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할수없는일
행 4;13-22
어떤 부인에게 남편이 있는데 몸이 아파 병에 눕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집을 팔아 그것으로 식료품 가게를 하다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다섯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밥을 달라고 졸라대고 부인은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헌옷을 주어 입히고 겨우 살았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연필 한 자루를 훔쳐 가지고 선생님한테 도둑이라고 매를 맞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인은 세상을 도저히 혼자 살아갈 소망이 없어서 근심하는 중에 아이들과 함께
연탄 가스를 마시고 죽으려고 연탄통을 열어 놓은 채 아이들과 같이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라디오에서 찬송 369장이 흘러 나왔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네/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그 부인은 찬송을 들으면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문제를 자기 혼자 단독으로 해결하려 하였지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지 않았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연탄불을 끄고 문을 열고 온종일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다섯 아이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허물어져 가는 집에 살지만
그래도 지붕이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염려와 근심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맹자는 인간의 품성 중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강조 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대할지라도 거리낌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높은 도덕적 심성을 의미합니다.
도의(道義)에 근거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마음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 찬 넓고도 큰 원기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순교자와 신앙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큰 뜻을 품고 부끄러움 없이 청결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도 기세등등한 유대의 관원들 앞에서 호연지기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유대의 관원들도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과 거룩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옥에 갇히고 위협을 받았으나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은 감동적인 모습을 지녔던 제자들처럼
당당하게 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첫째로;예수를 부인하지 않으려면 담대해야 합니다
본문 13절 “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공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감옥에 가두고 때리고 위협하면 태도를 바꾸거나 변하게 되는데
베드로와 요한은 여전히 담대하였습니다.
남김없이 자유롭게 말하였습니다.
공회원들은 죄인으로서 있으면서도 확신에 차서 자신 있게 변론하는 사도들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경멸했는데 태도와 언어를 보면서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종교 재판에 회부된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재판을 받기 위해 보름스(Worms)로 향하기 직전 “만약 보름스 법정에 지붕의 기왓장만큼
많은 마귀들이 들끓고 있을지라도 나는 보름스로 가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위협은 결코 하나님의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습니다. “
저 다음 주부터 교회 안 나갑니다.” “
예? 아니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
섭섭합니다.
왜 제가 사드린 넥타이는 안 매시고 ○집사 넥타이만 매십니까?
제가 올해 초부터 매주 체크를 해 봤는데
○집사 넥타이는 네 번 맸고 제 것은 한번밖에 안 매셨죠?
목사님 그렇게 사람 차별 하시는 거 아닙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천재지변, 벼락, 테러, 협박, 질병, 사고, 걱정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담대하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담대하게 살아가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예수를 부인하지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 19절 “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이스라엘의 최고 법정 산헤드린이 베드로와 요한을 향하여 “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으나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런 믿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확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의식이 사도들에게 힘을 주었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주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담대해 집니다.
하나님 말씀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근심과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 부활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인간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위가 충돌할 때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시골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상급 학교에 진학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꿈을 기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몇 년 동안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 중학교에 진학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주소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봉에 [하나님께]라고 적었습니다.
그 편지는 우체국으로 갔습니다.
우체국에서도 하나님의 주소를 알 리가 없습니다.
우체부는 고민하던 끝에 그 소년이 살고 있는 고향에 있는
전남 해남읍 교회로 그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은 이준목 목사님이셨는데 이분이 그 소년의 편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간절한 사연을 본 목사님을 이 아이에게 진학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결국 이 소년은 대학에 진학하고 스위스 바젤 대학에 가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신대의 조직신학 교수가 되었고 대학원장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한신 대학의 총장을 지닌 오영석 박사의 일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를 돕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돕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께 담대하게 계속 나아가면 됩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보다는 세상과
사람과 사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탄의 말은 쉽고 달콤하지만 멸망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때로 어렵고 손해이고 망할 것 같으나 순종하면 반드시 축복이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절대 순종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예수를 부인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본문 21절 “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공회원들은 의회의 결정이 피고인들로부터 공개적으로 거부된 상황에서 속수무책이 되자
고작 우격다짐 식으로 협박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협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행한 표적을 목격한 군중들의 열기는 대단했으니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공회는 사도들을 처벌해야 하는 것과 백성들의 반응 사이에서 전전 긍긍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공회원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잃지 않고 환심을 사기 위해 늘 애쓰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공회원들은 하나님과 진리보다는 자기들의 공권 유지를 위해 대중을 더 무서워하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사도들에 의해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나이가 40세 정도였습니다.
40년 만에 일어났으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습니까?
놀라운 일이고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능케 되었기에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지도자들은 세속적인 욕심에 눈이 가리어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노랫말 연구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여기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가수 중에 슬픈 노래나 비관적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일찍 죽거나 끝이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수 남인수씨는
1962년에 ‘눈감아 드리오리’라는 노래를 마지막으로 41세의 한창 나이에
그가 부른 노래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가수 이난영씨는 ‘
목포의 눈물’을 불렀는데 그 가사처럼 슬픈 인생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 49세에 죽었습니다.
가수 차중낙씨는 ‘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는데
찬바람이 부는 1968년 가을, 29세의 나이에 뇌에 염증이 생겨 낙엽 따라 가버렸습니다.
가수 김정호씨는 ‘
하얀나비 라는 노래와
님’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 가사가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였는데 그 가사처럼 33세의 젊은 나이에 정말 가버렸습니다. ‘
배호라는 가수도
0시의 이별’, ‘마지막 잎새’를 부르고29세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가수 중에서 이런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잘 살고 있습니다.
남진씨는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지금은 예수 믿고 장로님이 되셨고
송대관씨는 ‘
쨍하고 해 뜰 날’을 불렀는데 해가 떠서 교회에도 태진아씨와 함께 잘 나가고
사회에서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노래도 입으로 하기 때문에 큰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안 된다 못한다는 말보다 잘 된다 잘될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노래도 슬프고 가슴 아픈 노래보다 밝고 아름다운 노래 소망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찬송을 부르며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욕하거나 원망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거나 깨뜨리지 맙시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 더욱 영광 돌리는 최고의 생애가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생애와 가정과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고난과 역경이 많은 세상입니다.
마귀가 넘어뜨리려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부인할 수 없는 능력과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