 옛 클럽의 이름을 따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 명명되었으며 '월드서킷/논서치(World Circuit/Nonesuch)’레이블을 통해 출시되었다. 맘보, 볼레로, 단손 등과 같은 쿠바음악의 본류와 함께 아프로-쿠반 재즈와 라틴 재즈의 진수를 보여준 이 음반은 발매와 동시에 클래식과 팝, 재즈계로부터 열렬한 환호와 찬사를 받았다. 그 후 콤파이 세군도(1907년생, 기타/보컬), 이브라힘 페레(1927년생, 보컬), 루벤 곤잘레스(1919년생, 피아노),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생, 보컬), 엘리아데스 오초아(1946년생, 기타) 등 쿠바음악의 노장들로 구성된 이 특별한 밴드는 빌보드 차트와 월드뮤직 차트를 강타하며, 1997년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트로피컬 라틴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영화 '베를린천사의 시’와 '파리 텍사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의 명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는 오랜 친구였던 라이 쿠더의 소개로 동명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통해 이들의 삶과 음악을 조명함으로써 2000년도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자료 네이버
올드 아바나
아바나의 말래꼰 해변
아바나!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흐르고 언젠가 가 본 듯 한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대서양 푸른 바닷물이 포말져 부서지는 아바나 말래꼰...
아름다운 시가지가 바다와 어울어지는 상하의 도시
아바나!
레스토랑 식탁앞에서 아름다운 선율과 노래를 선사하던
남국의 음악가들...
그러나 여행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아바나의 슬픔이
이 노래에 진하게 녹아내린다.
어디엔가 누구인지 항상 번득이는 눈, 눈, 눈들...
영광의 나라 쿠바의 시가공장 노동자들의 눈빛에는
영예로운 노동자의 자존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들의 눈에는 여행자들의 감추어 들어간
몇개의 빵이 그들에게는 더 절실하다.
길가에서 맥주를 서비스하던 젊은이도
조그마한 식당 종업원도
관심을 보이는 외국 관광객이 그들에겐 더 중요하고
커다란 국영 맥주홀 늙은 매니저는
힘이 없어 보트피플이 되지 못함을,
가족때문에 떠나지 못함에 눈물짓고,
떠난 가족 떠난 친구 잘못되어 영원히 볼 수 없는
그들이 보고싶어 눈물짓던
그러한 도시가 아바나라고 한다면...
멕시코 유카탄으로 떠났던 우리의 선조들의 후예들 몇 백명도
아바나 어느곳에서 고단한 삶을 살고 있으매
여행자의 가슴을 아프게 하더이다.
이름으로 들어보았던 고국이라고..
무언가 도움이 될까~하던 그들의 슬펏던 눈빛들...
무엇이 영광이고 무엇이 자유인지
Che 는 알고 있으려나....
쿠바 음악을 올리면서 떠오르는 Havana에서의 단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