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의 '여자'들이 다시 언론을 달구고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리듬체조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알리나 카바예바(37) Алинa Кабаева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비밀스런 백만장자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흐(45) Светлана Кривоногих다.
카바예바는 오랫동안 '대통령과의 염문설'로 주목을 받았던 여성이고, 크리보노기흐는 러시아의 탐사보도 매체 '프로젝트' Проект에 의해 새롭게 드러난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푸틴 대통령과 두 여성 사이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반으로 성장한 '러시아 은행' банк Россия 와 소유주인 올리가르히 유리 코발추크 Юрий Ковальчук 가 끼어 있다. 푸틴 대통령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코발추크와 푸틴 대통령은 오랜 고향 친구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1996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 다차 협동조합(별장 공동단지) '오제로'(Озеро 호수라는 뜻)를 짓기도 했다. '오제로' 회원들이 아직도 '권력의 이너 서클'로 꼽히는 이유다.
인사이더:카바예바, NMG미디어그룹으로부터 7억8천500만 루블 받아/얀덱스 캡처
카바예바가 또다시 언론의 중심에 떠오른 것은, 그녀가 받은 고액 연봉 때문이다. 영국의 탐사 전문 매체 '디 인사이더'는 26일 외부로 유출된 러시아 연방국세청 자료를 인용해 "카바예바가 친정부 성향의 미디어 그룹 '내셔널 미디어 그룹'(NMG)'으로 부터 지난 2018년 7억8540만 루블(약 115억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녀는 리듬체조를 그만둔 뒤 집권 러시아 통합당 소속 국가두마(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다 2014년 NMG 미디어그룹의 공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뒤이어 이사회 의장직에 올랐다. 이사회 의장으로 110억원대의 거액 연봉을 받은 것이다.
남성잡지 막심 표지 모델로 나선 카바예바/캡처
NMG 미디어그룹 측은 당연히(?) '디 인사이더'의 연봉 지급 확인 요청을 거부했고, 이사들의 연봉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카바예바가 국세청에 신고한 2018년 수입이 어떤 연유로 외부로 유출됐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녀가 2018년 외에도 매년 그같은 연봉을 받았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전했다.
110억원대 그녀의 수입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보다 거의 10배, 이전의 하원의원 시절보다 70배나 많다고 한 타블로이드 신문은 밝혔다. 이 수입은 세공 공제 후 순소득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천문학적인 수입을 보장한 NMG 미디어그룹은 '러시아 은행'을 소유한 코발추크가 대주주다. 이 미디어 그룹은 러시아에서 TV 채널 'REN'과 '채널 5'와 (구 소련의 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아 등 러시아 유력 미디어 회사를 지배하는 '미디어업계의 큰 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작한 '러시아 은행'은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한 2000년 모스크바로 진출했으며, 보험회사 '소가즈' Согаз의 민영화에 참여하면서 러시아 10대 은행으로 자리잡았다는 게 정설이다. 소유자인 코발추크가 '푸틴 대통령의 돈줄'이라고 알려진 이유다. 코발추크는 미국 등 서방진영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대한 보복으로 단행한 대러 제재 조치의 개인 명단에도 올라 있다.
카바예바가 고액 연봉을 받은 것은, 코발추크→ 러시아 은행→ NMG 미디어 그룹으로 이어지는 소유및 지배 관계 속에서 '대통령 찬스'를 썼다는 합리적인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건 곧 푸틴 대통령의 '숨겨진 여성'일 수 있다는 추론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주력 언론들은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외신이나 현지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무슨 일이 터져나올 때'마다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번 고액 연봉 수령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탐사 매체 '프로젝트'의 '황금가면' 2편 도입부 캡처
러시아 타블로이드 언론을 더욱 흥분시킨 것은, 2번째 여성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흐의 스토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빈민촌 출신으로 한때 청소부로 일했다는 크리보노기흐는 여성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 추적 결과, 밝혀졌다.
탐사 전문 매체 '프로젝트'는 27일 '황금가면들' 2번째 주제로 러시아의 숨겨진 억만장자 크리보노기흐를 집중 분석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그녀가 푸틴 대통령의 여성으로 의심받는 대목은 두가지다. 200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멘느이 오스트로프' Каменный остров (바위섬이라는 뜻)에 조성된 부촌에 그녀가 푸틴 대통령의 가까운 측근들과 함께 거주한다는 사실과, 그녀의 딸이 푸틴 대통령을 빼닮았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을 종합하면, 이 섬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관광지는 아니지만, 미국 LA의 '비버리 힐스'와 같은 부자촌으로 조성된 뒤 푸틴 대통령의 고향 친구 등 소위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단'에게만 불하됐다. 푸틴 대통령의 유도 파트너인 바실리 쉐스타코프와 아르카디 로텐베르그, '오제로' 다차 협동조합 회원인 유리 코발추크와 세르게이 푸르센코, 빅토르 먀친 등이 이 곳에 주소를 두고 있다. 이중 코발추크와 아르카드 로텐베르그는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부호다.
