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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의 마음공부 >
밥에 관한 한두 가지 생각들
글 | 스텔라 박
“내가 밥 살게”
“밥 사.” 라는 말을 들을 때, 나는 왜 이리 불편할까. 한 모임에서 알게 된, 그야말로 ‘지인’이 내게 한 말이다. ‘지인’이라는 말은 친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가깝지 않다는 뜻이요, 선배나 후배라고 할 만큼 살갑지도 않다는 얘기다. 고작해야 이름 정도, 그리고 그 모임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정보만 갖고 있는 이가 왜 그렇게도 당당하게, 마치 맡겨놓은 것 달라는 식으로 딱 잘라 “밥 사.”라고 명령을 하는지, 나는 또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와 감각을 살폈다.
“사”라는 명령어가 불편한가, 아니면 ‘밥’이라는 목적어 때문에 불편한 걸까.
다른 명령형으로 한 번 바꾸어보자.
“커피 사.”
“디저트 사.”
이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물론 밥을 산 사람이 내가 밥 샀으니 네가 커피 정도는 사라고 했다면 불편하게까지는 느끼지 않겠다만, 그 역시 내가 먼저 사겠다고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먼저 사라고 한 것이니 만큼, 아주 미묘한 저항은 일어날 것 같다.
“부처님 공양 말고 배고픈 사람 밥을 먹여라.”
- 아시아 속담 -
“우리들이 밥을 함께 먹을 때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 앤소니 부르댕(Anthony Bourdain) -
과연 나는 내가 돈을 지불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게 싫은가. 내가 말로는 나누고 싶다 하면서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별로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기적 유전자의 소유자인가. 한참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 존재가 가장 원하고 있는 것들을 한 번 생각해보자. 내가 원하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도 원하는 것일 테니.
“나를 좋아해줘.”
“나를 사랑해줘.”
“나를 존경해줘.”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사랑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통제하거나 조정하려 드는 의도에서 나온 이런 말들 역시 불편하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를 사랑해줘.” 라고 하는 대신 나의 ‘사랑하지 않음’을 있는 그대로 허용할 테니까.
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그렇다면 그건 또 왜 그렇게 불편한가. 한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에 나는 국가가 “세금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어떤 모임에 나갈 때 “회비 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말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은 내가 원한 바가 아닌 운명이라 치더라도, 어느 모임의 회원이 된 것은 내가 내 의지로 결정한 것이고, 그 모임의 회원이 된 이상, 회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라고 여기는구나.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저항이 없구나, 깨닫는다.
누구든 자신이 자원하여 무언가를 할 때, 하고 싶어지고 신명날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누군가의 “밥 사.”라는 말에 싫으면서도, 가능한 한 싫은 기색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밥을 사야할 때가 있다.
아니, 이 말은 억지다. 예전에는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남들의 욕망을 대신 살아줄 때, 즉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무엇보다 내 내면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슬픔과 기쁨을 알아주기 이전, 남들이 원하는 바를 내가 들어줘야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난 많은 날들,나이기를 포기했었다. 그래서 속으로는 밥을 사고 싶지 않으면서도 호탕한 척 밥값을 내곤 했다.
둘이 만나거나, 셋이 만나거나, 여럿이 만나도 항상 밥값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는 기독교 장로님 한 분이 그렇다. 아직 선뜻 그처럼 통크게 베풀 만한 용기가 없는 나는 그런 이들을 대할 때, 감사와 함께 존경심마저 인다.
때로 내가 누군가와 밥을 먹고 있는데 식당에서 나를 알아본 사람이 나도 모르게 밥값을 내주고 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엔 정말 밥 한 끼이지만 그 고마움의 정도가 장미 100송이라도 배달된 것처럼 크게 느껴진다.
공양에의 기억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추운 한겨울 밤 늦은 시각,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다이너(Diner, 24시간 문을 여는 미국식 식당)에 들어갔다가 한쪽 구석에 노숙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테이블 앞에 커피인지, 차인지, 아니면 그냥 따뜻한 물 인지 모를 머그컵을 두고 앉아 있었다. 아마도 너무 추운 날씨인지라 밖에서 자면 동사할 수도 있어서였을 거다. 24시간 문을 여는 다이너에서는 뭐든 마실 것 하나라도 시키면 쫓겨나지는 않을 터이니 추운 겨울 밤을 그리 춥지 않게 보낼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소공녀>는 어린 시절 읽었지만 내 삶에 참 큰 영향을 준 동화이다. 그 노숙자를 본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주운 동전으로 구입한 빵을 거지에게 선뜻, 자기 몫보다 더 챙겨 주었던 세에라 라는 소녀를 떠올렸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 그에게 가장 푸짐한 양의 브랙퍼스트를 시켜주면서 그에게 나라고 알리지 말고, 그냥 누군가가 식사를 보냈다고만 말하라고 했다.
