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님과 말씀, 성령님 VS 말씀
- 조태성
#성령님과말씀은_언제나함께다
#성령님과말씀을_싸움붙이지말자
1.
나는 극보수 은사중단론의 대형 장로교회에서 철저히 말씀중심의 신앙생활을 했다. 큰 기도나 박수 치는 찬양도 안 되고, 드럼도 설치하지 못했던 제약이 있던 교회다.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목사님들, 장로님들, 권사님들께서 교회의 기둥이 될 재목으로 나를 가장 추켜세워주시곤 하셨다.
그만큼 교회 중심으로 살았고 봉사와 섬김은 나의 즐거움이었다. 늘 1년에 성경 1독을 하며 성경공부나 퀴즈대회도 1등을 하곤했다. 중요한 봉사와 섬김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내가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흔히 말하는 교회 오빠였다.
2.
그러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수능을 치르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문제는 은사 중단론에다가 철저히 말씀 중심의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확증들로 인하여) 순복음으로 알려져 있는 오순절 은사 사역을 하는 신학교에 입학했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신앙 문화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어서와~ 순복음은 처음이지?>
이런 느낌으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있다. 매주 화요일 산상 철야 기도회와 매일 1~2시간 통성(합심)기도 시간, 매주 주말 개척교회 전도 봉사가 신학교 학점에 포함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신학교 수업 외에 도서관에서 평균 5시간을 성경 필사를 하는 것이 신학교 생활의 루틴이었다.
3.
아무튼 은사중단론의 입장에서 말씀만 추구했던 신앙생활을 하다가, 순복음 신학교에서 성령님이란 하나님을 처음 만나게 되고 병 고침과 방언 등의 은사가 곁에서 펼쳐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참으로 선하시고 오묘하여 그 뜻을 다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 교파를 초월하여 열린 마음과 인격적이신 성품을 지니신 목사님들과 교제 나누며 그 사실을 더욱 경험하게 된다.
나처럼 성령님이 계심도, 은사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던 분들이 신학교든, 신대원이든 인도하심이 있으셔서 성령님의 임재와 은사에 대해 열리는 경험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받대로 은사사역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역(신앙생활)하시던 분들 중 말씀 중심의 은혜를 재발견하시고 천착하여 누리시는 분들도 많으시다.
4.
전자와 후자 모두 하나님의 부르셔서 사용하시는 인도하심이며, 균형있는 신앙을 추구하도록 인도하시는 크신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편협한 인식을 가진 분들을 가끔 본다.
아예 은사중단론의 신학적 입장만 경험하고 추구하고 있어서 은사지속론의 입장을 비판하면 괜찮다. 몰라서 그러니까. 그 반대로 은사지속론의 입장만 경험하고 추구하고 있어서, 은사중단론의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면 차라리 괜찮다. 역시 몰라서니까. 문제는 어느 진영에 먼저 있었든지, 나중에 은혜로 이동해와서 이전에 있었던 곳을 폄하하는 모습이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미성숙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5.
<나도 예전에 16년을 장로교회에서 철저히 말씀 중심으로 살아봤다. 그런데 지금 성령님을 경험하고 방언의 은사, 각종 은사를 경험하고 나니 옛날 말씀 중심의 은사중단론이 얼마나 형편없는 신앙인지 알게 되었다. 성령님의 역동적이신 충만하심 없이 말씀만 보면 교만해진다. 신앙생활이 힘이 없다. 영혼을 살릴 수 없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 된다.
그때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은사지속론의 가르침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 은혜가 참으로 감사하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해주지 않으셨으면 아직도 사랑 없이 입만 살아서 생명력 없고 교만한 말씀 생활로 율법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6.
진실로 성령님 앞에서 부끄러운 생각이었음을 고백한다. 은사중단론의 장로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당시에 그곳에서 은혜를 누리지 못했던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교만하고 편협한 생각이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 나누는 삶이 성장하면서 부서졌다. 각자 인도하심과 부르심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님을 배우고 있다.