눈길을 끄는 유일한 사람이 '크리보노기흐'다.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그녀가 이 섬에 살게 된 동기를 '푸틴과의 특별한 관계'외에는 찾을 수 없다는 게 매체 '프로젝트'의 분석이다.
현지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프로젝트의 탐사 내용중에서 푸틴 대통령과 연계되는 크리보노기흐의 과거 행적과 그녀의 호화 요트를 호위하는 해군 함정, 그녀의 딸 엘리자베타의 외모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그녀가 갑작스럽게 소유하게 된 재산의 출처에 대한 질문에 "1990년대에 부자가 한명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정부의 관리였다"고 답변했다는 지인의 회고와 "그를 '아빠'라고 불렀다"는 또 다른 증언이 제시됐다. 푸틴 대통령은 1990년대 말 모스크바로 오기 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에서 일했다.
'프로젝트'가 추적한 '러시아 은행'과 크리보노기흐 재산 연관 도표/'프로젝트' 유튜브 채널 캡처
상트페테르부르크 '바위섬' 부촌의 모습(위)와 스키장 '이고라'. 둥근 사진은 유리 코발추크/유튜브 캡처
푸틴 대통령이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크리보노기흐의 행적은 더욱 미스터리하다. 2001년 '릴렉스' Релакс라는 법인을 앞세워 '러시아 은행'의 주주가 됐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의 스키 리조트 '이고라' 을 소유하고, 호화 요트도 갖고 있다. 모두 코발추크가 중간에 있다.
이탈리아에서 건조된 요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앞 핀란드만 바다에서 정기적으로 볼 수 있는데, 지난 봄에는 해군 해상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군함이 이 요트를 호위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고 한다. 이같은 일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분명히 아니다.
사진 출처: yachtcharterfleet.com
2006년 개장한 이고라 리조트에서도 '푸틴 관련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2011년 1월 말께 이고라 리조트의 스키 슬로프 하나가 일시적으로 폐쇄됐다. 당시 스키어들 사이에는 총리(당시 푸틴대통령은 총리)가 산 위에 있다"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의 둘째 딸 카테리나의 결혼식(키릴 샤말로프의 아들과)도 2013년 이 곳에서 열렸다는 소문도 있다.
푸틴과 크리보노기흐, 두 사람의 깊은 관계는 1990년대에 시작돼 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된 것으로 추정됐다. 한 타블로이드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재선을 준비하던 2003년에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나면서 '세간의 눈' 때문에 정리했다고 전했다. 고향의 '옛 여친'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녀의 딸 엘리자베타 크리보노기흐. 호적에 아버지는 표시되어 있지 않고, 아버지를 알려주는 '부칭'으로 '블라디미로브나'가 적혀 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의 이름이 '블라디미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블라디미로브나'라는 부칭이 예사롭지 않다.
푸틴 대통령의 옛 여친인 크리보노기흐/사진 출처:현지 언론
게다가 딸의 외모가 푸틴 대통령을 빼닮았다고 매체 '프로젝트'는 주장했다. 다만, 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사진을 게재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엘리자베타는 10대 소녀답게 그동안 활발하게 SNS활동을 해왔으나, '프로젝트'의 신원 확인 요청이후, 모든 SNS 계정을 닫았다고도 했다.
'프로젝트'의 이 보도에 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27일 "말도 안되는, 황당한 가짜 뉴스"라며 "이 여성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탐사 매체 '프로젝트', 푸틴 대통령의 세째 딸로 추정되는 여성을 찾았다/얀덱스 캡처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 푸틴 대통령의 혼외 딸 추적 보도를 '짜증나게 하는 가짜 뉴스'라고 지적/얀덱스 캡처
지금까지 나온 보도에 따르면 두 여성은 모두 푸틴 대통령의 딸을 출산했다. 카바예바는 지난해 4월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딸 쌍둥이를 낳았고, 크리보노기흐 사이에는 이미 10대의 딸이 존재한다. 러시아 언론은 크리보노기흐 사이에 난 딸을 '푸틴 대통령의 세째 딸'이라고 불렀는데, 세살배기 딸 쌍둥이는 푸틴의 네째, 다섯째 딸이 되는 셈이다. 근데 진짜 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