잠시 후 식사가 배달되었을 때 그가 지었던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을 목격하는 것 같은 그의 얼굴은 가장 작은 존재로 현현한 예수였다.
그는 코로 흠뻑 음식의 냄새를 만끽하고, 천천히 한 입 한 입 음미하며 계란과 해쉬브라운, 소시지 등으로 꾸며진 브랙퍼스트를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밥을 앞에 두고, 마인드풀한 식사를 몸소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밥을 나누고자 하는가
이제껏 주변 사람들에게 “요리 좀 한다.”는 칭찬을 듣곤 했던 나는 기회 닿는대로 음식을 만들어 나눠준다. 그 가운데는 “어머, 식당 차려야 되겠어.” 라는 다소 과한 칭찬을 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 칭찬이 마냥 좋아 그냥 고래가 되어버렸었다. 칭찬 한 마디에 정신줄 놓고 춤을 추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가끔 돌아본다. 나는 진정 나누고자 나누는가, 아니면 칭찬이 좋아 나누는가. 인류는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과거 무리에서 고립된다는 것은 맹수로부터 추격 당할 기회가 더 많아지는 등 생존에의 위험에 더 노출된다는 뜻, 즉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내면에서 원하지 않는 것일 지라도 공동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의 미래 직업을 결정하기도 하고, 가슴 떨림 없는 배우자와 결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깨어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렇게 인류의 습대로 살기를 거부한다. 나는 내가 원할 때 내 의지로 밥을 사고 싶다. 내가 먼저 마음을 낸 게 아닌 상태에서 누군가의 “밥 사.”라는 말에 의해 밥을 사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많이 불편하다. 그리고 이제 그 불편한 마음에 대해 피하려 하지 않고, 충분히 불편함을 함께 해준다. 그리고 내가 꼭 그 말을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나의 자유를 허용한다.
밥을 산다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상
그런데… “밥 사”라는 반말은 매우 불편하지만 후배들이 “선배, 밥사줘(요).” 라고 하는 말은 많이 좋아한다. 그만큼 나를 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얘기일 것 같아서이다.
이건 또 뭔 상(相)인가. 글로 적고 보니 나의 이중잣대가 보인다. 후배는 되고 그리 친하다고 느끼지 않는 나이 든 사람은 안 된다는 건가? 반 말을 싫고, 존댓말로 하거나 어리광부리듯 하면 된다는 건가.
뭔 상(相)이 이렇게 많은지, 모든 상이 상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본다(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고 했거늘, 이렇게 “밥 사.” 라는 같은 내용에 대해서도 대상에 따라, 말하는 방법에 따라 오만 가지 상을 갖고 있으니 어찌 여래를 볼 것인가.
어쨌든 밥 얘기가 나왔으니 한국인이 갖고 있는 밥에 관한 상(相), 또는 한국인이 밥에 관해 이런 상(相)을 갖고 있다는 나의 상(相)을 한 번 모아봤다.
“밥 한 번 먹어요.”
우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한다. 사실 그렇지 않아야 할 별다른 이유도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각자 개인의 몫은 밥과 국뿐, 나머지 반찬들을 함께 나눠먹는 패밀리 스타일의 식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나가던 객이 식사 시간에 문을 두드리면 들어오라고 해서 밥 한 그릇만 퍼주며 있는 것을 나눠먹을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밥은 먹었냐?” 라는 질문을 받고, “밥 안 먹었으면 먹고 가라.”는 제안에 눈물날 만큼 감동하는 것은 우리 식의 식사 형태에 기인한 인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 나라의 식사 형태가 에피타이저, 메인디시를 각자의 양만큼만 준비해 먹는 스타일이었다면 이런 인심이 생겨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식사 시간에 남의 집을 찾아가는 것이 금기시 할 만큼의 실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나는 느꼈다. 먹는 것을 너무도 중요하게 여기다보니 그런 것 같다. 얼마나 먹는 것을 중요시 하는지, 밥을 먹으면서도 예전의 기억 나는 식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부처님 시대의 사문들이 밥을 빌어먹으며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아시아 문화권의 식사 형태 덕일지도 모르겠다. 유럽처럼 식사 때에 딱 맞는 양의 에피타이저, 메인디시, 디저트만 준비한다면 아라한 아니라, 부처님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나눠줄 음식이 없었을 테니까.