여전히 마음이 아픈 것은 과거의 내 모습이 나이와 신학과 상관없이, 종종 보이며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입장과 순서가 나와 반대로 이루어지고 나처럼 편협한 비판을 한다.
7.
<나도 성령체험을 많이 했다. 부르짖어 기도하고 맨날 전도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장로교 신학을 하고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말씀 중심의 삶이 중요하다. 은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말씀 중심 사역으로 와서 보니 저들은 은사만 강조하지 사랑이 없다. 게다가 말씀도 모르고 무식하다. 자칫 그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 뻔한 나를 건져주셔서 다행이며 여기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하다.>
8.
은사지속론으로 인도하심을 받아 사역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속상하고 그 논리에 허점도 많다. 자신이 예전 은사지속론의 신앙생활에서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바르게 경험하지도 못했음이 문제다. 과거에 성령님안에서 말씀의 은혜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상태에서 이동을 한 자신의 문제가 클 수 있음이다.
은사지속론의 입장을 추구하는 분들도 은사보다 말씀을 강조하는 분들이 많으시다. 책도 많이 읽고 공부하는 오순절 사역자 분들도 많으시다. 은사지속론이든 은사중단론이든지, 어디에나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 반대로 성숙하여 사랑이 충만한 분들이 양쪽 진영에 모두 계신다.
9.
성령님과 말씀을 함께 추구하고, 함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둘 다 균형 있게 강조하고 어느 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성령님과 말씀>이지 <성령님 VS 말씀>이 아니다.
<성령님>과 <말씀>을 싸움 붙이는 일을 멈추면 좋겠다. <은사지속론>과 <은사중단론>을 싸움 붙이는 일을 멈추면 좋겠다. 생각과 강조점이 <다른> 부분을 <틀림>으로 인식하여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나부터 경계해야 한다. 상대방을 한심하게 보는 그런 교만으로 예수님의 피값으로 구원하신 형제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판단한다면 참으로 두려운 문제다.
10.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과 A. W. 토저 목사님께서 서로 강조하고 추구하는 부분에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를 존중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방식과 말씀, 체험 등이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셨고 귀하게 여기셨다.
감사하게도 부족한 나로 하여금 균형 있는 신앙을 추구하도록 본이 되어주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며 겸손히 연합의 손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이곳에도 그런 분들이 많으시기에 참 감사해지며 오늘도 소망을 얻는다. 할렐루야~!
늘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주시며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첫댓글 아멘^^ 성령님을 의지하며 말씀 앞에 바로 서겠습니다.
기껏 댓글 작성 다 했는데 다 날려버렸어요.
아까워서 어쩐댜.. 이번에는 짧게..
저는 제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종교의영 탓인지 젤 고민되고 저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 생각되는데, 종교괴물처럼
돼 버려서.. 처음부터 그랬거든요.
저는 비록 제가 종교인같아도 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교회는 말씀과 성령님을 똑같이
추구하고 소중히 생각하는 교회입니다.
너무나 종교적인 다락방교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서 나온
뒤로부터는 오순절계통의 교회들이 좋더라구요.
교회정하는 기준도 항상 말씀과 성령님을
수레의 양바퀴처럼 똑같이 중요시여기는 교회에요.
앞으로도 그럴거구요.
저는 솔직히 `오직 말씀말씀` 이러는 교회
좋아하지 않아요.
저도 은사 좀 주셨음 좋겠는데 아직까지
방언밖에 받은 게 없어요.
사랑의은사, 믿음의은사는 꼭 받고싶어요.
아까 날아간 댓글이 내용이 더 나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뭐..
시간이 너무 걸려서리 다시 반복하기가..ㅎㅎ
아무튼 성령님이 전부이시고
예수님이 전부이십니다. 할렐루야~!!
샬롬♧
정성과 따뜻한 마음으로 댓글을 올려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모하시는 영혼을 만족케하시는 예수님께서 크신 은혜로 채워주시심을 신뢰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