이처럼 편안하고 부담없게 남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문화권에서 자라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참 쉽게 식사에 초대한다. 이제껏 한국인들의 사교와 식사 행태를 관찰해본 결과, 보통 처음 초대한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두번째 만날 때는 어떠한가. 물론 처음 밥을 산 사람이 나이가 많거나, 돈이 많거나, 지갑 열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매번 만날 때마다 밥 사는 것을 마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나이 차이라던가, 아직 살아가느라 허리띠를 졸라야 할 경우, 우리들은 한 사람이 사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말 하지 않아도, 다음 사람이 돌아가며 밥을 사는 것을 일종의 사회적 불문율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미국에 처음 와 학교에서 알게 된 현지인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서 친구가 되기 위한 과정 중 첫번째인 식사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얼추 5번 정도 계속 밥을 산 후였던지라, 나는 그녀가 6번째 정도의 만남에서 “이번에는 내가 살께.” 라는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밥을 살 때마다 “너, 너무 친절하고 인심이 후해.”라는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밥을 사겠다는 의사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이제 뒤늦게 깨닫는다. 그녀에게는 그런 상, 또는 식이 없었다는 것을. 즉 나와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기에 그녀에게는 ‘친구가 한 번 밥을 사면 다음에는 내가 산다’는 상이 없었던 것이다.
친구가 이번 주에 밥을 사면, 그 다음 주는 내가 사는 것은 한국에서 60~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며 자라온 이들 사이에 형성된, 어떤 삶의 매뉴얼에도 없는 사회적 습이요 상이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 다른 것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 그들은 그렇구나.” 라고 알아주면 된다. 밥을 사고 싶으면 사고, 혼자 먹고 싶으면 혼자 먹으면 된다. 괜히 인심 후한 척, 나눠줄 필요는 없다.
“부처님은 늘 밥을 얻어드셨다”
하지만 밥 한 끼가 그 무엇이라고, 혼자 밥통 끌어안고 먹겠다는 건가. 그는 어쩌면 내 앞에 찾아온 아라한’이요,‘가장 낮은 모습으로 현현한 예수’일 수도 있는데.
사실 밥 한 번 안 산 인물로는 부처님 만한 분이 없다. 불교 경전을 들여다보면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께 밥 샀다는 얘기이다. 물론 식당에서 샀다는 표현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구조 때문에 집에서 상을 차려 공양을 올렸다는 에피소드들이 구구절절 나온다.
부처님은 그에 대해 “고맙소. 정말 잘 먹었소.”라는 인사도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밥 한 번 살께요.” 라는 대중들의 초대에 그저 고개를 끄덕하는 것으로 응대하고, 본인 한 사람뿐만 아니라 500여 명의 비구들까지 떼거리로 몰고 가서 드셨으니, 부처님 한 분에게만 공양을 하려던 사람이 만약에 있었다면 “내가 호구냐? 어떻게 500명을 데리고 나와.” 라며 법정 소송까지 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든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공양을 올리고자, 그 기회를 서로 가지려고 했었다. ‘암바빨리’라는 기녀가 부처님을 뵙고 감화받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릿치비인들은 그녀에게 십만금을 줄 테니 공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들에게 달라고 했었다. 그때 암바빨리는 “귀공자님들. 제게 베살리 시를 영지와 함께 다 준다고 해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기회를 양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부처님을 일컫는 10가지 명호 가운데 ‘응공(應供)’이란 것이 있다. 이는 천상과 인간으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아 마땅한 ‘아라한’ 이라는 뜻이다. 사실 따져보면 우리 모두가 천상과 인간으로부터 공양을 받고 있다. 내 앞에 온 밥 한 그릇은 천지의 공양이다. 햇살과 비, 흙, 나비와 벌, 수많은 인간의 수고가 그 밥 한 그릇에 담겨 있다. 그러니 공양을 올리는 우주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아라한처럼 살 일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밥 한 번 함께 먹는 것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문화권에서 자라나다 보니, 나는 식사 초대가 정말 캐주얼하게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초대에 열린 마음으로 응했다가 나중에 정말 험한 소리를 많이 들었다. 사람들이 밥을 살 때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때로는) 뭔가 보이지 않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유명한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다. 특히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나중에 뭔 소리를 듣게 될 지 모른다.
스스로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과연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밥을 사는 것인지.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호흡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몸의 감관을 있는 그대로 살피던 가운데 나는 무의식에 감추어져 있던 내가 밥 사는 의도를 알아챘다. 더 친해지고자, 우정의 크레딧을 쌓고자, 나를 좋아해주길 원해서, 그의 마음에 들고자, 너무 얻어만 먹었으니 체면을 유지하고자… 밥을 사는 이유의 근원까지 가본 나는 물론 순수하게 밥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 외의 청정하지 못한 이유들도 있음을 알아챘다.
그러니 남들이 무언가를 원하며 밥을 살 때, 어떻게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 요구를 들어주지 못할 것 같다면 응당 식사 제안을 거절해야 할 터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라면 밥을 함께 먹는 것이 그리 편하지도 않다. 커피나 차 한 잔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왜 우리는 무언가를 부탁할 때도 밥을 매개로 할까. 어쩌면 계속 되던 전쟁과 기근으로 너무 끼니를 건너뛰는 날들이 많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런 우리 민족의 아픔과 부족함 역시 가만히 눈을 감고 헤아려본다. ‘나는 부족하다’, ‘더 채워야 한다’는 오래된 관념은 조상들의 무의식으로부터 우리들의 무의식으로 대물림되었을 것이다. 한국인들만이 그런 건 아니다. 이는 인류 공통의 결핍 DNA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무엇이 그리 부족한가. 현재에 모든 걸 맡기고 고요히 그 결핍감을 바라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핍의식은 서서히 사라진다. 이제 그 텅 빈 가슴의 구멍이 평화로운 충만함으로 가득찬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다. 행복도, 평화도 바라지 않는 상태가 된다.
“밥 한 번 먹어요.”
한편 “밥 한 번 먹어요.”는 허영심과 가식의 대명사로 불리는 할리웃 배우들도 자주 하는 말인 것 같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선셋대로( Sunset Blvd.)>에 보면 “밥 한 번 먹어요.(Let's have lunch)” 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를 살펴보면 실제론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도 남들에게는 바빠보이려 할리웃의 빅샷(Big Shot)과 약속이 있다고 허영을 부린 후 “나중에 밥 한 번 먹어.” 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내용이다. 밥 먹자고 제안하는 사람이나 그러자고 응대하는 사람이나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 10년이 지나도 밥 한 번 함께 먹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지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언제 밥 한 번 먹어요.” 라고 제안하지만 카톡 한 줄 하는 일이 없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님을 봐야 뽕도 따는 법이거늘, 소통이 전혀 없는 관계에서 어찌 밥 먹을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말에 대한 부처님의 바른 언어 생활에 관한 가르침 중 허망한 말(妄語), 입에 발린 말(綺語)에 해당된다.
“언제 밥 한 번 먹어요.”라며 입에 발린 말을 하는 대신 진실하고 정직하게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현재 내 마음이 편안할 정도의 제안을 해보자. 정말 밥 사지 않아도 된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과체중이다. 이제 더 이상 밥 사는 것이 뭔가 베푸는 것과 동일어는 아님을 기억하자.
“걔는 밥 한 번 사는 꼴을 못 봤어.”
뒷말 할 때, 한 존재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참 자주 한다. 그런데 왜, 그가 나에게 밥을 사야 할까. 밥을 함께 먹는다는 행위가 그렇게 캐주얼한가.
1시간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는 커피 또는 차 한 잔 하자고 제안한다. 2시간 이상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는 저녁을 먹자고 한다. 서너 시간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는 술을 먹자고 한다. 8시간 이상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는 골프를 치자고 한다.
1시간도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왜 밥을 사야 할까. 만약 그 사람이 당신에게 밥을 한 번도 안 샀다면 과연 나는 그가 밥을 함께 먹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2시간 정도 함께 있을 만한 사람인지를 돌아보는 게 나을 것이다.
그저 내가 사고 싶으면 사면 되고, 사고 싶지 않으면 안 사면 된다. 남들이 밥을 사고 말고는 철저히 그 사람의 자유이다. 그러니 내 자유와 내 의도가 소중하다면 남들의 밥을 사지 않는 자유와 의도를 존중하자. 밥 한 끼가 그 무엇이라고 대상을 정죄하면서 내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가.
기억에 남는 식사 대접 프로젝트
일간지의 푸드 섹션에 꽤 오랜 기간 기사를 기고하면서 나는 소문난 맛집에도 많이 다녀봤고, 유명 셰프들이 어떤 요리를 만드는지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요리하기를 즐겨 하다 보니 집에서도 꽃으로 장식된 예쁘고 맛있는 요리들을 만들곤 한다. 그런 요리를 친구와 지인에게 대접했을 때, 그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오는 경험은 나를 전율하게 한다.
내 인생의 여러 계획 가운데 ‘기억에 남는 식사 대접 프로젝트’를 넣게 된 것은 그런 이유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들을 대접하며 나는 참 행복하다. 밥 한끼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이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큰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다. 그러니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 식사를 대접, 즉 공양을 올리면 된다.
하지만 누군가 “밥 사” 라고 한다고 해서 무조건 마음을 내진 않을 것 같다. 아직 내 꼬라지가 이 정도밖에 안 됨을 나 스스로 알아준다. “밥 사”라고 말하는 이에게 편안하게 밥을 살 수 있을 만큼 경계가 사라진 우주심을 갖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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